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4화. < FRB (2) > (130/301)

274화.  < FRB (2) >

“그래. 니카라과로 가셨어.”

로버트가 답했다.

이사야 프랭클린의 표정이 굳었다.

“류 박사가 혹시 거기서 유전 질환자들을 조사하고 있나?”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로버트의 눈이 동그래졌고, 이사야 프랭클린은 이를 악물었다.

“미쳤군……. 진짜 미쳤어……."

류영준은 이사야 프랭클린이 유전자 조작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로부터 나왔다는 것도 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니카라과에 들어가서 유전 질환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이건 백 퍼센트 그 시설에서 일어났던 비윤리적인 연구들을 잡아내려는 것이다.

“진짜 미친 거 아냐!”

이사야 프랭클린이 소리쳤다.

“류영준 그 놈은 왜 사릴 줄을 몰라!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면서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사야 프랭클린이 말했다.

“뭐, 뭔 소릴 하는 거야?”

로버트가 당황해서 물었다.

“젠장……. 로버트. 내가 여기 들어와서 만난 요원들 중에서 당신은 그래도 말이 좀 통하는 것 같고, 류 박사한테 우호적인 것 같으니 내가 부탁 하나만 하자.”

“하지마. 난 너를 심문하는 입장이야.”

“류영준을 지켜줘.”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덜컹.

조사실 문이 열렸다.

CIA 요원 휘태커가 수석작전장교와 함께 들어왔다.

CIA의 꼭대기에는 크게 세 명의 지휘관이 있다.

첫째, 국장. 최고 권력자고 CIA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CIA에서 일하는 경우는 잘 없다. 국장은 장관급으로 DNI, 백악관, 의회의 업무를 주로 맡기 때문이다.

둘째, 부국장. 실질적인 CIA의 행정 총괄자다. 내부 정책을 확정하고 CIA의 다양한 공작을 지휘한다.

하지만 이 둘은 사실상 정치인으로 대통령이 지목해서 CIA에 들어와 활약하는 이들이다.

실질적인 CIA의 움직임은 그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는 수석작전장교의 재량에 크게 좌우된다.

수석작전장교는 정치인이 아니라 CIA 공작원으로 오랫동안 근속해온 실무자다. 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직위로 승진한 사람이 수석작전장교로 임명되는 거다.

"......."

로버트는 약간 긴장했다.

“지금까지 어떤 정보도 캐내지 못했다는 소릴 들었다.”

수석작전장교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자백제도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휘태커가 말했다.

“……. 국장님께서 합법적인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신 것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수석작전장교가 말했다.

“실무자인 우리는 필요하면 애국심으로 법 바깥의 일도 할 수 있어야지.”

그는 이사야 프랭클린을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품속에서 총을 꺼냈다.

“이 권총에는 아홉 발이 장착된다.”

수석작전장교는 이사야 프랭클린에게 말했다.

“너도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걸 보니,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모양인데 피차 번거롭게 질질 끌지 말자고. 여덟 번 심문하고 보내주겠다.”

로버트와 휘태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교님!”

“이게 국가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다.”

장교는 권총을 이사야 프랭클린의 팔뚝에 겨누었다. 그의 움직임은 조금도 거침이 없어서 로버트나 휘태커가 말릴 틈조차 없었다.

픽!

권총에 부착된 소음기 너머에서 뜨거운 불꽃이 타올랐다.

근육이 찢어지는 통증에 이사야는 작게 신음했다.

"으......."

“10분 안에 끝내줄 테니, 그 사이에 말할 생각이 들면 해라.”

픽! 픽!

장교는 그녀의 팔을 좌우 번갈아가며 한 발씩 더 쏘았다.

“잠깐만요, 장교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로버트와 휘태커가 달려들어 수석작전장교를 제지하려 했다.

“우리는 정보를 캐내는 게 목적이지 이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는 거야.”

수석작전장교가 말했다.

“나는 정말로 죽일 생각이다. 어차피 무슨 병을 앓아서 수명도 얼마 안 남았다던데.”

그는 이사야의 허벅지에 총알 한 발을 더 쏘았다.

“폴리오마바이러스와 보툴리눔톡신의 이용처를 말해라.”

그가 다시 권총을 반대쪽 허벅지에 겨누는 순간이었다.

덜컹!

포로수용소 문이 열렸다.

순간 로버트는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CIA 국장 해리스와, 대통령 캠벨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 대통령님? 국장님?”

“잠깐 물러나있게.”

캠벨이 말했다.

그는 닥터 레프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살펴보았다.

“고문했나?"

그가 해리스에게 물었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해리스는 총상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했습니다.”

수석작전장교가 말했다.

“죽일 생각이었나?”

해리스가 물었다.

“국장님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넘겨짚고 허튼소리 하지 말고 나가게.”

해리스가 심문실 현관을 가리켰다.

"......."

수석작전장교는 대통령을 힐끔 쳐다보았다.

“각하. 위험한 사람이니 조심하십시오.”

뼈가 있는 조언이었다.

철컥.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캠벨 대통령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로페어를 조심하라는 건지 이 테러범을 조심하라는 건지 모르겠군.”

“전자겠죠.”

해리스 국장이 말했다.

“자네는 로페어가 두렵지 않나?”

“두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이사야 프랭클린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 백악관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대통령 직속이고요.”

해리스가 말했다.

“……. 내가 자넬 믿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잠깐만요 지금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군요.”

휘태커가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들을 하시는 겁니까?”

캠벨과 해리스가 당혹스런 표정의 휘태커와 로버트를 쳐다보았다.

“잠깐만……."

통증으로 신음하던 이사야 프랭클린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이 나같은 테러리스트 하나 직접 심문하려고 여기까지 왔을 것 같진 않고. 로페어를 두려워하네 마네 하는 걸 보면 류영준 쪽에 걸어보는 건가?”

“그래.”

캠벨 대통령이 짧게 답하고는 다시 국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해리스 국장. CIA는 위험하네. 그들 손이 미치는 자리가 너무 많아. 그리고 이 꼴로는 증언이고 뭐고 할 수도 없으니 일단 포로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서 치료부터 합시다.”

“알겠습니다.”

“미친놈들. 미국 대선 다시 치르겠군.”

이사야 프랭클린이 말했다.

“야, 나는 너희 정부가 무너지든, 대통령이 죽든 말든 상관없어. 에이젠바이오가 로페어 손에 통째 넘어가도 신경 안 써. 하지만 류영준은 죽으면 안 돼. 로페어는 모든 수단을 다 쓰는 놈들이야. 똑바로 지켜.”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해리스가 말했다.

그는 로버트와 휘태커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 눈에 안 띄게 해야 한다. 버지니아 주까지 나가면 세이프 하우스가 하나 있다. 믿을 수 있는 의사도 있고.”

"......."

“이 사람들도 믿을 수 있는 거겠지?”

캠벨이 해리스에게 물었다.

“실력있는 요원들이고 어디에 줄 선 적 없는 깨끗한 녀석들입니다. 아직 CIA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조직인 줄 아는 착한 청년들이죠."

해리스가 말했다.

캠벨은 피식 웃었다.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비밀 통로로 이동해 준비해둔 차량에 올라탔다.

붕대로 동여매서 출혈만 약간 막아놓은 이사야 프랭클린은 매우 상태가 심각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해리스 국장이 말했다.

이사야는 힘없이 뒷좌석에 앉아서 캠벨을 쳐다보았다.

차량이 출발했다.

“옛날에 연방준비은행법이 통과되었을 때, 상원의원 찰스 린드버그가 이렇게 말했지.”

캠벨이 말했다.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한 순간부터 금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정부가 미국에서 승인되었다. 국민들은 언젠가 그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독립운동을 새로 해야 할 것이다.”

"......."

“난 지금 게임에서 언더독에 배팅을 마쳤네. 그리고 그쪽이 이길 거라고 생각해.”

***

“뭐라고요?”

김영훈 이사는 깜짝 놀랐다.

CEO 비서실에서 전해준 소식이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류영준 대표의 배임 혐의에 대해서 미국의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유송미 비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류 대표님이 배임이라니 무슨 미친 소리예요?”

“한번 읽어보실래요?”

유송미 비서가 뉴욕 포스트 기사를 내밀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이번에 진행된 사업은 한 나라의 정부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라고 하기에는 매우 급작스러운 것으로,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결정되었다. 이는 류영준 대표가 경영권을 독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인데, 주식회사로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문제적인 면모는 또 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니카라과로 가지고 간 의약품은 시가 70억 원에 이르는 것이며, 그 운송비와 인력까지 값을 매긴다면 수백억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에이젠바이오는 니카라과 정부로부터 고작 15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받았을 뿐이다.

선진국에서 에이젠바이오의 ‘집단 방문 의료’ 사업을 추진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할 정부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에이젠바이오의 이번 니카라과행은 상당히 의아한 결정이다.

만약 그것이 인류애적 차원에서 저개발 국가를 우선적으로 원조하는 사업이었다고 하더라도, 주식회사는 사회 공익이 아닌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업은 류영준 대표의 실책이 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행간에는 류영준 대표가 니카라과 정부로부터 뒷돈을 지급받았다는 루머와 함께…….

“이게 무슨 개소리야!”

김영훈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장 대응 보도 내요! 절대 그런 사실 없고, 에이젠바이오가 니카라과를 첫 번째 사업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그곳의 국민 수가 600만 정도로 시험 운행하기 적합한 스케일이었고, 그 중에서도 유전질환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 같은 규모에 100억 짜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사회 승인을 정말 거쳐야 하는지 따져요! 지들도 그렇게 안 하면서 이 미친놈들이……."

김영훈은 이 무의미하고 노골적인 공격에 손까지 떨었다.

“그러고 보니 말 잘 했네, 에이젠바이오는 인류애로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주식회사죠! 그러니까 파이를 더 키우고 주주들의 이익을 더 늘려주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를 위해 니카라과로 대표가 직접 간 거잖아!”

“김 이사님!”

누가 문을 왈칵 열고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경영기획본부의 본부장이었다.

“또 뭡니까?”

김영훈이 날카로워진 신경을 억누르며 물었다.

“미국 체노버 은행에서 공시를 했습니다!”

“무슨 공시?”

“우리 본사 지분 5 퍼센트를 보유했다고 공시를 한 거예요!”

“뭐라고요?”

지분의 5퍼센트를 보유하면 공시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경영에 참여할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보다 더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있을 때는 따로 공시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월가의 은행들이나 대형 기업들, 또는 민간에서는 에이젠바이오의 주식을 매우 미량씩 매입했다.

에이젠바이오 경영 본부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적은 양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에서 무려 87개에 이르는 금융기업과 은행들, 그리고 211명에 이르는 거부들이 조금씩 보유한 주식들이 한꺼번에 이동했다.

그게 체노버 은행으로 몰려들면서 5퍼센트라는 적지 않은 값이 된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루아침에 한 기관이 그걸 싹 다 매수할 수가 있나?”

김영훈이 당황한 듯 물었다.

“잠깐 전화좀요.”

유송미 비서가 밖으로 나갔다.

김영훈은 경영기획 본부장에게 물었다.

“체노버 은행 대표가 누구죠?”

“테이트 로페어입니다.”

“우리 경영에 참여하겠답니까?”

김영훈이 물었다.

누가 봐도 적대 지분이다.

당연히 류영준이 가진 지분과 우호 지분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5퍼센트가 경영권을 뒤흔들 만한 양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값도 아니다.

“네.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안건으로는 이번 에이젠바이오의 니카라과행 사업 개요를 전부 밝히길 원한답니다......."

“아니 X발 니카라과가 대체 뭐기에 미국 전체가 저 난리야? 거기다 뭐 금송아지라도 묻어놨어?”

김영훈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사님!”

유송미 비서가 다시 뛰쳐들어와서 말을 걸었다.

“또 뭡니까? 제발 이번엔 좋은 소식이라고 해주세요.”

“류 대표님 전화입니다.”

그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비서실에서 넘어온 전화였다.

***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류영준은 태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전에 니카라과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국 은행들하고 충돌할 수도 있다고 슬쩍 일러주셨죠.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지금 상대가 정확히 누구고 뭣 때문입니까?

“로페어 가문이라는 금융계의 큰손입니다. 거기 수장인 알폰스 로페어가 옛날에 니카라과에서 국립 의학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인체 실험을 한 적 있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세상에…….

김영훈은 숨을 들이마셨다.

-어쩐지 공격이 예사롭지 않다 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이사회 소집도 요구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우리가 이겼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

“제 손에 카드가 다 있어요. 시간만 좀 더 있으면 됩니다. 에이젠바이오 이사회를 3주 후에 열겠다고 해주세요.”

-3주 후요?

“네. 그 사이에 결론이 날 거예요.”

류영준은 전화를 끊었다.

그의 컴퓨터에는 환자들의 DNA가 탈렌으로 조작되었다는 걸 입증하는 증거물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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