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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화. < 콜드체인 (14) > (118/301)

262화.  < 콜드체인 (14) >

아풀라 시의 방어선을 컨트롤한 게 경찰이 아니라 군대였다.

이 사실은 펠루스 대통령이 이번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최선을 다했어도 발전소에서 산을 넘어오는 송전탑들에 날아가는 대전차포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팔레스타인 해방군은 도심 곳곳의 주요 송전탑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해서 순식간에 도시에 대정전을 일으킨 것이다.

“기바트 하모어 리저브 산을 넘어가는 송전탑들을 건드릴 것 같습니다.”

류영준은 로버트의 차량 안에서, 구글 지도와 아풀라 시의 전력 공급망 모식도를 휴대폰에 열어놓고 말했다.

다양한 위치의 공격 포인트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점쟁이 수준으로 딱딱 맞춰냈지만, 아풀라의 이스라엘 군보다 항상 팔레스타인 해방군이 조금씩 더 빨랐다.

“망했다.”

이스라엘 군의 카신 중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저브 산에서 몇 명의 팔레스타인 해방군을 제거하고 아브라힘과 아지즈 소령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 후였다.

도시 전체의 전력 공급이 완전히 박살났다.

펠루스 대통령은 모든 스케줄을 전부 취소한 후 최고 속도로 아풀라를 향했다.

“위험합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테러리스트 잔당들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주위에선 경악해서 말렸지만 펠루스는 이미 앞뒤를 분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력이 다 끊겼다.

선진국의 대형 종합 병원들은 비상 전력을 일주일 분량씩 쌓아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풀라는 아니다.

선진국의 주요 종합 병원들에서는 아예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풀라의 병원들은 아니다.

그들은 20세기의 중후반에 끊임없는 전쟁으로 부상자들이 급부상함에 따라 급하게 늘어난 병원들이다.

그곳의 비상 전력 시스템은 그리 훌륭하지 않다.

앞으로 일곱 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해막 병원의 인공 호흡기의 전력이 꺼진다.

그리고 뇌사 상태에 있는 그의 아들 라그바는 영원이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난……. 난 가야 해……."

펠루스가 말했다.

그는 약간 얼이 빠진 사람 같았다.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비틀비틀 집무실을 빠져나오는 모습은 대통령 같지 않았다.

그 비정상적인 비참함에 예루살렘의 재난 컨트롤 타워 장관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자네가 맡아주게.”

펠루스는 국방장관 베네탈리에게 부탁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비서실장과 함께 경호원 둘만 데리고 차를 탔다. 그대로 아풀라로 이동한 것이다.

***

“나는 라그바를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펠루스가 말했다.

“그리고 많은 아픔을 가진 그 애가 치료받고 웃음 지을 수 있으면 우리 나라와 팔레스타인의 분쟁도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았지.”

펠루스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런 게 아닌데.”

그가 말했다.

“그 애는 불쌍한 게 아니라 사랑스러운 애였어. 이 나라의 평화의 상징이나 희망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십대 소년이었지.”

펠루스는 축축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붉어진 눈시울을 손으로 몇 번이고 훔쳐냈다.

“그냥 애였어. 날 원망하기도 하고 걱정 끼치기도 하고 몇 년째 괴롭히고 웃겨주기도 하면서. 평범한 어린이처럼. 몰래 숨어서도 씩씩하게 잘 커줬거든.”

펠루스는 고통스러운 듯 말했다.

“류영준까지 데려왔는데. 이제 치료만 하면 되는데. 이제 다 된 거였는데……. 중동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란 말이야. 그 애는 아무 잘못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야. 근데 대체 왜 이렇게 지독하게 계속……."

펠루스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아드님이 돌아가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실장이 말했다.

"......."

“아풀라 시에 가면 차세대 병원 의료진한테 줄기세포 투약을 부탁해보죠. 혹시 압니까, 치료되어서 스스로 호흡해서 버텨낼지......."

***

다 틀렸다는 걸 알고 있어도 펠루스 대통령에게는 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난 벙커로 대피한 차세대 병원의 의사들을 찾아가 부탁했다.

“라그바한테 줄기세포를 투약해주십시오……."

고개까지 숙였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의료진은 기겁하며 거부했다.

“줄기세포가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고 오염이 있는지 퀄리티 체크도 안 됐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투약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양도 적습니다!”

시술 담당의 송민혁은 절대 안 된다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우리 애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인공호흡기 전력이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습니다.”

“……. 아니……그렇게 말씀하셔도……."

송민혁은 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술을 하는 데는 주저했다.

“지금 비상 전력이 전부 호흡기와 에크모나 심전도 같은 걸 유지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연구소 전력도 줄기세포 같은 걸 보관하기 위한 최저 필요량으로만 돌리고 있고요.”

송민혁이 말했다.

“미완성 줄기세포로 시술을 하려고 하더라도 수술실에 전등조차 안 들어오는 상황입니다.”

"......."

펠루스는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송민혁은 그가 안쓰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유명한 미구엘 교수조차도 콧속으로 뇌실하대에 줄기세포를 보낼 때 방사선 모니터가 필요했다.

이번 시술은 약물전달방법을 개선한 임상으로, 미구엘 때보다는 훨씬 난이도가 낮지만 콧속으로 투여하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잘 된다면 이제 웬만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방사선 모니터는 필요하다.

“전력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펠루스는 순간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자괴감에 빠졌다.

다른 응급 중환자들의 네 시간 남은 전력의 일부를 빼서 줄기세포 시술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요? 나사렛 병원으로 가면……?”

펠루스가 간신히 생각을 짜내 물었다.

“그 생각은 이미 해봤지만……."

송민혁이 답변하는데 중간을 자르고 해막 병원의 교수 한 명이 끼어들었다.

“최우선 순위의 혼수 상태의 환자들을 먼저 수송하면서 차량이 전부 다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뇌사자는 아직 이스라엘에선 현행법상 사망자이기 때문에…… 긴급 수송 우선 순위가 아니었습니다.”

"......."

“나사렛 쪽도 지금 송전탑 파괴의 영향을 받아서 여유롭지 않습니다. 수송된 환자도 몇 없고요……."

해막 병원 교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펠루스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벙커를 빠져나왔다.

“대통령님.”

뒤따라 나오는 비서실장과 경호팀을 펠루스가 막았다.

“부탁이니 제발 나 혼자 있게 해주게.”

그는 해막 병원으로 이동했다.

대피가 불가능해 아직도 병원에 누워있는 중환자들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갔다.

라그바의 병상 앞에 도착한 펠루스는 그 옆에 주저앉았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의 아들은 사망자도 아니고,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치료할 수 있는 병이고, 치료할 수 있는 의사와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과학자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 치료제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무력한 것이다.

전력이 차단된 것의 가장 큰 잔인함은 사망 시각이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 의사가 시한부 선고를 할 때도 3 주 쯤, 또는 네 달 정도, 하는 식으로 기간을 모호하게 제시하지 않는가.

그보다 더 오래 사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라그바는 다르다.

인공호흡기와 에크모의 전력이 끊어지는 그 시점이 끝이다.

초 단위로 정확하게 선고된 사망 예정 시각.

그것도 치료 가능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려진 운명적인 사형 선고.

그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달칵.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더니 웬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펠루스는 알 것 같았다.

눈물 범벅이 된 그 얼굴로 이 중환자실을 찾았다는 것은, 이곳에 누워있는 중환자들 중 한 명의 가족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창가 쪽 병상으로 이동하더니 몇 주 전부터 호흡기를 부착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젊은 군인 곁으로 다가갔다.

남편일 것이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가방에서 탈릿을 꺼내어 머리에 덮어 썼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당신은 우리의 방패요, 선조들의 방패이십니다. 찬양 받으소서, 아브라함의 방패시여."

그녀는 우는 대신 기도를 했다.

“당신은 용사이시며 강한 분이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며……."

'.......'

펠루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나보단 낫네.’

절망하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게 낫지 않은가.

잠깐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른 환자 가족들이 더 나타났다.

백여 명이 좀 안 될 듯한 그 사람들은 모든 중환자실을 가득 메우고도 복도까지 채웠다.

그들은 울고불고 비명도 지르고 손을 잡고 기도를 올렸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저주하고 욕하고, 이따금 실신을 했다.

빠르게 줄어드는 전력은 환자들의 생명력일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정신력이기도 했다.

지옥 같은 세 시간이 지난 후.

펠루스는 대통령으로서 이제는 전력이 다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자며 서로를 다독이려던 순간이었다.

쾅!

병실 문이 왈칵 열리더니 눈이 퉁퉁 부은 의사 한 명이 뭉개진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전……전력이 들어왔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던 모든 환자 가족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요?”

계속 기도를 올리던 젊은 여자가 물었다.

“전력이 들어왔어요. 몇 시간을 더 벌었습니다……."

기적은 콘슨앤커슨에서부터 에이젠바이오와 카르푸를 거쳐 콜드체인의 길을 따라 찾아왔다.

***

“진짜 이렇게 하면 됩니까?”

유령 회사 카르푸의 트럭을 몰고 온 에이젠바이오의 입사 1년차 말단 영업 사원 신욱재는 황당한 요구에 머리를 긁적였다.

“네, 이제 됐습니다.”

해막 병원의 비상 전력 담당자들이 흥분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헛, 참. 아무튼 다행이네요.”

신욱재가 웃음지었다.

약 30분 전, 이곳으로 오는 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고 보니 무려 에이젠바이오 그룹의 꼭대기에 있는 대표이사였다.

에이젠바이오의 일곱 개 연구소와 미국의 암 연구소와 에이젠생명과 차세대병원까지 줄줄이 손에 쥐고 있는 그 괴물 과학자가 직통 전화를 건 것이다.

-지금 어디쯤 계십니까?

“저, 저, 저 지금 코, 콘슨앤커슨에서 폴리오마바이러스 억제제……."

너무 놀라서 말을 몇 번 더듬던 신욱재에게 류영준이 물었다.

-안티폴리마를 초저온 냉동고에 넣고 오신 거죠? 어디 쯤 와계신가요?

“아, 아풀라에 거의 다 왔습니다. 아니 이제 들어왔습니다.”

-좋아요. 그대로 해막 병원 지하 1층 관리사무실로 가십시오. 그리고 비상전력 공급 담당자를 찾는다고 얘기하세요. 태양 전지를 가져왔다고 하면 알아서 해줄 겁니다. 태양 전지는 지금 몇 개나 있습니까?

“아, 아직 시제품이니까 혹시 작동 오류나 파손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해서 많이 챙겼습니다. 지금 제 트럭에는 여덟 대의 모듈이 있고요......."

-차량에 ESS는요?

“꽉 찬 거 두 개 있습니다.”

-좋아요. 해막 병원으로 바로 가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였다.

비상전력 담당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재빨리 전선을 재배치하고 다시 연결했다.

그리고 스위치를 켰을 때.

태양 전지 모듈 여덟 개는 압도적인 효율로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밤에 초저온 냉동고를 돌리기 위해 가져온 전력 저장 장치 (ESS) 역시 가득 차있는 게 두 대나 되어서 해막 병원의 전력은 갑자기 풍만해졌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벌었을 뿐입니다. ESS 한 대와 태양 전지 여섯 대는 다른 병원들로 나누어줬으니까요.”

해막 병원의 중환자실 담당의가 말했다.

“다른 병원들도 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더 시간을 끌게 되면 연구소나 의약품 보관용 냉동고 같은 걸 희생해서 호흡기를 더 쓸 수 있습니까?”

펠루스가 물었다.

“그게…… 가능은 한데……."

“대통령님!”

복도에서 누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무 흥분해버린 비서실장은 중환자실까지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서 외쳤다.

“태양 전지가 추가로 더 왔습니다!”

“더 왔다고?”

펠루스가 재빨리 복도로 튀어나가 물었다.

“밖에 나가보십쇼!”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중환자실의 환자 가족들이었다.

펠루스가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와르르 밖으로 뛰쳐나간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약 이백 개의 태양 전지 모듈이 트럭 10대에 실려서 들어와있었다.

“각 병원 거점마다 한 대씩 보내세요.”

그리고 그 앞에는 류영준이 있었다.

무슨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다.

“이게 무슨……. 류 박사님?”

“죄송하지만 이스라엘에 시제품으로 써보라고 기증했던 태양 전지, 제가 다시 예루살렘에서 전부 빼왔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인근 중동 국가 정부들한테도 긴급 지원을 요청했으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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