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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화. < 보통의 과학자 (7) > (149/301)

293화.  < 보통의 과학자 (7) >

고리야마시 서쪽 산지의 태양광 발전소 준설 현장에는 이미 노부히로 교수의 동료들이 도착해있었다.

다들 건축이나 태양에너지 전문가들이다. 노부히로 교수의 자문역이면서 동시에 이 ‘탈원전 시위성 건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팀원들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류영준에게 손을 내밀어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태양광 발전소는 사실 낯선 개념은 아니다. 국내에도 전남을 비롯해 농촌 지역에 소형 태양광 발전소들이 꽤 많이 설치돼있다.

하지만 규모를 얘기하자면 귀여운 수준이다.

국가사업 모델이라기보다는 똑똑한 장년들이 재테크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억 쯤 돈을 들여서 열 개 가구가 쓸 만한 소량의 전기를 생산하고, 그걸 한전에다 판다.

이런 재테크성 소형 태양광 발전소는 일본에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에이젠바이오의 태양 전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 될 것이다.

경제학자 노부히로는 이 사업 모델에 확신이 있었다.

고리야마시 서쪽의 산지는 경사가 25도 이내로 완만하며 바로 도로가 인접해서 바로 인근 농촌과도 가깝다.

이 임야를 메우고 있는 임목 군락도 벌목하기가 쉽다.

“기존 태양광 패널이 600평 대지에서 100KW 정도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젠바이오의 태양전지를 쓰면 딱 열두 배가 돼요.”

노부히로가 말했다.

“거기다 경량화와 설치, 해체, 운반이 쉽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지보수 비용이 상당히 많이 삭감되었습니다.”

옆에서 다른 교수들이 거들었다.

“지금은 태양광 발전에 대해 일본 정부가 규제를 상당히 많이 걸어놓았는데, 공시지가의 40%씩 되는 토지 전용 분담금이나, 지가 상승분의 30% 정도 되는 개발이익분담금 같은 걸 내야합니다.”

“우리는 연구 목적으로 설치하는 거라서 몇 개의 사업 인허가를 뚫는 데 성공했지만 이런 세금 쪽의 수익성 규제는 여전히 허들이었죠. 근데 그걸 감안하고도 태양광 발전소를 본격화하는 게 원전을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나이 많은 교수들이 호기심 가득한 학생들처럼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류영준은 그들과 태양 전지 설치 패널 개수와 운반 계획 등을 토론했다.

“이미 토지공사가 끝난 지대고, 태양 전지가 도착만 하면 설치하는 데는 반나절이면 될 것 같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는 수익의 목적이 아니라 태양 전지 발전소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니, 태양 전지를 약간 비싸게 사도 상관없습니다.”

노부이로가 말했다.

“지금은 태양전지를 소매로 유통업체나 전기 회사들에 판매하실 때 원가에서 약간 할인을 하시는 걸로 아는데, 그런 것 없이 원가 그대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류영준은 교수들과 사업 개요에 대해 토론을 마치고 물었다.

“근데 토호쿠 지방에 원전이 터진다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거 혹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

“이게 무슨 소리예요?”

에이젠바이오 CEO 김영훈은 경영 본부에서 올라온 보고를 보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니혼 전력의 회장인 마쓰모토가 에이젠바이오에서 개발중인 노화 치료 기술의 임상을 받고 싶어 한다고?”

“그렇답니다.”

경영본부에서 보고를 올린 부장이 답했다.

“우리 회사에서 개발 중인 기술 중에 내가 모르는 것도 있나?”

김영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 전에 노화 치료라는 게 가능하긴 한 얘깁니까? 그리고 노화라는 게 치료 대상인 가요? 내가 본래 의학 전공이 아니라 모르는 건가? 대체 이 보고가 어떻게 올라온 거예요?”

“니혼 전력 회장도 정상적인 루트로 얻은 정보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류 대표님하고 개인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미팅을 잡아달라 했답니다. 근데 비서실에서 커트한 거죠.”

“당연하죠. 뭐 어디 백악관에서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아시아 최대 전력회사래도 에이젠바이오에 비하면 조무래기 기업이에요. 거기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우리 대표랑 이유도 없이 미팅을 어떻게 주선해.”

김영훈이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쪽 회장 얘기로는 우리가 노화 치료 기술을 개발중인 것을 어쩌다 알아냈고, 그거 임상 시험을 받고 싶다 이건가요?”

“네. 비서실에서는 일단 연구개발 내용을 전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영본부 측을 경유해서 회신 주겠다고 둘러댔답니다.”

“잘했네.”

“미팅 주선할까요?”

“아니요. 솔직히 그 연락을 한 사람이 일본 전력회사 대표 쯤 되는 인물인 게 뜻밖이지만, CEO인 내가 모르는 연구를, 그것도 노화 치료 같은 황당한 거 임상을 받겠다는 말은 정신 나간 소리예요.”

“그럼 미팅 주선은 안 하시는 겁니까?”

김영훈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생판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했지만 사실 김영훈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기업가라기보다 과학자인 류영준과 달리, 노련한 경영자인 김영훈은 항상 다양한 소문들을 발빠르게 수집했다.

때문에 이사야 프랭클린을 두고 재생의학계에 슬금슬금 번지는 소문 역시 김영훈은 진즉에 확인한 상태였다.

그 진위여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해리스 국장의 아지트나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에서 뭔가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 류영준이 진행한 치료법은 정상적인 경로를 거친 게 아니다.

FDA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이면 에이젠바이오에 기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류영준 대표가 올려놓은 이사야의 임상 동의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류영준의 약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류 대표님은 바쁜 분입니다. 그 인류의 보고 같은 두뇌를 이런 데 낭비하게 할 수는 없죠. 제 선에서 커트하고 보고만 올리는 식으로 갑시다.”

김영훈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노화 치료 연구는 사내에서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김영훈은 의자에 앉으면서 찜찜한 기분을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미국 의대 쪽이나 애플 같은 거대 기업에서 이런 연락이 온다면 이해하겠지만 니혼 전력?

거리적으로도 미국과 정반대고, 사업적으로도 의학과는 동떨어져서 이사야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가장 어려울 듯 보이는 곳이다.

마쓰모토 회장은 그럼 어디서 그런 정보를 접했을까?

‘일단 류 대표님이 알고는 있어야겠지.’

김영훈은 류영준에게 메일을 썼다.

***

도호쿠 원자력 발전소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지만, 도쿄대의 명망 있는 전기과 교수들의 경우엔 예외였다.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온 류영준과 로잘린 역시 방문이 허가됐다.

“이쪽 어린이 손님도 견학인가요?”

방호과장이 물었다.

“네. 제 딸입니다. 같이 보려고요.”

류영준이 대답했다.

“출입증에 이름, 연락처 써주시고 방호복으로 환복하세요.”

류영준과 교수들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방호복을 입고 발전소 내부로 들어갔다.

“측정기를 왼쪽 가슴에 꽂으셔야 합니다.”

이어서 건네받은 작은 기계 하나를 왼쪽 가슴의 포켓에 꽂았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방호과장이 도쿄대 교수들과 류영준을 안내해주었다.

교수들은 류영준이 원전을 보고 싶어했던 것에 뭔가 목적이 있을 거라고 다들 추측했지만, 그는 특별한 액션 없이 조용히 원전 내부를 관찰하기만 했다.

작업자가 지나다니는 통로는 방사능 수치가 낮게 유지된다.

사용한 핵연료 보관 수조를 지나서 원자로 격납 용기가 나타났다.

“이 안은 방사능이 가득한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안에도 작업자가 드나듭니다. 내부에는 이 통로만큼 안전한 위치도 있고요. 하지만 고농도의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나 들어갈 순 없죠.”

방호과장이 말했다.

“작업자들도 필요할 때만 허가를 받아서 들어갑니다. 이 안에는 진짜 핵연료가 가동되고 있으니까요.”

"......."

당연히 들어갈 수 없지만 들여보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류영준의 손을 잡고 발전소 내부를 걷던 로잘린의 피부에서 약 천 개의 세포들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격납 용기 내부로 들어간 상태였다.

‘밀폐 공간 아니야? 어떻게 들어간 거야?’

류영준이 머릿속으로 물었다.

-냉각수가 공급되는 통로 타고 들어왔습니다.

‘좀 어때?’

-한번 살펴볼게요.

“가죠.”

류영준이 교수들에게 말했다.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둘러보는 이 견학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수들은 모두 궁금했지만, 류영준은 실시간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 중이었다.

모든 생명체의 분자구조를 원자 단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로잘린은 그 고배율의 시야를 원자로를 관찰하는 데 사용했다.

-노심 안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저한테 방사선은 별 피해를 입히지 못하지만, ‘열’은 위험하거든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피트니스 허용량 내에서 제 세포들의 세포막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원자로를 바깥에서 살펴보는 것 정도밖에 못해요.

‘괜찮아. 무리하지 말고 세포체로 볼 수 있는 데까지만 확인해줘.’

류영준은 메일을 읽는 대신 로잘린과 시야를 동기화해서 원자로를 살펴보고 있었다.

도호쿠 원전의 가장 깊숙한 곳.

원자로의 중심부위 노심.

핵연료와 감속재로 구성되어 핵분열이 일어나고 그 사이를 냉각재가 통과하는 곳이다.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열에너지가 물을 끓이고, 여기서 만들어진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멀쩡하네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지반이 1미터나 내려앉았다고 했나요? 그런 것 치고는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다 잘 돌아가고 있어요.

‘그래?’

-근데 이런 시설물은 자연계에 존재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세포 내부를 지켜보듯이 훤히 꿰뚫을 순 없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어떤 원리인지 이해는 되지만.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제 생각에는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이야.’

로잘린은 원자로를 관찰하던 세포들을 다시 빼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로잘린의 시각에 작고 날카로운 균열 하나가 포착되었다.

-가압기에 아주 작은 균열이 가있는데…….

‘가압기?’

원자로에서 가압기는 원자로 내부를 150기압으로 유지하는 장치다.

원자로에서는 순간 2,0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고, 이걸 식히기 위한 냉각재 (물)는 당연히 끓는 게 정상이다.

그럼 냉각재가 전부 끓어버리면 냉각 펌프 관이 터지면서 원자로가 망가질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냉각재를 액체 상태로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그 방법이 압력을 높이는 것이다.

LPG 가스통 같은 것도 압력을 높여서 가스를 액화시켜서 운반한다. 그것과 같은 원리다.

“잠깐만요.”

류영준이 걸음을 멈추었다.

“방호과장님, 지진이 일어난 후에 원자로 내부도 점검을 했나요?”

그가 물었다.

“그럼요.”

방호과장이 답했다.

“냉각재 들어가는 펌프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혹시 펌프나 가압기를 확인해주실 수 있습니까?”

***

방호과장은 발전소장에게 다이렉트로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발전소장은 본사의 시설안전관리 팀에 보고를 올렸다.

시설안전관리 팀장은 마쓰모토 회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도호쿠 제1 원전의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실무자의 소견이 올라왔습니다.”

“실무자 누구?”

“방호과장입니다.”

“엔지니어도 아니지 않나? 제대로 확인된 거야?”

“원전 상주 기술자 소견으로는 가압기 파손 가능성이 있답니다. 당장 가동 중지하고 전체적으로 면밀하게 검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

마쓰모토는 고민에 잠겼다.

이미 니혼 전력은 도호쿠 원전을 점검했고 문제없음을 공표했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사람이 체면이 있지……."

지금 도호쿠 원전을 작동 중지하는 것은, 후쿠시마 위아래로 번지고 있는 탈원전 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운동가들은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후쿠시마의 오염수 처리 문제를 더 공격적으로 물어뜯을 거다.

아타베 총리가 막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기술자들 보내서 재점검 해봐. 하지만 원전의 작동 중지는 안 돼. 점검하는 것도 언론에 새나가지 않게 조용히 진행해."

마쓰모토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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