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 뇌사 (8) >
메스가 가슴을 갈랐다.
양측 폐의 독립된 환기를 위한 2중 내관기관을 삽관한다.
전폐절제수술에서는 횡경막 신경과 희귀성 인후신경의 손상에 유의해야 한다.
김성국 교수는 주의를 기울여 하부 폐인대를 절단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도 여러모로 아리송한 기분이다.
의학법적으로도 사망자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죽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개흉한다기보다, 학생들을 데리고 카데바 실습을 하는 느낌이다.
‘이게 정말 살아날 수 있을까?’
김성국 교수는 폐환기를 유지하면서 전폐 절제를 진행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만들어준 이식용 인공 폐를 꺼냈다. 드라이아이스에 담긴 채 보관해왔던 이 물건은 아직까지 신선도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스티로폼 박스에서 꺼낸 다음부턴 작업 속도를 높여야 한다.
흉강 후방에 공급폐를 위치시키고 인터서셉션 (Intussusception) 방법으로 기관지의 문합을 진행했다.
이제 심장을 이식할 차례다.
대동맥과 상대정막, 하대정맥에 관을 꽂아 인공 심폐기에 연결시켰다.
같은 동, 정맥을 차단해서 심장으로 피가 공급되지 않도록 만든 다음, 상대정맥, 대동맥, 폐동맥, 하대정맥 순서로 잘라 심장을 적출했다.
좌심방은 남겨두었다.
본 수술법이 좌심방 (left atrium)을 문합하면서 인공 심장을 삽입하는 동소심장이식법 (Orthotopic heart transplantation.)이기 때문이다.
에이젠바이오의 심장을 같은 자리에 위치시킨 다음 각 혈관을 다시 열었다.
이 고난도의 수술은 무려 8시간을 소요시켰다.
심폐 동시 이식이라는 작업은 숙련된 의사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시간 동안 수술을 지켜보는 것도 힘든데, 수술을 직접 진행하는 의료진의 스트레스와 체력 소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술이 끝으로 갈수록 모두가 점점 지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류영준의 눈에는 이 엄청난 작업들이 훨씬 미세한 단위에서도 관찰되었다.
‘성공했다.’
-성공했나요?
류영준의 생각을 읽은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의사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식된 우심방의 동방 결절이 부활한 뇌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혈관을 여는 순간 정맥으로 들어온 에피네프린이 결절에 박동 명령을 내린 것이다.
“수술 끝났습니다.”
김성국 교수가 말했다.
“인튜베이션 (airway intubation, 기도 삽관)이랑 벤틸레이터 (Ventilator, 인공호흡기)는 계속 유지하고 IABP (Intraaortic balloon pump, 대동맥 내 풍선펌프) 삽입돼있는데 그건 내일 제거합시다.”
교수의 목소리에 온갖 피로감이 다 묻어났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김성국 교수와 의료진에게 류영준이 말했다.
“뭐, 괜찮습니다.”
김성국이 말했다.
“근데 류 박사님,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듭니다.”
“그래요?”
“일단 최선을 다 하긴 했지만……. 의사로서 제가 사람을 치료할 때랑 카데바를 해부할 때랑 손에 닿는 느낌이 다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환자는……. 후자고요.”
김성국이 말했다.
“물론 이게 의학적인 근거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제 경험적인 감을 얘기하는 겁니다. 만약 실패하면 류 박사님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좀 있을 것 같은데,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류영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말했다.
“호흡기는 언제 제거하실 건가요?”
“그건 류 대표님이 결정하셔야 합니다. 나머지는 이틀 이내에 제거할 겁니다. 하지만 호흡기는 뇌사자의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단계이니까요.”
“그럼 호흡기도 이틀째에 제거합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하고 의료진들 오늘 고생한 거, 확실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보상이요?”
김성국 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류 박사님, 저는 차세대 병원 측에서 월급 받는 의사고 임상 시험에 대한 보수를 따로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금전적인 것 말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앞으로 6일 후, 다음 주 수요일이 되면 저 환자가 의식도 찾을 겁니다."
***
차세대 병원의 병원장 이인주 교수는 원장실에 맡겨진 손님 때문에 약간 골치를 앓고 있었다.
류영준이 맡기고 간 아이다.
“제 친척인데 지금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요. 오늘 수술 끝날 때까지만 여기에 있게 해도 될까요?”
이인주는 애 보는 데 별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류영준이었다.
류영준이 누구인가? 이 차세대 병원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경영에 손을 대거나 병원의 주식을 직접 소유하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병원의 설립이 공익 재단의 후원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재단의 소유자가 바로 제약회사 에이젠바이오다.
그리고 류영준은 에이젠바이오의 오너이니, 몇 다리 건너면 차세대 병원을 소유하는 셈이 된다.
게다가 에이젠바이오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신기술들이 가장 먼저 적용되는 차세대 병원이 바로 이곳이다.
그걸 보고 감탄한 세계 각지의 명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수련을 거치면서 지식을 나눔하고 있다.
결국 신기술과 최신 장비와 백전노장 의대 교수들로 완전 무장한 이 병원은 엄청난 속도로 명성을 높였다.
이제는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리네마네 하는 상황이니 이인주는 사업 파트너로서 류영준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네! 그럼요. 우리 손주랑 나이 비슷해 보이는군요. 이름이 뭐니?”
“로잘린.”
“류 박사님 일하고 오실 때까지 여기서 할아버지랑 같이 있자?”
이인주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예쁘장한 아이는 10분 만에 화분을 하나 깼고 엄청난 주의 산만을 보였다.
거의 방 안의 모든 사물을 직접 만져보고 싶어했다. 심지어 이인주의 전자 담배와 라이터에까지 손을 댔다.
“잠깐만 얌전히 있으면 안 되겠니……?”
라이터를 뺏으면서 이인주가 부탁했다.
“아까 화분은 무게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수한 것뿐입니다. 이젠 그렇게 기물을 파손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도 9살의 언어능력이 아니다.
류영준이 미리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온갖 과학적인 지식을 기관총처럼 쏴대진 않았지만 그게 한계였다.
로잘린한테는 9살 어린이의 미숙함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류영준 박사의 친척이라더니 대체 어디서 이런 이상한 괴짜를 데리고 온 거지.’
원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처럼 산만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업무를 계속 해야만 했다.
똑똑!
누군가 원장실 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Hello, doctor.”
턱수염을 기른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가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Hello, It's been a long time. 야세르 이인주는 반가운 듯 맞이해주었다.
“저희 회사가 이렇게 컸지만 여전히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몇 안 되어서 또 제가 왔습니다.”
남자가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야세르.
이집트의 제약 회사 블레셋의 영업 사원 겸 연구원이다.
차세대병원이 창설된 이후에 종종 와서 몇 개의 의약품의 납품 계약을 하던 사람이다.
그는 한국어는 못했지만 이인주가 영어를 잘 하니 상관없었다.
“거의 반 년만인가요? 근데 손님이 있었군요.”
야세르는 로잘린을 힐끔 살피면서 말했다.
“참 귀엽네요. 원장님 손녀딸입니까?”
“아니요, 류 박사님의 친척입니다. 잠깐 저한테 맡겨두셨죠.”
“친척이요?”
야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로잘린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납품 계약하러 오신 거죠?”
원장이 물었다.
“네. 맟습니다."
야세르가 소파로 이동해서 앉았다.
“저희 회사가 납품하던 보톨리눔톡신 A형 메디보토의 계약을 갱신할 때가 되었죠.”
야세르는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원장이 서류를 읽으면서 물었다.
“카이로에서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거의 18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야세르가 답했다.
“고생 많이 하셨네요. 에이젠바이오가 메디보토도 생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원장이 서류를 읽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러지 마십쇼. 그럼 저희 같은 조그만 제약사들은 뭐 해먹고 살겠습니까.”
“뭐 그런 겸손한 말씀을.”
이인주 원장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미국 제약사 앨래건이 보톨리눔톡신 시장의 90%를 과점하고 있었던 게 불과 4년 전입니다. 근데 이집트에서 메디보토가 생산되면서 지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잖습니까. 메디보토가 그 점유율을 다 빼앗아가서요.”
“운이 좋았습니다.”
야세르가 웃으며 말했다.
“A, B형 보톨리눔톡신을 이 정도 순도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들은 잘 없죠.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아웃풋이라면 기술력이 상당한 모양인데 이젠 다른 사업을 하셔도 야세르 씨의 회사……. 그……."
“블레셋.”
“네, 맞아요. 하하. 나이가 들어서 요즘은 자꾸 깜빡깜빡한다니까요. 블레셋 사도 이제 뭘 하든 다 성공할 겁니다. 제2의 에이젠바이오처럼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야세르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인주는 안경을 들어 이마에 걸어놓고 계약서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야세르는 그동안 로잘린을 쳐다보았다.
“What's your name?"
야세르가 물었다.
"......."
“아, 영어를 못하나?”
로잘린이 답하지 않자 야세르가 민망한 듯 말했다.
이인주 원장이 끼어들었다.
“그런가보네요. 한국어는 아주 유창해요. 영어 쓰는 건 저도 못 봤네요. 미국에서 왔다고 해서 저도 영어 잘 할 줄 알았는데.”
이인주 원장이 말했다.
“미국에서 왔다고요?”
“네. 그렇대요. 보세요, 머리도 빨간색이잖습니까. 게다가 이름도 영어 이름이에요. 로잘린인가?”
“로잘린?”
야세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왜 그러십니까?”
“아……. 하하, 아닙니다……."
“흔한 이름이죠.”
“네……. 그렇죠.”
“아무튼 뭐 미국 출생이라 해도 거기서 한국어만 배웠을 수도 있으니, 영어를 못할 수도 있죠. 제 조카도 대학생 때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한인 타운에만 살다가 와서 영어는 하나도 안 늘고 돈만 날렸다니까요. 연수비도 내가 좀 보태줬는데, 괘씸하게.”
원장이 말했다.
“계약서 이제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
야세르는 로잘린을 가만히 쳐다보다 물었다.
“류 박사님 친척이면 저 애도 류 박사님처럼 똑똑하려나요?”
야세르가 물었다.
“좀 별나긴 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주의력 결핍 장애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 화분 박살난 거 얘 작품이잖아요. 하하.”
똑똑.
원장실 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이인주가 말했다.
“수술 다 끝나고 왔습니다. 애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류영준이 안으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손님이 와 계셨네요.”
“이집트의 블레셋이라는 제약회사 직원분입니다.”
이인주가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류 박사님.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야세르는 벌떡 일어나서 류영준에게 최대한 공손한 모양으로 손을 내밀었다.
류영준은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류영준입니다.”
“이젠 뇌사자도 살려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진행중인 연구입니다. 이집트까지 그게 소문이 났나요?”
류영준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업계에선 다들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죠. 그리고……. 저는 류 박사님의 팬이거든요.”
야세르가 말했다.
“류 박사님 팬클럽도 가입해있잖아요. 그런 데는 종종 사생활에 대한 것들도 올라오긴 하는데, 미국 사는 친척 얘긴 처음 듣는군요."
"......."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먼 친척입니다. 저도 연락 안 한지 꽤 됐죠. 곧 미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나저나 메디보토를 납품하시는 회사가 그쪽이었군요.”
류영준이 테이블에 있는 서류를 힐끔 보고 말했다. 이인주가 보관용으로 가진 것이다.
“맞습니다. 저희 회사의 주력 상품이죠.”
“보톨리눔톡신을 가공해서 만든 약이죠. 맞나요?”
“네. A형입니다.”
야세르가 답했다.
“H형 보톨리눔 톡신은 현재 인류에게 알려진 독소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물질입니다. 20억 분의 1그램만 있어도 성인 남자를 죽일 수 있죠.”
류영준이 말했다.
“A형이나 B형은 독성이 보다 낮은 편이고 신경마비 의약제로 쓰이지만, 그래도 다루는 데 주의를 기울이셔야겠네요."
"......."
야세르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 제가 지금 제품을 하나 볼 수 있습니까?”
류영준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