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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 뇌사 (4) > (95/301)

239화.  < 뇌사 (4) >

-잠깐만…….

로잘린의 어깨가 움찔했다.

‘왜?’

-바늘이 들어가면서 뇌척수액이 역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줄기세포를 주사하면 안 돼요.

“뭐라고?”

놀란 류영준은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다이내믹 디지털 방사선 촬영 시스템이라는 기계로 코와 눈 위쪽을 촬영하고, 그 값을 실시간으로 받아낸 모니터다.

아주 작은 면적을 확대해서 고해상도로 촬영해서 후각 벌브와 사상판 사이 공간까지 촬영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액체의 흐름이 정확히 측정되지 않는다.

보통은 이처럼 작은 미세 바늘을 찔러넣었을 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그 희박한 불운에 당첨됐다.

“젠장.”

로잘린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류영준의 눈에도 보였다. 동기화된 시각 속에서 뇌척수액이 반대 방향으로, 아주 느린 속도로 꿀렁이고 있었다.

“잠깐만 멈추세요!”

류영준이 소리쳤다.

줄기세포가 지금 들어가면 그대로 역류해서 뇌실하대로 이동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이 줄기세포들에도 녹내장 때와 동일한 안전장치가 입력돼있으므로, 엉뚱한 곳에 흘러가도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실험에 실패하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된다.

“멈추라고요?”

미구엘 박사가 흘려넣던 주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저 바늘의 부피 때문에 뇌척수액이 역류했을지도 모릅니다. 잠깐만 기다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30초만 기다립시다."

-안 돼요.

로잘린이 말했다.

‘안 된다고?’

-저 주사기에 남은 줄기세포는 이제 8만 개예요.

'.......'

-빠르게 주사를 멈춘 덕분에 많이 남았지만 잃어버린 2만 개가 필요해요. 저 용량으로는 연수는 회복시킬 수 있지만 식물인간 상태에서 치료가 멈출 겁니다. 저 고난도의 수술을 두 번씩 할 수는 없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제가 갈게요.

로잘린이 환풍구로 튀어올랐다.

‘로잘린?’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곧바로 수술실 에어 필터를 향해 이동했다.

무균헤파필터는 공기 감압 장치와 에어 플로우를 이용해서 외부 이물질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웬만한 먼지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같은 건 전부 차단될 만큼 강력한 바람이다.

하지만 로잘린한테는 아니다.

-바람이 꽤 세군요.

‘시간당 20회 이상 순환하는 시스템이야. 뇌까지 건드리는 고위험도 수술이니까. 지금에라도 그만하고 돌아와.’

-괜찮습니다.

로잘린은 전면에서 폭풍처럼 밀어닥치는 맹렬한 바람을 똑바로 뚫어버렸다.

본래 외부 유입을 차단하는 것으로 설계된 ‘공기정화설비’를 통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수술실 내부로 침투했다.

-이 사람 몸에 두 번이나 들어가는군요.

로잘린은 그대로 김현택의 콧속으로 침입하고는 비강 상피 점막과 상비갑개를 지나 후각 상피 조직에 이르렀다.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상판 사이의 틈새로 고개를 내밀고 뇌척수액의 흐름을 확인했다.

그건 아주 느리게, 마치 끈적이는 점성이 있는 액체처럼 뇌실하대에서 반대 방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역분화 줄기세포들이 가득하다.

로잘린은 뇌척수액에 뛰어들었다. 사람의 시야에서는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은 림프관을 흐르는 미량의 액체지만, 세포에게는 마치 거대한 강물 같다.

로잘린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나오는 뇌척수액을 거슬러 오르며 헤엄쳤다. 주위에 떠다니는 줄기세포들을 피해가면서.

-본래 뇌척수액은 뇌의 맥락얼기 (choroid plexus)라는 중간뇌수도관에서 생산돼요. 제4뇌실에 있는 정맥총의 일종이죠.

로잘린이 말했다.

-그리고 맥락얼기는 뇌척수액의 흐름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지는 제4뇌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제4뇌실을 건드릴 겁니다.

로잘린은 맥락얼기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그 조직에 손을 얹고 피트니스를 소모했다.

-CSFF1 과발현.

-CSFF2/3 과발현.

발동된 유전자들이 몇 개의 고분자 생물질을 만들고 분출해서 뇌척수액 안으로 섞여들었다.

그들은 뇌척수액이 흐르는 림프관의 벽면 돌기에 달라붙으며 흐름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로잘린은 저 끝에서부터 이쪽 방향으로 막대한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액체의 흐름을 느꼈다.

-됐어요. 지금 다시 주사하라고 해요.

로잘린이 말했다.

“이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주사하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로잘린에게도 머릿속으로 말했다.

‘근데 넌 괜찮은 거야? 이제 거기서 나와야 해.’

-림프액 흐름이 좀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저는 헤파필터도 뚫어버린 세포입니다.

로잘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뇌척수액이 흘러오는 방향 끝에서 곧 엄청난 생체압이 느껴졌다. 미세바늘이 뿜어내는 8만여 개의 줄기세포가, 뇌척수액의 흐름을 타고 이쪽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이제 돌아갈게요.

로잘린은 뇌척수액의 흐름을 가로질러 다시 반대로 이동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둘 모두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터졌다.

-앗.......

로잘린의 몸이 우뚝 섰다.

막대한 양의 ATP가 로잘린을 휩쓸고 있었다.

뇌간을 치료하는 줄기세포의 분화는 대량의 ATP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이건…….

‘뭐야?’

로잘린의 상태창에서 피트니스가 급격히 치솟기 시작했다.

-피트니스가 통제가 안 됩니다. ATP 양이 너무 많아서......

로잘린이 말했다.

-류영준! 도와주……

삑!

콰르륵

메시지창이 사라졌다.

뇌척수액의 물살이 로잘린을 휩쓸어버렸다.

“끝났습니다.”

미구엘 교수가 말했다.

"......."

류영준은 얼어붙은 채 말을 잃었다.

“류 박사님?”

카펜티어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네."

류영준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했어요. 이제 정리하고 좀 쉬죠."

***

로잘린은 뇌실하대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ATP가 그렇게 빨리 급증할 줄 몰랐다.

이미 뇌실하대의 조직은 대부분 죽어 있었을 텐데.

동기화 모드에서 살펴보았을 때는 분명히 빠져나올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생명의 근원을 탐험하는 시점에서는 나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로잘린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가는 줄기세포들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병원체의 DNA를 흡수해서 내 힘에 문제가 생긴 걸까?’

로잘린은 일어나서 류영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류영준!”

하지만 류영준은 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결이 끊어진 모양이다.

로잘린은 병원체의 DNA를 다시 찬찬히 확인했다.

DNA는 분자생물학의 언어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코드처럼, 암호화된 유전자들의 주요 정보가 들어있다.

로잘린은 DNA 내부의 유전자들을 발현시킨 다음 세포 밖으로 늘어뜨려놓았다.

‘아.’

로잘린은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수정란과 줄기세포의 차이점.

줄기세포는 한 인간의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성 (Pluripotent)을 가진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도 아기는 발생하지 않는다.

수정란에는 그 이상의 힘이 있다.

수정란은 만능성 (Pluripotent)이 아닌 전능성 (Totipotent)을 가지고 있다.

수정란은 인간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제작할 수 있으며, 동시에 ‘태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궁벽에 붙어서 산모의 영양을 모아 탯줄로 공급하는 힘. 기존에 존재하던 ‘세계’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이는 힘이 바로 전능성이다.

이 병원체의 유전자는 바로 그 힘 자체였다.

‘그런 게 김현택의 몸속에 들어갔으니 사람이 박살날 수밖에.’

이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이 아니라 새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세계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난폭한 힘이다.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엄청난 양의 에너지원이 ATP로 만들어져있다가 로잘린이 들어가자 반응했던 것이다.

‘본래 이 유전자도, 거기서 만들어진 에너지도 전부 내 것이었으니까.’

이젠 이유를 알있으니 나가는 방법도 알 수 있다.

로잘린은 병원체의 유전자들을 작동시켰다.

***

“류 박사님?”

송지현은 류영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늦은 시각에 차세대 병원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표정이 몹시 굳어 있었다.

“송 박사님 아직 안 가셨어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자리 비운 사이에 김현택한테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적어도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리고 fMRI로 뇌혈류 영상을 측정하고 있으니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거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병원 의료진도 당직만 남고 다 돌아갔으니 이만 퇴근하셔도 돼요.”

“네. 하지만 조금만 이따가요.”

송지현이 말했다.

두 사람은 김현택이 누워있는 병상 옆에 앉아서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참 세상 일이 아이러니하네요.”

송지현이 말했다.

“뭐가요?”

“김현택이 셀리큐어를 없애면서 류 박사님의 좌천과 성공 신화가 시작됐잖아요. 저는 셀리큐어의 개발자였고요. 김현택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 사람이 아마 우리 둘이었을 것 같은데요.”

송지현이 피식 웃었다.

“근데 이제는 같이 여기에 나란히 앉아서 김현택의 치료 경과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저는 이 상황이 이상하고 신기하네요.”

"......."

류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있었던 부서는 생명창조 부서였습니다. 처음엔 정말 괴짜 같은 이름이라 생각했죠. 생명창조라니. 완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잖아요.”

“과학보단 종교에 더 어울릴 단어이긴 하죠.”

송지현이 대꾸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게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져요. 생명창조나 뇌사 같은 것.”

류영준이 말했다.

“김현택은 이 업계의 수많은 빌런들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그동안 과학은 권력의 시종 노릇을 하면서 대중을 홀리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죠.”

"......."

“최근에 제 은사님 한 분이 ‘과학적’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뭐가 됐든 신뢰도가 올라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맞는 말이에요. 어찌됐든 신기술이 개발되니 문명이 진보하긴 하지만 기술의 일부가 보급될 뿐, 과학이 분배되진 않았죠. 그동안 세상은 뭔가 나사가 하나 빠져서 안전하지는 않은 상태였어요.”

류영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송 박사님. 제가 연구윤리에 너무 집착한다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윤리 없는 과학은 뇌사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과학계에서 그걸 부활시켜왔어요. 생명창조부서에서 제가 줄기세포를 만든 것처럼, 에이바이오나 셀리제너는 과학계를 살려내는 줄기세포였을지도 몰라요.”

“정말 은유적이네요.”

“과학보다 문학적인 게 없죠.”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오늘 그 상징을 저는 잃어버렸어요.”

“네?”

“제가 가장 아끼는 친구가 사라졌거든요.”

“사라졌다고요?”

“행방불명 상태예요. 정말 좋은 애였는데.”

“어머……."

송지현이 당황했다.

“어쩐지 아까 들어오실 때 우울해보이셨어요.”

“그랬나요?”

“네."

“……송 박사님. 저 따뜻한 물 한잔만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물론이죠. 잠깐만요.”

송지현이 바깥으로 나가자 류영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머니에서 멸균된 철제 통을 하나 꺼냈다.

달칵.

뚜껑을 열자 안에서 미세 바늘이 나타났다. 주사기의 핀 부분만 떼어온 것이다.

류영준은 그걸 집어들고 김현택에게 바짝 다가갔다.

[동기화 모드 작동]

로잘린은 사라져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 기능은 살아있다.

뇌실하대에 핀을 꽂기만 하면 된다. 로잘린이 거기에 갇혀 있다면 다시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류영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게 정말 잘 하는 짓일까? 괜찮을까? 김현택이 다치진 않을까? 치료에 실패하게 되지 않을까?

온갖 고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로잘린은 지난 시간 그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구원자고, 김현택은 유배지로 좌천시킨 악당이다.

이 상황에서 김현택을 걱정해서 머뭇거리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심지어 김현택은 시체나 다름없는데?

"......."

류영준의 손가락에 땀이 찼다.

그는 동기화 모드 속에서 분석된 뇌실하대와 그곳으로 가는 루트를 쏘아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툭.

그리고 결국 바늘을 내려놓았다.

이건 생명 윤리에 위배된다.

류영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후우.......”

그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수많은 은혜를 입었던 로잘린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데 난 그걸 도와줄 수가 없는 건가?’

류영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누가 누굴 도와줘요.”

"악!"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류영준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로잘린이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너……. 너 근데 왜 다 벗고 있어?”

류영준이 물었다.

“그동안 제가 입고 있었던 옷은 당신의 트라우마 속에서 류새이가 입고 있었던 것의 잔상이니까요.”

로잘린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탁!

아홉살 남짓한 어린애의 발바닥이 병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

로잘린은 그 감촉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

류영준은 잠깐 사고가 정지하는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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