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4화. < 콜드체인 (6) > (110/301)

254화.  < 콜드체인 (6) >

엽록체의 광계에는 틸라코이드 막의 안팎에 루멘(Lumen)이라는 공간이 채워져있다.

클로로필 태양 전지는 이를 모방했다.

반투과성 막의 양쪽 면에 온갖 종류의 클로로필과 플라스토시아닌을 도포해서 빼곡하게 채우고, 그 바깥면에 루멘에 해당하는 전해질 용액층을 두었다. 그 다음에는 금속판을 붙여서 완전히 밀폐시킨다.

금속판에는 전극을 붙여서 전류의 흐름을 받아낼 수 있다.

클로로필로 만들어진 태양 전지다.

완성된 실험용 태양 전지는 가로세로 1m 면적에 두께는 3센티미터 정도, 그리고 무게는 2킬로그램이었다.

“저건 뭐예요?”

제7 연구소 실험실에 들어온 류영준이 바닥 한 쪽에 모아놓은 쓰레기를 보고 물었다.

“뭔 유리조각이 박살나서 굴러다녀? 비이커라도 깼어요?”

“아뇨.”

정혜림이 답했다.

“저건 불 들어오는지 본다고 순열 씨가 실험용 꼬마전구를 어디서 하나 사왔는데 떨어뜨려서 깬 거예요.”

“아깝네요. 새 건데.”

“새 거 아니에요. 망가졌거든요.”

정혜림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왜 망가져요?”

"떨어뜨려서 깨기 전에 태양 전지에 연결은 해봤거든요.”

"그런데요?”

"불이 들어오는 대신 퓨즈가 나갔어요.”

"......."

“과전류가 흘러서.”

“류 박사님 오셨군요!”

안쪽에서 김광명 교수가 싱글벙글하며 뛰어나왔다.

“아, 네. 완성됐다고 들었습니다. 시연 테스트한다기에 보러 왔죠.”

“하하하. 이건 진짜 대박 중에 대박입니다. 미세먼지 저감 장치보다 더 대박이에요. 진짜 전 세계가 경악할 겁니다. 에너지 혁명이에요. 에너지 혁명. 효율이 너무 압도적인데다 지속 가능하고 환경 공해마저 없으니까.”

너무 흥분한 김광명 교수는 류영준을 보자마자 이 실험용 태양 전지를 어떻게 하면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지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지금 전압이 좀 높은데, 전압이 높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태양 전지는 특성상 햇빛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돌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수도꼭지를 세게 틀 수 있다고 해도 물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조금만 틀고 아껴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느낌으로다가 양극에 저라면 활물질의 종류를 좀 바꾸고 변압 장치를 달아서 전압을 좀 조절하겠습니다.”

김광명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음극에서 플라스토시아닌으로 전자를 받아서 포집하고 있는데, 이게 베스트 전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플라스토시아닌의 크기가 꽤 큰 편이기 때문에 음극 쪽에 저장할 수 있는 전자의 양을 더 늘리려면 활물질을 더 작고 가벼운 걸로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왕이면 음극 활물질도 전자를 크기 대비 한 번에 많이 방출하는 걸로 쓰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예를 들면……."

“하하, 알겠습니다. 좀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죠. 우리 그건 천천히 살펴봅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일단 중간 단계에서 절반의 성공이라도 확인해야겠습니다. 약간 안달이 나는데요. 완성품 먼저 한번 봅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생명창조 팀원들과 함께 연구실 안쪽으로 이동했다. 실험실의 초저온 냉동고와 인큐베이터들 옆에 발코니가 있었다.

직원 휴게 공간이다.

클로로필 태양 전지는 그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시작합니다.”

천지명이 전압계를 연결했다.

전압계의 표시침이 빠르게 올라갔다. 끝에서 한번 좌우로 흔들리더니 우뚝 멈추었다.

310V.

“기존 태양 전지 셀 한 개의 전압이 0.5V 정도 됩니다.”

김광명 교수가 말했다.

“그걸 백 개 쯤 직, 병렬로 연결해서 1미터 제곱 태양 전지 모듈을 만들면 50 볼트 정도 되죠.”

“그럼 효율이 여섯 배 쯤 증가한 건가요?”

박동현이 물었다.

“더 높일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이거 시제품 단계니까요. 이거 잠재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기존의 발전소들을 모두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김광명은 너무 신이 나서 거의 자리에서 방방 뛰려고 했다.

“류 대표님께서 이걸로 이동식 초대형 냉동고를 만들어서 콜드 체인을 확보하는 데 쓴다고 하셨나요?”

“ 맞습니다.”

“그건 낌입니다. 진짜로요. 아주 간단히 해결될 거예요.”

김광명이 말했다.

“제가 그때 이후로 국제 유통업을 하는 가장 큰 손, 특히 아프리카 쪽에서 콜드체인 유지 쪽으로 많이 일을 하고 있는 유통업 회사를 하나 찾았는데 알려드릴까요? 그쪽에 연락해서 같이 사업을 하시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요?”

“네! 으아아! 이거 진짜 제가 거의 학위 한 이후로 평생에 걸쳐서 하고 싶었던 제 연구 숙원이거든요?”

김광명은 주먹을 꽉 쥐며 탄성을 내질렀다.

"......."

나이 50이 넘은 중년 교수가 어린애처럼 흥분했다.

‘마치 자기가 특허라도 따낸 것처럼 좋아하네.’

류영준은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 유통업체 어느 회사인지 알려주세요.”

“아샴이라는 회사입니다.”

“아샴?”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다.

“아샴……. 아샴……."

-차세대 병원에서 봤어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 좌편 주차장에 납품하러 들어와서 서있는 트럭들 중에 파란색 컨테이너 실은 차 있잖아요. 그 차에 영어로 아샴이라고 브랜드 마크가 붙어 있었죠.

“혹시 그 회사가 차세대 병원에도 뭘 납품하고 있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뭐, 워낙에 거대한 운송업체고 의약품 운송업도 많이 하니까 차세대 병원에도 들어갈 수 있죠.”

“……흐음. 그렇군요.”

“아마 사우디아라비아에 본사를 두고 있을 거예요.”

“한번 연락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광명 교수와 생명창조 팀이 태양 전지 모듈 개발을 더욱 가속하는 가운데, 류영준은 제1 연구소에 한 가지 지시 사항을 보냈다.

-라이프톡신과 웅담제약에서 사용하는 보툴리눔톡신 균주의 전체 DNA 서열 분석과 비교 매치.

처음에는 진단기기 부서에서 맡아서 수행하던 1억 명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가 전담 부서를 신설해서 그쪽으로 옮겨갔다.

유전체 해독 부서.

그리고 그곳에서 류영준이 보낸 지시사항도 처리하게 되었다.

“사람 유전체에 비하면 박테리아는 훨씬 자그마하니까. 이 정도는 금방 합니다.”

송유라 수석은 그렇게 답했다.

연구원들은 박테리아의 유전체를 소니케이터 (Sonicator)로 시어링 (shearing)한 후, NGS를 돌렸다.

같은 시각, 류영준은 양혜숙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정치인들이 너무 러프하게 담당부서를 나눠놨기 때문이야.”

그녀가 말했다.

“보툴리눔톡신 균주와 독소에 대해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 병예방법으로 관리하는데, 산업통상자원부는 생물무기금지법이랑 산업기술보호법으로 관리하고, 농림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으로 관리하려고 하거든. 그 와중에 보툴리눔톡신에서 생산된 의약품 제형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리하고 있고 약사법이 적용돼.”

“복잡하군요.”

“그래서 이런 법 체계를 좀 통일시키고, 균주를 발견하고 신고만 하면 되던 기존의 법안을 ‘허가제’로 바꾸는 식으로 내가 법안 개정을 발의할 거야.”

“허가제로요?”

“응. 이런 분야는 진입 장벽이 까다로워도 돼. 위험한 물질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과 나오면 알려줄게. 아, 근데 너 태양 전지 개발한다며?”

“그 소문이 국회까지 들어갔나요?”

“이 동네 소식 빨라. 게다가 반두일 교수님하고 네가 같이 정윤대에서 세미나 듣고 질의응답 시간에 태양 전지 개발한다고 막 떠들어댔다며? 당연히 내 귀엔 들어오지.”

“그랬군요.”

“얼마나 개발됐니?”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완성?”

“기존 효율을 아홉 배까지 개선했어요. 이제 석탄이나 원자력을 쓰던 발전소들을 전부 대체해도 될 정도로 강력합니다.”

“미친……."

“교수님 그런 말도 쓰세요?”

“네가 생물학에서만 생태계 파괴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 그쪽으로 넘어간 거니?”

“무슨 소리예요. 저는 계속 생물학자죠.”

류영준이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튼 쇼크가 꽤 있겠는데. 여러 종류의 산업들에 전반적으로 개편이 좀 있겠네. 한전에 알려줘야겠다.”

“교수님, 혹시 라이프톡신이랑 웅담제약 싸우는 거요.”

“응.”

“교수님 생각에는 어느 회사가 맞는 것 같으세요?”

“내가 거기 대표 둘 다 개인적으로 아는데, 거짓말 칠 사람들은 아니야. 둘 다.”

“그래요?”

“뭔가 문제가 있겠지.”

***

-라이프톡신의 보툴리누스 균과 웅담제약의 보툴리누스 균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둘은 DNA 서열상 87만 염기쌍이 서로 다릅니다. 유전자 37개에서 기능적인 차이가 있고요. 두 균주는 서로 완전히 다른 종으로 보입니다. FASTq 포맷으로 정리된 raw data와 samtools로 분석한 결과를 첨부해드립니다.

유전체 해독 부서에서 올라온 메일을 읽으면서 류영준은 약간 아리송한 기분이 되었다.

이 정도로 유전자들이 다르면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을 수준이다.

류영준은 결과 자료를 두 회사의 대표들에게 전송했다.

강한 충격을 받은 라이프톡신의 대표 홍명운은 데이터를 직접 보겠다고 에이젠바이오에 방문했다.

그리고 DNA 분석 결과를 읽으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정도면 믿을 수밖에 없겠군요.”

그가 말했다.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표현형도 달랐을 겁니다. 웅담제약의 보툴리누스는 포자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을 거고, 라이프톡신 균주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네.”

홍명운이 고개를 떨구었다.

“저희는 웅담제약이 훔쳐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웅담제약이 보툴리눔톡신 사업에 뛰어든 건 딱 4년 전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약 5년 전에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보관한 바이알 하나를 분실했습니다.”

“분실했다고요?”

“네……. CCTV는 모두 그 날짜의 기록만 소실돼있었고, 연구원들도 잘 몰랐어요. 그때 인사이동이 좀 잦았는데,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직원들은 웅담제약으로 갔죠.”

“……. 그래서 웅담제약이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훔쳐갔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그 균주는 부패한 통조림이나 소세지 같은 데서 발견할 수 있지만, 의약용으로 쓸 수 있는, 확인된 혈청형 A나 B 타입을 생산하는 균주를 찾아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웅담제약이 우리나라에서, 어디 경기도 시골의 마구간에서 흙을 뒤져다가 그걸 찾아냈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았죠.”

홍명운이 말했다.

“자체 균주를 확보하면 앨러간의 특허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식적으로 그렇게 안 하거든요. 너무 난이도가 높고 그야말로 유전 찾는다고 아무 땅이나 헤집는 느낌이거든요. 세상에 어떤 기업이 그만한 일에 자원 낭비를 마구 하겠습니까. 그것도 처음 도전하는 사업을 시작 단계에서?”

“……이해합니다.”

“근데 정말로 그렇게 했을 줄이야. 제가 완전 헛다리를 짚었군요.”

“분실한 바이알은 아직 못 찾은 거죠?”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띠링!

류영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영훈 이사가 보낸 메일이었다.

그리고 그 메일은 펠루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보낸 메일을 전달한 것이었다.

-블레셋에 대해서 좀 조사해봤습니다. 많은 정보를 찾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정보부의 조사에 따르면 블레셋에는 직원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데 자주 드나드는 젊은 백인 여자가 있습니다.

"......."

-닥터 레프?

로잘린이 물었다.

‘그럴 수 있겠네.’

류영준은 메일을 계속 읽었다.

-그리고 류 대표님께서 콜드체인을 개발하면서 블레셋의 보툴리눔톡신 유통 부분을 맡아서 사업을 함께 하실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입수한 정보 하나를 나눠드리겠습니다. 블레셋은 사우디 아프리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의약품 식품 운송업체인 ‘아샴’을 통해서 의약품을 세계 각지에 납품 중입니다.

류영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잠깐만……."

그가 말했다.

“잠깐만요. 홍 대표님.”

“네?”

“혹시 라이프톡신 사에 아샴이 물건 납품이나 운반을 위해서 옵니까?”

“거의 매일 오죠. 실험실이나 생산 공장, GMP 시설에서 쓰는 시약이 하루에 얼만데요. 게다가 거기서 생산한 보툴리눔톡신을 병원으로 운반도 해야하고요.”

“……. 블레셋 혹시 아시나요?”

“누가 모르겠습니까. 우리 업종의 가물치 같은 놈인데. 완전 기형아예요.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몇 달만에 균주를 개발하고 초고속 성장을……."

“블레셋이 창립된지 얼마나 됐는지 아십니까?”

“4년 정도 됐을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