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 뇌사 (10) >
김성국 교수는 연락을 들었을 때 자신의 의학 지식이 모두 뒤집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깨어났다고?”
그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중환자실까지 한달음에 뛰어왔다.
그리고 김현택을 발견했을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는 생명유지장치를 완전히 제거했다.
콧줄로 투여된 음식을 소화했다. 호흡기 없이도 혼자서 호흡하고 있었고, 심장도 혼자서 제대로 뛰었다.
“뇌간이 작동하는 겁니까?”
김성국이 물었다.
“네. 이제 자가 호흡과 심박 유지가 됩니다.”
“이럴 수가……. 의식 각성이 어느 단계입니까? 혼수 (Coma)인가요? 아니면 식물인간인가요?”
“둘 다 아닙니다.”
“네?”
한 가지 더욱 놀라운 사실이 더 남아있었다.
“혼수 상태에서는 수면 주기가 없지만 이 환자한테는 있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은 EEG (Electroencephalogram , 뇌전도)가 활동하지 않지만 이 환자는 합니다.”
미구엘이 말했다.
“뇌전도 그래프가 활동을 한다고요?”
“네. 그러니까, 주위에서 말을 걸거나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끔 자극을 줬을 때 EEG 그래프에서 피크가 올라가는 식으로 반응을 하는 겁니다.”
미구엘이 EEG 파장 기록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지능력이 있습니까?”
“그 정도까지라고 하긴 어렵고요.”
미구엘이 고개를 저었다.
“MCS (Minimally Conscious State) 상태입니다.”
“최소의식상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이성적인 판단능력이나 사고력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주변에 대한 인지능력이 최소 수준으로 존재해요.”
“맙소사……."
김성국 교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미구엘이 말했다.
“이건 식물인간보다 더 많이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뇌사 다음 상태가 혼수, 그 다음이 식물인간이라면, 그보다 한 단계 더 회복된 상태가 MCS죠. 이 위는 문자 그대로 ‘깨어나는’ 것뿐입니다.”
“……그럼 법적인 위상도 많이 달라지겠군요.”
“네. 한국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의료법상 위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구엘이 말했다.
“식물인간에 대해서는 의료법이 보호자의 의견을 중요시해요. 연명 치료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고통스러운 가족들을 위해서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시 연명 치료를 중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MCS는 안 되는 겁니까?”
“MCS는 안 됩니다.”
미구엘이 말했다.
“MCS는 의료법이 ‘치료 대상’으로 인정해요. 병원이 의무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보호자가 연명치료 중지를 요구해서 그걸 병원이 받아들이면 처벌을 받습니다.”
"......."
김성국 교수는 김현택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심근손상과 폐동맥 고혈압이 있어서 심폐 동시 이식이 필요한 데다가, 뇌간을 포함해 전뇌 기능이 소실되어 일말의 뇌파도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다.
메스로 배를 가를 때도 시체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살아났다고?
심지어 식물인간도 아니고 최소의식상태까지 왔다고?
그 의식이, 그 인지력이 대체 어디서 돌아온 것이란 말인가?
“이게……. 이게 그럼……."
말을 더듬으며 무슨 얘길 하려던 김성국이 뚝 멈추었다. 문밖에서 소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제발요!
나이 든 중년 여성이 의료진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한번만 들어가게 해주세요. 임상 시험하기 전에는 자주 보게 해줬잖아요.
“보호자가 온 것 같군요.”
김성국 교수가 말했다.
그들은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는 세 명의 레지와 인턴의사들, 그리고 간호사 두 명과 김현택의 아내 이미숙이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이미숙이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동안 임상시험 중인 데다 큰 수술을 하고 그랬으니 면회가 많이 제한됐지만……. 이제 들어와서 한 번 보시죠."
김성국이 말했다.
이미숙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호흡기가 제거된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보!”
그녀는 김현택의 옆으로 달려가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EGG 그래프가 튀어 올랐다.
아내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그 말을 알아듣는다거나 생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각성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김현택의 뇌가 살아났다는 사실이다. 익숙한 자극에 대해 반응할 정도로.
"......."
김성국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김현택은 살아있다.
원래 살아있었는지, 아니면 죽은 걸 살려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현택은 이제 살아있는 게 명확하다.
류영준의 의학은 대체 어떤 수준까지 올라가는 걸까?
에이바이오를 창설한 후 처음 1년 동안 알츠하이머나 녹내장, 췌장암 같은 거대한 불치병들을 척척 때려잡더니, 2년째가 되는 지금 뇌사를 처리했다.
***
류영준은 오후에 병원에 도착했다. 임상시험 담당의인 미구엘 교수와 심폐이식 담당의인 김성국 교수를 포함해 십여 명의 의료진이 모였다.
카펜티어와 송지현, 셀리제너의 수석 연구원들과 생명창조 팀원들도 함께다.
병실이 북적거렸다.
이미숙은 자신을 내보낼까봐 과학자들의 눈치를 봤지만 그들은 다들 김현택 얘길 하느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임상시험은 성공했습니다. 뇌간의 회복이 분명하고 자가 호흡과 심박 유지가 됩니다.”
카펜티어가 류영준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송 박사님은 이제 의료계에 길이 남을 논문에 제 1저자가 되겠네요. 축하드립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하……. 저 말고 고생하신 분이 너무 많은데요……."
송지현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제 1저자는 송 박사님이돼야 합니다. 뇌간 회복의 키가 되는 뇌실하대 줄기세포 주입법을 떠올리고 기초 실험을 수행하셨으니까요. 그 뒤에 생명창조 팀원들부터 차례로 들어가서 의료진까지 저자만 백 명이 훌쩍 넘겠네요.”
“워낙에 큰 작업이었으니 그 쯤 될 법하죠. 원래 블랙홀 촬영 같은 초거대 논문 하나씩 나오면 저자가 백 명, 이백 명 쯤 되잖습니까. 이건 그만한 일이죠.”
카펜티어가 말했다.
“교신저자도 저 빼고 넷은 될 거예요. 일단 프로젝트 리더만 해도 카펜티어 박사님과 미구엘 교수님, 심폐이식을 진행해준 집도의 교수님 두 분까지 계시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전임상 때처럼 여기서 더 회복될까요?”
미구엘이 물었다.
류영준은 동기화 모드로 김현택을 살펴보았다.
“최소의식상태라고 하셨죠?”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게 보입니다.”
류영준은 김현택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혼수 상태 (Coma), 반혼수상태 (Semicoma), 최소의식상태 (MCS),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PVS), 락트인신드롬 (Locked in syndrome) 모두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의학적으론 다른 상태다.
옛날에는 이들을 잘 구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미미한 차이들을 조금씩 찾아내는 중이다.
실제로 기존에 식물인간으로 판정된 사람들을 데려다가 뇌파 검사를 해보면 그 중 40퍼센트 정도는 최소의식이 존재한다는 논문도 최근에 나오고 있다.
“중증 의식장애 환자들의 회복에는 뇌병변의 위치와 원인이 중요하다는 논문을 읽은 적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미구엘 교수님께서 보시기엔 어떤가요?”
“류 박사님 말대로 병변의 위치와 원인에 따라서 회복되기도 하고 악회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단 MCS 상태까지 오면 회복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편이고, 이 환자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지금 ‘중증 의식장애 상태로 회복된’ 겁니다.”
미구엘이 말했다.
“그전에는 뇌사였으니까요. 뇌실하대로 투여된 줄기세포가 더 뻗어나가며 신경을 회복시킨다면 더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제 생각에는 이미 MCS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일 것 같습니다.”
“네?”
미구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전임상의 fMRI를 보면 의심스러운 게 하나 있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fMRI를 켜볼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
fMRI는 뇌혈류를 촬영하는 영상의학장비다. 뇌에서 특정 뉴런이 작동하면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게 되고, 자연스레 그 위치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혈액이 몰려든다.
그걸 측정하면 뇌의 활성부위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fMRI가 세팅된 후, 류영준은 김현택에게 다가가서 귓가에 대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김현택.”
fMRI에서 촬영된 뇌에 혈류 흐름이 나타났다. 대뇌의 좌우에 있는 청각피질이 붉게 물들었다.
EEG가 한번 치솟았다.
다시 봐도 신기하다. 소리에 반응한다는 것, 청각 신호의 처리 중추인 청각 피질이 작동한다는 것.
김현택의 인지력은 살아있다.
두 신경신호는 잠깐 시간이 지나자 천천히 가라앉아서 휴식 상태로 돌아갔다.
“에이바이오.”
류영준이 또 하나의 단어를 던졌다.
이번에도 아까와 비슷한 반응이다.
“원병대세차.”
류영준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의사들도 뭔 소리를 하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차세대병원을 거꾸로 한 겁니까?”
박동현이 황당한 듯 정혜림과 수군거렸다.
그 와중에 그 단어에 경악한 사람이 둘 있었는데, 바로 카펜티어와 미구엘 교수였다.
“설마……."
fMRI에 청신호 반응이 일어났다.
아까와 똑같다. 청각피질이 반응하고 EEG가 솟구쳤다.
그러나 이번에 EEG는 바로 뚝 떨어지는 대신 지저분한 피크를 그리면서 몇 초 동안 유지되었다.
fMRI에서는 청각피질 외에도 해마 (Hippocampus)와 시상 (Thalamus), 그리고 좌뇌의 브로카 (Broca) 영역과 베르니케 (Wernicke) 영역에 혈류가 돌았다.
“예상대로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뭐가 달라진 겁니까?”
박동현이 천지명에게 물었다.
“류 박사님이 일부러 낯선 단어를 들려준 겁니다.”
카펜티어가 설명했다.
“MCS 환자는 최소 인지능력만 있기 때문에 소리 자체엔 반응하지만 그 소리의 의미를 분석하는 사고능력은 없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래서 익숙한 단어를 들려줄 때나 낯선 단어를 들려줄 때나 똑같이 반응하죠. 하지만 일반인의 뇌를 찍으면 결과가 달라져요. 후자일 때는 그 낯선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위들이 활성화됩니다.”
"......."
순간 병실 내엔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이 돌았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이미숙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그럼……. 그럼 우리 남편이 지금 의식이 있다는 소린가요?”
“일반인 수준은 아닐 겁니다. 의식이라는 게 수많은 단계로 나누어져있는 것이거든요. 지금은 최소 인지력에서 딱 한 걸음 더 나아간 상탭니다. 하지만 수의 운동은 회복되지 않아서 소리를 내거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어요.”
류영준이 설명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의식 수준만 미약하게 회복됐다 생각하면 됩니다. 술에 아주 만취한 상태나 약에 취해있으면 사고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문맥이 다 어긋나고 문장 이해도 못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군요."
“의료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상태입니다.”
미구엘이 말했다.
“락트인신드롬하고 비슷하지만 의식 수준이 그보다는 낮고……."
“내일 쯤에는 락트인신드롬과 비슷한 단계가 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카펜티어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눈을 뜰 겁니다.”
류영준이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