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7화. < 콜드체인 (9) > (113/301)

257화.  < 콜드체인 (9) >

“별로 어려운 건 아닙니다.”

류영준이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제가 아샴 대표님한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중에 조금 협력을 요청드리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압둘 아샴은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전화를 끊은 후, 류영준은 휴대폰으로 이메일 한 통을 확인했다.

에이젠바이오 본사에서 김영훈 이사가 보내준 자료다.

김영훈은 블레셋과 거래를 진행하는 것을 맡고 있었다.

그는 블레셋 사에 태양 전지의 효율과 예상되는 이동식 발전 시스템, 그리고 카르푸 사를 통한 콜드체인 유통망 확보 전략을 공유해주었다.

그리고 블레셋은 기반 연구 시설에 대한 설명, 보툴리누스 균주의 유전체 데이터 일부와 함께 생산 라인에 대한 자료를 보내주었다.

그걸 류영준이 전달받은 것이다.

자료를 꼼꼼히 살피던 류영준의 옆구리에 로잘린이 불쑥 끼어들어왔다.

그녀는 류영준의 품속에 파고 들더니 함께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균주의 유전체에 삽입된 DNA 중에 왜 폴리오마바이러스(Polyomavirus)가 있죠?

로잘린이 물었다.

“폴리오마?”

-여기요.

로잘린이 DNA 데이터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ATTGTGGCGAATT…….

사람 눈으로 봐서는 어떤 의미를 해석하기 힘든 DNA 조각이다.

‘이건 어떤 생체물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가 아니야.’

류영준이 머릿속으로 말했다.

‘그냥 정크 DNA (junk DNA, 생물체의 DNA 내부에서 어떤 활성도 가지지 않는 DNA 염기 서열) 같은데.’

-아니에요. 이건 폴리오마바이러스의 껍데기를 재조합할 때 쓰이는 유전자의 전사인자예요. 라이보자임 (Ribozyme)의 일종이에요.

'흠.......'

류영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 DNA 조각을 집어넣은 것 자체는 의미가 있어요. 박테리아의 배양에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보툴리눔톡신을 연구하는 블레셋이 어떻게 이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고, 이런 DNA를 알고 가져다 썼는지가 의문이네.’

폴리오마바이러스는 위험한 바이러스가 아니다.

흔히 발견되고 사람을 쉽게 감염시키지만 건강한 성인한테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비교적 안전한 바이러스니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중추신경을 감염시켜서 큰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로잘린이 지적했다.

“앗!"

그 순간 류영준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그래요?

“깜짝이야. 왜 그러세요?”

로잘린과 의료진들이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류영준은 펠루스 대통령에게 물었다.

“아드님이 진행성 다초점 백질뇌병증을 앓았다고 하셨죠?”

“네? 네……. 그것 때문에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거 혹시 원인이 폴리오마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하셨던가요?”

“맞습니다.”

“본래 폴리오마바이러스는 건강한 사람에겐 감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혹시 아드님이 에이즈 같은 면역 저하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펠루스는 대답을 주저했다.

“하지만?”

“그게……."

펠루스는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 애는 가자 지구에 이스라엘 군이 자행한 폭격에서 살아남은 아입니다. 그리고……. 그 폭격이라는 게……."

펠루스가 말했다.

“백린입니다.”

“백린탄을 맞은 아이라고요?”

류영준이 물었다.

“……. 네."

펠루스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군이 백린을 썼어요. 민간인이 있는 그 지구에……."

그 폭격은 악마의 폭죽놀이처럼 느껴졌다.

뜨거운 주황색 불덩어리 같은 백린탄의 파편이 그물처럼 도시에 내려앉던 장면.

펠루스의 머릿속엔 그게 아직도 생생하다.

발화점이 60도 정도로 매우 낮고 한번 불이 붙으면 물을 덮어도 쉽게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

그 폭격은 대량의 유독 가스를 생성하면서 닿는 모든 것을 활활 태워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불이 꺼져도 인산이 몸에서 화학적 화상을 입히는 최악의 무기.

그 잔인함이 너무 심각해 제네바 협약에 의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무기다.

-닥터 레프가 저 폭격을 받았었다고 했죠.

로잘린이 말했다.

“그 폭격의 피해가 면역 시스템에 교란을 일으켰을 수 있을까요?”

류영준이 물었다.

차세대 병원의 의사들은 턱을 괴고 고민에 잠겼다.

“백린이 면역 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보고된 자료가 없습니다. 잘 모르겠군요. 피해를 입혔을 수도 있죠.”

“인 (Phosphorus)는 면역 시스템에서도 사용되는 물질이니, 유독 가스 흡입이 면역계에 교란을 준 상태에서 폴리오마바이러스가 운 나쁘게 중추신경을 침범한다면……."

의사들이 저마다 소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래 못 살 줄 알았습니다.”

펠루스가 그 틈으로 끼어들었다.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부모도 가족도 모두 잃어버린 애였죠. 다섯 살 남짓한 어린이, 적국의 민간인 어린이가요.”

그가 말했다.

“저는 그 애한테 원수 국가의 정치인이었어요. 그것도 꽤 유력한 대통령 후보. 가자 지구의 백린 폭격을 막지 못한, 그걸 방관한 정치인이었습니다.”

"......."

“그저 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데려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만이라도 돌봐줄까. 뭐 그런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사실 저도 앞뒤를 잘 모르겠어요. 어쩌다 그 애를 데려온 건지. 근데……."

펠루스가 말했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버티더군요. 그 조그만 애가요. 그리고 많이 회복돼서 걷고 뛰고……. 아직도 저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저희 아들은 이제 이따금씩은 10대 소년 같이 웃을 줄도 알게 됐어요.”

펠루스는 눈물을 닦아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설명할수는 없지만, 저는 저희 아들이 이 땅의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그 뜨거운 백린을 맞고 화상을 입고도 살아남았다는 게 말입니다……."

"......."

“근데 모든 게 쉽게 풀리지는 않죠. 백린의 후유증이 맞을 겁니다. 저희 병원 의사들이 그러더군요. 백혈구 수치가 낮다고……. 정확한 원인은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류 박사님. 그 애가 죽으면 저는 이 나라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할 것 같습니다. 제가 블레셋이든 뭐든 시키는 건 전부 하겠습니다. 제발……."

“가서 봅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좀 복잡했다.

***

20분 정도의 시간을 더 달려서 차량이 도착한 곳은 아풀라 시의 해막 종합병원이었다.

“아풀라 시에는 그 크기와 주민 수에 비해 병원들이 많이 있는 편입니다. 해막 병원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면서 이 지역에 메디컬 센터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약 1,900명의 의료진과 이스라엘 최고의 시설을 가진 이 병원에는 인근 지역을 통틀어 약 50만 명의 시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병원에 들어서자 미리 연락을 받은 담당의가 마중을 나왔다.

“이쪽입니다.”

그는 5층의 중환자실로 류영준과 차세대병원 의료진, 그리고 펠루스 일행을 안내해주었다.

펠루스 대통령의 경호팀과 케이캅스 직원들은 꽤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서 류영준은 10대 소년의 마른 몸뚱이를 발견했다.

류영준은 병상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힐끔 보았다.

“라그바!”

펠루스가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류영준도 미동도 없이 굳은 석상처럼 서있었다.

동기화 모드에 들어가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인공박동기를 꽂았다지만 아직 심장이 뛰고있는 게 기적이라 할 만한 상태였다.

백린이 산화하면서 발생한 가스, ‘오산화인 (Diphosphorus pentoxide)’이 폐로 들어간 후 폐포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혈액 속의 물 분자와 반응해 추가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등에는 백린이 직접 꽂혀서 많은 화상을 입었다.

쇼크로 쓰러졌을 것이다.

펠루스 대통령이 이 아이를 데려간 후에는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소년의 골수에서는 조혈모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림프구 수치가 떨어져서 감염에 취약한 아이다.

병원에서는 감마 글로블린을 처방해서 먹였다.

하지만 골수이식을 하지 못하는 이상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하고 감염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점에 폴리오마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침입 경로는 호흡기.

동기화모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본래 호흡기로 침입하는 바이러스야?’

류영준이 물었다.

-할 수는 있지만 드물어요. 바이러스 자체가 이동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오염된 음식을 통한 거죠.

‘근데 이 애는 호흡기 감염이란 말이지?’

-네. 그리고 유전적으로 폴리오마바이러스와 약간 다른데요. 지금 이 애 몸에 있는 바이러스는 기존의 폴리오마보다 감염성이 너무 좋습니다.

‘혹시 시뮬레이션 모드 쓸 수 있니?’

류영준이 물었다.

-으. 그거 피트니스 소모 좀 큰데.

‘이 병원 근처만 살짝 봐주면 안 돼?’

-좋아요. 대신 이틀 동안 동기화 모드는 쓰기 없기예요.

‘좋아.’

로잘린은 시뮬레이션 모드를 작동시켰다.

옛날에 에이젠에서 탄저균 무기를 찾아내던 때와 비슷하다.

다만 이번에 검색하는 것은 폴리오마바이러스.

이 병원 인근 1킬로미터 반경을 살핀다.

그리고 류영준은 충격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부 감염됐잖아…….'

바이러스 자체가 그리 유독한 게 아니라서 사고를 일으키진 않았지만, 감염성 자체는 상상 초월이다.

‘아까 블레셋이 가지고 있었던 폴리오마바이러스 DNA, 지금 이 일대에 감염된 거랑 같은 거지?’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

정황 증거밖에 없지만 너무 께름칙하다. 이 바이러스는 야생의 것이 아니다. 블레셋이 개발해서 이 지역에 풀었을 가능성이 있다. 감염 능력을 테스트하려고.

하지만 대체 왜?

공격성이 거의 없는 바이러스를 풀어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면역력 떨어진 불쌍한 팔레스타인 소년만 쓰러트렸을 뿐, 이곳을 지키는 이스라엘 군인들이나 경찰들은 모두 멀쩡…….

“아."

류영준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몸이 굳었다.

폴리오마바이러스는 감염성이 뛰어나고 건강한 성인에겐 질병을 거의 유발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도 그동안 무시해온 바이러스다.

하지만 블레셋한테는 보툴리눔톡신이 있다.

만약 그걸 이 바이러스에 실어서 퍼뜨린다면?

“류 박사님?”

펠루스가 류영준을 불렀다.

“네?”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의 의료진들 모두가 류영준만 쳐다보고 있었다.

“저……. 치료는 어떻게……."

“예정대로 뇌간 재생을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이 애 몸에 들어간 폴리오마바이러스를 제거해야겠어요. 골수 이식도 필요할 것 같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콘슨앤커슨에서 폴리오마바이러스의 감염 억제제를 옛날에 만들었을 겁니다. 수요가 거의 없으니 지금도 생산을 하긴 하는지 모르겠는데……."

“안티폴리마 말씀이십니까?”

펠루스가 물었다.

“맞아요.”

“지금 더 생산은 안 하는데, 극소량이지만 콘슨앤커슨에 재고가 있긴 있습니다. 제가 그걸 사려고 했지만 운송 문제로 못 샀던 거고요."

펠루스가 말했다.

류영준은 해막 병원의 담당의를 돌아보았다.

“그 약을 최대한 빨리 구매해주세요. 가급적 많이요.”

“근데 그 약이 영하 70도를 유지해야하는 거라……."

“운송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전하고는 상황이 다를 겁니다. 이제는 우리한테 콜드체인이 있으니까요.”

펠루스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콜드체인이 있다.

그 문장이 미묘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뜨거운 나라다.

총기가 뜨겁고 역사가 뜨겁다.

이글거리며 불타는 열기에 사람들이 매말라가는 곳이다.

모두가 몸과 마음에 화상을 입었다.

그 화상을 치유하기 위한 약품마저도 뜨거워서 들여오지 못하는 땅이다.

그곳에 처음으로 열기를 식힐 수 있는 길을 놓는다.

“……감사합니다.”

펠루스가 말했다.

콜드체인은 단순히 저온 운송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

“그리고 미안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어딜 좀 가봐야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

감상에서 깨어난 펠루스가 화들짝 놀랐다. 차세대 병원의 의료진과 해막 병원 의사들도 당황한 듯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역분화 줄기세포를 십만 개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죠. 투여하기 전엔 돌아올 겁니다.”

류영준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섰다.

“아니, 류 박사님! 어디 가세요?”

펠루스가 뒤따라오며 물었다.

“사우디에 다녀올 겁니다. 아샴을 만나러요.”

“아, 콜드체인 개발 때문에요?”

“아니요?”

류영준은 무슨 소릴 하느냐는 듯 쳐다보았다.

“그……그럼……."

“한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류영준은 경호팀장 김철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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