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 FRB (3) >
알폰스 로페어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잠깐 호흡이 멈췄다.
“캠벨 대통령이 뭘 했다고?”
“대통령이 직접 들어와서 해리스 국장하고 같이 이사야 프랭클린을 빼돌렸답니다.”
“아니, 그게 지금……."
알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캠벨이 류영준 쪽에 서려는 것 같네요.”
테이트가 말했다.
"......."
“이쯤 되면 류영준이 뭔가 우릴 압박할 만한 증거물 같은 걸 수집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증거……."
“류영준한테 아무것도 없으면 캠벨이 저 정도로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형님. 우리가 에이젠바이오 주식을 매수하고, 뉴스 기사를 돌리는 건 가벼운 압박 정도였잖습니까. 제 생각엔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가야할 것 같은데요.”
알폰스는 턱을 매만지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가 말했다.
“테이트. 옛날에 링컨이 남북전쟁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
“링컨이요?”
“내게는 중대한 적이 둘 있다. 하나는 남부군이고 하나는 금융기관이다. 그리고 후자가 더 위협적이라서 나는 전쟁 때보다도 마음이 더 초조하다.”
"......."
알폰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가문에서 링컨을 암살했다고 의심하는 놈들도 있지. 뭐, 거의 150년 전의 일이니까 진실은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지금 우리는 그렇게 비겁하지 않다는 거야.”
알폰스가 말했다.
“웬만해서는.”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캠벨은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네. 이미 재선을 앞두고 레임덕이 와서 아무 힘도 없는 양반이 쓸데없는 짓을……."
알폰스는 전화를 들어 어딘가로 연결했다.
***
산디니스타 정부의 대통령, 이제 3선째인 미스테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가 어쨌다고요?”
“유전 질환자들을 조사해보니 굉장히 뜻밖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통 유전병 환자들은 두세 개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게 마련인데, 니카라과에 있는 환자들 중에는 백 개, 천 개씩 유전 변이가 발생한 이들이 수두룩하더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우리가 쓴 계약서를 보시면 150억 원에 포함된 의료 서비스로, 케미컬 치료제로 호전시킬 수 있는 난치병 환자들의 줄기세포 신경 치료를 기재하고 있고, 인공 장기 맞춤 제작 서비스를 해드린다고 되어 있죠. 하지만.”
그는 계약서를 짚었다.
“유전자 교정의 경우에는 캐스나인을 이용한 고도의 유전자 외과 시술이 필요한 데다가, 교정된 줄기세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까지 필요합니다. 그래서 1개 유전자 교정까지는 150억 계약에 포함되지만 그 초과분은 유전자 한 개당 1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
미스테가는 계약서를 읽으면서 걱정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수천 개씩 유전자 변이가 있는 사람들은……."
“처음 계약한 예산보다 훨씬 많은 추가비용이 발생하겠죠. 굉장히 비싼 건 사실이지만 기술 자체의 가치를 고려하면 지나친 청구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에는 그만한 예산이 없습니다. 치료를 하지 않는 선택지나 국채로 변경하는 방법도 있습니까?”
“가능하지만 그 엄청난 치료비를 니카라과 정부가 지불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미국 정부에 청구하세요. 그 사람들이 그런 유전 변이를 갖게 된 이유가 미국 정부 때문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미스테가 대통령이 혼란스러운 듯 물었다.
류영준은 빙그레 웃으며 확보한 탈렌 자료를 내놓았다.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
그곳으로 수출된 탈렌과 유전자의 세포 전달용 바이러스.
그리고 탈렌에 의해서 조작된 수백, 수천 개의 유전자들.
이 환자들의 또 하나의 공통 분모, 고아원.
자료들을 읽으면서 미스테가 대통령은 손을 달달 떨었다.
“이게 무슨……. 아니 이게 전부 진짭니까?”
“네. 진짭니다. 그리고 최근에 캠벨 대통령과 홀드런 국장님하고 통화를 했는데요. 아마 니카라과 정부가 미국 정부에 피해 보상 소송을 걸면 미국 정부 측에서도 금방 인정할 겁니다.”
“인정할 거라고요?”
“미국 정부라고 돼있지만, 실제 얻어맞는 것은 캠벨 행정부가 아닙니다. 수십년 전 일이고 그들한텐 죄가 없거든요. 이 소송에서 니카라과가 승소하면 캠벨 행정부는 정적을 쓰러트리는 데 유리한 판례가 하나 생기는 거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미스테가는 이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
“대통령 탄핵안을 올리자는 말씀이죠?”
노튼 하원 의원은 알폰스 로페어와 통화하면서 바짝 긴장해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사면에 어찌 운 좋게 끼어서 지금은 정치를 하고 있지만, 자네도 그 게이트가 터지면 꽤 피를 보지 않겠나?
알폰스가 물었다.
“……그렇죠.”
노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란-콘트라 게이트의 실무자 중 한 명이었다. 당시에는 군에서 대령으로 복무했는데, 이란에서 밀매한 무기 대금을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로 보내는 역할도 맡았던 사람이다.
그는 은퇴한 후 정계로 옮겼는데, 하원에서 꽤 힘 있는 의원이 됐다.
-자네 정도면 하원에서 입김도 강한 편이고, 캠벨한테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으니 하나 붙잡고 터뜨리면 검찰 조사로 끌고 가기는 쉬울 거야.
알폰스가 말했다.
-탄핵은 실제로 이뤄지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냥 미국 매스컴이 전부 탄핵 얘길 떠들게만 하면 되거든. 어차피 곧 재선인데 이미 레임덕이 온 캠벨이 무슨 재간으로 버티겠어.
“구체적으로 어떤 이슈를 공격하라는 겁니까?”
-글쎄. 내 생각에는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를 쑤시는 게 좋을 것 같군.
알폰스가 말했다.
-지금 류영준이 배임 혐의를 쓰고, 니카라과 정부로부터 뒷돈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있으니 타이밍이 좋지. 그러니까, 과연 그 암 연구소의 설립 과정은 합리적이었는가를 공격하라는 거야.
“실리콘밸리에도 잘 나가는 바이오 벤처들은 수두룩한데,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던 에이바이오에게 불과 몇달만에 계약을 마치고 미국 내에 연구소를 설립하게 해준 것은 지나친 특권을 준 것이다, 이런 논리로 말이죠?”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어. 의혹을 만들고 검찰로 들쑤셔보면 뭐가 나와도 나와.
“알겠습니다.”
-캠벨하고 류영준 간의 커넥션을 그릴 수 있으면 되네. 우리가 선제 공격을 감행해야 돼.
“근데 로페어 씨. 캠벨 대통령이 이사야 프랭클린을 데려갔다면 그 사람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우릴 압박할 수 있지 않습니까?”
-쉽지 않을걸. 다른 객관적인 증거들이 없으니까.
“증인만으로는 안 된다?”
-그렇지. 이사야는 ‘대통령 직속 기관’인 CIA에서 고문을 당했어.
알폰스가 말했다.
-고문 끝에 나온 말이 팔레스타인 반군의 테러 기록이 아니라,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에서 유전자 조작을 당했다’인 건 너무 뜬금없지 않나? 우리는 CIA가 고문까지 하면서 대체 어떤 대답을 쥐어짠 것이냐고 역공을 펼 수 있지. 대통령이 금권을 쥐려고 공격하는 거라는 식으로.
“그렇군요.”
-신경 쓰이는 건 오히려 류영준 쪽이야. 그 놈이 그렇게 조용히 있을 놈이 아닌데, 에이젠바이오 홍보팀에서 대응 보도를 하나 냈고, 그게 전부거든.
알폰스는 턱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무튼 캠벨 대통령을 압박하는 쪽으로 밀고 가겠습니다.”
-그래. 다른 의원들에게도 내가 연락해두겠네.
“감사합니다.”
노튼 하원의원은 전화를 끊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비서실에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설립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어떻게 펀딩을 했는지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상쩍은 정황 있으면 사소한 거라도 전부 얘기해줘.”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볼일을 보길 세 시간.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노튼 의원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의원님!
그의 비서가 전화를 걸고 외쳤다.
“뭐 좀 찾았나?”
-아니요. 그보다 아셔야할 것 같은 게 있어서요.
“뮌데?”
-니카라과 정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소송?”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에서 일어난 유전자 조작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한답니다.
"......."
노튼 의원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앞 차를 들이 받을 뻔했다.
-의원님?
"......."
-의원님께서는 전에 헤이건 행정부 때 이란 콘트라 게이트 일이 있었잖아요. 혹시 문제될 일은 없으신가 해서 말씀드렸.......
“돼, 됐어. 그만.”
노튼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차오르는 걸 느꼈다.
“나 다른 데 전화 좀 해봐야겠으니 잠깐 끊지.”
-잠깐만요 아셔야 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야세르라는 아랍인이 지금 매스컴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야?”
-블레셋이라는 회사의 임원이라는데, 미국 CIA가 납치한 이사야 프랭클린에 대해 증언할 게 있다고 합니다.
“억!”
진짜로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이런 소리가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노튼 의원은 숨이 막히는 기분 속에서 간신히 대답했다.
“아, 알았어……. 일단 끊자구……."
그는 통화를 종료하고 재빨리 알폰스 로페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저는 이집트에 있는 보툴리눔톡신 제조사, 블레셋의 이사진 중 하나인 야세르라고 합니다.”
야세르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그렇게 말했다.
“전에 미국에서도 보도가 된 것으로 아는데, 저희 회사는 창립 초기에 이사야 프랭클린이라는 팔레스타인 반군 테러범에게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수입했습니다. 당시에는 테러범인 줄 몰랐고, 운송 업체 아샴의 직원인 줄만 알았습니다.”
야세르가 말했다.
“이사야 프랭클린은 상당히 똑똑하고 많이 공부한 여자였습니다. 저희보다도 보툴리눔톡신에 대해서 더 잘 알았죠. 저는 그 여자에게 연구 자문을 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많은 심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그녀의 탄생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폭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야세르는 지난 30년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그 폭탄을 마침내 대중 앞에 드러냈다.
“이사야 프랭클린은 30년 전 헤이건 행정부 때, 미군 기지에서 인체 실험으로 태어난 유전자 조작 인간입니다.”
그가 말했다.
“이건 음모론이나 SF 영화가 아닙니다. 그녀는 실제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사람이며, 그 때문에 골수이형성증후군이라는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카메라가 사방에서 터졌다.
“그리고 류영준 박사가 얼마 전에 미국으로 왔습니다. 매스컴에도 공개됐듯이, 그 분은 이사야 프랭클린의 체포 과정에서 큰 활약을 해준 사람입니다. 사우디에서 직접 이사야 프랭클린을 대면할 기회가 있었고, 지금 미국까지 오셨죠. 그 이유가 뭘까요? 이사야 프랭클린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야세르가 외쳤다.
“류영준 박사가 에이젠바이오를 이끌면서 보여주었던 인간애적인 행보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체포된 테러범에게 치료제는 중요한 협상 수단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류 박사는 CIA로부터 문전박대 당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여기 계신 송 박사님께서 아십니다.”
야세르가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송지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기자들의 대포 같은 카메라들을 마주한 채, 그녀는 좀 혼란스러운 심경이었다.
‘우주 정거장 외벽에서 박테리아를 채취해야지!’같은 호기심 가득한 귀여운 아이디어를 갖고 미국에 왔는데 순식간에 괴물들의 전쟁 한 가운데 서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류영준을 보호하고 싶었다.
류영준이 싸우려는 이번 상대가 정말 간단치 않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류 박사님하고는 미국에서 거의 모든 동선이 겹쳤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이사야 프랭클린에 대해 말씀해주셨죠. 그 여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몇 주 정도는 실험을 해야할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연명에 초점을 둔 치료제를 만드는 건 간단하지만, 완치시키는 게 목표라면서요.”
송지현이 말했다.
“그리고 몇 주는 커녕 며칠만에 니카라과로 떠나셨습니다. CIA에서 방문을 거부했다면서 비관하신 적이 있고요.”
야세르가 답변을 이어받았다.
“저는 CIA가 이사야 프랭클린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가,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의 비밀을 덮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살해하려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