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6화. < 콜드체인 (8) > (112/301)

256화.  < 콜드체인 (8) >

국제 운송업체 아샴의 대표 압둘 아샴은 그의 둘째 형 아지즈 아샴을 만나고 있었다.

아지즈 아샴은 그 충격적인 에너지 혁명 뉴스의 디테일을 전해 주었다.

그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전력공사(Saudi ELectricity Company, SEC)의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소문에는 그게 콜드 체인 개발의 일환이었다더군.”

아지즈 아샴이 말했다.

“효율이 모든 면에서 너무 압도적이니까 도심부의 대규모 전력 공급에도 쓰게 되는 모양이지만, 그 태양 전지는 기본적으로 이동 가능하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야.”

“그걸 운송 차량이나 선박에 대규모로 설치해놓고 전력을 자체 생산하면서 이동한다는 겁니까?”

압둘 아샴이 물었다.

“충분히 가능해. 단순히 태양 전지만 설치하는 게 아니라 ESS까지 갖추면 낮밤, 기후의 구속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울걸.”

“ESS요?”

“에너지 저장 시스템 (Energy Storage System)말이야. 태양 전지를 그 자체로 ESS까지 호환되는 모듈로 추가 개발할 가능성도 있고.”

아지즈가 말했다.

“우주 산업이나 전기 자동차 산업에서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이 신기술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몰라.”

“콜드 체인 정도는 쉽게 하겠군요.”

“쉽게 하지.”

아지즈가 말했다.

“그러니까 압둘. 빨리 에이젠바이오에 연락해서 계약서를 써. 류영준 박사는 의학 외의 다른 사업들에 그리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 보험 회사, 에이젠생명인가 그것도 별도의 회사로 창립시킨 후에 경영에 손대지 않잖아. 배양육도 봐. 거의 다 류 박사가 개발했지만, 에이젠바이오가 직접 그 산업을 하지는 않아. 기존의 축산 농가들이 업종을 체인지하고 있고 에이젠바이오는 그걸 지원하면서 간접적으로 돈을 벌지.”

“흐음."

“아마 네가 류 박사를 찾아가서 아샴의 유통망에 태양 전지를 포함시켜서 콜드 체인을 개발하겠다고 하면 류 박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너한테 태양 전지를 팔아줄 거야.”

“정말 그러면 좋겠군요.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압둘이 말했다.

“근데 형님. 그 태양 전지가 우리한테 피해가 될 만한 부분은 없습니까?”

“글쎄.”

아지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나라의 전력 생산은 절반은 석유, 절반은 천연 가스야. 근데 석유는 자동차나 선박에서, 가스는 냉난방이나 산업 원료로 많이 쓰이잖니? 애초에 우리는 이 지하 자원을 좀 아끼기 위해서 앞으로는 원자력 발전 쪽을 진행할 예정이었어.”

아지즈가 말했다.

“사우디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나라야. 도시들이 점점 개발되면서 발전소도 더 많이 요구되고 있고. 석유나 가스가 풍부해도 닥치는 대로 써대면 안 된다는 게 아버지와 내 생각이었다. 아직 덜 발전해서 에이젠바이오 같은 기술력이 없는 우리 나라한테 석유는 가장 큰 무기가 아니냐? 석유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끼고, 전력 생산은 태양 에너지를 쓰는 거야. 그럼 우리 석유의 국제 경쟁력은 더 좋아질 테니까.”

아지즈가 말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사우디는 적도 지역의 광활한 평야를 가진 나라다. 우리는 태양 에너지도 풍부하지. 지하 자원만이 아니라 이제 공중 자원도 엄청난 부국이 되는 거야.”

아지즈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제가 운송업을 하니까 여쭙는 건데요.”

압둘 아샴이 말했다.

“태양 전지 시제품을 에이젠바이오가 세계 곳곳에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 물건은 누가 가지고 온 건가요? 에이젠바이오에서 직원이 직접 파견나와서 들고 온 겁니까?”

“아니야.”

아지즈가 손을 내저었다.

“에이젠바이오가 각 국가별, 지역별로 디스트리뷰터 (Distributer)를 썼어. 현지 유통사를 찾아서 운송을 맡긴 거야.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아지즈는 고개를 천장으로 들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아……어디더라……. 에이젠바이오에서 과학자가 한 명 파견됐고, 나도 잘 모르는 어떤 운송 업체에서 왔는데, 내가 거기 이름은 신경 써서 안 봐가지고. 잘 기억이 안 나네. 처음 듣는 회사였는데.”

“에이젠바이오가 그 사람들하고 계약할 가능성은 없겠죠?”

“모르지. 그러니 류 대표한테 빨리 가봐. 아랍 회사인 것 같더라. 아! 기억 났어. 카르푸라는 회사야.”

“카르푸?”

압둘 아샴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나라의 디스트리뷰터이니 우리 나라 회사일 거야. 그때 왔던 직원들도 거의 다 아랍인들이었고.”

"......."

압둘 아샴은 미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사우디는 왕정국가인 만큼 왕가의 인물들이 저마다 굵직굵직한 사업을 하나씩 쥐고 있다.

압둘 아샴이 관리하는 국제 운송 업체, 아샴보다 더 큰 운송업체는 사우디에 없다. 그리고 경쟁할 만한 다른 운송업체도 거의 없고, 몇 개의 업체들은 압둘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카르푸는 낯선 이름이다.

문제는 압둘 본인도 떠오르는 게 마땅찮은 그 회사를 에이젠바이오가 찾아내고 시제품 운송을 맡겼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과정을 아샴이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신속하고 조용히 처리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잘못된 건 없지만 여러모로 찝찝한 상황이다.

“맞아. 류 대표 말이야.”

아지즈가 말했다.

“이번 주에 예루살렘에 온다는 얘기가 있어.”

“예루살렘에요?”

압둘 아샴의 눈이 가늘어졌다.

“갑자기 거긴 왜……."

“글쎄. 모르지. 아무튼 한국까지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

“생각보다 허술하군요.”

CIA 요원 로버트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리야드 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폐 농장에서 중간 리포트를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오래 전에 잠깐 영업하다 해체하고 서류상으로 애매하게 남아있는 운송업체 카르푸를 신분 세탁용으로 사용했다.

에이젠바이오가 하는 이번 사업 때문은 아니고 예전에 사둔 것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CIA에서 일하고 있는 아랍계 미국인 요원들은 완전한 사우디 사람으로 위장해서 카르푸의 직원 행세를 하고 있었다.

“아샴은 어때?”

로버트가 물었다.

“오늘 압둘 아샴이 자기 형인 아지즈 아샴을 만났습니다. 아마 태양 전지에 대해 자세히 들었을 테니, 콜드체인을 떠올렸을 테고 그럼 오늘 중에 류 대표님한테 연락하지 않을까요?”

“류 대표님은 이번 주에 예루살렘에 오신다.”

로버트가 말했다.

“압둘 아샴하고 접촉할 테니 그때부터 우리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돼. 이쪽은 준비 다 끝났다고 전해드려.”

“알겠습니다.”

“GSC를 공격한 그 테러리스트를 이번 기회에 꼭 잡는다.”

***

류영준의 이스라엘 방문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이슈를 몰았다.

가서 무슨 계약을 한다거나, 무슨 사업을 한다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이미 무슨 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시끌벅적해졌다.

한국 정부에서는 류영준의 출국을 막으려고 했다.

-뇌사자 치료와 태양 전지 개발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다음 이스라엘로 간다고요?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나라인지 알고 가시는 겁니까?

외교부에서 직접 장관이 전화를 걸어 류영준을 말렸다.

“뭐 중동 전쟁의 씨앗 같은 나라니까 테러도 많고 위험하겠죠. 압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대체 그런 곳에 왜 가시는 겁니까? 무슨 사업 때문에요?

장관이 물었다.

-거기서 태양 전지에 얼마씩 투자라도 한답니까? 아니, 그리고 류 박사님. GSC를 털려고 했던 테러범들이 팔레스타인 군인들이라면서요? 그 사람들이 선진 의학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류 박사님이 방문하시는 이 기회를 가만 두고 보겠어요?"

“펠루스 대통령이 국빈 대우로 특급 보안을 약속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경호 팀을 따로 데려갈 거고요.”

-아니 그래도…….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가시는데요? 거기서 무슨 중요한 사업이 있습니까?

“임상시험을 합니다.”

-네?

“임상시험 하러 갑니다. 치료제의 투여법이 약간 바뀌는 게 있어서 의료진과 함께 직접 제가 봐야될 것 같거든요.”

-뭐 어디 국왕이라도 쓰러졌답니까?

“환자 개인 정보는 유출 못합니다.”

-..하.......

“염려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정 걱정되시면 우리 외교부에서도 절 보호해주세요.”

-당연한 얘길 하십니까? 대사관이랑 협력해서 진행할 겁니다. 부디 꼭 몸 조심해주십쇼. 그 지역에 내일 없이 사는 놈들 많습니다.......

장관이 말했다.

***

류영준은 이스라엘의 중부 구 로드의 텔아비브에 있는 벤구리온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자동 화기로 무장한 경찰들이 사방을 순찰하고 있었다.

류영준의 이스라엘 방문은 회사의 대외적인 공개 일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퍼진 소문들로 공항에는 꽤 많은 시민들이 몰려와있었다.

류영준을 보기 위해서다.

경찰이 안전을 이유로 그들을 통제하고 해체시키고 있었지만 간단치 않았다.

그들의 절반은 여러 질병을 가진 환자의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류영준에게 뭐라고 말 한 마디 붙여보기 전에 훨씬 더 큰 소란에 목소리가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이곳에는 류영준의 방문이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기회라 생각하는 사업가들도 많았던 것이다.

“류 대표님! 잠깐만 미팅 좀 합시다.”

“중동에 차세대 병원을 건설하려고 하는데……."

“중동 지역 태양 전지 단지 건설업을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희 회사가 여기서 메디컬 허브를 지을 생각을……."

사방에서 소리치며 몰려드는 이들을 경호팀에서 막았다.

“비서실 통해서 약속 잡으셔야 합니다. 물러나세요.”

“저희는 일정이 있습니다. 비켜주세요.”

“질서 유지해주십시오!”

경찰들이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왔다.

“어우……."

사방에서 아귀떼처럼 바글거리는 시민들을 보고 차세대 병원의 의사들은 약간 현기증을 느꼈다.

“누가 다칠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저쪽에서 경찰들과 함께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다가왔다.

“류 박사님. 이쪽입니다.”

펠루스 대통령의 비서실에서 나온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류영준과 차세대 병원의 의료진을 데리고 신속하게 공항 뒤쪽의 비상 대피 통로로 이동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전혀 닿지 않는 통제 구역이다.

공항에서부터 류영준의 행적을 감추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동 중에 비서실의 직원들이 류영준 일행에게 외투와 선글라스를 건넸다.

간단한 변장을 마친 후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는 리무진 한 대가 있었고, 그 안엔 사복 차림의 펠루스 대통령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이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류영준은 펠루스 대통령과 악수하고 리무진에 올라탔다.

그들은 벤시먼 도로를 따라 2시간을 달렸다.

“아드님이 뇌사 상태에 빠진 지는 오래 되었나요?”

“꽤 되었죠……."

펠루스 대통령이 힘없이 답했다.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고 생명유지장치를 해도 3주 내에 결국 심폐사가 올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잘 버텨주고 있어요. 두 달이 더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대통령님도 맘고생이 심했겠군요.”

“전에 블레셋에 대해 물어보셨던 것 말입니다.”

펠루스가 말했다.

“네."

“다 해결되었나요?”

“아니요. 아직입니다. 하지만 임상시험이 더 중요하죠.”

지잉!

김철권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류영준에게 전화를 넘겼다.

“아샴입니다.”

류영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류영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압둘 아샴은 어색한 발음으로 한국말 인사를 했다.

그 다음부터는 통역이 전화상으로 압둘의 말을 옮겨주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류 박사님. 저는 국제 운송업체 아샴의 대표인 압둘 아샴이라고 합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저희가 에이젠바이오의 태양 전지를 대량 구매하고 싶습니다. 운송용 차량이나 선박에 그걸 설치해서 콜드체인이나 배터리 유지에 사용할…….."

“안 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

“저희는 아샴 사와 거래할 생각이 없습니다. 콜드체인은 자체 개발해서 카르푸를 토대로 중동 전역에 공급망을 확보할 겁니다.”

-저, 자, 잠깐, 잠깐만요. 류 대표님? 카르푸는 직원이 20명도 안 되는 굉장히 작은 벤처입니다. 애초에 중동 유통업을 하는 회사라기엔 규모가 너무 작고 또…….."

“상관없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잠깐만요! 이럴 게 아니라 만나서 얘길 하시죠. 원하시는 게 뭡니까?

압둘 아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원하는 걸 말하면 주실 수 있습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

압둘 아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남자가 뭘 요구할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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