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 뇌사 (7) > (98/301)

242화.  < 뇌사 (7) >

“실험실을?”

류영준이 물었다.

“네."

“……. 동물원이나 놀이공원 이런 걸 얘기할 줄 알았는데?”

“확실히 거기도 가고 싶긴 해요. 하지만 저는 실험실에 가서 직접 파이펫을 쥐고 세포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동안 당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실험을 해봤으니까요.”

“내 손의 통제권을 얻어서 해본 적도 있잖아?”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조이패드로 로봇을 조종하는 느낌이지, 실제로 내 몸을 컨트롤한다는 느낌은 아니거든요.”

로잘린이 말했다.

“옛날에 당신이 차 사고를 당해서 뻗었을 때도 저는 당신의 몸을 컨트롤했었지만 별로 감동은 없었죠.”

“그렇구나."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험실에 가서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뭔데?”

“어째서 생명창조가 당신 손에서만 이루어졌는가 하는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엘시나 닥터 레프는 실패했다고 했잖아요? 저는 그게 당신의 강박적인 윤리 관념하고 관련돼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근에 엘시도 비슷한 얘길 했죠.”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에요. 솔직히 생명 윤리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심지어 김현택 콧 속에 핀을 찌르는 대신 저를 포기하려고까지 했어요.”

“포기한거 아니라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던 거였지.”

류영준이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저는 당신이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의 도덕, 특히 생명 윤리에 대한 집착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에요. 확실히 인간 일반을 한참 상회한다고요. 만약 그게 어떤 유전학적인 요인과 관련되어 있고, 그게 제 탄생을 유도할 수 있는 요인이라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죠.”

“잠깐만.”

류영준이 정리했다.

“유전학적 요인이라니? 그러니까 네 말은, 사람 몸에 ‘도덕 유전자’ 같은 게 존재한다는 거야?”

“네."

인간의 몸에 도덕성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생물학계의 어떤 연구 그룹들은 그걸 꾸준히 연구해왔다. 다양한 종교 집단의 수도승이나 존경 받는 인격적인 스승들을 데리고 유전자를 분석해가면서 일반인과 차이가 나는 부분을 발굴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시도들은 가설 단계에서부터 틀렸다는 비판을 많이 듣게 된다.

“도덕은 유전적인 게 아냐. 사회학적인 거야.”

류영준이 말했다.

“예를 들어서 인도의 어떤 마을에서는 과부가 물고기를 먹는 게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대. 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아니잖아. 이런 건 지역별, 시대별 문화 특성을 반영하는 거야.”

“그런 디테일까지 유전자가 결정하진 않죠.”

로잘린이 답했다.

“하지만 도덕적인 위기의 순간에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학습된 윤리 규범을 선택하는 성질은 유전적인 요인에 많이 기대고 있어요.”

“그래?”

“왜냐면 인간의 성격의 대부분을 조형하는 게 유전자니까요.”

"......."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 (Williams-Beuren Syndrome) 이라는 질병이 있습니다.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전혀 낯을 가리지 않아요. 엄청나게 사교성이 좋죠. 비록 지능이 약간 떨어지고 건강과 외모에 장애가 생기는 문제가 있지만.”

로잘린이 말했다.

“이 질병의 발생원인은 염색체 7번의 돌연변이에 존재합니다.”

"음......."

“그리고 전대상피질에서 SST 억제성 뉴런이 GABA(Gamma-aminobutyric acid)를 얼마나 분비하느냐에 따라서 공감 능력이 결정되기도 하죠. 이 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싸이코패스가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걸 고쳐주면 싸이코패스 환자도 공감 능력을 갖게 되죠.”

로잘린이 말했다.

“그 밖에도 동정심, 이타심, 자기반성적 성찰의 능력. 모두 유전자에 뿌리를 깊이 두고 있어요. 도덕성은 당연히 거기에 영향을 심하게 받을 테고요.”

"......."

류영준은 혼란스러운 듯 고민에 잠겼다.

“그 유전자들의 DNA상의 위치도 알아?”

그가 물었다.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200여 개이상의 유전자 그룹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워낙 복잡해서 그동안 조그만 피트니스를 가지고는 동기화 모드를 써도 찾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피트니스가 8천만이니 동기화로 찾을 수 있는 거야?”

“아뇨. 그럼 피트니스 소모량이 너무 커요. 좀 더 아낄 겁니다. 그걸 위해서 실험을 해보려는 거고요.”

로잘린이 말했다.

***

류영준은 로잘린의 실험실로 생명창조 부서를 골랐다.

이유는 둘인데, 하나는 로잘린이 그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로잘린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실험실이 아직도 비어있다는 것이었다. 로잘린을 데리고 돌아다녀도 사람들을 별로 방해하거나 주의를 끌지 않을 만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래도 연구소의 입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연차 쓰고 회사 가는 미친 대표는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다. 이런 짓하면 직원들한테 욕먹는데.’

류영준이 로잘린의 손을 잡고 연구소로 들어가며 말했다.

연구소 입구의 직원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사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표님!”

“대표님?”

“오늘 회사 안 오신다고 들었는데……."

“아니 설마 지금 본사에서 대표 업무를 안 하려고 연차를 쓰신 다음, 제6 연구소로 출근하신 거예요?”

제6 연구소의 임직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하……. 그냥 잠깐 들린 겁니다…….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일 하세요.”

직원들은 로잘린한테도 관심을 가졌다.

“이 애는 누구예요?”

“대표님 따님인가요? 똑 닮았네.”

“저 미혼입니다. 얘는 미국에서 온 친척이에요.”

류영준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로잘린의 손을 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류 대표님!”

위에서 누가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오며 소리쳤다.

제6 연구소의 연구소장 길형준이었다.

“여긴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미리 연락도 않으시고…… 저희가 맞이할 준비가 하나도 안 돼있는데요.”

길형준은 몹시 당혹스러워했다.

보통 연구소장 미팅을 하더라도 그들이 본사로 이동해서 류영준과 미팅을 하는 식이었지, 류영준이 연구소를 찾은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찾아올 때도 보통 연락을 미리 했었다.

길형준의 머릿속에는 연구실 안전관리 규정 위반 사항이 지금 몇 개나 있는지 빠르게 계산되고 있었다.

유리로 된 시약병은 선반 높은 곳에 보관할 수 없다든가 하는 규칙들. 사소해서 어기기 쉬운 것들.

보통 어디서 감사가 나오면 전체적으로 점검하면서 감추거나 옮기거나 하는데 이번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감사보다 류영준이 더 무섭다.

“여……연차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근데 제가 하고 싶은 실험이 하나 있어서요. 간단한 겁니다. 생각해보니 여기 옛날 생명창조 부서 연구실이 아직 비어있을 것 같더군요. 거기 써도 되죠?”

“네에……. 그 안에만 계실 겁니까?”

“네. 연구소 한 바퀴 돌거나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류영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길형준은 그제야 숨을 돌렸다.

“근데 옆에 애는 누굽니까?”

그가 물었다.

"친척입니다. 회사 구경시켜달라고 해서요.”

***

류영준은 로잘린과 함께 생명창조 부서의 실험실에 들어왔다.

“여기가 제게 어떤 느낌일지 모르실 겁니다.”

로잘린은 세포 배양액을 데우면서 말했다.

생명창조 팀이 이동하면서 대부분의 샘플을 폐기하거나 옮겼지만, 아직도 이 실험실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꺼운 데이터 시트가 서랍에 굴러다녔고, 쓰지 않는 과거의 세포주들이 초저온 냉동고 등에 들어 있었다.

“고향 같은 느낌이니?”

“비슷해요.”

“나도 오랜만에 찾아오니 반갑네.”

이곳으로 류영준은 부서이동하여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로잘린이 탄생했고, 김현택이 쓰러졌다.

“액체 질소도 아직 있어. 한번 볼래? 네가 되지 못한 것들이야.”

류영준은 액체 질소 탱크에서 철제 랙 (Rack)을 꺼냈다.

안에 있는 샘플 박스에 수많은 로잘린 실험체가 들어 있었다.

로잘린 V1.1

로잘린 v1.12

로잘린 v1.2

.......

“이렇게 보니 묘하군요.”

로잘린은 찬장에서 작은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시작할까요?”

그녀가 주사기를 흔들면서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류영준이 팔을 내밀자 로잘린은 그의 몸에서 피를 약간 뽑았다.

“고마워요.”

“세상에 로잘린이 날 갖고 실험하는 날이 다 오다니.”

“질소탱크에 들어있는 조상님들이 보면 기절하겠군요.”

로잘린은 혈액을 원심분리하고 가라앉은 혈구를 조심스럽게 이동시켜 모았다.

“에이젠바이오가 1억명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를 하고 있잖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응.”

“거기서 나온 인간 데이터 평균하고 당신의 도덕성 유전자들을 비교해보면 발현량과 패턴이 크게 다릅니다. 당신은 그쪽 유전자들에 돌연변이가 있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걸 추적하면 그 유전자들의 위치를 대강 짐작할 수 있죠.”

그녀는 자신의 세포를 일부 떼어서 배양접시 바닥에 깔고, 반투과성 막을 설치한 다음 그 위에 류영준의 혈구를 깔아두었다.

‘투과성 동시배양 어세이 (Transwell co-culture assay).’

류영준이 로잘린의 실험 세팅을 알아보았다.

두 세포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는 실험 방법 중 하나다.

이러한 세팅 아래에서는 류영준의 세포가 내뿜는 물질이 로잘린의 세포에게 전해지게 된다.

“전 이제부터 이 접시의 위쪽에 분리된 당신의 세포의 도덕성 유전자 후보 그룹들을 조금씩 조작할 겁니다. 1억명 프로젝트의 데이터 평균하고 크게 차이를 보인 부분들이에요. 그 유전자들이 제 탄생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라면, 그 유전자를 건드릴 때 당신의 세포가 내뿜는 물질이 변할 테고, 그럼 제 세포들의 상태가 나빠지겠죠.”

“유전자 조작에 쓰는 피트니스는 괜찮아?”

류영준이 물었다.

“시뮬레이션 모드에서 유전자 200개를 다 테스트하면 굉장히 피트니스 소모가 크겠지만, 이렇게 실물 실험을 세팅한 다음 유전자의 발현만 조금씩 바꿔가는 건 괜찮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녀는 류영준의 세포들에서 유전자 그룹을 조금씩 조작하기 시작했다.

***

이튿날 아침, 차세대 병원.

죽음에 가장 근접한 인간을 건져내는 대수술이 시작된다.

생명창조 부서의 팀원들이 인공 심장과 폐를 가지고 왔다.

사람의 사망의 기준인 심폐사와 뇌사. 그들과 관련된 핵심 요소인 심장과 폐를 모두 교체하고 죽은 뇌간의 부활을 진행시킨다.

이식 수술에는 흉부외과의 교수 둘부터 간호사까지 포함해 열 명이 달려들었다.

의료진들은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류영준은 약간 늦게 수술실에 도착했다. 바깥의 모니터로 수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동기화 모드 써도 되지?’

류영준이 로잘린에게 물었다.

-그럼요. 수술하는 거 몇 시간 지켜보는 정도는 피트니스 소모가 크지도 않습니다.

‘나 없는 동안 거기서 사고 치면 안 돼.’

류영준이 말했다.

로잘린은 지금 병원장의 사무실에 있었다.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는 아니지만, 떼어놓긴 그렇고 수술실에 데려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화분 만지다가 깼어요.

‘아…….'

-하지만 원장님이 괜찮다고 했어요. 걱정 마세요.

‘안 괜찮으실 거 같은데.’

“시작합니다.”

수술실 안쪽에서 이번 수술의 집도를 맡은 강성국 교수가 말했다.

류영준은 동기화 모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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