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6화. < 뇌사 (1) > (92/301)

236화.  < 뇌사 (1) >

지난 2주간의 전임상 기록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황홀한 실험.’

비글이 고개를 들고 끙끙거렸던날에 천지명이 느낀 감상이었다.

직접 실험을 끝까지 수행한 생명창조 팀과 카펜티어, 송지현과 셀리제너의 세포 실험 전문가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놀라운 성과나 탁월한 결과 같은 게 아니라, 인류가 생명의 비밀과 관련된 어떤 선을 건드리는 일이다.

“후두엽 바깥의 두개골 일부를 제거하고 미세 주사기로 클로로포름과 에탄올을 주입해서 전뇌 기능을 모두 소실시킨 후, 심폐기능 유지 장치를 부착하여 다시 심장을 뛰게 하고 생명을 지속시킨 비글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우리는 비글의 체세포를 채취해서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비글의 제4 뇌실하대 아래에 약 10만 개만큼 주입한 다음, 도파민과 에피네프린, 그리고 ATP, 또는 포도당을 넣어서 줄기세포를 분화시켰습니다. 제4 뇌실하대는 본래 뇌간의 손상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이곳에 자리잡은 줄기세포는 뇌간을 구성하는 뉴런으로 분화하게 됩니다.”

류영준은 슬라이드를 넘겼다.

지난 2주간 비글의 모든 것은 비디오 테잎으로 녹화되었다.

단 1초도 빠지지 않았다. 단순히 외관만 찍은 게 아니라 뇌파 기록과 fMRI 자료도 함께다. 류영준은 그들 각각을 세 개의 화면에 나누어 띄웠다.

“fMRI는 혈류량을 측정하는 자기공명영상 기계입니다. 일반적으로 뇌에서 혈류량이 증가하면 그 위치의 신경세포들이 흥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기계로 뇌 혈류 흐름을 측정했습니다.”

동영상에서는 이제 비글의 뇌 하단부에 붉은 색의 혈류 흐름이 잡혔다.

“비글의 심장은 생명유지장치로 계속 박동하는 중이며, 뇌실하대에 주입된 줄기세포가 도파민에 의해 분화하면서 K11 시그널을 생성해 혈관을 확장시키고 심장에서 올라오는 뇌동맥의 지류를 타고 뇌실하대로 혈액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류영준이 설명했다.

“그 결과입니다.”

류영준은 다른 화면에 떠있는 뇌파 기록을 가리켰다.

아직 진폭이 약하지만 뇌파의 일종인 델타파가 잡혀있었다.

“이제 영상을 가속해보겠습니다.”

류영준은 약 천 배 속도로 영상을 돌렸다.

그 와중에 사람 질리게 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무려 천 배 속도의 재생 속에서도 영상 내에 송지현이나 생명창조 팀 과학자들이 끊이지 않고 화면에 잡혔던 것이다.

그들이 이 실험을 하는 데 있어 거의 일상이 없는 수준으로 매진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철컥.

류영준이 중간에 테이프를 멈추었다.

“비글은 계속 누워있지만 fMRI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이십니까?”

류영준이 fMRI 영상을 가리켰다.

“연수(medulla)로 흐르는 혈류량이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다가 6시간 째부터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연수는 척수의 연장부분으로, 뇌의 최하단에 자리잡고 있는 기관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모든 상행성 신경로와 하행성 신경로가 내포되어 있다. 12 쌍의 뇌신경 중에서 시신경 등을 제외하면 무려 열 개의 말초 신경이 연수를 통한다.

“이 연수라는 기관이 중요한 이유는 호흡, 심박, 위장작용 등을 조절하는 자율신경 핵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기관이 살아있는 생물은 스스로 심박과 호흡과 소화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생물의 근간이 되는 기능이며, 죽음에서 가장 마지막 순간에 소실되는 기능이죠.”

류영준이 말했다.

“우리는 이처럼 혈류량이 몰리는시점에 연수의 기능 회복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 위치의 신경 세포들이 살아나는지 보기 위해 세포들을 염색하는 약품을 두 종류 투여했습니다. 빨간색은 프로피듐 아이오다이드 (Propidium Iodide)라는 물질인데 죽은 세포를 염색하고, 파란색은 라이브 셀 다피(Live cell DAPI) 라는 염색약인데 살아있는 세포를 염색합니다. 형광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죠. 이제 그 녹화 자료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은 염색약을 투여한 직후 44시간 촬영된 영상을 틀었다.

연수의 최하단부에 몹시 미약한 양의 파란색 세포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위의 99퍼센트 지역은 전부 빨간색이다.

“이 비글의 연수는 이미 죽어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시되는 것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래에서 파란색 세포들이 늘어나면서 상단부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미경의 배율은 굉장히 높았고, 파란색 세포들의 핵 외부 싸이토졸(Cytosol)의 모양까지 보였다.

그들은 영상 속 시간으로 이틀에 걸쳐서 마치 스트링 치즈처럼 늘어났다. 공격적으로 상단부를 향해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와……."

시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반대측 발언을 위해 초빙된 전문가들까지 감탄을 터뜨렸다.

신비 현상을 과학으로 읽는 기분이다.

그리고 38시간째가 되는 시점.

삑.

연수의 신경 세포들 중 하나에서 염색된 약품의 파란색 형광 세기가 맹렬하게 올라갔다.

고장난 엔진에 불이 들어왔다.

성장한 연수의 자율신경 중 하나의 핵이 마침내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며 심장의 근육 세포인 ‘동방결절(sinoauricular node/SA node, 洞房結節)’과 통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동방결절은 심장의 지방자치단체 같은 것이다. 이들은 뇌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아서 심장 박동을 조절한다.

그동안은 정부나 다름없는 연수가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방결절도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 기계가 심장에 전기 신호를 쏘아서 뛰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연수에 수립된 새 정부가 심장의 지자체와 연결된 것이다.

동방결절은 연수에서 보내는 생물학적 신호를 받아서 심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류영준은 동영상의 재생 속도를 다시 일반값으로 되돌렸다.

카펜티어 박사가 천천히 비글의 심박 유지기를 제거했다.

삑. 삑. 삑.

그러나 비글의 모니터에 떠있는 심전도는 여전히 일정한 심박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이 비글은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에 들어서는 중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뇌사 상태, 사망 아니다.]

[이제는 뇌사자를 부활시킬 수 있어.]

[에이젠바이오, 뇌사자를 식물인간 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성공.]

실시간으로 뉴스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점점 세계가 시끄러워져가는 가운데서도 공청회는 계속되었다.

류영준은 실험 영상을 계속 재생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연수의 기능 회복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뇌간을 구성하는 나머지 핵심 소기관들인 교(pons)와 중뇌(midbrain)에도 파란색으로 염색된 신경 세포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이 세포들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에는 뇌간의 위쪽에 있는 간뇌와 후방의 소뇌의 접합부를 점령하고 연결지었다.

신비롭게도, 뇌간의 기능이 회복되자 대뇌 전두엽까지 신경 신호들이 강렬하게 발산되기 시작했다. 그건 대뇌의 잠든 뇌세포들까지 깨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약 9일차에 접어든 날.

“와아아!”

국회의 방청객들 사이에서 경악 섞인 탄성이 쏟아졌다.

영상 속의 실험 비글이 눈을 뜬 것이다.

뇌간의 기능 소실이라는 사망 상태를 겪었던 비글이 살아났다.

그 불쌍한 동물은 끙끙 소릴 내면서 천지명의 손가락 끝을 핥았다.

"......."

홍정호를 비롯한 반대측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죽음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예를 들어서 심장의 동방 결절에 문제가 생긴 환자는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아 몇 분 내에 사망에 이르지만, 현대 의학은 좌쇄골 아래에 외과 수술로 인공 박동 조율기를 이식해서 살릴 수 있습니다.”

류영준은 인공 박동 조율기의 작동 원리와 수술법이 그려진 모식도를 띄웠다.

“이 기계는 내장된 배터리를 가지고 심장에 와이어를 연결해서 심장을 뛰게 합니다. 고장난 동방 결절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이고, 인공 박동 조율기를 교체할 필요없이 10년에서 15년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과거에는 심장의 동방 결절의 기능 상실이 심폐사의 일종으로 이해되었고, 이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절에 손상이 온 환자는 심장이 뛰지 않으니 사망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류영준은 자료를 덮었다.

“어느 지점부터 죽음으로 봐야하는가는 기술 수준에 달려있고, 과학이 이해한 수준에 달려있습니다. 죽음의 정의가 바뀐다고 해서, 죽음에서 뇌사라는 개념이 사라진다고 해서 실제로 바뀌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다만, 우리가 인간과 세계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죠. 그게 과학의 역할입니다. 이제 마지막 시점을 보시죠.”

류영준은 녹화된 자료를 다시 빨리 감았다.

13일째가 되는 시점에 비글은 모든 생명유지장치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정맥으로 투여하던 수액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14일째.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진 못하지만 비글은 죽처럼 개어놓은 사료를 먹었다.

“이상입니다. 같은 실험이 총 7마리의 비글에서 반복되었으며 어떤 부작용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류영준은 발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방청석은 얼마 동안 술렁였고, 매스컴은 비글이 살아나서 사료를 핥는 모습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색다른 공청회에 꽤 놀란 표정이었다.

생물학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토론.

비록 디테일은 별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도는 파악했다.

“반대 측 발언해주십시오.”

의장이 토론을 진행시켰다.

“저는……."

반대측에서 마이크를 잡은 홍정호가 입술을 달싹였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런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뇌사자는 오래 전부터 의학적으로 사망자로 판정되었습니다. 심장은 생명유지장치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박동할 뿐이지 생물학적으로 그 사람은 죽는 거라고……."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동안 외과의들은 뇌사자의 심전도 그래프가 피크를 만들고 몸이 따뜻하고 호흡기로 폐를 펌핑하고 있을 때에 치료를 중지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심전도에서 삐 소리와 함께 직선을 그리는 ‘심폐사’와 달리, 뇌사자는 사망 진단이 내려질 때 아직도 심전도 그래프가 유지되고 있다.

정말이지 겉으로만 보면 그냥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뇌에서 어떤 전기신호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외엔 사망의 징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의사들은 호흡기를 제거하고 개복 수술을 해서 장기를 꺼내고 다른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의사한테도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뇌사자가 사망자라는 의학적 소견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일이 지나 우연히 심전도가 멈춘 후에는 이미 장기들이 얼마간 손상되어 이식 수혜자에게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살아있는 상태였다면……."

의사들의 머릿속에는 끔찍한 상상이 지나고 있었다.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뇌사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었던 게 맞으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치료가 불가능한 것과, 치료를 중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홍정호가 말했다.

“의사들은 그동안 살인을 했……."

그는 울컥하는 기분에 입을 틀어막았다.

“의학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류영준이 그의 발언을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그 최선의 범위는 이제 조금 더 확장됐습니다. 우리는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수많은 장기이식 수요자들에게 인공장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이번 특별법의 가결이 필요합니다. 이 법안을 통과시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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