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 뇌사 (3) >
“몸을 갖고 싶다고?”
류영준이 물었다.
-네. 인간과 같은 시야를 갖게 되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게 가능한 거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대해서 아직 인간은 모르죠? 그래서 뇌사자의 부활을 가지고 그렇게 소란을 피운 거고요.
로잘린이 물었다.
-저는 답을 알아요.
“뭔데?”
-생물체에겐 ‘육체’가 있어요. 단순히 원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외부 환경의 간섭을 거부하는, 생물체의 고유한 거주 공간이란 의미의 육체 말이에요.
로잘린이 말했다.
-피부 껍데기 또는 인지질 이중막으로 둘러싸인 면의 안쪽에 해당하는 모든 공간들의 집합체.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외부 위협을 제거하려는 욕망. 그게 바로 생물의 의미입니다.
"......."
-저도 역시 세포 수준의 육체란 걸 가지고 있지만, 그건 당신의 몸 밖에서 생존할 수 없는 불완전한 거예요.
"......."
-그게 제가 그 병원체를 흡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탄생할 때 당신이 복용하던 간염 치료제에 의해 유기화학 반응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제 DNA가 쪼개졌다면 그걸 되찾아 흡수하는 것만이 저를 완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로잘린이 말했다.
-저는 생명체가 될 겁니다. 완성된 육체를 가지고요.
"......."
류영준은 턱을 매만지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병원체는 공격적이야.”
류영준이 말했다.
-뭘 걱정하시는지 알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제가 그 병원체를 흡수한 다음, 사람들을 공격하게 될까봐 그러는 거죠?
더 우월한 종의 출현과 번성은 언제나 기득권 생물종의 파멸을 의미한다.
가물치 같은 생선이 미국 하천으로 넘어간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가?
가물치는 높은 생명력과 공격성, 게걸스러운 식성으로 워싱턴의 포토맥강에서 토착 어류인 ‘배스’를 거의 전멸시켜버렸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지성체인 로잘린이 이 땅에서 번성해나간다면? 로잘린이 가물치라면 지구라는 하천의 배스는 누구일까?
-만약 그게 생태계적 관점에서 제게 주어진 본능이라면 분명 위험하겠죠.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인간에게 우호적이에요. 당신 옆에서 보아온 것들 중엔 끔찍한 것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것들도 있었습니다.
“난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아냐.”
류영준이 말했다.
“난 널 믿어. 네가 가끔 효율성을 따지면서 무서운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넌 사람을 해치는 걸 좋아하는 괴물 같은 건 아냐.”
-.......
“그리고 그 병원체를 흡수한다고 해서 네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변하지도 않을 거라고 확신해. 넌 우수하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난 그냥 네가 다칠까봐 걱정되는 거야.”
-제가요?
“그 병원체는 김현택에게 감염된 다음 순식간에 김현택을 뇌사 상태에 빠뜨렸고, 장기도 상당수 손상시켰어. 알지?”
-네.
“이미 그걸 세포 내에 보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넌 의식을 잃은 적도 있잖아. 근데 유전체 안에 삽입시키면 어떻게 될지......."
로잘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꼭 어린애를 과잉보호하는 젊고 미숙한 아버지 같군요.
“이건 과잉보호가 아냐. 누구든 걱정할걸.”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
-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제가 전부 통제할 수 있을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저는 모든 생명현상에 정통한 생물체잖아요.
“……. 하지 말래도 말 안 들을 거지?”
-네.
로잘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 DNA를 어떻게 흡수할 거야?”
-트랜스포존을 쓸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트랜스포존(Transposon)은 사람의 DNA의 일부다.
겉으로 보면 그냥 유전자처럼 보이는 이 DNA 조각들은 놀랍게도 본래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트랜스포존은 ‘바이러스’의 DNA다.
어떤 바이러스들은 인간의 세포를 감염시킨 다음, 인간의 DNA 내부에 자신의 DNA를 끼워 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 DNA들은 그냥 인간의 DNA 일부인 것처럼 그 안에서 산다.
어떤 작용도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인간의 체세포와 생식세포가 분열할 때 함께 복제되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일부였는데 그냥 그대로 인간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제부터 시작할 겁니다.
로잘린은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똑바로 섰다.
그녀의 몸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류새이의 겉모습이 아닌 단일 세포 형체에서 DNA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로잘린은 병원체의 DNA 파편을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약 120만 bp (base pair, DNA의 크기를 재는 단위).
별로 그렇게 큰 조각은 아니다.
로잘린은 그걸 동그란 모양으로 묶은 다음 양쪽 끝에 TSD라는 분자 구조를 설치했다.
그리고 자신의 DNA를 향해 천천히 옮겼다.
이 과정은 마치 우주선이 도킹하는 것과 비슷하다.
트랜스 포제이즈(Transposase) 라는 생체분자를 꺼내 들어서 양쪽 DNA 말단을 묶었다.
똑.
로잘린의 DNA 한쪽이 끊어지면서 병원체의 DNA가 달라붙었다.
로잘린은 봉합수술을 하듯이 그들을 묶었다.
-끝났어요.
“끝났어?”
-네.
“아무 변화도 없는데?”
-……. 그러게요.
로잘린이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
-에이젠바이오가 오늘 낮 12시. 차세대 병원에서 뇌사자 김현택 씨를 회복시키는 임상시험을 진행합니다.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 뉴스를 류영준은 차세대 병원의 TV로 보고 있었다.
-뇌사자는 지금도 사망자로 규정되고 있으며, 임상시험법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이번 실험을 위해서 에이젠바이오는 류영준 특별법까지 추진한 이력이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국회 공청회에서 류영준 박사가 보여주었던 전임상 실험의 놀라운 성과를 보면 이번 결과가 매우 기대되는데요, 만약 치료에 성공한다면 의료법적으로 김현택 씨는 ‘죽었다가 살아난’ 첫 케이스가 됩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게 아니라 애초에 살아있었던 거죠.”
류영준이 말했다.
“맞습니다.”
뇌신경과의 미구엘 교수가 말했다.
뇌신경과학에 있어 그야말로 압도적인 세계 일인자다.
“저는 차세대 병원의 정교수도 아니고 외래 방문 의사인데 이런 놀라운 실험 수술의 집도를 맡을 줄은 몰랐네요.”
“미구엘 교수님 같은 분이 마침 차세대 병원에 계셨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공부하러 온 겁니다. 원래 내년 하반기에 다시 독일로 귀국할 예정이었어요.”
“교수님 정도 실력에 여기서 배우실 게 있었나요?”
“하하, 너무 겸손하게 그러지 마십시오. 줄기세포와 뇌신경 재생 의학에서 지금 한국을, 에이젠바이오를 따라잡을 곳은 어디에도 없잖습니까.”
미구엘이 말했다.
류영준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세간의 주목이 전부 쏠려서 꽤 부담스러우실 텐데, 흔쾌히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여기서 공짜로 공부하고 있는데 밥값은 해야죠.”
“공짜였나요?”
“여기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병원장이 강습료를 없애줬습니다.”
“그랬군요. 미구엘 교수님 몸값을 생각하면 원장님이 비즈니스를 잘 하셨네요.”
-한 편, 에이젠바이오의 이 같은 연구가 생명의 근원적인 부분들을 건드린다며 반대하는 집회도 생겨났습니다.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계속 말했다
-지난 9일 오전, 기독교 단체는 에이젠바이오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였습니다. 현장을 보시죠.
뉴스 화면에 집회 현장이 나타났다. 집회자 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에이젠바이오는 시체를 부활시키는 사악한 마술을 그만두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질병 치료에, 본업에 매진해야 할 겁니다.
“죽은 게 아니라니까……."
류영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중들이 소화하기엔 좀 시간이 걸리겠죠.”
미구엘이 말했다.
***
뇌간은 인간의 뇌의 가장 안쪽, 한 가운데에 있다.
사람의 미간에서 뒤통수까지 일직선을 긋고, 양쪽 관자놀이 사이에 직선을 그었을 때, 두 선이 접하는 위치다. 뇌간은 그곳에 있다. 게다가 대뇌와 소뇌, 간뇌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바깥은 두개골로 단단히 막혀 있다.
한 마디로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위치다.
비글 실험에서야 뒤통수 두개골을 떼어내고 약간 거친 방식으로 주사를 찔러 넣었지만, 사람한테서도 이 방법을 쓰기는 조심스럽다.
본래는 몇 달의 시간을 추가로 소요해서 약물 전달 방법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미구엘 교수가 있었다.
“Intranasal injection (비강내 주사)으로 가죠.”
김현택의 뇌간 재생 프로젝트 팀 미팅에서 미구엘이 말했다.
사람의 코는 뇌로 접근하기에 가장 용이한 통로 중 하나다.
미구엘은 콧구멍 속으로 아주 길고 가느다란 바늘을 찔러 넣어서 뇌간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정도로 큰 임상시험인 경우에는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만약 실패했을 때, 약물 전달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줄기 세포 치료법이 인간의 뇌간에서는 부적절한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미구엘이 말했다.
“하지만 비강내 주사법은 이미 널리 알려진 기술입니다. 테크닉 자체가 어려워서 이대로 상용화는 못하겠지만, 줄기세포에 의한 뇌간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 뇌사자가 사망자가 아니라는 걸 알리는 데는 주효할 겁니다.”
“스텝 바이 스텝으로 나가자는 말씀이군요.”
카펜티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먼저 비강내 주사법이라는 알려진 방법을 이용해서 뇌사자가 살아있는 사람이고 회복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키고 나면, 임상시험법에 포함되기 때문에 약물 전달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훨씬 용이해질 겁니다.”
심전도 그래프가 그리는 삑삑 소리와 쇳소리들 가운데에 준비된 역분화 줄기세포 10만여 개가 도착했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서, 미구엘은 모니터를 주시하며 주사기 바늘을 콧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어떨 것 같아?’
류영준이 물었다.
그는 바깥에서 전면유리 너머로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로잘린도 옆에서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너는 좀 어때?’
류영준이 물었다.
-저요?
‘그때 이후로 거의 2주나 지났는데, 아직까진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고. 특별히 달라지지도 않은 거 같고.’
-그러게요.
로잘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동기화 모드 작동 : 뇌사]
로잘린이 동기화 모드를 켰다.
-수술 잘 진행되는지 지켜나보죠.
세포 하나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초점이 확대되었다.
‘미세 바늘’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늘이 나타났다.
그건 콧구멍으로 들어가서 비강상피 점막 (Squamous mucosa) 지역을 지나 콧대에 거의 딱 붙어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콧속 안쪽 깊숙이, 상비갑개 (Superior nasal concha) 지역에 도달했다.
미구엘은 모니터를 보면서 매우 느리고 신중하게 바늘을 밀어넣고 있었다.
그 위쪽은 후각 상피 조직 (Olfactory epithelium/mocosa)이다.
신체기관의 위치로 따지자면 이제는 ‘코’보다는 ‘눈’에 더 가까운 지점까지 들어왔다.
바늘은 그 앞에서 한번 멈추었다.
“후우……."
미구엘의 목덜미에 땀이 고였다.
이제부턴 정말 조심해야 한다.
몇 밀리미터 위에 사상판 (Cribriform plate)가 있다. 뇌로 들어가는 관문이나 다름없는 골격 구조다.
이 지역은 점막으로 뒤덮여있고, 거기에는 후각 수용기의 세포체가 잔뜩 배열해있다.
하지만 그 점막 사이를 자세히 보면 뼈 사이로 매우 작은 틈이 있는데, 이제 바늘은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밀리미터보다 더 작은 단위의 컨트롤이 요구된다. 미구엘은 마이크로 전동기를 주사기 끝에 부착한 다음 조동나사를 돌려서 바늘을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밀어올렸다.
후각 벌브 (Olfactory bulb) 바로 앞에서 멈추어야 한다. 이 벌브는 후각 수용기가 받아들인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곳이다.
그리고 후각 벌브와 사상판 사이. 이곳에는 뇌척수액 (cerebrospinal fluid)이 흐른다.
미구엘이 조동나사에서 손을 뗐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류영준이 마이크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구엘의 주사기는 뇌척수액이 흐르는 관을 타고 천천히 움직였다.
불과 몇 센티미터 거리인데 굉장히 멀게 느껴진다.
이 앞이 제4 뇌실하대다.
“이제 주입하겠습니다.”
미구엘은 주사기의 피스톤을 눌렀다.
‘들어간다.’
류영준은 미간에 힘을 주었다.
역분화 줄기세포 10만 여 개가 제4 뇌실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