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3화. < 그랜드슬램 (1) > (119/301)

263화.  < 그랜드슬램 (1) >

이스라엘 전력공사 (IEC)는 에이젠바이오에서 선물해준 그 신기술 덩어리를 며칠간 방치했다.

“주니까 받긴 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써야하냐.”

전력공사의 사장인 시몬은 사내 창고에 들어온 200 대의 태양 전지 모듈을 보며 고민에 잠겨있었다.

이스라엘은 최근 Mishor Rotem 지역에 400MW 규모의 신규 열병합발전소 건설을 마쳤다.

소요비용은 총 20억 세켈(약 6억불)로 이스라엘의 GDP를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그 초거대 발전소를 돌리면 국내의 필요한 전력을 넉넉하게 생산할 수 있다.

이제 투자 비용을 뽑아낼 시기인 것이다.

근데 하필 이 타이밍에 에이젠바이오가 태양 전지를 공개하고 세계 곳곳에 시제품을 나눠주었다.

이제 태양 전지 체제로 세계가 탈바꿈하는 미래가 예정된 셈인데 이걸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태양 전지로 다시 바꾼다면, 6억 불이나 되는 세금을 쓸모도 없는 화석 연료 발전소에다 태워버렸다고 국민들한테 욕을 엄청나게 쳐먹을 거란 말이지.’

일단 시제품이니까 추가 주문은 하지 않고 200대만 돌려보며 태양 전지 발전을 조금씩 시도해보자.

그 정도로 결론을 내렸을 때에 류영준이 들이닥쳤다.

“태양 전지 전부 다 주십시오. 곧 아풀라 시가 완전히 정전됩니다.”

“뭐라고요?”

“테러리스트들이 아풀라 시의 송전탑을 전부 파괴할 겁니다. 태양 전지와 ESS를 있는대로 다 주세요!”

류영준이 소리쳤다.

선물을 줬다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찾아와서 다시 전부 내놓으라는 황당한 요구였다.

하지만 시몬은 만약 류영준의 말이 맞을 때 가장 큰 책임이 전력 공사 사장인 자신에게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류영준이 허튼 소릴 할 사람은 아니다.

“전부 가져가십시오. 있는 거 다 드리겠습니다. 제가 더 도와드릴 건 없나요?”

시몬이 말했다.

***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들어온 태양 전지와 ESS들이 병원 곳곳과 연구소들을 살려냈다.

그 와중에 류영준은 테러리스트들의 위치도 거의 정확히 짚어주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체포되거나 사살되거나 달아났다.

‘아풀라 시의 방어에 성공했다.’

예비전력 일곱 시간의 아풀라 메디컬 허브는 하룻밤을 견뎌냈다.

이튿날에는 기술자들이 송전탑 몇 개를 간이복구하는 데 성공했고, 요르단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양 전지를 보내왔다.

이에 더해서 상당히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그 국가들이 음식과 의약품 같은 일차 구호 물품들까지 보내온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줄곧 치고 받고 싸웠던 아랍 연맹의 행동이라기엔 충격적인 원조였다.

“비록 지금은 평화 협정을 맺었고 수교를 하고 있지만 이집트나 요르단은 우리 나라와 관계가 굉장히 나쁜 나랍니다. 어떻게 태양 전지 지원을 받으셨습니까?”

펠루스 대통령은 추가로 들어온 물건들을 보면서 물었다.

“아랍 연맹의 국가들에게 의료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이 땅에서 몇 가지 협정을 진행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협정이요?”

“네. 그리고 그 부분에서 펠루스 대통령님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뭡니까?”

“아풀라 시와 아랍 연맹의 16개 주요 도시에 차세대 병원을 지을 겁니다.”

펠루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차세대 병원을 짓는다고요?”

“에이젠바이오가 최초의 차세대병원을 설립한 후에, 이미 선진국들은 그걸 모방해서 병원을 개편하거나 새로 설립해서 차세대 병원을 수백 개씩 지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중동에는 하나도 없죠. 개인적으로는 차세대 병원이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는 지역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설립해주시는 겁니까?”

“에이젠바이오가 이 사업에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밑지고 퍼줄 생각도 없습니다. 중동 정부들에서 설립 비용 펀딩을 하셔야해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 대신, 이 땅에 들어올 차세대 병원들은 다른 선진국의 모방품들과 다르게 에이젠바이오의 차세대 병원의 가맹점이 될 겁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개발된 의료 기술을 직접 공유받아 가장 빠르게 첨단을 달리는 병원들이 될 겁니다.”

"......."

“에이젠바이오가 이 정도로 파격적인 투자를 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그 병원들의 설립 부지를 유엔에 기증해서 유엔 소속으로 만들 겁니다. 아시다시피 유엔 기관 사무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치외법권이죠.”

“중동에 치외법권 지역들을 만든다는 겁니까?”

“네. 아랍 연맹의 총 16개 도시와 이스라엘의 아풀라, 예루살렘 두 곳에서 각각 병원 설립을 추진할 겁니다. 아랍 연맹 도시들 중에는 당연히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도 포함입니다.”

"......."

“그리고 그 병원의 운영은 에이젠바이오가 직접 할 거예요. 국제 의료법을 따라 아랍연맹이든 이스라엘이든,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구별 없이 환자를 받고 치료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유엔이 설립한 학교를 폭격한 적이 있죠?”

"......."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 이 땅에서 또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병원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해요. 최소한의 합의된, 국제법을 따르는 정의롭고 인류애적인 안전 지대를 최소한 하나는 마련하자는 겁니다.”

펠루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국가 지도자들이 해야하는 일을 민간인이 추진하시니 좀 부끄럽군요.”

“그리고 펠루스 대통령님한테는 한 가지 요구사항이 더 있습니다.”

“네?”

“가자 지구에 전력을 공급해주세요. 저는 그곳에 태양 전지를 보낼 겁니다.”

“……알겠습니다.”

“팔레스타인하고 이스라엘의 분쟁은 너무 깊이 꼬여서 풀기 어렵다는 것, 잘 압니다.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라서 그런 데 손댈 생각은 없고, 손 대고 싶지도 않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과학은 인간을 핍박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라그바의 뇌사 치료 시술은 일주일 후에 진행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일주일이요? 원래 예정은 나흘 후 아니었습니까?”

“줄기세포의 오염 가능성이 있어서 그걸 제거해야 하거든요.”

“오염이요?”

펠루스 대통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제가 여기 있으니, 아드님은 죽지 않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중추신경계에 감염이 일어나 뇌사에 빠진 환자를 살려내는데 이 정도로 호언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임상 경험도 겨우 하나뿐인데.

그러나 펠루스는 류영준의 말에 엄청난 신뢰감을 느꼈다.

그가 된다면 되는 것이고, 하자면 해야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펠루스 대통령이 말했다.

***

예루살렘을 비우고 아풀라까지 달려갔던 펠루스의 속사정은 며칠만에 공개되었다.

이젠 숨기고 어쩌고 할 수도 없었다. 펠루스가 중환자실에서 환자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눈물로 보냈기 때문이다.

펠루스는 그냥 법적 수속을 밟아서 정식으로 아들을 입양했다.

-펠루스 대통령, 팔레스타인 소년 입양.

-이스라엘의 폭격과 팔레스타인 해방군의 테러로 한 소년이 겪은 일.

그 기구한 아이의 사연 뒤에는 블레셋의 설립 배경과 폴리오마바이러스에 대한 것도 소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와, 그 새끼들 그거!”

라이프톡신 대표, 홍명운은 류영준의 연락을 받고 흥분해서 펄쩍 뛰었다.

-고소하실 겁니까?

“당연하죠! 제가 아주 그냥 블레셋이고 아샴이고 없애버릴 겁니다. 두고 보십쇼!”

웅담제약과의 싸움으로 자존심과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은 라이프톡신한테는 딱 좋은 상대였다.

홍명운은 곧바로 국제 소송을 준비했고, 앞장서서 블레셋과 테러조직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다녔다.

동시에 중동에서는 펠루스가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부터 가자 지구에서 데려와 치료하고 극진히 살폈던 일.

정치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을 원치 않아 정식 입양하는 대신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아풀라에서 키운 사실.

뇌사에 빠진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연명 치료를 이어왔던 나날들.

그리고 그 구구절절한 사연의 끝에는 갑자기 한 동양인이 구원자처럼 등장했다.

아풀라의 테러를 막아내고 대정전까지 방어한 후.

아랍 정부들과 이스라엘 정부가 중동 평화의 초석이 될 병원 설립 계획을 세우는 한 가운데.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라그바가 눈을 떴다.

치료 2주째였다.

그의 앞에는 류영준과 펠루스와 에이젠바이오 차세대 병원의 의료진이 서있었다.

***

“과학자였다가 예언자가 됐다가 지금은 거의 메시아 수준이죠.”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CEO, 가필드가 말했다.

“어떻습니까? 대표님 생각에는요?”

CNN에서 찾아온 기자는 류영준에 대해 가장 흥미로운 소식이 될 정보를 하나 얻어낼 작정이었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이 기관은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오늘 클래리베이트가 예상하는 올해의 수상 후보 목록이 나오는 날이잖아요? 류 박사님은 몇 군데에 올라가있나요?”

기자가 물었다.

“우리가 공식 발표하면 그때 보시죠.”

“저한테만 슬쩍 일러주세요.”

기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가필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힌트만 하나 드리죠. 노벨상 후보에 올해 올라가려면 작년에 이미 후보로 추천을 받았어야 합니다.”

가필드가 말했다.

“그러니 올해의 공적은 평가 항목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목록에 없는 사람을 후보에 올리지는 못한다는 거죠.”

“아, 그럼 지금 류 박사님이 중동에서 차세대병원을 중점으로 한 평화 지대를 구축하는 그런 황당한 작업을 해도, 류 박사님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는 없다는 거네요?”

가필드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기자님. 류 박사님은 작년에 인도의 그 악명 높은, 에이즈와 인신매매의 소굴인 카마티푸라를 없애는 데 엄청난 공헌을 했답니다.”

“아……."

“그때 백 퍼센트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을 겁니다. 지금 카마티푸라에는 류영준 박사 동상도 있어요. 그리고 만약 그렇게 후보로 올라갔다면요. 생각해보세요. 올해에 그 분이 뭘 했습니까?”

“중동에서……."

“그 전에 중국에서 신장위구르 캠프까지 들어가서 감염 바이러스를 조사하고, 인공 장기를 개발해서 중국 주석을 압박해가지고 정권 교체를 유도했죠? 결과적으로 신장 지역의 해방을 이뤄냈고요. 장기적출 현장을 CIA가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 내부 정보 제공자가 류 박사라는 소문도 이젠 기정 사실이 되는 분위깁니다. 여기서 이미 끝났어요.”

“그렇군요.”

“근데 이번에는 중동의 전쟁 종식을 위해 테러 지역까지 찾아가서 뛰어다녔잖아요? 이걸 누가 이깁니까.”

***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노벨상 수상 후보 예측]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해서 에이젠바이오의 류영준 박사가 노벨 평화상 후보 15명 가운데 수상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혔습니다.”

클래리베이트에서 발표된 자료를 국내 언론들은 흥분해서 앞다퉈 보도했다.

“또한 유전자 가위 캐스나인의 발견과, 매우 정밀한 DNA 분자 구조의 교정법 및, 신속 정확한 진단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 수상 1순위로 역시 류영준 박사를 꼽았습니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이에 더해 역분화 줄기세포의 생산법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뇌사를 비롯한 각종 신경질환을 치료한 공로로 노벨 생리 의학상의 수상 1순위에 마찬가지로 류영준 박사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더 있다.

“그리고 작년도에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정보를 토대로, 클로로필 태양 전지의 개발로 모든 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고 유통업과 우주 개발 및 환경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물리학상 수상 1순위 후보로도 류영준 박사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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