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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화. < 보통의 과학자 (12) > (154/301)

298화.  < 보통의 과학자 (12) >

“뭐야? 측정기 왜이래?”

가압기와 파이프를 손보는 엔지니어 실장이 히데오 과장에게 물었다.

실장의 표정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

두 사람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어제만 해도 0.3 밀리시버트였는데.”

실장이 말했다.

“하룻밤 새에 이렇게 올라간다는 건……."

방호과장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때, 통제실 방향에서 말단 엔지니어 중 한 명이 이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실장님! 냉각수 파이프 압이 이상합니다!”

“파이프 압?”

실장의 눈이 빛났다.

“지금 어떤 상태인데?”

“30분 전에 가압기가 완전히 나가버려서 심봉을 넣어서 원자로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근데 보통 그렇게 해도 원자로가 바로 정지하진 않잖습니까?”

“그렇겠지. 원자로는 이미 2,000도가 넘는 초고온이야. 파이프에 흐르던 냉매들 상태를 점검해야 돼. 끓기 시작하면 파이프 내부 압이 올라갈 텐데.”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다가 방금 전부터 그 상승세가 꺾였습니다."

“뭐라고?”

“지금은 완만하게 올라가는 중입니다……."

"......."

실장은 몇 초 동안 석상처럼 굳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시뮬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안전봉……."

실장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심봉으로 안 돼! 안전봉 넣어!”

그가 소리를 질렀다.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휴대용 방사능 수치가 올라간 이유.

이유는 간단하다.

방사능이 어디선가 새고 있기 때문이다.

밸브 3만 개 중에서 어떤 곳에 결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압기가 박살나면서 냉각수가 끓어올랐고, 그 과정에서 밸브가 틀어지고 증기가 새는 거다.

그와 함께 방사능도 흘러나와서 휴대용 측정기에 0.7 밀리시버트가 찍혔을 것이다.

“안전봉 넣어!”

실장은 무전기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전혀 상상도 못한,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실장님이 명령하시기 전에 이미 과장님 지시로 시도했습니다. 근데…….

“뭐?”

-안 됩니다.

“뭐라고?”

-반쯤 삽입된 상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니, 그게 지금 또 무슨 소리……."

실장의 말이 또 멈추었다.

냉각수가 새고 있고, 그게 이곳에서 휴대용 측정기에 검출된다.

그렇다면 균열이 발생한 파이프 밸브는 이곳 터빈 빌딩 쪽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 어디선가 압이 새는 소리가 들려야 하지 않나?

터빈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아무리 시끄럽게 웅웅거려도, 노련한 기술자들 귀에는 그 소리가 포착되어야 정상이지 않은가?

만약 격납 용기 쪽에서 밸브가 나간 거라면?

“격납 용기 내부 압력은?”

-3……370킬로파스칼입니다. 너무 높습니다.

-실장님! 격납용기 내부에 수소제거기가 멈췄습니다!

다른 무전이 날아왔다.

“수소제거기가 멈춰?”

실장은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뒤에서 방호과장이 공포에 질려서 떨고 있었다.

***

그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 마쓰모토는 문부과학성에 있었다.

“아, 안 됩니다! 사장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비켜!”

앞을 막아서는 비서를 밀어내며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간 마쓰모토는 어이없는 상황을 목격했다.

국장 사무실에서 문부과학성의 국장 히시지마와 류영준, 박주혁과 송지현, 그리고 후생노동성 대신인 타케루와 국립보건의료과학원의 켄토, 이렇게 총 여섯 사람이 얘길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한국의 보건복지부의 역할을 포함하는 상등 기관이다.

일본 과학계와 보건을 대표하는 정부 기관의 수장들이 류영준과 미팅을 하고 있다.

게다가 류영준의 뒤에는 김철권 경호팀장과 경호원 세 명이 서있었다.

마치 외부 고문을 불러다가 고견을 구하기라도 하는 듯한 그림이다.

“류 박사는 아직 경시청에서 조사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문부과학성에서 경시청에 체포된 피의자를 빼오는 권한도 있었습니까?”

“지금 그딴 거 따질 때가 아닙니다. 마쓰모토 사장. 내 요청을 거부한 건 당신이었습니다. 난 이미 당신한테 원전을 중지하라고 했습니다.”

히시지마가 말했다.

“정말 겁이 많으시군요. 국장. 이거 아타베 총리님도 모르시는 일일 것 같은데, 이렇게 월권해도 됩니까? 나중에 옷 벗으셔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내 옷 벗는 것 정도로 끝나는 해프닝이라면 천만 다행입니다. 원전이 터지기라도 하면……."

히시지마가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데, 마쓰모토가 대번에 자르고 끼어들었다.

“도호쿠 원전은 안 터집니다!”

그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원전은 안 터진다고! 그 원전의 주인인 내가, 원자력 발전을 평생 해온 내가 안 터진다는데! 내 말이 아니라 대체 왜 저 정신 나간 생물학자 말을 듣는 겁니까!”

“마쓰모토!”

“지금은 돌아가신 유우토 전 대표한테 이 기업을 물려받은 이래로 니혼 전력은 인재人災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후쿠시마 때는……."

“그건 자연 재해였어요!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후쿠시마의 트라우마 때문에 다들 미쳐버렸군요! 저딴 유언비어나 퍼뜨리는 사이비 과학자를, 경시청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고 있는 인간을 문부과학성 국장이란 사람이 빼다가 미팅을 하고!”

마쓰모토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히시지마 국장! 나는 이걸 명백하게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우리 원전이 안전하다는 게 증명된 후에는 당신들도 무사치 못할 거라고!”

“마쓰모토 사장, 일단 좀 진정하시고……."

국립보건의료과학원의 켄토 정무관이 말했다.

“내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저 놈은! 일본 전역의 경제와 질서를 뒤흔든 사기꾼이라고!”

마쓰모토가 류영준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그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누가 등 뒤에서 마쓰모토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 사……사장님.”

그가 떨리는 손으로 마쓰모토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뭐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쓰모토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사장님이십니까? 도호쿠 원자력 발전소장 다이치입니다.

“무슨 일이야?”

-면목 없습니다. 발전소가 폭발했습니다…….

“뭐라고?”

마쓰모토의 눈이 커졌다.

-안전봉을 넣어서 긴급 제동을 걸었지만 원자로에서 진행되는 핵분열을 막는 데 실패했습니다. 격납 용기 내부 압력이 높아지면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국장님!”

문부과학성 4층 비상계단에서 누가 소리쳤다.

직원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맹렬하게 돌진해서 마쓰모토의 옆을 지나쳤다.

국장의 사무실 안으로 왈칵 뛰어 들어갔다.

“터졌습니다!”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졌다.

히시지마와 타케루, 켄토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터졌다고!”

“도호쿠 원전이 터졌어?”

“마쓰모토! 안 터진다면서!”

히시지마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다들 진정하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히시지마 국장님이 발 빠르게 대처해주신 덕분에 도호쿠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 우리가 이미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늦었지만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습니다. 침착하세요.”

“……알겠습니다.”

히시지마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아까 얘기하시던 피폭 환자 치료법에 대해서 다시 알려 주십시오……."

켄토가 말했다.

***

마쓰모토는 반 쯤 실성한 사람처럼 차를 몰았다. 운전기사보고 내리라고 한 다음, 직접 엑셀을 밟았다.

그는 도호쿠 지역을 향해서 미친 듯이 가속했다.

도로는 뚫려 있다.

그쪽에서 도쿄 방면으로 나오는 차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방사능 지옥으로 뛰어드는 자동차는 지금 마쓰모토의 벤츠 한 대 뿐이다.

“안 돼……. 안 돼……."

소방차들이 울리는 싸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재난 지역인 것이 실감났다.

저 끝에서는 원자로에 붙은 불꽃이 보였다.

그리고 도호쿠 원전까지 5킬로미터를 앞둔 골목부터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하나씩 눈에 띄었다.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콘크리트 외벽이 깨져서 날아온 것이다.

자동차나 가로등 따위를 박살내버린 그 콘크리트 파편들 중에 어떤 것은 조그맣고 오래된 집 천장을 박살내고 안방에 처박혀 있었다.

"......."

마쓰모토는 강렬한 불안감에 휩싸인 채 차에서 내렸다.

“어어어……."

그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면서 움직였다.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감속재 흑연이 입안에서 까끌거렸다.

마쓰모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그의 아들, 쿄헤이가 있었다.

쿄헤이는 누군가를 안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하반신이 콘크리트에 짓이겨진 노인이었다.

“돌아가셨습니다.”

쿄헤이가 말했다.

“안……안 돼. 안 돼……."

마쓰모토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안 돼……."

그는 자기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바깥에서는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사상자를 나르고 있었는데, 그들 중 세 사람이 이쪽으로도 들어왔다.

“비키세요!”

방열복과 에어 세트를 착용한 소방관들은 콘크리트를 들어 올리고 시신을 수습했다.

“가족 분이십니까?”

그들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거의 정신을 놓아버린 마쓰모토 대신 쿄헤이가 대답했다.

“여기 맨몸으로 있었던 시민들은 지금 모두 피폭 상탭니다. 체육관으로 이동하세요.”

소방관들이 말했다.

“피폭 환자들만 격리해서 피폭 치료를 한답니다.”

***

“데이노코쿠스 래디오듀런스 (Deinococcus radiodurans)라는 박테리아가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래디오듀런스 (Radiodurans)는 ‘방사능 내성’이라는 뜻이죠. 이 박테리아는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방사능에 말도 안 되는 저항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지역의 생태계를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이 황당한 미생물이 그곳에서 무럭무럭 증식하는 것을 발견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방사선 내성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생물.

이름 자체가 방사능 내성이라는 뜻의 ‘래디오듀런스’.

인간은 5시버트가 넘어가는 방사선을 맞으면 거의 백 퍼센트 사망한다.

그러나 래디오듀런스는 무려 1만 시버트의 방사선을 쪼여도 끄떡없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이 미생물의 세포벽이 방사선을 막아내는 물질로 되어있을 거라 예상하고 그걸 연구하려고 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죠. 래디오듀런스는 방사선에 박살난 DNA를 다시 원래 모양으로 짜 맞추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방사선을 맞은 생물이 사망하는 이유는 전신의 세포 내부에서 DNA가 박살나기 때문이다.

글자 수로 30억 자에 해당하는 방대한 DNA가 무분별하게 찢어지면 그걸 다시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0억 피스짜리 퍼즐을 얼마간 무작위적으로 떼어내면 다시 조립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퍼즐판이 두 개였다면?

두 퍼즐판에서 멀쩡한 부분들을 서로 주형으로 삼아 빈 공간을 짜 맞추면 다시 두 판 모두 원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래디오듀런스는 그걸 해낸다.

방사선을 맞은 두 짝의 염색체는 확률적으로 서로 다른 위치들이 파손된다.

그럼 멀쩡한 부분들을 주형으로 삼아서 두 염색체의 파손 부위를 하나씩 조립해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람 몸에서도 가능한 겁니까?”

히시지마가 물었다.

“물론 불가능합니다. 래디오듀런스가 생성하는 DNA 재조합 물질들은 너무 크고, 면역 반응을 유도해서 고등 동물의 몸에서 작동하지 않거든요.”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셀리제너와 에이젠바이오가 지금 확보한 종은 다릅니다. 이건 될 겁니다.”

"......."

잠깐 대화가 멈춘 사이에 박주혁이 끼어들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가격은 꽤 비쌀 겁니다. 우리 대표님이 체포까지 당하면서 그쪽을 도와드리는 건데, 주주들한테 우리도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아시죠?”

“얼마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지불하겠습니다.”

히시지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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