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2화. < FRB (10) > (138/301)

282화.  < FRB (10) >

알버트 교수는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골수이식까진 이해가 되고 오케이인데, 그 다음 후처리 과정이 쉽게 납득이 안 된다.

류영준은 텔로머레이즈 인히비터를 정맥 투여하겠다고 했다.

“이번 골수이식에는 텔로머레이즈가 들어가있습니다.”

“텔로머레이즈요? 그게 조작된 유전자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건가요?”

“몸의 각 조직에 발생한 조로증을 치료하는 데 필요해요.”

류영준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에서는 텔로머레이즈 보강 골수 이식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술을 여기에 접목시켜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다만 이게 미완성된 기술이라 테크닉이 좀 필요해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식된 조혈모세포들로부터 텔로머레이즈가 분비되어 조직 각각으로 이동할 겁니다. 그들이 과반응하지 않도록 인히비터를 투여해야 하는데, 시간과 위치에 민감합니다.”

“시간과 위치요?”

“조혈모세포 이식 후 류영준은 눈의 흰자위를 보면서 모세혈관의 팽창을 확인하면서 타이밍을 재야 합니다. 매번 특정한 시점에 인히비터를 조금씩 정맥 주입하거나 특정 조직에 주사해야해요.”

“그건 제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증상인가요?”

“아닐 겁니다. 혈관 팽창이 아주 미약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눈썰미가 아주 뛰어나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실제로 골수이식을 마쳤을 때 알버트 교수는 도대체 뭐가 달라진 것인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환자의 진료가 전적으로 의사의 소관이긴 하지만, 새로 개발된 치료제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개발자의 매뉴얼을 따르는 것은 기본이다.

프로그래머가 컴퓨터를 조립할 때 부품 제작자들의 설명서를 읽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투여하셔야 하는데……."

류영준이 말했다.

“그, 그래요?”

알버트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이사야의 눈을 관찰하기만 반복했다.

류영준은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만 더 많았더라면 알버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법을 마련해주었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극도로 불안정한 이사야의 몸 상태와 한정된 시간을 고려했을 때, 환자에게 최선이 되는 방법은 이것이다.

“솔직히 제가 잘 구분을 못하겠는데, 안과에 지원 요청을 할까요?”

알버트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안 됩니다.”

해리스가 재빨리 차단했다.

“알버트. 믿을 수 있는 선생님들이 아닌 이상, 이사야 치료에 투입할 수는 없어요. 지금 여기 들어온 것도 저는 불안합니다. 골수가 이식 자체는 정맥으로 주입만 하면 돼서 간단하다니까 왔지만…….

“하지만 저는 류 박사님 말씀처럼 흰자위에서 모세혈관이 팽창하는 걸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

“제가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트레이닝 받은 적 없는 시술이고 저보다 개발자인 류 박사님이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류 박사님이 해주실 수는 없나요? 환자분의 동의만 있다면……."

마침내 알버트가 겁을 먹고 물러섰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이사야 프랭클린을 쳐다보았다.

“류영준이 해도 상관 없어.”

이사야가 말했다.

하지만 류영준은 알버트의 마음도 챙겨주기로 했다.

“이렇게 하시죠.”

류영준은 병상 앞에 다가와서 앉았다.

“제가 옆에서 지시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손가락으로 알버트 교수님의 손등을 누르면 그 시간 동안 인히비터를 주사해주시면 됩니다. 조직별로 주사해야 할 때는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사야 프랭클린은 류영준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한다.”

두 사람은 인히비터 투여 작업에 들어갔다.

정맥에 호스를 꽂은 다음 약병을 수액에 담아서 연결했다.

로잘린은 류영준의 옆에서 동기화 모드로 이사야 프랭클린의 전신의 10조 개에 이르는 세포를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류영준의 오른손의 통제권을 잠시 넘겨받았다.

정맥으로 들어가는 텔로머레이즈의 인히비터 (Inhibitor)는 초 단위, 마이크로리터 단위로 주입되었다.

알버트의 손등을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은 마치 모스 부호를 보내는 것처럼 움직였다.

어떨 때는 2초간 일정한 속도로 주입하다가 그 다음에는 멈추었다.

0.5초 간격으로 주사제 주입과 휴식을 번갈아가며 반복했고, 어쩔 때는 몇 초 동안 조금도 투여하지 않았다.

알버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작업을 하면서도 이게 정말 잘 하는 짓인지, 맞는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렇게 해서 이사야 프랭클린이 정말로 완치가 될까?

“니카라과 정부에서는 환자 한 명의 유전자 한 개를 교정하는 비용으로 10만 달러를 청구했습니다.”

CNN 앵커가 니카라과 사태를 보도하며 말했다.

“굉장히 높은 비용인데, 어떻게 이런 가격이 나오게 되었는지 조나단 기자가 살펴보았습니다.”

방송 화면은 에이젠바이오의 유전 질환 치료 시술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이 시술은 환자로부터 체세포를 채취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싱글 셀 RNA 시퀀싱 (Single cell RNA sequencing)을 통해 발현되는 DNA를 전수 조사한 다음, 거기서부터 돌연변이들을 찾아낸다.

에이젠바이오의 1억 명 유전체 해독 사업으로부터 만들어진 거대 데이터베이스에 이 돌연변이를 대입한 다음, 환자의 질병과의 상관 관계를 조사한다.

보통 유전자 변이가 있다고 해도 신체의 모든 조직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유전자가 알코올 해독에 중요한 유전자라면? 간에서는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럼 환자의 체세포를 역분화한 다음 줄기세포에서 유전자를 교정하고, 그걸 다시 인공 간으로 배양해서 장기 이식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노동력과 시간, 각종 시약들의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기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치료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은 편입니다. 만약 교정한 유전자가 면역 반응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골수에서 조혈모세포까지 채취해서 교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

유전자 치료제는 그 시술의 자체적인 난이도 탓에 비용이 상당한 편이다.

옛날에 제약 회사 스파크가 룩스터나라는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를 내놓은 적 있다.

RPE65라는 유전자가 망가진 유전병 환자들의 망막 세포에 인공 합성된 RPE65 유전자를 바이러스로 넣어주는 것이다.

이 간단한 시술이 눈 한쪽에 1억이었다.

“그에 비하면 유전자를 교정해서 줄기세포를 만들고 인공 장기까지 만드는 에이젠바이오의 치료법은 굉장히 저렴한 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환자의 수와 유전자 변이의 개수입니다.”

기자가 말했다.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환자의 수는 니카라과에 총 2,000여 명인데, 이들 중 800명은 자연 발생한 돌연변이로 한 군데에서 두 군데만 돌연변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약 1,200명은 이번에 니카라과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로 명시되고 있는데요.”

기자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이들은 평균 수백 개에서 수천 개씩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어서, 그들 모두를 치료할 경우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니카라과 정부가 청구한 배상액은……."

기자는 침을 꼴깍 삼켰다.

“1,370억 달러입니다. 그동안 언론이나 민간 금융 기관들이 예측한 값이 많이 떠돌아다녔는데, 이번에는 기자가 직접 네덜란드의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확인한 액수입니다.”

그가 말했다.

애플의 시가총액의 10 퍼센트가 넘고, 미국 정부의 1년 예산에 비교해도 2.5 퍼센트나 되는 엄청난 액수.

거부의 대명사인 빌 게이츠의 총 자산과 맞먹는 금액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대 기업이 된 에이젠바이오의 1분기 매출과 비슷한 돈이다.

이 충격적인 단위의 치료비 청구는 미국 전역을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그동안 조금씩 늘어나던 가두 행진과 집회가 좀 더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들의 분노의 갈피가 아직까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캠벨은 니카라과 국민이 아니라 미국 국민을 살펴라!”

“헤이건 행정부가 책임져라!”

그 대부분은 이 소송을 받아들인 미국 정부에 대한 것이거나 문제를 일으킨 헤이건 정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간간이 로페어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테이트 로페어가 회장으로 있는 체노버 은행이 펀딩해서 연구소를 만들고, 알폰스 로페어가 거기서 연구소장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대학가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사회 정의에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은 체노버 은행을 조사하는 데 학구열을 불태웠다.

그리고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동안 공공연히 알고 있었던 비밀이 슬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은 로페어의 소유다. 미국 정부는 연준에 대해서 단 1퍼센트의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조차도 몰랐던 이 중대한 진실은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충격적인 논리를 만들어냈다.

“만약 니카라과 정부가 승소한다면, 미국 정부는 1,370억 달러라는 거대한 돈을 배상해야 하고, 정부 예산에 그만한 돈이 남아돌 리가 없기 때문에 선택지는 둘입니다. 하나는 또다시 국제사법재판소의 사법권을 무시해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연방준비은행에서 달러를 찍어내는 겁니다. 우리 달러가 기축 통화라는 게 천만 다행이죠.”

미국의 수많은 명문대 강의실들에서는 교수들까지 열을 올려가며 이런 토론들을 벌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돈을 찍어낼 권리가 미국 정부한테 없다는 거예요.”

교수들이 말했다.

“그 돈은 연준이 발행하고 미국 정부는 빌려오는 겁니다. 정부의 ‘부채’가 되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무려 1,370억 달러짜리 채권의 엄청난 이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연방준비은행의 ‘영업 이익’이 돼요. 그리고 연준의 오너인 로페어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죠. 이 문제의 핵심 책임자인데 벌금을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번다고요.”

“체노버 은행이 연구소를 설립할 때 쓴 돈도 당시 1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인데 그 역시 뿌리를 찾아가면 연준에서 나온 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체노버 은행이 그만한 돈을 당시에 저 혼자 가동할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민간 은행이 미국 중앙은행을 자기 마음대로 써서 온갖 삽질을 해놓고, 그 책임은 전부 미국 시민들에게 전가한 다음, 거기서 돈을 번다는 건데 이 구조가 정상입니까?”

“아니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오늘 수업 들어갔더니 우리 학생들 다 시위 나갔어요. 솔직히 이건 시장 질서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민간 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월권이에요.”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체노버는 그룸 레이크 연구소에 ‘투자했’고 실패한 거예요. 근데 손해를 봤습니까? 지금 오히려 1,370억 짜리 영업 이익을 볼 판인데 이게 자본주의 국가에서 말이 되는 일이에요?”

시장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에 익숙한 시민들은 국정농단 스캔들에 분노한다.

헤이건이 이란에 무기를 팔고 콘트라를 지원했다거나 하는 것은 냉전 시대 속에서 애국심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고 감안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준이라는 절대 금권을 손에 쥔 채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사적으로 이익을 독점하는 건 완전히 얘기가 다르다.

로페어에 대한 얘기는 하루가 다르게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알폰스 로페어가 국제사법재판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류영준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알폰스는 이동하는 길에 테이트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미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네덜란드로 출발했습니다. 거기 해리스를 비롯해서 대통령 측근들이 다 탔고, 류영준도 탔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가린 젊은 여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사야 프랭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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