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콜드체인 (3) >
“틸……뭐라고요?”
김광명 교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틸라코이드요.”
류영준이 대답했다.
“틸라코이드……."
“식물 잎이나 조류에게는 엽록체라는 세포 소기관이 있습니다. 그 기관이 녹색이라서 식물 잎이 녹색으로 보이죠. 엽록체의 내부에는 아주 작은 파이 같은 내부 구조물이 그물처럼 쌓여있는데 그걸 틸라코이드 (Thylakoid)라고 부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틸라코이드의 막에서는 햇빛을 받아들여서 에너지로 전환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식물과 조류는 그걸 24억 년 동안 진화시켜왔어요. 효율성으로 따지면 압도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습니다.”
“……. 하하.”
김광명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뭐라고 해야할 지……. 류 박사님. 식물 잎을 모방해서 만든 태양 전지를 ‘바이오 솔라 셀 (Bio Solar Cell)’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그쪽으로 시도를 했습니다. 저는 아니지만요.”
“근데 별로 성과를 얻지 못했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틸라코이드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세포 내에 있는 생체 물질의 일종인 그 엽록체로부터 전자를 얻어서 저장하고……. 이런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무기물질로 구성된 태양전지를 복잡한 유기물 덩어리인 엽록소랑 결합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김광명 교수가 말했다.
사회를 보던 교수 한 명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류 박사님. 실제로 식물 잎의 광합성 효율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저희 연구실이 한 때 그 분야를 파다 실패했거든요.”
“높지 않다고요?”
“식물 잎의 광합성 효율은 빛의 파장과 이산화탄소의 농도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보통 실험적으로 측정해보면 5 퍼센트 내외입니다. 나머지 에너지는 전부 반사되거나 열로 소모돼요.”
“엽록체를 그대로 쓰면 그렇겠죠.”
류영준이 말했다.
“엽록체는 본래 세균의 일종이었습니다. 식물 잎에 들어가기 전에는 생명체였죠. 엽록체 내부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전자와 생물대사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죠. 그리고 당연히 엽록체의 세포막과 식물 잎의 세포벽은 햇빛을 많이 반사하기 때문에 흡수 효율이 떨어질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신다는 건가요?”
“엽록체의 엽록소 내부에 있는 틸라코이드 막에서 전자전달을 일으키는 클로로필 분자들만 정제해서 쓰는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아무 식물체에서나 쓰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100 퍼센트에 근접한 효율을 만들려면 심해에서 특이한 조류(Algae)를 가져다가 거기서 클로로필을 가져와야 할 것 같군요."
"......."
교수들은 잠깐 말을 잃었다.
김광명이 물었다.
“일단 해봐야 알 것 같은데, 말씀하신 게 지금 기술로 가능하긴 한 건가요?”
“아마도요. 조류의 종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정제까지 조건 맞출 게 꽤 많겠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혹시 여기 계신 교수님들 중에 에이젠바이오랑 같이 해보실 분 계십니까?”
***
회사로 돌아온 류영준은 박주혁을 만났다.
“그래서 학교에 장학금 전달하러 가서 구두로 연구협력을 가계약 맺고 왔다고?”
박주혁이 물었다.
“계약까지도 아냐. 그냥 이렇게 같이 해보자, 연락 주겠다 얘기한 게 전부야.”
류영준이 말했다.
“와, 진짜 너는 일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장학금 주러 30분 정도 학교 들른다더니 두시간 후에 나와서는 전력 생산하는 태양 전지를 만들겠다고?”
“아무튼 나중에 그거 계약서 작성해줘. 그리고 혹시 김영훈 이사님한테 블레셋 관련해서 얘기 들어온 거 들은 거 없니?”
“처음 듣는데.”
“블레셋 사에서 연구개발 자금이 불법적으로 조달됐다거나 균주를 불법적으로 획득했다거나……."
“그런 건 없고, 네가 전에 보톨리눔 톡신이 국내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관련법 좀 알아봐달랬잖아?”
박주혁이 말했다.
“응. 뭐 좀 나왔어?”
“재밌는 걸 찾았지. 한국은 세계 최고의 보톡스 시장 중 하나야. 보톡스 최강국이라고. 국내에 보톡스 관련 회사가 몇 개나 될까?”
박주혁이 물었다.
“흐음. 해외엔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에 보톨리눔 톡신 관련 회사가 하나씩밖에 없는데……, 아, 이젠 이집트에도 하나 추가고. 아무튼 근데 국내에는 회사 개수가 서너 개는 될 걸.”
류영준이 말했다.
“내가 찾아봤는데 총 아홉 개더라고.”
“아홉 개?”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어. 국내에 보톨리눔 톡신을 제품화해서 판매 허가까지 받은 회사가 네 곳, 그리고 개발 허가를 받은 곳이 다섯 군데 있어.”
“엄청 많네. 외국 회사들 다 합쳐도 국내 회사들보다 적다니. 그 회사들 유통하고 개발하는 과정은 잘 관리되는 거야?”
“그 부분 말인데, 최근에 걔네들끼리 법적인 분쟁이 있었어.”
박주혁이 말했다.
“분쟁?”
“웅담제약이랑 라이프톡신이라는 회사 둘이 보톨리눔 톡신 갖고 법 공방을 했더라고.”
둘 다 옛날의 에이젠이나 에이바이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큰 중견 제약회사다.
둘 다 제약 파이프라인이 꽤 있어서 보톨리눔 톡신 하나에 목숨 걸어야 하는 입장은 아니다.
“꽤 큰 회사들인데. 특허 기술 같은 걸로 싸우는 거야?”
“국내에서 보톨리눔 톡신을 제일먼저 쓴 회사가 바로 라이프톡신이야. 웅담제약은 후발주자고. 근데 보톨리눔 톡신은 보톨리누스인가 뭔가 하는 균주로부터 정제하는 독극물이거든?”
“맞아.”
“근데 웅담제약이 그 균주를 어디서 얻었느냐를 갖고 싸우고 있어. 웅담제약 쪽에서는 자체적으로 분리해서 확보한 박테리아라고 주장하고, 라이프톡신에서는 쟤네가 우리 균주를 몰래 훔쳐간 거라고 주장……."
“아니 뭐 그딴 경우가 있어!”
류영준이 바락 소리를 쳤다.
“아씨 깜짝이야. 왜 갑자기 또 왜? 어느 부분이 발작 스위치야?”
박주혁이 물었다.
“라이프톡신이 맞든 웅담제약이 맞든 그건 알 바 아니고. 보톨리누스 같은 최악의 균주의 보관과 배양, 이동 루트를 지금 정부가 컨트롤 못한다는 거야?”
“그 부분이었군……."
“보톨리누스균 자체는 좀 흔한 편이긴 해. 멸균되지 않고 밀봉되어 부패한 통조림이나 소시지 같은 데서 찾을 수 있어. 국내에 얼마나 서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야생형 균주는 극미량이고 환경적인 조건 때문에 위험성도 그렇게 높지 않아. 근데 그걸 분리 동정해서 셀라인으로 확보하고 보톨리눔 톡신을 생산하는 용도로 배양액을 먹여서 대량으로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야.”
“흐음.”
“만약 웅담제약이 직접 자연에서 분리해서 만든 거라면 셀라인을 확보했을 때 질병관리본부에 보고서를 올렸을 텐데 법적 공방이 벌어진다는 건 대체……."
“그 보고서를 찾아봤는데 A4 한 장 짜리고 굉장히 간단하더라고. 그냥 확보했습니다, 끝. 이 정도라.”
“맙소사……."
류영준은 미간을 짚었다.
“새로운 맹독성 균주인데 NGS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같은 걸로 전체 유전자를 해독하거나 관리 계획과 폐기 계획서 같은 걸 써내거나 하지 않았다고?”
“해외에서 수입되는 생물체에 대해선 그런 게 꽤 까다로운데 국내에 있는 생물체들에 대해서는 규정이 매우 여유로운 모양이야.”
박주혁이 말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라이프톡신은 국내에 보톨리누스균을 분리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저건 거짓말이다, 우리 균주를 빼간 거다, 이렇게 비난하는 거고.”
“그것도 정신 나간 소리야. 그 말이 맞다면 본인들이 그 맹독성 균주를 관리 못해서 유출시켜놓은 건데 해결책을 내놓을 생각부터 해야지.”
“질병관리본부랑 미팅 잡아줘?”
“비서실에 얘기해서 잡을게. 네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알려줘서 고맙다. 이거 내가 블레셋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지이잉!
류영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영훈 이사였다.
“네, 이사님.”
-지금 이집트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펠루스 대통령하고는 전에 대표님이 지시하신 대로 얘기를 진행했습니다.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안 좋으시군요. 무슨 일 있습니까?
“음……. 아니요. 괜찮습니다.”
-블레셋하고 미팅은 어제 급하게 약속을 잡은 거라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습니다. 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회사라서 우리 측 투자를 거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생산이나 판촉이나 다 잘 되고 있으니까요.
“그럼 이렇게 전달해주세요.”
-뭐라고요?
“생산 말고 유통 쪽으로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보톨리눔 톡신은 영하 20도 이하에 보관해야 합니다. 우리가 콜드체인을 만들어주겠다고 해요.”
***
김영훈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이집트 카이로로 이동하는 차 안에 있었다.
전날 펠루스와 미팅하며 얘기했던 것들을 되새겼다.
“류 대표님께서 임상을 진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양한 인종 배경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요.”
김영훈이 펠루스에게 말했다.
“다만 문제가 좀 있습니다. 첫째, 아드님은 뇌사자인데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장거리 비행을 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이 문제를 해결해도 아직 현행 의료법상 사망자입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가난한 고아 소년의 시신을 국내로 들여가 차세대병원까지 운반하고 임상을 받게 하려면 대통령님과의 관계가 노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 가급적 밝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펠루스가 말했다.
“그래서 국내 의료진들이 이곳으로 올 겁니다.”
“정말입니까?”
“문제는 미구엘 교수님은 오실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분은 차세대병원의 직원이 아닙니다. 방문 교수시죠.”
“그 분이 안 오시면 뭐가 달라지나요?”
“콧속으로 마이크로 주사기를 넣어 뇌실하대에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시술이 불가능합니다. 그 정도 실력의 테크니션이 세계에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그럼……."
“뇌사 회복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기술입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후속 연구로 진행 중인 것들에는 보다 쉬운 ‘약물 전달 방법’도 있고요. 동의하신다면 그 중 한 가지 방법을 쓸 겁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참고로 대표님은 자신하셨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
펠루스는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최선이군요. 알겠습니다.”
동의서에 서명하는 펠루스를 보면서 김영훈이 물었다.
“혹시 바로 이웃 나라인 이집트에 블레셋이라는 회사, 들어보셨습니까?”
“블레셋이요?”
“네."
“제약 회사 아닙니까? 꽤 성장력이 좋아서 여기까지 소문이 돌더군요. 에이젠바이오가 일으킨 바람을 타고 이제 중동에도 제약 산업 같은 하이 테크의 과학이 자리 잡는다며……."
“그럼 혹시 이사야 프랭클린이라는 과학자도 들어보셨습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블레셋과 관련있는 건가요?”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하고 그들 사이에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그리고 그 테러 조직은 GSC를 공격한 전례가 있습니다. 우리 대표님도 그때 거기에 계셨고요.”
“팔레스타인 인민해방 전선……."
펠루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사이의 비극에서 태어난 그 이름을 다시 곱씹었다.
“이스라엘 정보부에서 한번 조사해볼까요?”
그가 물었다. 김영훈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이스라엘의 안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임상만 잘 진행되도록 부탁드립니다.”
펠루스는 김영훈과 악수를 나누었다.
‘묘하게 찝찝하다.’
김영훈의 촉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다.
블레셋이라는 회사는 어쩐지 뒤가 구리다.
김영훈은 카이로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