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지이잉-
지이이잉-
주머니 속에서는 스마트폰이 요동쳤다.
보나 마나 재난 경보 문자, 어딘가에서 괴물이 또 출몰했다는 소식일 것이다.
이젠 이런 문자가 와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스무 건이 넘어갈 정도니까.
이러다가 세상이 정말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다.
- 부산 해운대 부근. 괴물 두 마리 포착. 괴물의 이동 경로는…….
이번엔 부산이었다.
부산마저 뚫렸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 괴물 청정 구역은 없다는 의미.
지이잉-
지이이잉-
이번엔 對(대) 괴물 대응 수칙 안내 문자였다.
“먼저, 주위의 지하 대피 공간 표지판을 확인하고, 만일 없는 경우에는…….”
이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정도.
그런데 이런 대응 수칙이 무슨 의미가 있는 줄 모르겠다.
실제로 괴물을 만나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런 상황에선 그냥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다.
부디 괴물이 배부른 상태이기를…… 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도착한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어 피곤을 달랬다.
그러다가 문득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에 시선을 돌렸다.
“신기하네.”
씨를 심은 건 오늘 아침 출근 전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벌써 줄기가 두 뼘이나 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심지어 열매도 맺혀 있다.
캡슐 알약 모양의 열매.
여기까지만 해도 신기한데 더 놀라운 사실은,
“어?”
열매가 맺힌 곳 부근에서는 웬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팻말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글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말이다.
<실버 고블린의 단약>
실버 고블린?
생소한 단어이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충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산에서 만났던 그 괴물, 피부가 분명 은빛이었다.
그놈 이름은 아마도 고블린일 테고 말이다.
어제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닭살이 올라온다.
그 괴물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등에는 총알이 아홉 발이나 박힌 상태였고, 배가 불뚝 부른 것으로 보아 암놈이 틀림없었다.
그 괴물은 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을 했고, 결국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괴물 등에 박힌 총알들을 나뭇가지로 빼 주었다.
그 대가로 괴물에게서 웬 씨앗 하나를 받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이 화분에 맺혀 있는 <실버 고블린의 단약>이다.
조금은 어이가 없다.
이게 무슨 전래 동화도 아니고.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괴물에 협조한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나저나 이 단약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가 문제다.
지이이잉-
그 순간 스마트폰이 또 한 번 요동쳤다.
역시 재난 경보 문자였다.
- 세계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정체불명의 거대 구조물이 나타나!
- 외형은 탑 모양이며…….
나는 서둘러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딱히 채널을 조작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모든 채널에서는 똑같은 화면을 송출하고 있는 듯했으니까.
화면을 본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이건 마치 공상 SF 영화의 실사판 그 자체.
그렇게 한동안 넋을 잃었다.
정말 세상이 미친 게 아닐까? 괴물에 이어 정체불명의 거대 구조물이라니.
당장이라도 아포칼립스가 시작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시선이 다시 화분 쪽으로 향했다.
알 수 없이 엄습하는 몽환적인 느낌.
미친 짓이라는 걸 너무 잘 알겠는데, 내 손은 이미 식물에 맺힌 그 열매를 따 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이 기분이 아니면 앞으로도 이 미친 짓을 실행을 할 자신이 없었다.
꿀꺽-
무슨 용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약은 이미 내 배 속에 들어가 있었다.
약간의 어지럼이 밀려왔다.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언가 거대한 것들이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현자의 상태창을 획득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메시지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정체불명의 홀로그램.
[종말의 문이 곧 열립니다.]
[남은 시간: 15일 4시간 12분 52초]
[종말에 대비하십시오.]
[추천 퀘스트: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 검도 배우기]
이건 또 뭐냐.
요즘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뭐라도 터지긴 터질 모양이다.
- 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