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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화. < 보통의 과학자 (4) > (146/301)

290화.  < 보통의 과학자 (4) >

태양 전지는 개발된지 두 달이 채 안 되었다.

많은 국가들에서 이 물건의 효율과 미래 비전을 높이 점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국가 기반 인프라인 전력 사업을 통째 교체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언젠가 태양 전지로 전력 사업이 전부 교체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태양 전지 자체는 소량만 구매해서 시험 운행 중인 것이다.

그러나 노부히로 교수는 태양 전지를 이용해 소형 발전소를 직접 건설하는 작업을 제시하고 있었다.

“에이젠바이오에서도 꽤 중요한 사업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콜드체인이나 소규모 비상전력이나 전기세 삭감용으로 쓰던 태양 전지가 본격적으로 메인 발전소 역할을 하게 되는 첫 사례니까요.”

노부히로가 말했다.

“맞습니다. 근데 지금 대부분의 사업들은 우리 회사 경영 본부의 김영훈 CEO님이 맡고 계십니다. 김 이사님하고 사업 계획서를 완성해주시면 제가 일본으로 가서 발전소 기획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노부히로 교수는 김영훈을 만나러 CEO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류영준은 노벨상 수상자인 카게쿠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카게쿠니는 그저 손님 한 명 소개해주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요즘 류 박사님이 노화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면역학이나 재생 의학계에 돌던데……."

카게쿠니는 류영준의 사무실로 이동해서 그렇게 말했다.

“노화 치료법이요?”

“이사야 프랭클린의 담당의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퍼져나가는 모양이에요. 사실입니까?”

"......."

이사야 프랭클린은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으로 네덜란드까지 다녀왔다.

미국에 돌아온 후에는 당연히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총상의 후유증을 치료하고 안정을 취했다.

그 가운데 그녀는 미국에서 몇 개의 재판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재판들이 그룸 레이크에서 겪었던 비극과 관련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치료와 함께 증거물 확보를 위탁받아 유전자 검사도 진행했다.

그리고 검사를 담당했던 의사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텔로미어가 연장됐다.’

이사야가 아지트에서 류영준의 치료를 받은 것은 정식으로 FDA 승인을 받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사야의 건강이 매우 나빠서 그럴 시간이 없었고, FDA에 보고서를 올렸다간 로페어의 시야에 노출될 위험도 컸기 때문이다.

류영준이 그 와중에도 고집을 부려서 임상 동의서를 썼지만 그게 전부다.

아직 몇몇 사람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번 소문이 번지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음모론적 퍼즐이 쏟아지는 법이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 류 박사가 방문했다더라, 한동안 거기서 실험을 하신 것 같다는 직원들의 목격담.

그리고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역분화 줄기세포로 만든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은 환자가 있는데, 그게 이사야인 것 같다거나.

만약 류영준이 직접 이사야 프랭클린의 치료를 담당했다면 텔로미어를 연장시켰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노화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라는 텔로미어를 어떻게 연장시키고, 이사야 프랭클린의 수명을 어떻게 바로잡았을까?

온갖 혼란과 뜬소문이 무성했다.

카게쿠니는 그 진실을 알고 싶었다.

“사실입니다.”

류영준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굳이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싶지 않았다.

카게쿠니 교수는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류 박사님이 이사야 프랭클린의 텔로미어를 연장시켰다고요?”

“이사야 프랭클린의 세포생물학적인 나이는 완전히 되감기되었고, 손상된 세포들이 대부분 교체되면서 앞으로 약 1년에 걸쳐, 신체 나이로 20대 중반 정도까지 되돌아갈 겁니다.”

“20대 중반……."

“본래 젊은 사람이었으니 별로 구별이 안 될 겁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사실입니다.”

“어……어떻게 그게 되지? 논문으로 낸 겁니까?”

“아니요.”

류영준이 고개를 저었다.

“정상적인 임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환자 본인의 의학 지식이 웬만한 의대 교수 수준이었기 때문에 제 설명을 이해하고 동의서에 사인할 능력이 있었죠. FDA에서 승인 받은 작업은 아니었고, 백악관에서 승인해준 일입니다. 긴급 상황이라 법적으로는 문제되지 않는다더군요.”

“허, 세상에……. 노화 치료라니.”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네?”

“노화가 아니라 조로증을 치료한 겁니다.”

"......."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은 말이었지만, 카게쿠니는 류영준의 말을 이해했다.

류영준은 노화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이사야처럼 특이 케이스에서 조로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특별하게 그 기술을 나눌 생각이 있지만, 일반인의 정상적인 노화까지 어찌 해줄 생각은 없다.

사실 정확히는 그 정도의 기술을 상용화시킨 다음 뒷감당할 체력이 에이젠바이오나 국제 사회에 없기 때문이지만.

“논문도 특허도 없는 기술이고 개발 단계에 있는 겁니다. 가능하면 소문나지 않게 조심해주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류 박사. 나는 내 삶에 큰 미련이 없고, 멋지게 늙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 한 사람 입 조심한다고 되겠습니까.”

카게쿠니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이거 만약 밝혀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앞다퉈 류 박사한테 생명 연장이나 노화치료를 의뢰할 겁니다. 수 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요. 진시황 불로초 전설 아시죠?”

“네."

“모든 것을 다 가진 권력자들도 젊음을 갖지는 못합니다. 그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려고 할 거예요.”

“조심하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

집에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생각보다 로잘린과의 만남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았다.

이미 류영준이 로잘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래.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꼭 하나는 있다더라.”

류새이의 도플갱어 수준인 그 외모를 보고도 두 분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대신 아직 장가도 안 간 앞날 창창한 아들이 갑자기 애아빠가 되어버린 상황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결혼할 때 며느리 될 사람이 싫어하면 어쩌려고.”

어머니가 한번 류영준에게 나지막이 그런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미 만나는 사람 있고, 로잘린 입양한 것도 아니까.”

류영준은 귀찮은 상황을 미리 차단하려고 둘러댔다.

“송 박사님?”

옆에서 얘길 들은 류지원이 또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야.”

“네덜란드에서도 같이 있었잖아? 오빠랑 로잘린이랑 송 박사님이랑 셋이 밥도 먹었다며?”

“저녁 같이 먹는 게 뭐 대수냐? 별 사이 아니야.”

“송 박사님하고 잘 돼가는 거 아니었어?”

잘 되긴 커녕 오히려 지금은 약간 어색해진 느낌이다.

송지현은 엘시를 만나러 엘시의 집까지 찾아간 경험이 있다.

그때부터 네덜란드까지 줄곧 엘시와 붙어서 행동했다.

하지만 한번도 엘시가 애를 키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일단 엘시가 키우던 아이라고 하니까 속아주고 있지만 그게 사실이 아닐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 박사님 입장에선 좀 서운할 수도 있지.’

나름 친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혼자만 따돌리고, 갑자기 정체불명의 애를 입양하더니 테러범하고 비밀을 만들어 쑥덕거렸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송 박사님 엄청 미인이시고 성격도 좋아 보이던데 그정도 되는 사람이 오빠 쫓아다니는 거 쉽지 않은데. 아깝다 진짜.”

류지원이 아쉬운 듯 말했다.

“뭔 중매쟁이냐? 네 연애나 신경 써 이놈아.”

류영준은 어이없다는 듯 류지원의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톡 두드렸다.

“송 박사님한텐 송 박사님의 길이 있고, 나한테는 내 길이 있는 거야. 나 그리고 다음 주에 일본 간다.”

“일본? 그 방사능 가득한 동네를 왜?”

어머니가 역정을 냈다.

“일본 가더라도 후쿠시마 쪽만 아니면 괜찮아, 엄마.”

류지원이 아는 척하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류영준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후쿠시마 가는데.”

“미쳤어?”

류지원이 소리쳤다.

“고위험 지역으로는 안 들어갈 거야. 걱정하지 마. 방사능 수치 재면서 움직일 거니까. 아무튼 다음 주에 로잘린 좀 봐줘."

류영준이 말했다.

로잘린을 데려가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 로잘린이 바깥에 노출되는 횟수는 가능한 줄이는 게 좋다.

-여기서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동기화도 쓸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

미국 워싱턴.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에서 유전체학 연구소를 운영하며 온갖 범죄를 저지른 알폰스 로페어는 한 저택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쇠창살을 피하고 소유 저택 중 한 곳에 갇힌 것을 보면 그의 권력이 얼마나 진득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흉악해서, 저택 근처에는 항상 시위대가 돌아다녔다.

“알폰스가 책임져라!"

“로페어를 쫓아내고 금권 독립 확보하자!”

바깥에서 그들이 소리치는 구호는 방 안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멍청한 놈들. 너희 금권 독립은 의회에서 심사중이지만 사실 이미 확정된 사항이야. 거기서 소리 지를 이유가 없는데 참…...."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해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형을 막을 방법은 없다.

체노버 은행 역시 엄청난 배상액을 물어내면서 주가가 크게 떨어져서 위기 상황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알폰스는 대부분의 일들을 체념해버렸다.

그러나 이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알폰스는 목숨이 오늘내일 하던 이사야 프랭클린이 완전히 부활한 걸 알아냈다.

“대체 어떻게?”

이사야 프랭클린이 숨었던 해리스의 아지트.

그리고 그들이 존스홉킨스 대학에 잠깐 들러서 줄기세포 이식 시술을 진행했다는 소문.

그리고 그 시점에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소녀 로잘린.

엘시는 직접 그 애를 키웠던 정황 증거들을 방 안에 꾸며놨지만, 사실 엘시가 키우던 애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알폰스가 가장 잘 알았다.

호프도르프 호텔에 진입하던 테러범들은 왜 갑자기 모두 쓰러졌을까?

로잘린이 대체 뭐기에 류영준이 그 애를 갑자기 입양한 걸까?

단순히 그 집 막내를 닮은 애 정도가 아니다. 그 소녀한테는 뭔가가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류영준의 비밀, 또는 이사야의 노화 치료하고 관련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권력을 잃은 알폰스는 과학자로 돌아와서 호기심만이 가득한 상태가 되었다.

“그 애의 정체가 대체 뭐지?”

똑똑.

누가 문을 두드렸다.

“식사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키 큰 남자 한 명이 이동식 테이블에 음식을 담아서 들여왔다.

알폰스는 스테이크를 잘라서 한 입 물었다.

“이제 나가봐도 돼. 나중에 빈 접시 가지러 오라고 부를게.”

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알폰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다.

***

류영준은 일본행 비행기에서 이사야 프랭클린과 마지막에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그녀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류영준에게 물었다.

“로잘린을 데리고 돌아가면 뭘 할 거야?”

“로잘린이 학교 가고 싶대.”

류영준이 대답했다.

“선생들은 무슨 죄냐.”

이사야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좀 다니다가 지겨우면 그만둘지도 모르지. 아무튼 로잘린이 하고 싶다는 건 다 하게 해줄 생각이야.”

“……류영준.”

그녀는 류영준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잘린은 절대 정체가 드러나면 안 돼.”

"......."

“로잘린에 대해 티끌만한 정보라도 나돌았다간 그 애랑 네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게 될걸."

“짐작가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네. 누구?”

류영준이 말했다.

이사야의 머릿속에는 한 남자가 떠올랐다.

보툴리눔톡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이집트로 와서 블레셋을 창립한 과학자.

“누구든.”

그녀가 말했다.

“류영준, 너는 위대한 과학자야. 평범하지 않아. 그래서 로잘린이 없어도 로잘린을 탐내지 않을 거야."

"......."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의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아.”

“널 치료하는 것도, 로잘린을 사람으로 데려오는 것도, 둘 다 리스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류영준이 말했다.

“로잘린은 내가 지켜줄 거야. 내가 보호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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