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9화. < 콜드체인 (1) > (105/301)

249화.  < 콜드체인 (1) >

“그래서 자기 발로 경찰서로 간 거야?”

박주혁이 물었다.

“그랬지.”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도 인생 참 기구하구먼.”

박주혁이 말했다.

“거대 제약사 임원으로 나쁜짓도 많이 하고 떵떵거리면서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밑에서 뭔 괴물 같은 놈 하나가 튀어 올라와서 걔 한테 얻어터지고. 갑자기 기절해버리고 뇌사에 빠지고, 그걸 또 치료받아서 낫고.”

“하지만 이제 다끝났어.”

“근데 김현택이 그렇게 쓰러진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지?”

"......."

류영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어떤 감염의 징후도 없어서 당시에 천벌이라고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게 기억나네."

박주혁이 말했다.

“그랬었지. 하지만 천벌 같은 거 아냐.”

“넌 뭐 아는 거 있냐?”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김현택이 쓰러진 이유는 제6 연구소의 생명창조 부서에 방문했다가 로잘린의 DNA 파편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기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류영준은 대답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박주혁이 말했다.

“뭐가?”

“김현택을 뇌사로 빠뜨린 원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잖아? 그런 뉴스 거의 못 봤어.”

박주혁이 말했다.

“뉴스에 안 나오는 거지. 의료계에서는 그거 가지고 한 때 갑론을박이 잔뜩 있었어.”

“그래?”

“제6 연구소에 들른 후에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심장과 폐와 뇌가 손상되어 쓰러진 과정에 대해 분석하는 리포트들이 잔뜩 올라왔었지.”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 거야?”

"으응......."

“허, 참. 생물학은 신비하구먼. 뇌사자를 부활시키는 시대에도 정체불명의 질병이 있다니.”

“그러니까 우리가 연구 빡세게 하는 거 아니냐.”

류영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 요즘도 연구 빡세게 하냐?”

박주혁이 물었다.

“당연하지.”

“웬 어린애를 어디서 데려와서 놀러다녔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어……."

“어디 숨겨놓은 딸이라도 있는 거 아냐? 솔직히 얘기해봐.”

“그런 거 아니야. 친척인데 돌아갔어.”

“너한테 내가 모르는 친척이 있어?”

“아무튼 있어 인마.”

박주혁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류영준을 흘겨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문 경영인 고용해서 경영 맡기고 연구만 한다던 건 어찌 됐어? 내가 경영자들 좀 찾아볼까?”

그가 물었다.

“아니야. 나 그거 김영훈 이사님한테 부탁할까 생각중이거든.”

“김 이사님?”

“사실 이미 그 분이 회사 경영에 상당 부분을 융통성 있게 처리하고 계셔. 내가 중국에 갔을 때 특히 활약이 대단했지. 타냐 맨커 대표랑 계약도 만들고. 지금도 아프리카까지 가서……."

띠링.

류영준의 휴대폰에 전화가 울렸다.

김영훈 이사였다.

“네, 김 이사님.”

-류 대표님. 저 지금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대통령 만나보고 뇌사 환자가 누군지도 듣고, 블레셋에 대해서도 좀 물어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저 오기 전에 처리하던 기안서 중에 국내 10개 대학에서 생명공학 및 줄기세포 학술 연구 지원하는 기안이 있는데, 그거 좀 처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무리를 못하고 와서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 끝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김 이사님 일 열심히 하시네.”

박주혁이 말했다.

“봤냐? 나한테 업무를 주실 정도야."

류영준이 말했다.

***

김영훈은 미리 지정된 호텔에서 대통령 펠루스를 만났다.

호텔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고, 대통령은 늦은 시각에 사복 경호팀과 함께 나타났다.

청바지와 자켓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꽤 은밀한 만남이라는 걸 김영훈은 바로 알아챘다.

“류 대표님을 직접 만나고 싶었는데 역시 좀 무리였나보군요.”

이스라엘의 대통령 펠루스가 말했다.

“류 대표님은 뇌사 임상 프로젝트 때문에 지금 정신없이 바쁩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아시겠지만, 아직 그 임상 시험은 완료되지 않았거든요. 사후 추적과 관리가 더 필요하고 임상시험에 대해 결과 보고를 작성해야합니다. 물론 제1 저자인 송지현 박사가 대부분 하겠지만 류 대표님이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검토하셔야 하니까요.”

“이해합니다.”

펠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의 가족 분이나 국가수반의 요인 중에 누가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까?”

김영훈이 물었다.

펠루스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저희가 자세히 알아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뇌사를 회복시키는 건 임상시험 단계이기 때문에 제품화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무한테나 제공할 수 없습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저는 이 사실을 류 대표님께만 보고할 것이고, 철저히 비밀을 유지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알겠습니다. 뇌사자는 제 아들입니다.”

펠루스가 답했다.

김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정 과학자인 류영준과 달리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다. 이런 자리에 오기 전에 상대방에 대해 사사로운 것들까지 조사를 한다.

그랬기 때문에 김영훈은 펠루스가 왜 이렇게 비밀스러운 자리를 가졌는지 이해했다.

“혼외자식인가요?”

김영훈이 물었다. 펠루스에게는 공식적으로 아들이 없다.

“입양한 아들입니다.”

“입양이요?”

김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입양한 아들이 있다는 얘기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서류상으로는 아닙니다. 아무도 제가 그 아이를 입양했다는 걸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애는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이죠.”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는 굉장히 골이 깊다.

무려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고, 그 자리에 아랍인들이 자리를 잡아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군사 협력을 얻기 위해 그들의 독립을 약속했는데, 동시에 유대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도시를 주어서 유대국가를 건설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선언을 동시에 한 것이다.

결국 유엔은 1947년 11월에 팔레스타인의 약 56%를 유대 국가에, 43%를 아랍 국가에 할당했다.

당연히 2,00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살아온 아랍인들은 그 분할안을 거부했지만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들어와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건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 일본인을 이주시켜서 독립국가를 선포시킨 것과 비슷한 꼴이다.

분노한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중동전쟁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이 연전연승을 했다. 이스라엘의 뒤에는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이제 팔레스타인 영토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해버렸다.

“그리고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을 만들어서 테러를 자행하고 있죠.”

펠루스가 말했다.

“김 이사님. GSC를 공격한 테러리스트들이 그 조직의 핵심 요인들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가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분노가 쌓여 있었겠죠."

"음......."

“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의 민간인들에게 대규모 폭격을 자행하는 걸 봤죠. 그때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아이 한 명을 발견하고 몰래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몰래 데리고 왔다고요?”

김영훈이 물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저는 유력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정치인이 그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를 입양한다는 건 인간애가 아니라 정치적인 액션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죠.”

"......."

펠루스는 꽤 지쳐보였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입양 수속을 마치고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아이가 어떤 관심을 받게 될지 짐작이 가시나요?”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공식적인 자식이 없는 것이군요.”

“저는 제 아들을 이 땅의 모든 문제들로부터 독립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아풀라 시에 숨겨서 키웠습니다.”

“알겠습니다. 왜 신원 노출에 민감한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럼 이제 의학적인 부분으로 넘어갈까요? 어쩌다 뇌사에 빠지게 된 겁니까?”

“진행성 다초점 백질뇌병증(PML)이라는 질병이었습니다.”

“어려운 이름이군요.”

“저도 처음 듣는 병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걸 외우게 될 줄도 몰랐죠.”

펠루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백질뇌병증은 사실 치료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병이었습니다. 폴리오마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일어나는 질병이라고 하는데, 증상을 잡아주는 대증요법도 잘 나와있고, 최근에는 그 바이러스의 감염 자체를 억제하는 약물도 개발됐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뇌사까지 가게 되었나요?”

“치료제들을 아풀라 시까지 배송할 수가 없었습니다.”

펠루스가 말했다.

“배송할 수가 없었다고요?”

“네."

펠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성 다초점 백질뇌병증은 좀 희귀한 질병입니다. 게다가 치료제가 콘슨앤커슨에서 개발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으니, 병원에 치료제 재고가 없었죠. 구매하려면 콘슨앤커슨에서 직접 사야 했습니다. 근데 약품이 꽤 불안정해서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영하 70도 이하에 보관해야 합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변성된다더군요.”

“영하 70도……."

“그 온도를 유지하면서 미국에서 이스라엘의 아풀라 시까지 사람 한 명 치료할 분량의 치료제를 들고 오는 것은 제조사 입장에서 너무 손해가 막대하답니다. 배송비가 너무 커서요.”

펠루스가 말했다.

“한 번에 대량으로 운반하면 배송비 대비 약값의 비중이 높아져서 어느 정도 단가를 맞출 수 있겠지만 질병이 희귀해서 어려웠고요. 극저온에 보관하는 다른 약품들 사이에 끼워서 같이 들여오는 방법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던 중에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죠.”

***

류영준은 정윤대에 방문했다. 장학금 및 연구비 지원 계약 때문이다.

김영훈 이사가 양혜숙, 반두일과 함께 추진하고 있었던 사업이다.

줄기세포를 다룰 줄 아는 생물학 테크니션과 의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에이젠바이오가 장학금과 연구비를 펀딩하기로 했다.

“또 뵙네요.”

류영준은 반두일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양혜숙 의원이 뇌사를 사망 기준에서 제외시키는 개정 법안을 추진한다더구나. 네 덕분이야”

반두일이 말했다.

“맞습니다. 이제 뇌사자를 부활시키는 방법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김현택한테 했던 것처럼 콧속으로 미세 바늘을 넣는 그 고난도의 시술을 상용화하긴 쉽지 않아.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쪽으로는 세계 1인자나 다름없는 의사, 미구엘조차도 시술을 할 때 줄기세포 일부가 역류하는 문제가 터졌었다.

당연히 상용화를 위해서는 좀 더 안정적이고 쉬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 기술은 제가 더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 장기를 생산하고, 줄기세포 역분화와 뇌신경 분화를 유도할 수 있는 과학자들, 의사들은 아무리 많이 고용해도 턱없이 모자라요. 인공 장기가 상용화되면서 차세대 병원은 지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몇년만 지나면 안정될 거야. 그쪽으로 학생들이 엄청나게 쏠리고 있으니까.”

반두일은 류영준과 함께 공과대학 건물 앞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거대한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었다.

“저게 뭐죠?”

류영준이 그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오늘 전기과에서 무슨 세미나를 한다는 것 같더라고.”

반두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야 자세히는 모르지.”

류영준은 현수막을 읽었다.

[대체 전력 세미나 : 태양광 에너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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