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 FRB (7) >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는 보통 혈액 세포의 질적, 양적인 수준이 떨어져서 문제가 됩니다.”
알버트 교수가 말했다.
“조혈모세포가 형태학적으로 이형성(Dysplasia)인 상태이고, 거기서 나오는 백혈구고 적혈구고 혈소판이고 죄다 정상 기능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빈혈도 있고, 감염에 취약해요. 백혈구가 일을 못하면 당연히 면역 체계가 엉망일 것 아닙니까. 그리고 혈소판이 감소돼있으니 출혈도 자주 생기고, 피가 잘 멎지도 않아요.”
“그래서 총상 입은 팔다리에서 출혈이 그렇게 많았던 거군요?”
해리스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골수이형성 증후군의 환자들은 신부전 환자들이 투석하듯이 수혈로 몸에 정상적인 피를 공급해줘야 ‘보존적’인 연명 치료가 됩니다.”
알버트가 말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후기에는 안 들어요. 급성 백혈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하고, 완치든 뭐든 골수이식만이 거의 유일한 답입니다.”
“그럼 됐네요? 에이젠바이오에서 역분화 줄기세포로 조혈모세포를 만들어 골수이식하는 방법을 개발했잖습니까? 그럼 이제 류 박사님이 치료하시면 끝나는 거네요?”
해리스가 물었다.
“근데 골수이형성증후군은 보통 50세 이상에서 발병하는 질병이에요. 어린 나이에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하물며 이사야는 태어날 때, 신생아 시절부터 상태가 안 좋다가 유아기에 발병했다더군요.”
알버트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으며 설명했다.
“사실 골수이형성증후군이라는 병명 자체도 증상하고 가장 흡사한 걸 고른 것뿐이지, 유전자 조작에 의한 거라 첫 번째 보고된 질병 케이스로 봐야해요. 솔직히 의사 입장에서는, 류 박사님이 아무리 뛰어나도 처음 보는 질병을 일주일만에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지……."
“하지만 뇌사자도 살려냈던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믿긴 하지만요.”
철컥.
류영준이 병실에서 나왔다.
“이 조그만 아지트에 두 칸 있는 방 중 하나를 입원실로 쓰려니 불편하시겠네요.”
류영준이 말했다.
“이사야하고 얘긴 다 나누셨습니까?”
“네. 내일 임상 동의서 들고 다시 와서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임상 동의서……."
“아무리 급해도 할 건 해야죠.”
***
이사야 프랭클린은 복제인간이다.
제 어머니인 엘시 프랭클린의 세포핵을 토대로 재구성된 인간.
때문에 86년생인 그녀의 나이는 류영준과 비슷하지만 세포생물학적인 나이는 엘시와 동일해서 50대 후반이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있죠.
로잘린이 말했다.
“복제 양 돌리가 생각나네.”
류영준이 말했다.
-젖샘 세포에서 복제된 양 말인가요?
“맞아. 그래서 이름도……."
류영준이 말을 하다 멈추었다.
-왜요?
“아냐."
-왜 말을 하다 말아요? 이름이 어떻게 지어진 건데요?
로잘린이 궁금한 듯 대답을 보챘다.
“아니. 별 거 아냐. 복제 양 돌리의 이름이 돌리 파튼이라는 팝 가수한테서 따온 거거든."
-담당했던 연구자들이 그 팝 가수 팬이었나보죠?
"......."
돌리 파튼은 가슴이 글래머러스한 걸로 유명했던 가수다.
그래서 복제 양이 ‘젖샘 세포 기원’임을 기념하려고 그런 이름을 붙였다.
류영준은 옆을 슬쩍 쳐다보았다.
로잘린이 아홉 살 류새이의 얼굴을 쏙 빼닮은 눈으로 순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팬이었을걸.”
류영준이 대답을 돌렸다.
왜 이런 황당하고 쓸데없는 배경지식은 왜 머리에서 빠져나가지도 않는 건지.
“아무튼 이사야를 골수 치료하기 위한 전략을 생각해보자.”
-네. 류영준. 세포도 나이가 들고, 늙고, 수명이 다할 수 있다는 거 알아요?
로잘린이 물었다.
“텔로미어 (Telomere) 말하는 거야?”
류영준이 물었다.
-네.
“그것 때문에 돌리가 단명했다는 주장이 한 때 과학계를 휩쓸었지.”
양의 수명은 약 11년에서 12년.
그러나 복제된 양 돌리는 3살 때부터 노화가 시작되더니 5살 때는 관절염을 비롯한 노양(羊)성 질환 같은 것들을 앓았고, 급기야는 심각한 폐 질환까지 생겼다.
결국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 실험동물, 최초의 복제 생물 돌리는 생후 6년 6개월째에 안락사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복제 양 돌리에게 DNA를 제공하였던 어미양이, 젖샘 세포를 채취할 때 나이가 6살이었다는 것이다.
즉, 돌리의 기원이 된 젖샘 세포가 ‘살았던’ 날들과 돌리가 살았던 날들을 합치면 정상적인 양의 수명인 12년 정도가 나오는 셈이다.
이 사실은 많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쉰 살 부부가 낳은 아기보다 스무 살 부부가 낳은 아기의 수명이 더 길지는 않다.
생물의 발생시계는 0부터 시작한다는 게 정론이다.
그런데 복제 양 돌리는 자신의 발생 기원이 된 젖샘 세포의 ‘나이’를 그대로 들고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세포 내에 있는 무언가를 탐구하면 그 사람의 ‘진정한 생물학적 나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 그걸 조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존에도 과학자들은 ‘세포 차원의 수명’이나 ‘나이’ 같은 개념을 탐구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 분야에 거대한 장작이 들어간 셈이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사이언스 논문 하나 써보겠다고 그 분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거기서 가장 주목 받았던 게 텔로미어 (Telomere) 였다.
-돌리라는 그 양은 텔로미어 때문에 죽은 게 맞을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말단 부위에 존재하는, 매우 특이한 구조의 DNA의 일부이다.
세포가 ‘나이가 들수록’ 텔로미어는 점점 짧아지는데, 어느 지점까지 짧아지면 세포는 번식 능력이 소실돼서 더 이상 분열할 수 없게 된다.
즉 텔로미어는 ‘세포의 수명’과 관련된 구성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포의 수명은 거시적으로 노화나 생물체의 수명으로 이어진다.
추가 연구로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잇달아 공개되었는데, 바로 수명이 긴 생물은 수명이 짧은 생물보다 세포 내의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복제 양 돌리의 모태가 된 젖샘 세포는 텔로미어 길이가 당연히 짧아진 상태였고, 돌리는 그 짧은 텔로미어를 가지고 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엔 더 충격적인 논문이 발표됐다.
텔로미어의 길이에 따라 수명이 늘어나고 노화가 억제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정란 조작으로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려놓은 쥐를 가지고 대조군과 비교를 했다.
그랬더니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긴 쥐가 노화의 징후를 덜 보였고 평균 수명이 20 퍼센트나 더 늘어난 것이다.
이 경악할 만한 뉴스는 과학계의 담장을 순식간에 넘어갔다.
아직 논문에 대한 과학계의 리뷰가 면밀하게 진행되기도 전에 대중들은 난리가 났다.
인간이 이젠 불로불사의 영역에 도달했네 어쨌네 매스컴이 시끌시끌했고, 텔로미어라는 단어는 화장품이나 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근데 요즘은 많이 사그라들었지. 애초에 후속 연구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고, 실험쥐한테서 조작하듯이 과격한 방법으로 사람의 텔로미어를 연장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클리닉한 쪽으로 응용하기도 어렵고.”
류영준이 말했다.
“그보다 텔로미어 얘기로 넘어온 걸 보면 이사야 프랭클린의 몸에서 텔로미어가 문제가 있는 건가?”
-네. 그 중에서도 특히 골수에서요.
로잘린이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텔로미어가 짧았던 골수의 조혈모세포들이 생성하는 혈액 세포는 정상보다 훨씬 수명이 짧아요. 게다가 다른 유전자들도 망가져있으니 금방 혈액 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럼 골수에 이식할 조혈모세포를 제작할 때 유전자 교정에 이어서 텔로미어도 고쳐서 넣으면 되는 건가?”
-맞아요. 그럼 골수이형성증후군은 치료될 겁니다.
류영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그렇게 하면 완치되는 거야?”
류영준의 질문에 로잘린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치료의 대상에 ‘노화’를 포함시킬 겁니까?
"......."
-우리가 쿠크라 힐에서 만났던 유전질환자들은 이사야 프랭클린 같은 방식으로 탄생하진 않았어요. 모체의 DNA가 삽입된 게 아니라서 세포생물학적인 나이는 정상이었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이사야 프랭클린은 약 30년치의 노화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죠. 아직 엘시도 노인까진 아니니까 이사야도 그럭저럭 버텨내는 거지만 십년만 시간이 더 지나면 모든 조직이 급격히 늙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지?”
-40대에 모든 노인성 질환을 달고 살고, 할머니 같은 외모가 되어버릴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 노화를 병리적인 상태로 분류한 적이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로증은 질병이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이미 질병으로 분류돼있어.”
-그것까지 치료하겠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어떻게?”
-골수 이식을 할 때 조혈모세포에 텔로머레이즈 유전자를 약간 변형해서 넣어줘요.
“텔로머레이즈?”
텔로머레이즈는 텔로미어를 연장시키는 생체 물질이다.
‘텔로미어 붐’이 한참 뜨던 시절에 발견되었고, 많은 과학자들이 텔로머레이즈를 이용해서 인간의 생명 연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돈과 노동력을 들여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텔로머레이즈의 임상 적용법을 파헤쳤으나 결국 진전은 없었다.
그 이유는 텔로머레이즈는 텔로미어를 연장시킬 수도 있지만, 암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텔로미어가 연장된 세포는 분열 한계를 넘어서 또 분열할 수 있고, 적절히 통제된다면 손상된 세포들을 스스로 메워가며 불로불사의 생물이 되겠지만 통제 범위 밖에서는 종양이 된다.
결국 인간에게 적용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위험한 기술이라 과학자들이 조금씩 포기하게 되었고 열풍도 사그라든 것이다. -골수이식을 통해서 혈액 세포들을 텔로머레이즈의 운반체로 쓸 겁니다. 신체 조직 곳곳에 텔로머레이즈를 보내어 이사야 프랭클린의 신체의 약 10조 개 세포의 텔로미어를 각각 특정한 시간 동안만 연장한 후 멈춰야 해요.
“그게 가능해?”
-저는 가능하죠. 동기화 모드로 살펴보면서 텔로머레이즈의 인히비터 (Inhibitor)를 특정 순간마다 미량씩 정맥 주사하거나 조직 주사하면 됩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문제는 당신이 그 타이밍들과 주사 위치들을 알아낸 방법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거죠.
"......."
-아니면 이사야 프랭클린이 태어날 때 늙어버린 30년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어요. ‘완치’되진 않겠지만.
***
류지원은 저녁 일곱 시에 도서관에서 나왔다.
“먼저 들어가. 나 오늘은 집에서 밥 먹어야 돼.”
류지원은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캠퍼스 밖 대로변을 걸었다.
오늘은 류지원의 가족들에게 많은 아픔이 있는 날이다.
막내 류새이의 기일.
‘오빠는 뭐하는 거야…….'
이런 날에는 집에 꼭 들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초인적인 스케줄로 세계를 돌아다니더니 오늘은 못 올 것 같다고 집으로 연락을 했다고 한다.
류지원은 류영준이 걱정되어서 전화나 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그래. 바쁘겠지…….'
류지원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류지원 씨?”
어떤 남자가 그녀에게 불쑥 다가왔다.
“누구세요?”
“혹시 이 사람 아십니까?”
남자는 모자를 눌러쓰면서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놀이공원에서 촬영된 류영준과 로잘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