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 뇌사 (2) >
세 시간 후.
공청회가 끝났다.
류영준의 실험 결과에 대한 발언 이후 토론은 제대로 수행되질 못했다.
반대측이 뭐라고 반대 의견을 낼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좋은 토론, 아니,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와르르 달려들었다.
“우리 사진이라도 하나 찍을까요? 세기의 천재가 세기의 기술을 발명한 시점에 그 첫 발표 장소가 대한민국 국회인 게 얼마나 기념적입니까?”
의원들이 류영준의 어깨에 팔을 감으며 비서들에게 손짓을 했다.
“카메라. 카메라. 기자들 위치 어레인지 해, 빨리.”
“우리 이거 찍고 식사나 같이 하시죠?”
국회의원 중 하나가 물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후에 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완곡하게 거절하는 류영준의 말을 국회의원들이 재빨리 잘랐다.
“에이. 너무 빼신다. 걱정하지 마세요, 김영란 법 때문에 어차피 비싼 건 못 먹습니다, 저희. 그리고 각자 다 더치페이 하면 되고.”
“류 박사님이 식사하면서 이거 실험 설명도 좀 더 해주고 그러셔야지.”
“맞아요. 가결 표는 이미 준비해놨지만 알고 가야할 거 아닙니까. 제가 완전 문과인데 오늘 그냥 신세계를 봤거든요. 근데 이해가 잘 안 돼가지고.”
“하하하!”
너스레를 떠는 의원들 사이로 누군가가 불쑥 다가왔다.
양혜숙이었다.
“실험에 대해 궁금하시면 제가 설명해드릴 테니, 의원님들은 바쁜 사람 그만 잡으시죠.”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류영준을 빼냈다.
“내 방에서 잠깐 얘기 좀 하자.”
양혜숙은 의원회관으로 이동해서 자신의 오피스로 향했다.
덜컥.
“와악!”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원실의 인턴과 보좌관 등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그들 모두 인터넷 방송으로 류영준의 공청회를 보고 있었다.
“류, 류 박사님……."
“진정해요.”
양혜숙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음료를 하나 꺼내서 류영준에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훨씬 실험 결과가 좋네.”
“저희 연구원들과 셀리제너가 열심히 해줬으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흐음.”
양혜숙은 류영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여기로 오라고 한 건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서야.”
“소개해주실 사람이요?”
“내 방에 계셨는데, 어디 가셨지?”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단장님 나가셨어요. 화장실 물어보면서요. 다른 분은 담배 피우러 가셨고요.”
인턴 직원이 말했다.
“그럼 곧 오시겠네.”
양혜숙이 고갤 끄덕였다.
“누군데요?”
류영준이 물어보는 순간, 문이 찰칵 열리더니 남자 둘이 안으로 들어섰다.
반두일 교수와 에이젠의 전 CTO니콜라스 킴이었다.
“앗!"
류영준은 화들짝 놀랐다.
“두 분이 어떻게 여기……?”
“하하, 류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
두 사람이 반가운 듯 류영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그럼요. 근데 어쩐 일이세요?”
“음. 이제 곧 저는 국가 R&D 전략기획단장이 될 테니까요.”
니콜라스가 말했다.
“비록 아직 임용은 안 했지만, 일을 시작하면 뭘 할지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그걸 논의하러 왔지요.”
“뭘 하시려고요?”
류영준이 물었다.
“류 박사님의 성공 신화는 지금 대한민국을 과학에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과학’이라는 단어는 옛날부터 비과학적인 제품들의 홍보수단이었어요.”
니콜라스가 말했다.
“과학적, 통계적, 임상적, FDA 승인, 뭐 이런 단어들이 들어가면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무한히 상승하니까요. 하지만 류 박사님은 첨단의 극에 있는 초 고난도 실험을 하면서도 그걸 대중들에게 환원시키는 데 주력했잖습니까.”
"......."
“덕분에 이제는 캐스나인 같은 단어나 역분화 줄기세포 같은 게 대중들한테 익숙한 용어가 됐어요. 과학자들은 수많은 강연에 초대되고 옛날에 유행하던 인문학 힐링 캠프 같은 것처럼 과학자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자리들이 계속 나오는 중이죠.”
"음......."
“니콜라스 박사님, 서론이 너무 길어요.”
반두일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제 얘기의 요지는 이제 곧 ‘사이언스 붐’의 시대가 올 거라는 것이고, 그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그랬지? 파지 줍는 노인도 주기율표를……."
양혜숙이 덧붙이려 하자 두 사람이 재빨리 잘랐다.
“아니 그건 좀 심했고요.”
“그건 무리수죠.”
반두일이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영준아. 여기 두 사람은 국회의원과 국가 CTO로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적 지식 수준 향상에 상당히 많은 관심이 있어.”
그가 말했다.
“그래서 인류 사상 최고의 지식인인 류영준이란 괴물을 키워낸 나를 초대하신 거야. 디스커션 해달라고.”
“……교수님 제가 기억하던 것보다 흥이 많아지셨네요.”
“요즘 네 덕분에 사는 게 즐겁다. 학과 내에서 우리 연구실은 약간 비주류였잖니? 근데 지금은 정윤대 전체에서 제일 잘나가는 실험실이 됐거든. 박형범 교수가 못마땅해하는 표정 볼 때마다 속이 다 짜릿해.”
“아무튼 우리는 과학 교육에 초점을 더 모을 거야. 교수도 반 교수님 말고 다른 분들도 더 많이 모을 거고. 교육부하고 협력도 해야겠지. 그리고 최종 목표는.”
양혜숙이 말했다.
“셀리제너 같은 후발 주자 기업들을 육성하고, 에이젠바이오 같은 공룡기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슬의 흐름에 맞는 인재를 공급하는 거야.”
"......."
“참고로 영준아. 정윤대 생명공학과는 학부로 규격을 올리고 내부 학과로 줄기세포 학과를 신설했단다.”
반두일이 말했다.
“정말요?”
류영준이 물었다.
“그래. 지금 흐름을 보면 너무 뻔하게 각이 나오지 않니? 네가 만들어놓은 미친 기술들의 수준에 비해서 그걸 서비스할 수 있는 테크니션은 턱없이 모자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재 육성이 필요해.”
“정부 차원에서 장학금을 올리고 집중 투자하는 걸 계획 중입니다.”
니콜라스가 덧붙였다.
“그럼 에이젠바이오도 그 장학금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교육부하고도 얘길 해야하는 문제니, 나중에 구체화되면 알려줄게. 네 도움이 필요하면 그것도 그때 요청하고.”
양혜숙이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는 우리가 뒤에서 이쪽을 맡아서 밀어줄 테니까. 너는 지금 해온 것처럼 계속 흔들리지 말고 직진만 했으면 좋겠어.”
양혜숙이 말했다.
“그러라고 저를 그때 국가 CTO로 보내버린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니콜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세 분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는 정말 좋은 스승들을 많이 뒀어요.”
“알면 됐다. 이제 그만 가봐. 가서 다음 연구 해야지.”
반두일이 장난스럽게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
의원회관에서 다시 본회의실을 지나서 국회 정문으로 나오는 길.
“앗……."
의사당 입구에서 류영준은 그의 앞으로 몰려드는 어마어마한 인파를 목격했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다.
류영준의 공청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그냥 호기심에 찾아온 평범한 시민들일 리가 없다.
류영준이 의원회관에서 업계의 선배들을 만나는 동안에도 그들은 이곳에서 줄곧 기다려왔다.
“류 박사님! 식물인간도 깨울 수 있나요?”
“제 딸이 하반신 마비인데 죽은 사람도 깨울 수 있으면 이런 것도 되지요?”
“저희 남편이 교통 사고를 당해서 뇌를 다쳤는데, 기억도 많이 잃어버리고……."
“가족 중에 혼수 상태인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것도 치료할 수 있겠죠?”
경비들이 앞에서 스크린을 치고 사람들을 막아내는 와중에도 그들은 손을 뻗어가며 아우성을 쳤다.
“잠깐만요! 류 박사님!
“류 박사님 하나만 알려주세요 제발!”
그 와중에는 절박한 심정에 경비들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막지 마! 우리가 뭐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잖아!”
“얘기만 좀 하자고! 제발! 류 박사님! 잠깐이면 됩니다.”
“전신 마비 환자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다이빙 하다가 다쳤는데……."
"......."
류영준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류영준의 뇌사 상태의 회복 실험은 상당한 파란을 낳았다.
지금 이 현장은 약과다. 세계 곳곳에서 이 충격적인 기술에 주목하고 있었다.
기존에도 췌장암이나 알츠하이머나 에이즈 같은 막강한 질병들을 물리쳐왔지만 이번 연구는 그들과 다르다.
그동안은 ‘환자를 치료’한 것이었지만 이번엔 ‘사망자를 부활’시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로잘린 같은 전지적인 시점에서 볼 때는, 알츠하이머 치료와 뇌사자 치료가 본질적으로 별반 다를 게 없다.
전자는 대뇌 피질의 신경 재건, 후자는 뇌간의 신경 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을 뿐이지, 뇌신경 세포의 분화와 특정한 기능을 하는 조직의 재구성이란 맥락은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눈에는 아예 차원이 다른,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기적적인 일처럼 비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원리를 알고 실험을 수행한 과학자들의 눈에도 신비하게 보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하반신 마비 같은 것도 고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척추신경과 뇌간의 자율신경은 전혀 다른 조직이지만,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기술이라면 혹시? 하는 기대를 갖는 거다.
“몇 개는 이번 기술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제가 우리 딸애 걷게만 해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쪽으로 가시죠.”
김철권이 류영준에게 말했다. 그는 미리 확보해둔 길로 류영준을 데리고 이동했다.
길 끝에 리무진 한 대가 보였다.
철컥.
유송미 비서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안쪽에서 미소 짓고 있는 생명창조 팀원들과 카펜티어가 보였다.
“후우.”
리무진에 올라탄 류영준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카펜티어가 말했다.
“여러분이 다 해주신 실험을 발표만 한 것 뿐인데요.”
“이제 중요한 고비들을 다 넘었고 마침내 ‘임상시험’만 남았군요.”
“아직 가결된 건 아닙니다.”
“저녁 식사 후에 법안 가결 투표한다고 하니 않았나요?”
“네."
“이 분위기면 될 겁니다.”
카펜티어가 말했다.
그는 목걸이의 로켓을 꺼내서 왼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로켓에는 젊은 여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사진은 누군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제 아내 될 사람이었습니다.”
카펜티어는 창밖으로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한 3, 40년 전이었으면 저도 저기에 있었겠군요.”
***
류영준은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또 예상 밖의 손님을 마주쳤다.
“동욱이?”
이번에는 이름을 기억했다.
양동욱은 우물쭈물하며 류영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원이는 어디 갔니?”
“그게……. 밖에 뭐 사러……."
“오늘도 우리 집 비었니?”
“방금 전까지는요.”
“그래.”
류영준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잘 놀다가.”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양동욱이 뒤에서 붙잡았다.
“저기 선배님!”
그가 외쳤다.
"응?"
“저 줄기세포 학과로 들어갔어요. 그쪽 전공이에요.”
양동욱이 말했다.
“그리고 졸업하면 에이젠바이오에 입사지원 쓸 거예요.”
“우리는 연구직은 석사 이상만 받는데.”
“박사까지 하고 나서요!”
양동욱이 황급히 덧붙였다.
류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회사 업무 강도 많이 빡세다. 오늘 공청회에서 발표한 14일 실험 영상 봤니?”
“네……."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은 수준이니 각오해."
"......."
양동욱은 수줍게 웃었다.
마침 TV에서 공청회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 : 류영준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류영준은 방으로 들어갔다.
로잘린이 그의 몸에서 쏙 튀어나왔다.
로잘린은 창가로 포르르 걸어가더니 우뚝 멈추고 류영준을 돌아보았다.
-오늘 인상 깊었습니다.
“뭐가?”
-당신이나 닥터 레프, 송지현 박사나 양혜숙 의원, 니콜라스와 반두일 모두 과학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달라서요.
“그럴 수 있지.”
-사실 제 눈엔 뇌사자의 뇌간을 회복시키는 것보다도 이런 게 더욱 흥미롭군요.
로잘린이 말했다.
-인간이란 동물은 정말 변칙적입니다.
“그래?”
류영준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류영준.
로잘린이 그의 곁으로 폴짝 올라왔다.
-저는 병원체의 DNA를 제 유전체 내에 삽입해서 완전히 흡수할 겁니다.
"......."
류영준은 찜찜한 표정이 되었다.
“그거 괜찮은 거야? 안전해?”
-모릅니다.
“몰라?”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그럼 하지 마. 왜 위험한 걸 하려고 그래?”
-저도 이대로 있을 수 없어서요.
로잘린이 말했다.
“뭐가?”
로잘린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신장에서 제가 홍채를 만들었던 것 기억하시죠?
로잘린은 세포들을 모아서 류영준의 눈앞에 매우 얇은 비닐 같은 것을 만들었다.
홍채 무늬를 재현한 세포 백만 개의 표피 조직이다.
-인간을 계속 보면서 느낀 겁니다. 그 대악당 같은 김현택도 살려내려는 당신과, 과학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당신의 책임감과 당신을 보는 양동욱의 동경심도 저는 느꼈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인간이 과학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닥터 레프는 얘기했지만, 지금 저는 인간을 더 긍정하고 싶어요.
"......."
-그리고 저는 몸을 가지고 싶습니다.
로잘린이 홍채 세포 덩어리를 흡수하며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