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8화. < 뇌사 (13) > (104/301)

248화.  < 뇌사 (13) >

“동의하신다고요?”

송지현이 물었다.

-네

김현택이 카드를 조합해서 말했다.

"......."

의료진 모두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기뻐했다.

동의서의 재확인에 김현택이 서명할 수 없었기에, 대리인으로 이미숙이 다시 서명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임상 시험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이 김현택의 옆에 가서 앉았다. 사무적이고 딱딱한 말투였다.

“환자분께서는 임상 위탁 기관의 책임자들과 복잡한 관계였습니다. 이전 일의 죄책감 같은 것 때문에 동의하시는 거라면 저는 이 동의서 받지 않을 겁니다. 치료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연구 목적과 기작을 완전히 이해하고 동의하셔야 합니다.”

-지… 독.......

김현택이 글자를 하나씩 만들었다.

“지독하다고요?”

-그래

“제가요?”

-그래

류영준은 피식 웃었다.

“그런 사람인 거 알고 계셨잖습니까. 이번 임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테니 편안히 누워서 쭉 듣기만 하십시오. 김 소장님 정도면 전부 쉽게 이해하실 테죠.”

류영준은 임상시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제4 뇌실하대 아래에 10만 개의 역분화 줄기세포를 주입했고 그걸 뇌신경으로 분화시키면서 도파민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을 이용해 뇌간을 회복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연수가 기능을 되찾았고 의식이 돌아왔지만 교뇌로 이어지는 운동신경을 회복시키기 위해 아세틸콜린을 추가 투여해서 신경세포의 분화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

“이 사진들은 비글에서 행해진 전임상 자료입니다.”

류영준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이제 됐…….

“다 들으세요.”

류영준이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말했다.

“이 비글들은 아세틸콜린을 주입해서 운동신경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실험체 중 80퍼센트가 달리기 등의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태이고 20퍼센트는 아직 재활치료 중이지만 걷기 정도는 가능합니다.”

류영준이 설명했다.

“하지만 소장님 몸에서도 전임상과 똑같이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세틸콜린은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에도 쓰이고 있는 약이고, 그동안 보고된 부작용은 식욕저하, 오심, 설사, 두통, 체중감소, 어지럼증, 불면증입니다. 발생하더라도 초기 4-6주가 지나면 저절로 소실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질환환자에서는 미주신경 자극으로 인해 서맥과 부정맥을 일으킬 수 있지만 김 소장님은 해당사항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류영준의 설명은 약 20분간 더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김현택한테 모든 걸 이해시킨 다음에서야 류영준은 임상 동의를 받았다.

-류 박사.

김현택이 불렀다.

“말씀하세요.”

-.......

김현택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류영준은 고개를 꾸뻑하며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아세틸콜린은 혈관 뇌 장벽 (Blood brain barrir)를 넘지 못한다. 정맥 투여해도 혈관에서 뇌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포스퍼티딜 콜린 (phosphatidy卜choline)의 형태로 넣죠.”

미구엘이 말했다.

“뇌로 아세틸콜린을 보낼 때 제일 많이 쓰는 방법이니까요.”

정형화된 치료법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시험은 훨씬 간단했다.

옛날 에이젠에서 생산하던 포스퍼티딜 콜린을 김현택의 정맥으로 투여했다.

뇌세포로 흡수된 다음 아세틸콜린으로 변할 것이다.

포스퍼티딜 콜린은 어떤 부작용 없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우려할 사항도 없었다.

“좀 어떠십니까?”

약물을 투여한 후 한 시간 째. 류영준이 물었다.

-괜찮아

김현택이 카드로 말했다.

“여기 홍채인식기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벨이랑 연결해서 소장님이 이걸 3초 이상 똑바로 쳐다보면 벨이 울립니다. 눈을 위로 치켜뜨면 돼요. 몸 상태가 안 좋다거나 누구 도움이 필요하면 이걸로 호출하세요.”

류영준은 홍채인식기를 김현택의 시야의 위쪽에 설치했다.

“저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가 나간 후에도 의료진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그들은 김현택의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 아침.

김현택의 입가의 근육이 움직였다.

얘길 듣고 병실에 도착한 류영준은 그 광경을 분석했다.

기적은 교뇌의 신경망을 타고 찾아왔다.

교뇌의 앞면에는 교뇌융기(pmtine protuberance)라고 불리는 융기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는 교뇌고랑(pmtine sulcus)이 있는데 이곳을 뇌기저동맥이 지나간다.

동맥의 미세혈관들로부터 전달된 혈액은 포스퍼티딜 콜린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교뇌에 자리잡은 줄기 세포들에 흡수된 다음 아세틸콜린의 형태로 변했다.

줄기세포의 교뇌 신경 분화가 촉진되었다. 이들은 교뇌의 앞면에서 전면을 향해 방출된다.

기존에 죽어있었던 세포 조직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모든 신경이 연결되진 않았으나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신경다발 가운데 하나가 목표물에 도달했다.

가사상태에 빠져있었던 안면신경에 연결된 것이다.

소노교뇌각(cerebellopontine angle)에서 안면신경과 속귀신경이 나온다. 그 중 안면신경이 회복된 것이다.

줄기세포들이 선전한 전장은 몇개더 있었다. 교뇌의 뒷면, 제4 뇌실의 바닥의 근위부.

이곳을 얼굴신경둔덕(facial colliculus)라고 부른다. 이 부분은 얼굴신경무릎과 외전신경핵의 표면 기준점이 된다.

이 역시 회복되었다.

“움직였어! 보셨어요? 입가가 움직이잖아요!”

이미숙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류영준은 김현택을 관찰하는 데 더욱 집중했다. 이제 시작이다. 엄청난 양의 신경들이 저기서부터 뻗어나와 사지 곳곳에 연결된다.

교뇌의 측면에서는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으로 이루어진 삼차신경이 방출되는데, 감각신경이 더 큰 부분을 형성한다.

이쪽의 회복성은 더 좋다. 왜냐하면 이미 김현택의 감각신경은 일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소장님. 조금만 버티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의 말은 정확했다.

다음 날 아침, 김현택의 오른쪽 검지가 움직인 것이다.

빅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과학자들과 의료진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병실에 방문하는 시점이 달랐는데. 그 덕에 서로 목격한 것들도 달랐다.

“손가락을 움직이더라니까.”

“손가락? 내가 갔을 때는 팔을 들 수 있었어.”

“말도 하시던데. 발음은 불분명하지만 발성 능력이 돌아오는 거야.”

저마다의 충격적인 보고들 속, 카펜티어가 밤 10시에 병실을 찾았을 때는 그야말로 이젠 이 마법이 마지막 단계까지 가있었다.

김현택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병상에서 내려왔다.

반 년 넘게 쓰지 않은 다리 근육과 신경은 힘이 전혀 없어서 똑바로 서는 게 불가능했다.

그는 아내의 부축을 받고 침대 한쪽 끝을 꽉 붙잡은 채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맙소사……."

카펜티어는 하마터면 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론적으로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메커니즘까지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보는 것은 충격이 달랐다.

“아지…… 우직이지 마라고 해는데……."

김현택이 어물거리는 발음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너무 일어서보고 싶어해서요. 담당의사분께는 비밀이에요.”

이미숙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말했다.

“여보, 이제 다시 누워있자. 응?”

"......."

김현택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초라한 기분이었다.

에이젠이라는 거대 제약사에서 CTO 후보까지 갔던 과거가 신기루 같았다.

지금은 서있는 것조차 힘든 김현택만이 남았다.

질병은 사람의 권력을 가리지 않는다. 착한 사람인지 악당인지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류영준의 과학도 똑같다. 그 역시 사람의 권력이나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천벌이나 사필귀정 같은 게 아니다. 질병이 인간을 파괴했고, 과학이 인간을 회복시켰을 뿐.

그게 전부다.

"......."

김현택은 천천히 침대로 올라갔다.

***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김현택은 휩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발음은 분명해졌고, 식사량이 늘었다.

“좀 어떠세요?”

류영준이 물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따가 송 박사도 올 겁니다. 오늘이 임상시험 마지막 날이에요. 이후에도 계속 건강 상태를 트랙킹 (Tracking) 하겠지만, 저희가 처음 목표했던 치료는 모두 달성했거든요.”

"......."

김현택은 주저하더니 아내한테 말했다.

“잠깐만 나 류 박사님하고 둘이 얘기하게 해줄래?”

“아? 그래, 알겠어. 난 그럼 여기 아래 카페 갔다올게.”

이미숙은 얼른 휴대폰과 지갑만 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류영준과 둘만 남게 된 후.

김현택이 말했다.

“…….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류 박사님은 무엇을 위해서 연구를 하십니까?”

“무엇을 위해서요?”

“네."

“……글쎄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때 그때 다릅니다. 어쩔 때는 누굴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어쩔 때는 저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어쩔 때는 대중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저는 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했습니다.”

김현택이 말했다.

"......."

“대중들은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복잡하고 따분한 거라고 생각하죠. 이과 괴짜들이나 하는 거라고 믿고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과학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택이 말했다.

“제게 있어 과학은 과학자의 것이었습니다.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연구윤리 같은 건 사실 필요도 없는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현택이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걸 위해서 셀리큐어를 없애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는 쓰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왜 바뀌셨나요?”

“글쎄……. 잘 모르겠군요. 줄기세포가 양심도 만들 줄 아는 건지.”

김현택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셀리큐어를 없앨 때보다 지금의 과학계는 더 활기차고 건강해진 느낌이라는 겁니다. 배운 게 이것뿐이라서 그런지, 학술지들을 보는데 보는 것마다 뇌사를 살려냈다며 흥분해 난리더군요. 시끌벅적한 게 보기 좋았습니다.”

“어쩌면 과학의 진짜 모습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죠. 이익관계나 목표의식 같은 걸 떠나서 궁금한 걸 살펴보고 못했던 걸 해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자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마치 아홉살 난 아이가 손 닿는 것마다 호기심이 미치는 것처럼요.”

류영준은 옆을 힐끔 쳐다보았다.

김현택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 로잘린이 그곳에 서있었다.

그녀는 류영준의 말에 피식 웃었다.

“류 박사님은 제가 밉지 않습니까?”

김현택이 물었다.

“인간적으로요?”

“네. 저는 류 박사님을 생명창조 부서로 좌천시켰던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셀리큐어를 없애기도 했고.”

"......."

류영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정말 화가 많이 났었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젠 다 용서했습니다.”

“……송지현 박사님은 어떻습니까?”

“그 분 입장은 모르겠네요. 하지만 김 소장님을 회복시키자고 처음 얘기한 게 송 박사님입니다. 가장 열정적이시기도 했고요."

찰칵.

문고리가 돌아갔다. 송지현이 안으로 들어왔다.

“양반은 못 되시는군요.”

류영준이 송지현을 반겨주며 말했다.

“뭐가요?”

송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침 송 박사님 얘길 하고 있었거든요.”

“흐음.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을 게요. 지금은 환자분의 회복 상태에 대해서 좀 들어야겠으니까요.”

“송 박사님."

김현택이 말했다.

“네."

“그리고 류 박사님.”

김현택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똑바로 섰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무릎이 천천히 구부러졌다. 똑바로 바닥에 붙었다. 그 위에 눈물 젖은 손바닥이 올라갔다.

고개가 숙여져 바닥을 향했다.

“죄송합니다.”

김현택이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분 모두.”

"......."

류영준은 그를 내려다보다 말했다.

“이제 그만……."

“저는 용서 못합니다.”

류영준이 일으켜세우려는데 송지현이 날카롭게 끊었다.

류영준은 깜짝 놀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셀리큐어를 묻어버리고 류 박사님이 다시 발굴하기까지 잃어버린 그 시간 동안 죽은 간암 환자가 몇인지 아십니까? 셀리큐어는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약이었습니다. 단순히 개발자인 저한테 미치는 피해가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아세요?”

"......."

“용서는 제가 하는 게 아니에요. 그 분들한테 구하셔야죠.”

“죄송합니다……."

“재활 치료를 좀 더 하고 퇴원하실 때가 되면 아마 경찰에서 소환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동안에도 몇 번 조사하러 오겠다는 걸 제가 임상시험을 이유로 막았습니다. 김 소장님이 직접 출두하시길 거라 믿어서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래도.”

송지현이 말했다.

“락트 인 신드롬의 치료를 받아주신 건 용감하셨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 네.”

김현택이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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