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 로잘린 (10) >
“뭐……."
송지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하시는 거예요!”
그녀가 소리치며 황급히 비글 앞으로 달려왔다.
“뭘 주사하시는 거예요? ATP?”
실패한 실험에는 새로운 변수를 추가하는 걸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
후에 인과관계 추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새크리파이스를 하려는 비글이었어요. 이러면 뇌를 열었을 때 특이 사항이 발견돼도 그게 본래 치료법 때문인지 아니면 ATP를 대량 주입했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
송지현의 말이 멈췄다.
모니터에 매우 약한 뇌파 시그널이 튀었기 때문이다.
“송 박사님이 짠 전략은 거의 다 맞았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다만 줄기세포가 새로 분화하면서 조직을 복구할 정도로 대량 분열하려면 많은 에너지원이 필요하죠. ATP는 분자적 에너지원으로, 세포생물학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케미컬이고요. 만약 포도당을 도파민과 함께 넣어준다면 파이루빅 애시드 (pyrubic acid)를 거쳐서 ATP를 자동으로 안전하게 생산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타이밍이 늦었으니 ATP를 직접 주입한 거예요.”
"......."
“지금 쓴 방법은 세포 내로 흡수되지 않은 ATP 잔량이 혈액과 조직에 남아서 산화적 환경을 유발할 수 있어 최선의 선택지는 아닙니다. 다음에는 도파민 주입 스텝에서 포도당을 1퍼센트 농도로 같이 넣는 게 좋겠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이럴 수가……."
뇌파 모니터에서는 델타파의 주기로 진폭이 제법 나오기 시작했다. 깊은 수면 상태일 때의 뇌파와 흡사한 패턴이다. 아직 파의 빈도와 개수가 적지만 순식간에 안정되어갔다.
“일반적인 델타파보다 못한 이유는 세포 분열 속도 때문에 그런 것이고, 내일 오후 쯤에는 저 비글 몸에서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해도 될 겁니다. PVS (Persistent Vegetative State, 식물인간) 상태에 가는 거죠. 인지기능 회복을 위해서 몇 개의 후속 조처가 필요할 겁니다.”
"......."
송지현은 죽은 비글의 뇌간이 재생되기 시작하는 기적을 지금 목격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보다도 류영준이 수행한 작업에 더욱 놀랐다.
어떻게 이게 되지?
이 사람은 어떻게 딱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모든 걸 꿰뚫어볼 수 있지?
지식의 양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문제를 파악하는 속도가 비정상적이다.
비글을 한번 쳐다보고 실험 방법에 대한 설명 한번 듣고.
그것만으로 주사기를 뒤통수에 꽂아버릴 정도로 이 실험의 모든 것에 확신이 생겼다는 말인가?
“……류 박사님은.”
송지현이 충격 속에서 간신히 입을 뗐다.
“정말 압도적이군요…….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그녀가 말했다.
“뭐, 저도 생명창조 부서에서 세포 수준의 분화와 줄기세포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으니까요.”
류영준이 웃으며 답했다.
“……. 류 박사님. 저는 과학자의 성공이라는 건 ‘잘 하는 것’에 달린 게 아니라, ‘못 하는 걸 견디는 것’에 달렸다고 배웠어요."
“어두컴컴한 방 안을 더듬거리면서 출구를 찾아 나아가는 일과 비슷한 거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맞아요……. 근데 가끔 류 박사님은 전통 과학의 맥락에 전혀 들어가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네요.”
그녀가 허탈한 듯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약간 열등감도 느끼고 질투도 나요.”
"......."
송지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는 오래 스터디하고 연구한 거라서 제가 모든 문제 해결을 주도적으로 할 줄 알았거든요.”
-어쩔 거예요. 기를 죽여버렸네.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류영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까. 그리고 천재랑 같은 시대를 사는 일반인이 아쉬워도 뭐 어쩌겠어요.”
송지현이 말했다.
“저 혼자 했으면 원인을 찾아내는 데 몇 주씩 걸렸을지도 몰라요. 류 박사님 덕이에요. 고마워요.”
“아, 아닙니다. 송박사님이 다 하신 건데요.”
송지현은 피식 웃더니 류영준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톡 쳤다.
“그럼요. 메인 아이디어와 기초 실험은 제가 짰으니 제가 거의 다 했죠. 제1 저자는 제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류 박사님도 ATP 부분을 알려주셨으니 저자로 넣어는 드리죠.”
류영준이 피식 웃었다.
“참 고맙군요. 근데 송 박사님, 이 실험 데이터, 제가 공청회에서 써도 되겠죠?”
류영준이 물었다.
“공청회요?”
“국회에서 할 것 같거든요."
***
“대체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아침 6시, 비글의 상태가 너무 궁금해서 세 시간 일찍 출근해버린 고순열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의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비글이 살아났다. 움직임은 없지만 뇌간에서 보여주는 뇌파는 살아있는 비글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fMRI로 측정된 뇌혈류 영상에서도 뇌간의 기능 회복이 확인되었다. 뇌실하대를 중심으로 뇌간에 피가 돌고 세포들이 신경학적인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이건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는 문자 그대로 ‘죽었다가 살아난’ 케이스다.
“오셨어요?”
송지현이 칫솔과 치약을 가지고 실험실에 들어섰다.
“어……. 뭐예요? 여기서 주무신 거……?”
고순열이 놀라서 물었다.
“밤 샜죠. 우리 비글이 회복되는 거 본다고.”
송지현이 회복된 뇌파 모니터를 보면서 생긋 웃었다. 고순열이 입을 쩍 벌렸다.
“미친……. 우리 진짜로 성공해 버린 건가요?”
“어제 밤 늦게 류 대표님이 오셔서 약간 도와주셨어요.”
철컥!
연구실 문이 열렸다. 정혜림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이 시간에 왜 두 명이나 있지?”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리 와서 이거나 좀 봐요.”
고순열이 뇌파 모니터를 가리켰다. 정혜림도 방금 전 고순열처럼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어제 거의 실패하는 분위기였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밤에 남아있을걸 그댔네."
“우리 퇴근한 후에 대표님이 와서 슬쩍 만지고 갔대요.”
고순열이 말했다.
“대박. 대표님 그 시간에도 오는구나. 진짜 소름이네. 혹시 회사에서 밤 새셨대요?”
“아뇨. 늦게 다시 나가셨어요. 밤샘은 저 혼자.”
송지현이 말했다.
“고생하셨네요.”
“뇌파 회복되는 거 데이터 수집하면서 쉬엄쉬엄 했어요.”
“정말. 데이터 정리도 다 해놓으셨네.”
정혜림이 컴퓨터에 쌓여있는 파일들을 보며 말했다.
“류 대표님이 공청회에 쓰신대서요.”
“공청회요?”
***
국회 공청회는 그로부터 약 2주 후에 열렸다.
그동안 에이젠바이오는 뇌사자의 뇌간 기능 회복 프로젝트에 대해서 특별히 실험 전략 같은 걸 발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류영준의 국회 출석과 함께 저절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류영준 특별법이라는 이름 자체도 흥미로운데, 이례적이게도 법안의 종류가 임상시험법에 관한 것인데다가 국회 공청회까지 한다.
이 상황은 그 자체로 세간의 주목을 크게 끌었기 때문에, 이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것이다.
[류영준, 이제 죽은 사람의 부활에도 도전]
실제 실험의 방향과는 약간 다른 얘기였지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기사들이 사방에 쏟아져나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생물학과 의학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색적인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국회 입법 공청회는 일반인과 기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 그동안은 다들 무관심해서, 정치 전문 기자들 정도만 드나들던 공청회지만 이번에는 일반 시민들도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에이젠바이오와 셀리제너의 관계자들도 있었다.
“좀 떨리네요.”
박동현이 천지명에게 말했다.
“잘 하실 거야.”
천지명은 가방에서 감자칩을 꺼냈다.
“팝콘 대신인데 좀 먹을래?”
“……. 아니 뭐 공연 보러 오셨습니까?”
“UFC 같은 거지.”
“콜라도 있나요?”
박동현이 물었다.
공청회는 사안이 사안인만큼 전문가들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반대 측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의장이 말했다.
반대 토론 측에는 세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는데, 뇌사 회복 프로젝트를 우려하는 뇌과학 전문의와 윤리법의학자들이었다.
뇌과학에 정통한 과학자이자 흉부외과 교수인 홍정호 박사가 마이크를 들었다.
“뇌간 기능의 소실은 사망 상태와 동의어입니다.”
그가 말했다.
“뇌사가 오더라도 생명유지장치를 걸어서 심폐기능을 유지시켜주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그건 의학적으로는 사실이 아닙니다. 생명유지장치를 연결해도 대부분의 경우 2주 안에 심폐사가 옵니다. 이번에 에이젠바이오가 피험자로 지정한 김현택의 경우처럼 장기간 생명유지에 성공하는 케이스도 드물게 있지만, 그들 중에 다시 살아난 케이스는 전혀 없습니다.”
홍정호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류영준을 힐끔 살폈다.
조금도 긴장하거나 걱정하는 기색 없이 편안한 표정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시축을 했던 줄리아노 핀토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그 사람은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환자였습니다. 근데 ‘시축’을 어떻게 했을까요?”
홍정호가 물었다.
“그는 머리에 뇌파 탐지기를 쓰고, 그것과 연결된 외골격 로봇(Exo-skeleton)을 하반신에 착용해서 뇌파로 자기 다리를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공을 찼다.’는 전기자극을 다시 뇌로 받아서 그 사실을 인식할 수도 있었습니다.”
홍정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사람의 하반신의 운동신경이 살아났다고 얘기하진 않습니다. 여전히 생물학적으로 다리는 마비되어있고, 그걸 움직인 건 외골격 로봇이라는 기계가 벌인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것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뇌사자는 생명유지장치를 걸어놓았어도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사람입니다. 기계로 혈액을 계속 돌게하고 포도당과 나트륨을 주입해서 삼투압을 유지시켜놓아서 더 이상 세포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일종의 방부 처리를 해놓은 것뿐입니다. 콧줄로 음식물을 투여해도 위장은 소화하지 못하고,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겁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계에 의한 심폐 기능 유지 역시 결국 마비되고, 체온은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그걸 지켜보는 것은 의사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뇌사자를 치료 대상으로 보고 생명유지를 부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뇌사자는 식물인간과 달리 사망이 명백하게 확인되는 인물이에요.”
홍정호가 말했다.
“이런 사망자를 회복시키겠다는 시도는 명백하게 의료법 위반이며 망자에 대한 기만 행위입니다. 게다가 그걸 위해서 특정 개인에게만 그 연구를 독점적으로 허용해준다는 것은 연구의 공정성에 위배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특별법안은 절대 통과되어선 안 됩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잇달아 터졌다.
양혜숙은 슬며시 미소지으며 류영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류영준이 마이크를 들었다.
“우선 이 법안은 에이젠바이오에게 독점적으로 권리를 주는 게 아니라, 에이젠바이오가 본래 진행코자 했던 ‘뇌사자의 뇌간 기능 회복 연구’의 임상적 범위를 특정 기간과 특정 인물로 제한하는 법안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홍 박사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뇌사자가 사망자이며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 그렇게 알려져있었지요, 기존 의학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사망 상태’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정의한 적이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에 있는 가장 신비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뇌사자에게 매우 미약하지만 아직 생명력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홍정호가 물었다.
“훨씬 더 사망임이 명백한 시점부터 시작해봅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작년에 예일대의 뇌 과학자인 네나드 세스탄(Nenad Sestan) 연구팀이 수행한 실험입니다. 연구팀은 도축된 돼지의 뇌를 분리한 다음 그 뇌세포 일부를 회복시켰습니다.”
“엇, 저 논문.”
셀리제너 직원들 사이에서 송지현이 깜짝 놀랐다.
류영준이 비글 실험을 처음 성공시켰던 날 밤에 송지현이 읽고 있었던 논문이다.
“도살장에서 도축한지 네 시간 이내인 돼지의 뇌를 100에서 300개 정도 구해서 실험했는데, 놀라운 기술로 뇌의 혈액순환을 유지하며 뇌세포의 사멸을 일정 부분 방어해낸 논문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연구진은 브레인엑스(BrainEx)라고 명명된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루프형 튜브와 펌프, 붉은 액체가 흐르는 작은 저수조로 구성되어있다.
튜브를 펌프에 연결한 다음, 컴퓨터로 계산된 심장의 박동 리듬을 흉내낸 속도와 압력으로, 막 추출한 돼지의 뇌에 혈액을 공급했다.
“그 결과 수십 억 개의 개별 세포들에서 건강한 신경 활동이 발견되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여기서 추가로 또 하나의 신비한 현상이 발견됐는데, 이미 죽었다고 판단되었던 세포들도 일부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뇌세포들은 이후 장기간 동안 거의 사멸하지 않았습니다.”
"......."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뇌의 죽음은 훨씬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생명유지장치를 연결해서 관리해준다면 말입니다.”
양혜숙의 비서가 본회의의 자료 제시용 스크린을 켰다.
“이제 뇌간의 기능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에이젠바이오와 셀리제너의 전임상 실험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