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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 보통의 과학자 (9) > (151/301)

295화.  < 보통의 과학자 (9) >

원전 폭발 이슈는 단순히 니혼 전력의 주가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었다.

‘원전이 터진다.’

이 메시지는 후쿠시마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순식간에 거대한 소란이 일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도호쿠 원전의 북쪽에 있는 아오모리 현이나 서쪽의 아마가타 현, 남쪽의 간토 지방 방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숙박업소들은 잠깐 새에 방이 모두 나가버렸고, 정부에 시민들을 수용할 대피소를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나둘 나타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빠른 속도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건 진짜다.

일단 스피커가 류영준이다. 그동안 단 한번도 이런 종류의 재난 예측에서 틀린 적이 없다.

생물학자가 원전 폭발을 예고하는 게 황당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 후보이기도 하다.

게다가 혼자만의 망상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 게 아니라, 도호쿠 원전 내부자가 제공한 자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 자료에는 기술자들이 쓴 평가서가 들어 있었다.

도호쿠 원전의 가압기 파손이 명확하고, 냉각수 펌프와 파이프도 점검을 새로 해야 한다.

계속 가동하다가는 분명히 폭발 위험이 있다.

일본 주가를 대표하는 닛케이지수나 토픽스 지수는 실시간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일본 시민들은 라면이나 통조림 같은 즉석 식품류와 생수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경제 전반에 커다란 혼선이 초래되었다.

도호쿠 지방에서 원전 가동 중지를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던 시민들은 아이러니하게 집회를 그만두었다.

이제는 도망가야 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엄밀하게 원전의 가동 위험을 살피고 위험 수위가 높다면 가동을 중지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지 마시고 생업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정부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결국 아타베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서 그렇게 밝혔다.

그러나 기자들은 회견장에서 대변인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마구 던졌다.

“내부 기술자들은 물론이고 니혼 전력 본사에서 파견된 기술자들도 원전 가동 중지가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정부에서 또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까?”

“정부에서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원전이 폭발하면 그걸 책임질 방법이 있긴 합니까?”

“후쿠시마의 방사능도 아직 완전히 제염에 성공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방사능 오염수 배출 문제로 일본 1년 예산에 맞먹는 돈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원전 가동을 중지하는 게 안전한 것 아닙니까?”

대변인은 귀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류영준 박사가 발표한 내부자 자료는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류 박사가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도호쿠 원전으로 기술자들을 파견한 겁니다. 조사 결과를 기다려주십시오.”

“류영준 박사를 체포했습니까?”

기자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갑자기 회견장에 경악의 분위기가 술렁이며 조용해졌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요미우리신문의 기자였다.

“류 박사님이 계신 호텔로 사복 경찰들이 찾아가서 류 박사님을 체포했고 지금 구금 중이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

대변인은 침을 조금 삼켰다.

“합법적인 절차입니다.”

그가 말했다.

“지금 일본 전체의 주가가 요동치고 사회 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로 공공질서에 문제를 초래한 경우에는,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유포자를 소환 조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류영준 박사는 출국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출국을 정지시켜야 했습니다.”

“아!”

“후우……."

“와……."

기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금 도호쿠 원전 폭발 가능성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류 박사님을 체포했다는 겁니까?”

“일본 경시청은 류 박사님에게 충분한 예우를 다하여 모시고 있고, 참고인 조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

정부 차원에서 조사한다는 발표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과학기술정책국 국장 히시지마에게 업무가 되어 내려왔다.

“미치겠네 정말.”

히시지마는 사무실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산 넘어 산이다.

어제만 해도 셀리제너로부터 후쿠시마 일부 지역의 방사능 제염실험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근데 이제는 도호쿠가 터진댄다.

“아니 니혼 전력 이 새끼들은 원전이랑 뭐 원수졌나? 나한테 왜 이래?”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들을 파견해서 원전에 폭발 위기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자력과 과장이 말했다.

“진짜로 조사하라는 뜻이야?”

“그건 아니겠죠……. 국장님. 니혼 전력 회장인 마쓰모토랑 아타베 총리는 거의 의형제 수준입니다.”

"......."

“제가 도호쿠 원전 기술자들하고 얘길 해봤습니다. 도쿄대 동문이거든요.”

“뭐라던가?”

“폭발 위험 상당히 높답니다.”

“하아……."

“일주일 전에는 그래도 가압기가 정상 작동했는데, 지금은 기능이 떨어져서 냉각수 파이프 내부압이 많이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일단 냉각수 펌프를 풀가동해서 냉각수 회전량을 더 늘렸답니다. 그리고 원자로 제어 심봉(Shim control rod)를 넣어서 원자로 출력 자체를 많이 낮췄습니다. 기술자들이 나름대로 가동을 중지하는 대신 출력을 줄이는 방법으로 타협한 거죠.”

원자로과 과장이 말했다.

“그럼 전력이 끊어지진 않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모릅니다.”

원자력과 과장이 말했다.

“모른다고?”

“그게 문젭니다. 그런 방식으로 버티면서 가압기를 수리하는 중인데 이게 쉽지가 않답니다. 그리고 가압기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심봉으로 출력을 더 많이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렇게 출력을 계속 떨어뜨릴 바에는 가동을 중지하는 게 나은 거 아냐?”

“그럼 도호쿠 원전이 공급하던 전력을 다른 데서 끌어와야 할 겁니다. 그리고 뉴스에 나겠죠. 원자로가 가동 중지됐다고. 마쓰모토는 그걸 피하려는 겁니다.”

“정말 별 개 같은 삽질을 다 하는군.”

“니혼 전력 본사에서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더라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게 제어할 수 있답니다.”

과장이 말했다.

“어떻게?”

“제어봉이 심봉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반응이 너무 빨라지고 위험하다 싶으면 출력제어봉을 넣어서 안정시킬 수 있고, 최악의 사태에도 안전봉을 넣어서 원자로를 긴급 제동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근데 기술자들은 왜 중지하라고 하는 거야?”

“가압기 파손시에는 중지하는 게 스탠다드입니다. 안전봉이 아무리 반응이 빠르다 해도 그건 최악의 사태를 막는 제동 장치지, 애초에 그걸 쓰는 상황 자체가 위험한 겁니다. 제동에 실패하면 끝장이고요.”

“……. 그럼 자네 생각은 마쓰모토의 의견을 묵살하고 원칙대로 원자로 가동을 중지시켜야 맞다는 건가?”

“그게 매뉴얼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더 있습니다.”

과장이 말했다.

“어떤 문제?”

“지금 세계 여론이 안 좋습니다.”

“류 박사 체포 때문에?”

“수많은 시민 단체와 과학 저널들이 앞장서서 일본 경찰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여기서 원전 터지면 진짜 끝장이에요. 국장님. 도호쿠 원자로 가동 중지해야합니다.”

“……. 내가 한번 마쓰모토를 만나보지.”

***

도쿄 경시청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항의하고 있었다.

류영준의 체포를 비난하는 집회였다.

경시청 형사부의 수사국장 타다요시는 창밖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아니 당연히 이런 상황이면 불러다 조사를 하는 게 맞지,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 저 난리야……."

“그리고 류영준 정도 되는 사람이 한국으로 가버리면 책임을 묻기가 얼마나 어려워지겠습니까. 구금하신 건 잘하신 겁니다.”

형사부 반장이 말했다.

“구금이 아니라 조사.”

타다요시가 주의를 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피의자 조사……."

“피의자라는 말도 쓰지 마. 실수로라도 구금, 체포, 이런 단어는 안 돼.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 어감이 안 좋다고.”

“근데 법적으로 48시간 내에 풀어줘야 하는데 어떡합니까?”

“그때는 필요하면 구속영장을 내거나 해야지. 아무튼 지금 류 박사를 한국으로 보내면 안 돼. 원전 문제가 마무리된 후에 일본 경제에 대혼란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야 해. 경찰은 경찰이 할 일을 한다. 상대가 아무리 유명인사라도 상관없어.”

“근데 지금 접견하겠다고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구? 가족이면 만나게 해줘.”

“그건 아니고……. 류 박사랑 같이 일본에 온 과학자입니다. 일행이니까 일단 조사 중간에 만나게 해줬습니다.”

“……. 그래. 잘했어. 그 정도는 괜찮아.”

수사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행이란 사람은 송지현이었다.

후쿠시마 지방에서 방사능 제거 연구를 하던 그녀는 류영준이 체포되었다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곧바로 도쿄 경시청으로 달려왔다.

“류 박사님! 대체 어떻게…….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너무 놀라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송 박사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전에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하셨죠?”

“네? 아, 네!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나요?”

송지현이 물었다.

“니카라과 화산토에서 발견하신 박테리아들 중에서 방사능에 반응하는 종이 몇 개였죠?”

“하나는 방사능을 먹어치웠고, 하나는 고농도의 방사능 안에서 죽지 않았어요.”

“혹시 두 생물종의 WGS (Whole Genome Sequencing) 데이터가 있습니까?”

“네. 일본으로 오기 직전에 시퀀싱을 마쳤습니다.”

“내부 기밀 자료겠지만 혹시 지금 저한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송지현을 주저 없이 가방에서 랩탑을 꺼냈다.

연구원으로서 회사에서 개발중인 기술을 유출하는 행위다.

기밀유지 원칙을 어기는 것이지만 지금 류영준과 송지현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송지현은 컴퓨터에서 두 박테리아의 WGS 데이터를 열었다.

그래봤자 A, T, G, C 네 글자가 마구 나열된 거대한 퍼즐 같은 문자열 데이터다.

류영준은 그것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이렇게 본다고 뭘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죠, 원래는. 하지만 송 박사님도 이걸 저한테 보여주신 것은 뭔가 알아낼 거라 생각해서죠?”

류영준이 데이터를 읽으면서 물었다.

“네."

“첫 번째 박테리아는 송 박사님이 처음 발견한 종입니다. 이 박테리아는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박테리아는 데이노코쿠스 래디오듀런스 (Deinococcus radiodurans)의 친척되는 종입니다.”

“데이노코쿠스 래디오듀런스?”

“두 번째 박테리아를 혹시 에이젠바이오에 개발용으로 판매하실 수 있습니까?”

“제 권한이 아니지만 대표님도 허락하실 거예요. 대표님한테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근데 류 박사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저는 곧 풀려날 겁니다. 일본 정부에서 이런 수를 쓰는 게 황당하지만 절 오래 잡아 두진 못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대표님!”

경호팀의 백준태가 류영준에게 다가왔다.

“지금 에이젠바이오 본사에서 김철권 경호팀장님과 박주혁 변호사님 일행 48명이 도쿄 공항에 내리셨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철권 팀장님하고 박주혁 변호사보고 이쪽으로 와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류영준은 휴대폰으로 누군가의 연락처를 찾았다.

[생명창조부서장 천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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