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 콜드체인 (13) >
“내 말 못 들었어? 거기 테러가 난다고.”
닥터 레프가 말했다.
“그러니까 가야지.”
류영준이 답했다.
“아니, 멍청아. 누굴 치료하고 어쩌고 하는 건 둘째 치고 네가 다칠 수도 있단 말이야. 네가 암만 잘 났다고 해도 총알이 그걸 알아보고 널 빗겨가기라도 해?”
닥터 레프는 답답한 듯 소리쳤다.
“그렇다고 여기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우리 의료진도 거기 있고, 환자들도 거기 있어.”
류영준이 말했다.
“이사야 프랭클린. 여기서 얌전히 취조 받고 가만히 있어. 돌아오면 네 골수이형성증후군을 치료할 테니까.”
닥터 레프는 약간 당황했다.
“날 치료한다고?”
그녀가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 테러리스트고 못된 놈이니까 그냥 죽으라고 할 줄 알았어? 재판 받고 감옥에서 노역하면서 살아.”
"......."
“아풀라 시에 다녀온 후에 다시너를 찾아갈 거야. 그때 네가 저지른 짓들에 대해서 얘길 좀 해보자고.”
류영준은 밴에서 내렸다.
그리고 밖에 서있는 CIA 요원들에게 다가갔다.
“말씀 다 나누셨습니까?”
로버트가 물었다.
“네. 그리고 닥터 레프 말로는 팔레스타인 해방군이 아풀라 시를 공격한다고 합니다.”
류영준은 방금 접한 그 충격적인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저희도 밖에서 통신기로 들었습니다. 류 박사님의 대화를 엿들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저희 매뉴얼이 그러하니 이해해주시겠죠.”
“네, 괜찮아요.”
“이미 이스라엘 정부에 이 사실을 통지했습니다.”
로버트가 말했다.
“하지만 류 박사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닥터 레프는 그동안 팔레스타인 해방군과 같이 일을 해온 사람입니다. 자백제 같은 걸 쓰거나 고문하지도 않았는데 직접 나서서 제 입으로 아풀라 시 테러에 대해 얘길 해주다니……."
“저 여자는 팔레스타인 해방군 소속도 아니고 블레셋 소속도 아니에요. 둘 다 자기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거나 도움을 주었을 뿐이지……. 아무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풀라 시를 보호해야 돼요.”
“알겠습니다.”
“아풀라 시까지 저를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로버트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경호도 해드리죠.”
***
CIA와 케이캅스 경호업체의 이중 보안 속에서 류영준이 탄 차량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이스라엘의 아풀라 시를 향했다.
도로가 텅텅 비어 있어서 꽤 밟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이동하는 길에 로버트는 이스라엘 정부의 안보 담당자들 및 펠루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군의 공격 예상 지점들에 대해 토의했다.
그리고 류영준은 로잘린과 얘기하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류영준이 탄 차가 타브크 시를 빠져나가는 킹 칼리드 국도를 달리고 있었을 때, 로잘린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가 아풀라에 도착해있었다.
초월적인 세포에게 지형과 국경은 모두 무의미해서, 로잘린은 요르단 서부의 폐쇄 도로와 사해를 가로질러 직선으로 날았다.
그리고 아풀라 시에 도착했을 때는 세포 1백만 개를 퍼뜨려 도시 일대를 수색했던 것이다.
류영준은 눈을 감았다.
로잘린과 시각을 공유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
해방군 중 하나가 말했다.
‘들어도 뭐라는지 알 수가 없으니 난처하네.’
-경계가 삼엄하다는 것 같은데요.
로잘린이 말했다.
‘뭐야? 너는 어떻게 알아?’
-여기 와서 아랍어를 계속 들었잖아요. 저는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신호와 혈류도 읽을 수 있고요. 그리고 손짓발짓이나 표정이나 손가락으로 가드를 가리키는 걸 보면 대강 알죠.
"......."
-통역해드릴까요? 아주 매끄럽진 않겠지만 대강의 의미는 통할 겁니다.
‘넌 진짜 못하는 게 없구나.’
아풀라의 유서 깊은 종합 병원인 해막 병원에는 펠루스의 아들이 있다.
때문에 기존에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서 비밀리에 첩보를 방어하고 보호하던 곳이다.
CIA발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순식간에 경계 레벨이 올라갔다.
군인들이 해막 병원 근처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해막 병원을 중점으로 인근에 위치한 12개의 크고 작은 병원들과 연구소를 포함한 의료 센터 전반에 군 병력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죠?”
팔레스타인 해방군의 군인들은 망원경으로 보안 수준을 확인한 후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저 병력들하고 싸울 수는 없어요. 소령님.”
아브라힘이 말했다.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의 간부 중 하나인 아지즈 소령은 착잡한 듯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송전탑을 파괴하자.”
“네?”
“병원을 직접 치는 대신 송전탑을 모두 끊어서 전력을 차단하면 그것만으로도 치명타야.”
"......."
“비상 전력이 가동되겠지만 저 병원들의 비상 전력 보유량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몇 시간 안에 마비될 거다.”
아지즈 소령이 말했다.
“그걸로 충분히 데미지를 줄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비상 전력이 돌아가는 동안 전력 시스템을 회복하려 하겠지만, 그걸 포인트로 곳곳에서 요격해서 방해하면 돼.”
***
“로버트.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어떤 거요?”
로버트는 펠루스 대통령과 통화하다 수화기를 잠깐 떼고 물었다.
“만약 테러리스트들이 병원을 직접 치는 대신 송전탑을 파괴해서 전력을 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에 대한 방비도 되어 있나요? 아풀라의 메디컬 센터에 호흡기를 부착한 환자가 몇이나 있고, 냉장 및 냉동 보관해야하는 약품들의 재고 여부라든지…… 혹시 지금 파악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테러리스트가 전력을 끊을 것 같나요?”
로버트가 물었다.
“가능성을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테러리스트라면 경계 레벨이 높아지면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매우 특수한 건물들을 제외하고, 병원은 도심에서 단위 면적당 평균 전력 소모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업종입니다. 그리고 전력이 끊겼을 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업종이고요. 호흡기가 작동 못하면 당장 숨이 및는 환자들도 있고, 냉동 시스템이 중지하면 수천만 원 짜리 약들이 모두 쓸모없게 되는데, 그걸 다시 공급하는 데 해외에서 수입해서 몇 주씩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럼 그대로 치료 가능한 환자를 보내야 하는 최악의 사태까지 가는 겁니다.”
"......."
로버트는 약간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황급히 다시 펠루스 대통령에게 테러리스트들이 전력 공급을 끊으려 할 수도 있다는 걸 지적해주었다.
-젠장.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펠루스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로버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류 박사님 예상이 맞을 것 같군요.”
“제 예상이요?”
“그거 아십니까? 이스라엘은 과거에 가자 지구와 전쟁을 계속하면서 백린탄 같은 괴팍한 무기들을 썼죠. 하지만 펠루스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그런 공격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국제 여론 문제도 있고, 펠루스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에 친화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로버트가 말했다.
“하지만 정전 협정에는 계속 실패했고, 펠루스는 이스라엘 대통령으로서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 압박 수단으로 쓴 게 전력입니다.”
"......."
“가난한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는 발전소가 하나뿐입니다. 그마저도 폭격과 전쟁이 지속되면서 연료 공급망이 파괴되어 이젠 돌아가지 않죠.”
“그럼 전력 생산을 못한단 말입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럼 뭘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전기를 어디서 끌어와서 쓰는 겁니까?”
“한 80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땅은 전부 팔레스타인의 국토였잖아요? 그래서 가자 지구는 인근 이스라엘의 발전소랑 송전 시스템이 연결돼있습니다. 거기서 전력을 수입해다 쓰는 거죠.”
“이스라엘한테 전력을 수입한다고요?”
“황당하지만 그렇습니다. 그리고 펠루스 대통령은 하마스 정부와 관계가 나빠지면 전기를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죠. 덕분에 가자 지구에는 이제 하루에 네 시간만 전기가 돕니다. 벌써 몇년 됐어요.”
“아니, 뭐 그딴 경우가 있어요? 현대 도시에서 전기가 장기간 끊기는 것은 단순히 생활 불편을 초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응급 환자가 있어도 수술을 못하고 산모가 출산할 때도 위험성이……."
“당연히 많이 힘들겠죠.”
“민간인들 삶과 목숨을 담보로 잡고 위협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 아니에요? 지금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우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류 박사님. 이스라엘하고 팔레스타인 정부는 ‘전쟁 중’이에요.”
"......."
“적국에 전기를 팔고 있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펠루스 대통령은 그걸로 자국 내 우파들에게 압력을 받기도 해요. 그 전력으로 공장을 돌려서 생산하는 게 테러에 쓰이는 폭탄인데 전기를 대체 왜 파냐, 네 시간도 아까우니 그냥 끊어라. 이런 거죠."
로버트가 말했다.
“그냥 이 지역의 구조 자체가 기형적입니다. 류 박사님. 이스라엘의 존재부터가 문제적인 거예요.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인데 동시에 살기 위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는 거죠.”
“……태양 전지를 가자 지구에 공급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로버트는 침을 조금 삼켰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게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어요. 그리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우방입니다, 류 박사님. 저는 미국의 정보 요원이고요.”
“지금 시대에 전기를 못 쓰는 게 말이 돼요? 전쟁이나 영토 문제는 전력으로 협박하는 거랑 무관하게 국제 사회가 같이 해결해야하는 문제고요! 그것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문명 수준을 못 누리는 건, 거기 사는 민간인들은 대체 무슨 됩니까?”
로버트는 빙긋 웃었다.
“좀 있으면 노벨 평화상도 받으시겠네요. 혼자 다 쓸어담으실 작정입니까?”
"......."
“저도 사실 류 박사님 생각이랑 같긴 합니다. 전쟁과 죽음에 지쳐서 평화를 원하는 건 여기 사는 모든 민간인이 다 똑같겠죠.”
그가 말했다.
“아무튼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 주제로 다시 돌아와봅시다. 팔레스타인 해방군은 현대인 중에서 전기가 없는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일 겁니다. 전력이 끊겼을 때 병원이 입는 피해도 잘 알겠죠. 경계 레벨이 크게 올라간 지금 팔레스타인 해방군이 충분히 생각할 만한 전략이라는 겁니다.”
로버트가 말했다.
“그들이 아풀라의 발전소에서 나오는 송전탑을 파괴해서 전력을 다 끊어버릴 것 같군요.”
“차 돌립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
“예루살렘에 먼저 들러야겠습니다."
***
팍!
전등이 나갔다.
“아 미친!”
해막 병원의 부속 연구소에서 역분화 줄기 세포를 만들던 에이젠바이오의 연구원 제니퍼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황급히 BSC (Biosafety cabinet, 생물안전작업대)에서 손을 빼내고 차단막을 내렸다.
작업대의 전기가 끊기면서 에어레이선(Airation)이 멈췄기 때문이다.
안에서 바깥으로 바람을 흐르게 해서 외부의 박테리아나 먼지가 들어가서 오염시키는 걸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아오……. 뭐야 이게.”
제니퍼는 불안한 표정으로 줄기세포를 키우던 배양 접시를 바라보았다.
“괜찮겠지? 바로 빼고 닫았으니까 오염은 안 되겠지?”
오염이 있으면 세포 배양을 새로 해야한다. 뇌사에 빠진 그 임상 환자 꼬맹이가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발……."
제니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발을 굴렀다.
그 순간이었다.
팍!
다시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 병원과 연구소 내에 정전이 일어났습니다. 비상 전력이 가동되었습니다. 연구소 내의 연구자들은 초저온 냉동고와 콜드룸 등의 저온 보관실들이 모두 정상작동하는지 확인 바랍니다.
“제니퍼!”
밖에서 임조윤 선임이 들어왔다.
“테러 얘기 못 들었어? 지금 대피 가능한 사람은 다 대피해야 돼.”
“네, 실험 거의 다 했어요. 인큐베이터에 넣기만 하고 가요.”
제니퍼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