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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화 (2/292)

2화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입 안에서는 단내가 풀풀 났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근육들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한 개 더! 한 개 더!”

PT 강사의 ‘한 개 더’는 절대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아마도 이 악마는 쥐어짤 수 있을 때까지 날 몰아붙일 것이다.

사실 그러라고 회당 7만 원이나 되는 PT 비용을 지불하는 거니까.

“후우!”

결국, 긴 호흡을 뱉어 내며 벤치 프레스를 또 한 번 밀어 올렸다.

‘한 개 더’를 해냈다는 고양감과 함께 활력이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스스로에게 대견해 해도 될 것 같다.

“수고하셨어요. 이호영 회원님.”

웬일로 이 악마가 더 이상은 날 푸시하지 않았다.

아직 두어 개는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 나오니깐 아쉽기까지 했다.

“조금 쉬었다가 한 세트만 더 하죠. 강사님.”

나는 여전히 누워 있는 채로 거친 호흡을 뱉어 냈다.

강사와 비교하면 여전히 비루한 몸이지만, 한껏 펌핑되어 있는 근육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쌩쌩한 내 모습에 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항상 느끼는 건데요, 회원님 같은 분은 처음 봐요.”

“뭐가요?”

“무슨 헬스에 한이라도 맺힌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생각해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루 두 번, 아침저녁마다 헬스장을 찾아와 이렇게까지 근육을 조지는 사람이 흔한 건 아닐 테니까.

“흉흉한 세상이잖아요. 여기저기서 괴물들도 막 튀어나오고.”

“호신용으로 헬스를 하시는 거라고요? 그럴 거면 차라리 무술을 배우시는 게…….”

“안 그래도 배우고 있어요. 검도.”

그러면서 나는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그런 내 모습에 PT 강사는 졌다는 표정을 짓는다.

“괴물 만나면 정말 검 들고 싸우시게요?”

“글쎄요.”

물론 아니다.

난 그렇게까지 미친놈은 아니니까.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0일 0시간 1분 14초]

[추천 퀘스트: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 검도 배우기]

추천 퀘스트.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이롭기만 한 상태창 녀석은 내게 운동을 추천하였다.

종말에 대비하라는 이유인데, 운동이 왜 필요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종말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고.

어쨌든 지구 종말까지는 이제 1분밖에 남지 남았다.

온몸에 스며든 근육의 통증도 어쩌면 그리워질지 모른다.

이러한 고통이야말로 내가 생생히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에.

그런데 이제 와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종말이 올까?’

어쩌면 그 망할 고블린의 사기극일지도 모를 일이다.

애당초 괴물이란 존재는 인간에게 호의적일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 상태창도 날 골려 먹기 위해 만든 것?

막판에 접어드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강사님, 이제 마지막으로 한 세트만 더 합시다.”

뭐, 어차피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다.

회사는 그만두었고, 가족도 없기에 내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해 버렸다.

만약 1분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뭐, 남는 게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몸 상태만 놓고 보면 지금이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이니까.

“후우!”

“한 개 더! 한 개 더!”

[남은 시간: 0일 0시간 0분 10초]

10초.

드디어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생각해 보면 지난 보름의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 생애를 통틀어서도 가장 열심히 살았던 순간이었으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 자신을 하얗게 불태운 시간이었다.

‘만약 뻘짓이었다면……,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온 힘을 쥐어짜 마지막 벤치 프레스를 밀어 올렸다.

[남은 시간: 0일 0시간 0분 0초]

세상이 희미하게 변해 간다.

‘한 개 더’를 외치던 PT 강사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질 않는다.

바로 옆에서 레그 프레스를 들어 올리던 배불뚝이 아저씨도 없어졌다.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몸매 좋은 아가씨도,

훈수질 좋아하던 몸짱 아저씨도 사라졌다.

아무도 없었다.

텅 빈 헬스장에선 음악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을 뿐이다.

* * *

[종말의 문이 열렸습니다.]

[지금부터 게임이 시작됩니다.]

결국 종말은 오고야 말았다.

내가 생각했던 방식과는 많이 달랐지만.

“게임?”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으며, 내 육체는 생생히 살아 있었다.

입고 있던 옷, 신고 있던 운동화, 손끝에서 느껴지는 얼굴 피부의 감촉까지 그대로였다.

다만 긴 운동으로 쌓여 있던 피로가 사라졌고, 이 공간이 낯설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튜토리얼이 시작되기 전에 플레이어의 적성을 검사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메시지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종말이 이런 식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솔직히 당황스럽다.

어쩌면 사후 세계가 아닐까도 싶었는데 갑자기 웬 게임?

[적성 검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하여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을 부여하겠습니다.]

종말이 온다고 해서 회사까지 때려치웠는데, 다시 직업을 준다니 아주 감격할 노릇이다.

[당신의 직업은 <검투사>로 결정되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적성이 검투사라니 어이가 없다.

심지어 내 옆에는 웬 낡은 장검 하나가 갑자기 생겨났다.

그런데 상태창으로 내 상세 정보를 볼 수 있다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현자의 상태창>에 그런 기능은 없었는데.

<이호영>

직업: 검투사

레벨: 1

HP: 100%

MP: 10

체력: 14 근력: 11 민첩: 7 감각: 8

스킬

<초급 검술 Lv.1> <현자의 상태창>

헛웃음이 나온다.

정말 내 직업이 검투사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보름 전에 검도 학원에 등록하여 죽도 몇 번 휘둘러 본 게 전부인데.

심지어 목검은 잡아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속성으로 진도를 쭉쭉 나가면서 기초 동작 몇 개만 익혔을 뿐인데…….

그뿐인데…….

이상하다.

배우지도 않은 동작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왠지 몸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낡은 장검을 주워 들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기만 하다.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검을 휘두르며 허공을 베어 나갔다.

현란하지는 않지만 잘 정돈된, 말 그대로 초급 검술.

마치 물 흐르듯 움직이는 동작에도 위화감은 전혀 없었다.

“이게 왜 되는 거지?”

사실 결론은 단순했다.

내 스킬창에 초급 검술이 등록되어 있었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현자의 상태창>이 내게 검도를 추천했던 이유는 아마도…….

“게임을 수월하게 해 주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나에겐 검술 스킬이 부여되어 있었다.

검도 학원에 다녔다는 이유일 것이다.

근력 운동과 체력 운동을 추천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터.

초기 스탯이 1이라도 높아지면 그만큼 게임은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무슨 게임인데?

나는 또 다른 스킬로 등록되어 있는 <현자의 상태창>을 발동해 보았다.

어쩌면 이 스킬은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 줄지도 모른다.

미리 종말을 예고해 주었던 것처럼.

[현자의 상태창이 발동됩니다.]

[게임 시스템에서 이 스킬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메시지는 다음부터 생략됩니다.]

1. 현자의 상태창을 발동하여 타인의 상태창을 볼 수 있습니다.

2.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당신에게 때때로 공략집이 전송됩니다.

※ 단, 이 스킬로 인해 당신의 레벨업은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더디게 진행이 될 것입니다.

정신없이 날아든 메시지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스킬 때문에 내 레벨업이 더디게 진행될 거라고?”

과연 좋은 스킬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게임에선 레벨이 깡패.

공략집보다는 광렙, 폭렙이 더 이득이 아닌가도 싶었다.

레벨업이 얼마나 더딜지가 관건.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혹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겁니까?”

답답한 마음에 허공에 대고 외쳐 보았다.

물론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이제 막 베일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

순간 배경이 바뀌며 나는 또 한 번 낯선 곳으로 인도되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울창한 숲길.

당장이라도 야생 동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 * *

지구에는 정말로 종말이 찾아왔고 알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튜토리얼이었다.

[튜토리얼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달성하십시오.]

1. 숲에서 60분간 살아남기

2. 숲길의 끝까지 도망치기

튜토리얼이라 하면, 게임을 시작하기 전의 예열 단계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런 종말. 도대체 누가 기획한 거냐?

[공략집이 도착하였습니다.]

그 순간,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공략집이 전송되었다.

[공략집: 튜토리얼의 60분을 모두 소모하며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잡으십시오. 두 번째 클리어 조건은 달성이 쉽지만, 성장에 방해가 되므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공략집의 말을 따른다면,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몬스터 사냥.

역시 흔해 빠진 그런 게임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단 말이지.”

게임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호승심이 솟구쳤다.

어쨌든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했다.

내가 활용하게 될 공략집은 더디게 진행될 레벨업의 대가이니까.

“닥치는 대로 잡아서 그 불리함을 만회해야겠지.”

분명 튜토리얼인 만큼 상대하기 수월한 녀석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낡은 장검을 들고 숲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배경부터가 확실히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먼 미래에 증강 현실 게임이 나온다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외뿔라쿤>

레벨: 1

웬 너구리 녀석이 숲길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간단한 정보가 자막으로 보였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

놈은 나보다 약하다는 것.

나는 낡은 장검을 양손에 꼬옥 쥐고는 저 너구리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칼질 몇 번에 놈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다.

[외뿔라쿤을 사냥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다행히 내가 입은 피해는 없었다.

초급 검술을 1회 사용하며 마력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

이제 관건은 레벨업이었다.

나는 숲길을 돌아다니며 충실히 몬스터를 사냥했다.

* * *

[외뿔라쿤을 사냥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사냥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외뿔라쿤은 약했고, 내가 가진 초급 검술이라는 스킬이 생각보다 쓸 만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이제 마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

계산상으로 이제 스킬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지만, 마력을 아낄 이유는 없었다.

이제 곧 레벨업을 하게 될 테니까.

나는 스킬을 발동하여 눈앞에 보이는 외뿔라쿤 한 마리를 또다시 사냥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스킬로 인해 레벨업이 더딜 거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체감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해 보면 좋을 텐데, 이 튜토리얼 무대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레벨업마다 포인트를 획득하며, 이를 통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잔여 포인트: 2]

현실의 게임 시스템을 쏙 빼닮아 있는 현재 상황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플레이어의 레벨을 재조정합니다.]

[레벨이 1이 되었습니다.]

“뭐?”

상태창을 보니 정말로 내 레벨은 다시 1로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내 레벨업이 더딜 것이라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해온 사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는 의미?

억울한 감정이 솟구치려 할 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문구 하나가 내 시선에 들어왔다.

[레벨업마다 포인트를 획득하며, 이를 통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잔여 포인트: 2]

레벨은 다운되었지만, 잔여 포인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 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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