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1화. < 뇌사 (6) > (97/301)

241화.  < 뇌사 (6) >

카펜티어는 류영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안 받으시네요.”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이니까요. 뭐, 출근을 안 하셨을 수도 있죠.”

미구엘이 말했다.

“좋아요. 일단 그럼 지금 fMRI에 축적된 데이터 저장하고 나중에 류 박사님한테 리포트합시다.”

“어차피 심장과 폐를 이식하기 전에는 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미구엘이 말했다.

“네. 회사에서 인공 심장과 인공 폐장을 만들고 있을 거예요. 그쪽에서 준비가 끝나면 미구엘 교수님 임상 소견에 따라서 진행해야죠. 일단 대표님한테 fMRI 데이터부터 먼저 리포트하고 컨펌 받은 다음에……."

카펜티어가 말했다.

덜컥.

병실 문이 열렸다. 생명창조 팀의 박동현과 정혜림이 나타났다.

“오, 저희가 1등일 줄 알았는데.”

박동현이 말했다.

“일찍 오셨네요.”

카펜티어가 빙긋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그럼요. fMRI 확인하러 왔습니다. 지금 순열 씨랑 천 수석님, 배 책임님도 밑에서 올라오고 계세요.”

“그럼 송 박사님하고 대표님만 오시면 되나요?”

카펜티어가 물었다.

“송 박사님은 어제 밤새고 집에 가서 씻고 오신댔고, 대표님은 오늘 안 오세요.”

정혜림이 말했다.

“대표님이 안 오신다고요?”

“네."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카펜티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혹시 이게 제 한국어가 아직 부족해서 소통이 안 되는 겁니까?”

“He’s not coming today."

박동현이 말했다.

“아니 대체 왜요? 무슨 일 있으시답니까?”

카펜티어가 물었다.

“정말 놀랍게도 우리 대표님이 연차를 쓰셨습니다. 지금 본사에서 임원들 몇 명이 오늘을 회사 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얘기도 우스개소리로 하고 있어요. 대표 휴가의 날이라고……."

“아니 이 시국에 말입니까? 지금 뇌사자를 살리네 마네 하는 시점에요?”

“아침에 메일 보내셨을 거예요. 이 프로젝트 관련 책임자들한테요. 카펜티어 박사님 메일 주소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메일함을 확인해봐야겠군요.”

“대충 요약하면 미구엘 교수님 소견에 맞춰서 자율적으로 진행하라는 내용입니다. 카펜티어 박사님이 프로젝트 책임자니, 굳이 자신이 보고 받고 진행을 체크할 필요 없다고요. 그리고 이후 임상 진행 방법을 써주셨어요. 심폐 이식부터 한 다음에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라고 하셨을 겁니다. 그럼 식물인간 상태에 놓이실 거예요. 그 다음은 뭐, 또 기다리는 거죠.”

박동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대표님이 어쩐 일로 연차를 쓰셨죠? 내 기억에는 크리스마스에도 일하셨고 추석인가 그때도 일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일 중독이시죠. 진정한 연구 덕질 진성 과학자고. 근데 오늘은 글쎄요……."

박동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좀 중요한 일이 생겼다고. 오늘 하루는 찾지 말래요.”

***

“일어나세요.”

로잘린이 옆에서 류영준의 어깨를 찔렀다.

“아…… 잠깐만. 10분만. 나 어제 거의 못 잤잖니.”

류영준이 뭉개지는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그러자 감은 눈꺼풀 안쪽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코르티솔 분비 : 280%]

"......."

“부신 피질에서 분비되는 각성 호르몬입니다. 교감 신경을 활성화시켜 긴장 상태로 만들죠. 몸에 부담은 거의 없고 아침에 본래 분비되는 ‘잠 깨는 약’이에요. 이제 잠 안 오죠?”

로잘린이 물었다.

“너는 정말……."

천천히 눈을 뜬 류영준은 로잘린이 생글거리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어떻게 새이랑 하는 짓도 비슷하냐.”

그가 로잘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이도 주말에 내 침대 옆에 와서 조잘거리면서 깨우고 그랬는데.”

“저한텐 시간이 많이 없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알아. 미안해.”

류영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간밤에 네가 너무 괴롭혀서 못 자서 이런 거잖아.”

“미안해요.”

류영준은 기지개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좀 씻고 나가자. 오늘은 좀 얌전히 놀 거지?”

“네."

간밤은 정말 지옥이었다.

일단 집으로 오는 길부터가 쉽지 않았다.

차세대 병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로잘린은 귀가 먹먹해진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건 고막을 중심으로 외이의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압력이 낮아진 중이를 향해 힘이 작용하면서 고막이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는 현상 때문입니다. 유스타키오관을 열어서 압력을 조절해주어야 하죠. 인간의 몸은 참 재밌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도 돼요?”

로잘린이 물었다.

“이미 지하 5층 눌러져있는데. 차는 거기에 대 놨어.”

“그거 말고 다른 버튼들요.”

“……안 돼.”

로잘린은 약간 실망하더니 지하 5층에 도착해서 열림 버튼을 마구 두들겼다.

그리고 차로 이동해서 조수석에 앉혔을 때는 소리를 질렀다.

“앗!"

그녀가 말했다.

“제가 전에도 메시지창으로 몇 번 얘기했던 것 같지만 이 차의 방부처리된 가죽시트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와, 플라스틱 내장재나 안전유리의 접착제에서 나오는 에틸 벤진 (Ethyl benzene) 같은 유기 화합물들이 인간의 몸에는 좀 해로운 편입니다. 이거 냄새 빼셔야해요."

“그……그래……."

“제가 직접 간단한 케미스트리를 해서 빼드릴 수도 있지만 저는 피트니스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창문을 열어도 될까요?”

“좋아.”

그리고 로잘린은 창문을 열었다.

버튼을 누르는만큼 지잉 소릴 내며 창문이 내려가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흐흐."

그러더니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신기하니?”

“창문 자체가 신기하진 않죠. 이런 건 공학적으로 당연한 거잖아요. 하지만 재밌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제 손가락으로 이렇게 거대한 물질계의 버튼을 누르고 창문이 움직이는 게요.”

“그러냐?”

“당신이 만약 행성만한 크기의 우주 탐사 로봇을 타고 다른 은하를 순항한다든지, 태양에 손을 대고 모닥불처럼 불을 쬘 수 있으면 하루종일 해도 재밌을 겁니다.”

그리고 로잘린은 안전벨트를 버클에 꽂았다가 푸는 작업도 열다섯 번 쯤 반복했고, 시트 가죽을 손톱을 비롯해 다양한 도구로 긁어대다가 기어이 스크래치를 만들었다.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류영준이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이었다.

류영준은 먼저 집안에 누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부모님은 여행을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류지원은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다.

빨간 머리가 되어 돌아온 류새이를 설명할 방법도, 그럴 체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새이 옷을 안 버리고 모아놓으셨거든. 가끔 꺼내보시던데.”

류영준은 옷장에서 류새이의 옛날 옷을 꺼냈다.

로잘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전부 다 입어봐도 돼요?”

“대신 너무 어지르면 안 된다.”

류영준은 옷을 내주고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그게 실수였다

돌아왔을 때 옷장 앞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아니 지원이 옛날 수영복은 대체 왜 꺼낸 거야……."

심지어 그 수많은 옷을 바닥에 어질러놓고도 로잘린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발가벗은 상태로 침대를 트램펄린 삼아 팡팡 뛰며 점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와악!”

“너……."

류영준은 약간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로잘린을 데리고 와서 옷을 입히고 집 안에서라도 최소한의 옷은 입고 있어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알았어요.”

로잘린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자기도 씻겠다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다음엔 건식 욕실을 워터파크로 만들어놓았다.

“이럴 수가……."

심지어 로잘린은 더운 물에 화상도 입었다.

“어깨에 열상을 입었어요.”

로잘린이 자기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도꼭지 돌리는데 뜨거운 물이 확 쏟아져서.”

“근데 왜 얼굴은 생글벙글이야?”

“너무 재밌었습니다. 물 첨벙거리는 거 촉감이 정말……. 신세계예요.”

“어깨는 치료 안 할 거야?”

“1도 화상인데요 뭘. 발적 현상이 있고 화끈거리는 느낌이지만 별로 많이 아프지도 않고. 사실 이 정도 통증은 지금은 좀 더 느껴보고 싶군요.”

“……. 그럼 연고 바르고 화기만 좀 빼자.”

“네."

류영준은 화상 연고와 얼음 주머니를 가져와 로잘린의 옆에 앉았다.

“좀 차갑다.”

“네."

로잘린의 어깨는 조그맣고 부드러웠다.

“너 이제 보니 좀 말랐구나.”

“류새이의 체형을 그대로 복사한 건데요.”

“새이는 아팠으니까.”

류영준은 로잘린의 어깨에 연고를 살살 문질렀다.

“몸이 생겨서 좋아?”

“정말 좋아요.”

“며칠이나 갈 것 같아?”

“ATP 도핑은 길어봐야 3일 정도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아마 이번 주말 정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걸요.”

“흐음."

“다음에 몸을 만들려면 한참 걸릴 거예요. 중간중간 새로운 실험들 때문에 동기화모드나 시뮬레이션을 쓰면 더 오래 걸리겠죠. 피트니스 아끼라고 하지 않을게요. 저한테는 당신도 중요하니까.”

“……그 몸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흐음.”

로잘린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학교 가는 거요.”

“학교?”

“인간이 지식을 어떻게 쌓고 재생산하는지 경험해보고 싶어서요.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뭘 공부하는지도 궁금하고.”

“네가 수업을 들으면 굉장히 지루할걸. 그리고 너한테 과학 가르치는 선생님은 무슨 죄니.”

류영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3일만에 학교를 갈 방법은 없고……. 이번에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어?”

“하고 싶은 거요?”

“내일 하루종일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자.”

로잘린이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요? 내일요? 김현택 임상은요?”

“우리 연구원들 보통 사람들 아니야. 내가 하루 쯤 비워도 저 정도 궤도에 올라온 임상시험이면 알아서 잘 진행할 수 있어. 회사 일도 ……. 김영훈 이사님이랑 박주혁한테 좀 맡아달라고 하면 되고.”

류영준이 말했다.

“실험들에 대해서는 메일로 향후 진행 방향을 좀 써줘야겠지만.”

“와!”

로잘린은 탄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어디 가고 싶니?”

“생각 좀 해볼게요!”

“두세 군데 갈 수도 있어. 내일은 연차를 쓸 거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메일 쓰는 거 도와드릴게요. 지금 김현택한테 세포 몇 개 날려서 상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

카펜티어는 메일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류영준이 또 예언가에 빙의했다.

-카펜티어 팀장님. 아마 아침 8시를 기점으로 fMRI에서 연수 부위의 뇌혈류량이 증가하여 BOLD (Blood Oxygenation Level Dependent Signal, 혈중 산소 농도 의존 신호) 의 프로세싱 값이 7.5가 넘게 될 겁니다.

‘세상에…….'

카펜티어는 혀를 내둘렀다.

소름끼치게 정확하다.

-이 시점부터 원래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현택의 경우에는 심장과 폐장의 이식 수술이 선행되는 게 좋을 듯합니다.

-cTn이 급격히 증가된 상태로 급성 심근손상이 있다는 황윤성 선생님의 문진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와 함께 발생한 급성허혈증과 국소벽운동 이상 패턴, 관상동맥 혈전증도 있습니다. 이로 인한 폐동맥 고혈압과, 폐기종도 있어 심장과 폐 둘 모두 이식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생명창조 팀은 김현택의 체세포를 역분화한 후 심장과 폐장으로 분화시키고 있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에 완성될 겁니다. 그때 이식 수술을 진행하고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한 다음 경과를 지켜볼 예정입니다.

***

“심폐가 죽기 직전이나 다름없고 전뇌 기능도 소실돼서 이미 죽은 사람으로 판정되던 인물이야.”

집 밖으로 나서면서 류영준이 말했다.

“그걸 되살리는 작업이니 카펜티어 교수님도 최종 책임자라는 게 부담이 심할 거야. 오늘은 간단한 처치 몇 가지만 하면 되지만 좀 미안하긴 하네.”

“잘 하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로잘린이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 카펜티어는 노벨상 수상자고 최고의 외과의사인 미구엘 교수님도 있어. 거기다 생명창조 팀은 세계에서 가장 인공 장기를 잘 만드는 팀이고. 옛날 로잘린보다 한 수 위라는 송박사까지 있지.”

“맞아요!”

“그럼 우리 어디 갈까?”

“저 실험실에 가고 싶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