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 보통의 과학자 (10) >
류영준의 체포로부터 몇 시간 전.
에이젠바이오에서는 임시 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체노버 은행의 테이트 로페어가 요청해서 열리게 된 이사회다.
이사회에는 총 열 명의 임원이 참석해있었다.
일곱 개 연구소의 연구소장들, 경영본부 본사의 부사장, 그리고 테이트 로페어다.
“류영준 대표가 보이지 않는데요.”
테이트 로페어가 말했다.
“류 대표님은 지금 일본에 가셨습니다.”
김영훈 CEO가 답했다.
“오늘 귀국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
그렇다. 오늘 귀국이다.
하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이 안 된다.
이런 시간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김영훈은 약간 걱정스러웠다.
“대표 이사가 돼서, 이사회가 열리는 시간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면 어쩝니까?”
테이트가 말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사회를 두 번이나 연기시킨 분이 테이트 로페어 이사님 아니십니까? 로페어 집안에 생긴 여러 문제들 때문에 말이죠."
"......."
“그리고 오늘 이사회의 주요 안건이었던 니카라과 사업 개요에 대한 설명. 솔직히 이거 필요합니까?”
김영훈이 말했다.
일단 CEO로서, 류영준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끔 이 이사회를 진행시켜야 한다.
“이번 일로 에이젠바이오가 얼마만한 영업 이익을 얻었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게다가 미국이 저질렀던 거대한 횡포를 파헤쳤다는 정의 구현으로 인해서 기업 이미지 상승효과도 엄청났고요.”
김영훈의 말에 연구소장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나는 여기 싸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테이트 로페어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는 집안의 가주가 되어버린 테이트 로페어는 박살나버린 체노버 금융 지주와 로페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했다.
알폰스 로페어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연방준비은행의 모든 권리는 캠벨에게 빼앗겼다. 체노버 은행의 주가는 곤두박질쳐서 심각한 재정난에 처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기회는 있다.
에이젠바이오의 주식.
이걸 가지고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다.
차라리 지금부터 류영준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고 에이젠바이오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한다.
에이젠바이오의 성장력을 보면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된다.
많이 늦긴 했지만 지금에라도 이 버스에 올라탄 것은 전화위복을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에이젠바이오가 앞으로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체노버 은행이 모든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너무 빈정거리지 마십시오……."
“그럼요.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김영훈이 웃으며 말했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급했는지 비서실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김영훈에게 달려와서 귓속말로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뭡니까?”
“류 대표님이 몇 시간 전에 일본 언론에서 도호쿠 원전 폭발 가능성을 예고하셨습니다.”
“원전 폭발 예고?”
“아까는 이사회 준비로 몹시 바빠 보이셔서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얘기했어야죠. ……아니, 잠깐만. 근데 그때 얘기 안 하고 지금 갑자기 들어와서 얘기하는 건……."
“원래는 그 후에 귀국하실 예정이었는데, 늦으시기에 확인해봤습니다. 지금 류 대표님이 체포되셨답니다.”
“네?”
놀란 김영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체포요?”
“그렇습니다. 아직 일본 언론은 모르는 모양인데, 숨겨질 만한 일이 아니니 곧 세계가 다 알게 될 겁니다.”
“……. 지금 이사회에서 이걸 논의하겠습니다. 자세히 얘기해보십쇼. 그리고, 로페어 이사님.”
김영훈이 테이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페어 집안에서는 미국 유수의 언론들을 흔들어댈 수 있지요?”
“흔들어댄다니, 말씀을 왜 그렇게……."
테이트 로페어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에이젠바이오를 위해서 로페어 이사님께서 일해주실 기회가 생겼습니다.”
[류영준 박사가 일본 언론에서 도호쿠 원전 폭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일로 일본 주식 시장은 크게 요동쳤고, 도호쿠 원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는 등, 거대한 혼란이 빚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류영준 박사를 긴급 체포한 상황이다.
혹자는 류영준 박사가 태양 전지 발전소 상용화를 위해 탈원전 운동을 부추기려는 목적으로 이 같은 선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류영준 박사는 근거 없이 선동한 것이 아니며, 도호쿠 원전의 기술자들의 리포트를 토대로 위와 같은 주장을 편 것이다.
또한 원전 폭발을 예고하는 것이 류영준 박사에게 이익이 될 여지가 거의 없다. 태양 전지는 부추기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올 미래이며, 에이젠바이오의 매출의 핵심은 의약품에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류영준 박사가 대신 나서서 국가적 재난의 위험성을 예고한 것으로……]
미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 언론들이 차례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류영준이 누비고 다녔던 인도와 콩고, 스웨덴과 증국, 이스라엘, 니카라과, 그리고 미국은 물론이고, 에이젠바이오의 의약품과 차세대 병원의 의술이 뻗어나간 모든 곳에서 예민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백악관이었다.
금권 독립이라는 막강한 업적을 따낸 캠벨 대통령은 미국 시민들이 지금 류영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후쿠시마 때에 얼마나 원전 폭발에 민감했는지 알고 있었다.
“미국은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는 도호쿠 원전 사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방사능을 유출시켜 세계 환경에 큰 피해를 입힌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과거로부터 배운 게 있다면 도호쿠 원전이 또 폭발하는 사태는 쉽게 예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캠벨 대통령은 재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메시지들을 공개적으로 던지면서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러한 국가적 재난을 예고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억압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자들의 리포트가 자유롭게 인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류영준 박사와 같은 정의로운 사람이 어려움 없이 언론에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류영준 박사를 체포하기로 결정한 부분에 대해 심히 유감임을 표합니다.”
스웨덴에서는 데시데리아가 왕실을 대표해서 발언했다.
“원전 폭발 같은 재난을 예고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상황은 몹시 비민주적입니다. 스웨덴 왕실은 자국의 명예시민인 류영준 박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양군위 성장이 발언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한번 방사능 유출을 겪은 국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험성을 지적하는 과학자들의 양심적인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류영준 박사를 체포한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세계 여론이 류영준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일본 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도쿄 경시청 홈페이지는 류영준 체포를 비난하는 글로 뒤덮였고, 심지어는 트래픽 초과로 잠깐 웹사이트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우리 예상보다 훨씬 여론이 안 좋습니다.”
비서실장은 아타베 총리에게 말했다.
“총리님. 일단 류 박사를 석방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야.”
아타베 총리는 고개를 저었다.
“딱 한번이야. 이번 한번 위기만 잘 넘기면 돼. 류영준 박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원자력 발전이 전공은 아니잖나. 그리고 마쓰모토가 도호쿠 원전은 안전하다고 했어. 난 그걸 믿어.”
“총리님! 그쪽에서 무리하는 거 아시잖습니까?”
“중요한 걸 지키려면 약간은 리스크도 짊어질 줄 알아야지. 최악의 사태에도 제어봉만 넣으면 터지진 않는댔어. 그때까지는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돼. 이렇게까지 된 이상 우리가 옳아야 한다고. 비밀리에 수리에 성공하고, 원전은 아무 문제없었던 것이어야 하고, 류 박사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이어야 돼.”
아타베가 말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아타베가 있는 총리대신관저로부터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지요다구에서는 마쓰모토가 아타베와 거의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리스크를 짊어져도 됩니다. 통제할수 있어요. 성공하면 태양전지 발전소를 미루고, 니혼 전력이 살고, 아타베 총리님도 사는 겁니다. 그리고 류영준에게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류영준 박사랑 싸워서 뭣해요?”
과학문부성의 국장 히시지마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국장님. 그 놈은 그렇게 훌륭한 의학의 구원자 같은 게 아닙니다. 내 이제 그 사람 정체를 알았습니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FDA 승인도 없이 임상도 하고, 그게 아니면 누가 사람 치료해달라고 빌어도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매정한 인간입니다.”
마쓰모토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니, 사장님. 지금 무슨 소릴……."
“아니요. 국장님. 절 설득할 생각 마십시오. 들어보세요. 우리는 원전에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멋지게 수리해낼 겁니다. 한 번도 정지하지 않고요. 그리고 가압기 파손 이슈는 그대로 사라질 겁니다. 류영준은 일본 경제를 함부로 뒤흔들어놓은 사악한 예언자가 될 겁니다.”
“류 박사랑 뭔 일 있었습니까?”
“국장님도 일본이 한국 과학을 뒤따라가는 이 모양새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셨잖아요!”
“에이젠바이오가 급속 성장해서 그런 면이 아쉽긴 했죠. 하지만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우리 국민들 목숨을 담보로 걸면서까지 이렇게 할 일이냐는 말입니다.”
“……단순히 나랑 무관한 국민들이 아닙니다.”
마쓰모토는 이를 깨물며 말했다.
“아무튼 원전 가동 중지는 없습니다. 국장님. 돌아가십시오.”
***
도호쿠 원전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평화로운 동네다.
많은 시민들이 이미 짐을 꾸려서 도쿄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최소한 한 달 정도는 그곳에 머무르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릴 예정이다.
하지만 마을에 남은 노인들도 있다.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하고 힘없는 노인들.
그들은 갈 곳이 없어서, 또는 움직일 기력이나 삶에 대한 그만한 의욕이 없어서 자신의 인생을 담은 이 지역에 그대로 남았다.
아직 정부 차원에서 소개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소방청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할머니! 피신 안 가세요? 도호쿠 원전 터진다는데요.”
40대 중년의 남성이 백발의 할머니에게 물었다.
남자의 이름은 쿄헤이.
마쓰모토의 아들이다.
“아가. 내가 가면 안 되지.”
마쓰모토의 어머니, 하루미가 말했다.
“아버지 때문에요?”
“그래. 네 애비가 저 원전이 안 터지게 하겠다고 했어.”
하루미가 말했다.
“네 애비가 얼마나 효자인지 알잖니. 내가 늙어서 잘 움직이질 못하니까 요새는 그, 뭐냐, 늙어서 거동이 불편한 것도 치료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 자기가 그런 임상 치료도 받게 해주겠다고.”
하루미는 평상에서 손자의 손을 꼭 잡았다.
“……. 할머니. 저는 이번엔 아버지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나가셔야 해요. 저랑 같이 도쿄에 가서 한 달만 있어요.”
“에이. 아니야.”
하루미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 내가 나이가 아흔이 넘었다. 이제 지겹다. 삶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내 아들 배신하고 너한테 폐 끼치면서까지 도쿄로 가겠니.”
"......."
“요새 여기 기자들이 왔다갔다하더라. 내가 마쓰모토 애미인 것도 아는 사람들은 알아. 근데 내가 도망치면 네 애비가 얼마나 난처하겠니.”
“하아……."
쿄헤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있으면 제가 바로 데리러 올게요. 꼭 무사하셔야 해요. 그리고 만약 정부에서 소개령 내리면 그때는 고집부리지 말고 소방 대원들 따라서 피신하셔야 해요. 알겠죠?”
“그래. 알겠어.”
하루미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
일본 전역이 시끄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경시청에는 박주혁과 경호팀장 김철권이 도착했다.
“야, 야. 걱정하지 마. 이게 체포를 할 만한 건이 아닌데 체포를……. 미친 새끼들이 진짜.”
박주혁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도 일본 정부에 이 문제에 대해서 배상 청구를 걸 거야. 개박살 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주혁아.”
“어."
“우리 일본 정부랑 계약서 써야할 것 같다.”
“계약서?”
“원전은 터져.”
류영준이 말했다.
‘가압기가 다가 아니다.’
수만 개의 파이프를 그 짧은 시간 동안 기술자들은 모두 점검하지 못하지만 로잘린은 아니다.
류영준이 방호과장 히데오를 만난 후에, 로잘린은 수만 개의 세포들을 날려서 원전 내부를 모두 점검했다.
이미 주급수펌프는 망가졌고 보조급수펌프를 쓰고 있다.
더 최악인 것은 안전봉도 정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도호쿠 원전은 마쓰모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조금만 있으면 냉각재 파이프의 압력을 유지하지 못해서 냉각재가 끓을 것이고, 파이프 이음새 곳곳이 터져나갈 것이다.
그럼 순식간에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원전이 터진다고?”
박주혁이 물었다.
“그래. 그리고 그때는 원전 내부에서 가압기를 수리하던 엔지니어들이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피폭될 거야. 여기 경찰들한테 얘기해봤지만 소용없었고, 이젠 내 얘길 믿는다해도 늦었을지도 몰라.”
류영준이 저쪽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방사능 피폭은 세포 내의 DNA가 산산조각 나는 거야. 신체 곳곳에서 조직 괴사가 진행되고, 피폭 피해자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다 사망하겠지. 우리가 그 사람들을 치료해야 돼.”
“……. 방사능 피폭을 치료한다고?”
박주혁의 얼굴에 혼란이 번졌다.
“아까 생명창조부서랑 통화했어. 기술 개발은 그쪽에 맡기고 너는 만약의 경우에 일본 정부랑 임상 계약서 쓸 준비를 해줘.”
덜컥!
경시청 형사과 문이 열렸다.
세 명의 남자가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류영준을 향해서 곧장 달려오는 이는 심각한 표정을 한 과학문부성의 국장, 히시지마였다.
그 뒤를 이어서 후생노동성의 대신과 후생노동성의 사설등기관인 국립보건의료과학원의 국장이 모습을 보였다.
“류영준 박사님……. 지금까지 일들에 대해 전부 사죄드리겠습니다.”
히시지마가 말했다.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