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 FRB (1) >
-연방준비은행 (Federal Reserve Bank)는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입니다.
펠루스 대통령은 류영준과의 통화에서 그렇게 알려주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상징이고, 금융의 중심지예요. 그리고 거기서 ‘달러’를 찍어내는 게 연방준비은행입니다.
달러는 세계 기축 통화다.
국가간 결제나 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화폐가 달러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의 금 보유량이 전 세계를 통틀어 1위이며, 압도적으로 발달한 최첨단 금융 시장과, 매우 안정된 신용도와 물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달러를 찍어내는 권력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 옥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 (미국인 포함)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미국 정부가 달러를 찍어내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주식을 단 1주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연방준비은행은 100% 순수하게 민간 은행이다.
그리고 그 민간 지분의 대부분을 쥐고 있는 게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고, 그 은행들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로페어 가문이다.
즉, 미국 정부는 달러가 필요할 때 직접 생산하는 대신 연방준비은행에게 ‘채권’을 팔고 이자를 주면서 달러를 ‘빌려온’다.
당연히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기 때문에 그 빚과 이자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갚는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달러를 생산하려면 세금을 거둬서 로페어 가문에게 상납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 뭐 그런 경우가 다 있나요?”
류영준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S 계열사가 중앙 은행을 소유하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가 원화를 발행할 때 S 계열사에 발행을 요청하고 빌려와야 한다는 뜻 아닌가?
-그리고 연방준비은행은 오랫동안 삽질을 많이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대공황이죠. 연준은 1928년에 이미 대공황의 발생 가능성을 예상했습니다. 지나치게 팽창한 주식 시장이 어지간한 전문가들 눈에는 다 들어왔죠.
펠루스가 말했다.
-그때 연준이 공개시장 조작을 하면서 정부 채권을 매입했으면 금리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면서 대공황의 위기를 방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금본위제를 포기했다면 공황의 악순환이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테죠.
"......."
-사실상 그건 연준이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역할을 유기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아무 책임도지지 않았죠.
“제가 생물학 얘기할 때 비전공자들이 이런 기분입니까?”
-좀 더 쉽게 설명해드릴까요?“
“아니요, 바쁘실 텐데 제가 따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거나 강의를 듣겠습니다.”
-아무튼 요약하면, 연준은 중앙 은행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대공황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이요.
펠루스 대통령이 말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연준이 만들어내는 수익은 착실히 로페어 가문과 유대인 커뮤니티에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꼴이 환멸이 나서 금융계를 은퇴해버렸던 것이고요.
“그리고 이스라엘로 간 겁니까?
-네.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가 유대 커뮤니티의 힘입니다. 세계 금융업을 다 쥐고 있었으니 영국에서 벨푸어 선언 같은 걸 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죠.
펠루스 대통령이 말했다.
-저는 금융업을 할 때는 항상 죄 짓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일하는 게 일종의 속죄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류 박사님.
“네?”
-로페어하고는 싸우지 마십시오. 차라리 중국 주석을 두 번 갈아치우세요. 로페어 집안은 권력의 고인 물 그 자체입니다.
펠루스가 말했다.
-그들은 200년 동안 돈을 중심으로 언론이나 기업들, 정계와 결탁해서 아주 견고한 성을 쌓아놓은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인 CIA에까지 손길이 미치고, 암살, 여론 조작, 경제적 압박, 모든 공작에 능숙합니다. 미국 대통령들조차 그 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진 케이스가 한둘이 아닙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
“하지만 저한텐 더 큰 힘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알폰스 로페어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니카라과에서 진행되는 의료 사업은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인간애나 연구 목적이 아니라, 날 압박하는 거다.’
알폰스는 류영준이 그곳에서 어떤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유전 변이들에는 어떤 패턴도 없고, 류영준이 그걸 찾아낸다고 해도 로페어 가문과 연결 지을 방법은 없다.
모든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이다.
무려 30년 전 일이다.
당시에 별로 필요 없었던 이들은 거의 다 사살됐고, 남아있는 관련자들도 상당수가 나이가 들어서 자연히 떠났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미 입막음이 됐거나, 본인이 유전자 조작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고아원 출신들이다.
니카라과의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는 지금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그 터전에는 다른 빌딩들이 서있다. 땅을 파서 유골 같은 걸 찾아낼 방법도 없다.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부는 애초에 유전체학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까지도 잘 몰랐다. 그냥 그룸 레이크라는 미국의 공군 기지가 들어와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마저도 퇴진할 때 공군 기지의 모든 기록을 깨끗하게 제거했다.
니카라과에 산디니스타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공군 기지의 모든 정보는 비밀에 부쳐져서 산디니스타 정부는 아무것도 입수하지 못 했다.
CIA에 남아있는 정보가 약간 있지만, CIA의 국장이나 대통령 정도의 권한이 있어야 열람이 가능하다.
‘어떤 증거도 없다.’
하지만 알폰스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적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다.
“형님?”
테이트 로페어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래.”
“다들 형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려오시죠?”
“지금 가지.”
알폰스는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로페어 저택의 1층에서 작은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파티에 초대받은 인물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들의 힘을 한 데 모으면 미국 대선 레이스의 한 국면도 바꿀 수 있다.
뉴욕 타임즈, USA 투데이, 뉴욕 포스트, 디 어니언 그리고 수많은 언론사들의 핵심 임원들.
“제가 우리 미국의 스피커들을 뵌 지가 너무 오래되어 초대했습니다.”
알폰스가 말했다.
언론인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로페어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알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잘못 찍히면 정부로부터 세무 조사를 받거나, 투자자들이 원금 회수의 압력을 넣는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면 몇몇 거대 기업들에서 광고를 의뢰해오거나, 월가의 거대한 은행에서 직접 투자를 제의한다.
언론인은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지만, 언론은 돈이 있어야 굴러간다. 좌파 신문이든 우파 신문이든 말이다.
“여러분한테 중요한 뉴스 거리를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알폰스가 말했다.
“바로 니카라과에 류영준 박사가 와서 커다란 의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
홀에 침묵이 흘렀다.
류영준이 니카라과로 이동했고, 메디컬 센터를 열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이다.
따라서 알폰스의 이 발언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
“왜 니카라과로 갔을까요. 그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산디니스타 정부는 냉전 때부터 반미 성향이 짙었고 좌파적인 정부였습니다.”
알폰스가 말했다.
“시장은 언제나 효율의 원칙으로 움직이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죠. 정부는 부패할 수 있습니다. 특정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되면 그런 경우가 많죠.”
알폰스는 와인을 들어올렸다.
언론인들이 함께 잔을 들었다.
“나는 미국이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정부에 너무 많은 힘이 집중돼있다면, 류영준 박사에게 비밀리에 어떤 보상을 지불하고 의료 사업을 따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몰랐던 그 사업의 첫 타자 자리를 말이에요.”
알폰스가 말했다.
“자유로운 시장과 자유로운 미국을 위하여.”
그는 와인을 쭉 들이켰다.
류영준은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한다. 뭘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걸 로페어와 연결 짓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쪽 입장에서 류영준의 약점은 너무나 많다.
강력한 명예를 쌓아올린 선지자는 딱 한번 먹물을 뿌리는 걸로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식회사의 대표인 류영준이 뒷돈을 받고 회사 사업을 니카라과에서 진행한다는 소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폰스는 휴대폰에서 메일을 확인했다.
CIA에 있는 수석작전장교가 보낸 것이었다.
[지시 사항 확인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증인, 이사야 프랭클린은 어차피 심각한 지병을 앓아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들었다.
며칠 더 일찍 가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
띠링!
니카라과의 메디컬 센터에서 일어나는 축제를 구경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중, 류영준의 휴대폰에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에이젠바이오 비서실에서 보낸 것이다. 하버드 메디컬스쿨 (Harvard Medical school)로부터 넘겨 받은 자료를 전달해준 것이다.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죠지 톰슨 교수의 연구실에서 보내준 플라스미드 운반 기록입니다.
류영준은 자료를 열었다.
[1967년, 니카라과의 시우나 시의 북동부 그룸 레이크 공군 기지로 플라스미드 3종을 연구 목적으로 기증]
플라스미드는 특정한 유전자를 삽입해놓은 원형 DNA 덩어리를 말한다.
류영준은 플라스미드의 자료를 열었다.
“이건 꽤 노다지군.‘
그리고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3종의 플라스미드는 바이러스 생산용 Helper DNA와 pGT0818이라는 이름의 플라스미드였다.
PGT0818을 Addgene 사이트에 검색하면 죠지 톰슨 연구실이 제작자로 나온다.
탈렌을 최초로 발견하고 특허 등록한 연구실이다.
그리고 pGT0818이라는 플라스미드 내부에는 탈렌 DNA가 들어있다.
로페어 가문은 정말 꼼꼼하게 기록을 지웠다.
심지어 하버드 대학의 행정실에 남아있는 거래 내역이나 로열티 지불 내역까지 제거했다.
이 정도면 정말 완벽하다고 할 정도의 증거 인멸이었지만, 죠지 톰슨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 남아있는 학술적인 수기 자료까지 신경쓰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 걸 남겨놨으리라는 사실조차 생각을 못했겠지만, 교수들은 이런 기록을 종종 남긴다.
자신이 제작해서 기증한 DNA를 누군가 써서 좋은 데이터가 나온다면 공동 연구를 기획하거나 기여도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보통은 공군 기지에서 인체 실험을 했다고 하면 피해자와 용의자들을 조사하게 마련이지만, 류영준은 애초부터 DNA 수준에서 추적하고 있었다.
-죠지 톰슨 교수 측에서 위 자료들을 제공해드리는 대신, 하버드에 방문 강의를 부탁드렸습니다.
류영준의 메일을 마지막까지 읽고 피식 웃었다.
[나중에 일정 잡겠다고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답장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모든 카드를 거의 다 모았다.
***
로버트는 이사야 프랭클린의 팔뚝에 주사를 놓고 있었다.
다른 요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다.
“뭐야 이거?”
이사야 프랭클린이 물었다.
그녀는 꽤 혹독한 심문으로 몰골이 상했지만 여전히 눈빛은 들개처럼 사나웠다.
“류 박사가 만들어주신 거다. 완치시킬 수는 없지만 네가 먹던 약보다는 훨씬 좋은 거라더군. 임상이고 뭐고 그런 걸 거친 건 아냐. 하지만 다른 수단도 없잖아?”
“쳇."
“니카라과로 가셨는데, 돌아오면 널 완치시키겠다고 하셨어.”
“뭐라고?”
이사야 프랭클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류 박사가 니카라과로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