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 로잘린 (5) >
“어……. 세상에.”
김현택의 아내가 들고 있던 수건과 칫솔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황급히 류영준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김현택 아내 되는 이미숙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류영준에게 고개를 꾸뻑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럼 류 박사님, 보호자분. 저는 이만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간호사가 바깥으로 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확인한 이미숙은 조심스럽게 류영준에게 물었다.
“근데 류 대표님 같이 바쁘신 분이 이 사람한테는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류영준은 그녀가 뭘 기대하는지 알 것 같았다.
“뇌사 상태면 사망 판정까지 나왔을 텐데, 반년 가까이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지키고 계시는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 이 사람이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가정적인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어요.”
이미숙이 말했다.
“가족들한테 미움 받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나쁜 짓하는 건 집에서 얘길 잘 안 했죠. 그 때문에 저도 탄저균 무기며 셀리큐어며 하는 것들은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러셨군요.”
“송 박사님한테는 한번 찾아뵙고 제가 사과 말씀을 여러 번 드렸어요. 류 대표님한테도 찾아갔어야 했는데.”
이미숙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류 대표님.”
“아닙니다. 괜찮아요. 저한테 직접 피해 주신 것도 딱히 없는데요.”
류영준은 김현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생명유지장치를 반 년째 달고 계셨을 듯한데 입원 치료비는 많이 안 나오나요?”
그가 물었다.
“어……. 꽤 많이 나오긴 하죠. 하지만 보험 되는 것도 조금 있고.”
이미숙은 쓰게 웃었다.
“집도 팔고, 노후 준비하려고 모아놓았던 돈도 좀 있어서 괜찮아요.”
"......."
“어머, 손님인데 제가 멍하니 있었네요. 요 아래 편의점 가서 음료라도 좀 사올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 괜찮습니다.”
“아유, 조금만 기다려요.”
이미숙은 후다닥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류영준은 그 뒷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메시지창의 버튼을 눌렀다.
[동기화 모드 : 뇌사]
“으윽.......”
류영준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마치 거대한 우주 공간 속으로 영혼이 통째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누군가 머릿속을 쥐어짜는 것 같다.
“이럴 수가……."
로잘린이 이번에 사용한 동기화 모드는 여태까지 쓴 것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로잘린의 이성과 완전히 접합한 류영준의 시각에는 김현택이 조립 로봇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김현택은 간, 폐와 췌도, 장 일부가 크게 손상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뇌다.
대뇌에서는 그 어떤 전기 신호도 발생하지 않았다. 완전히 죽은 것이다.
뇌간을 구성하는 네 개의 조직, 간뇌와 중간뇌, 다리뇌와 숨뇌도 마찬가지다.
뇌간에는 시상(視床)하부가 포함돼있다. 내장과 혈관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최고 중추 신경이다. 또한 자율 신경계 및 내사성 내분비 기능을 지배하기도 한다.
시상 하부가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이 경우 체온 조절과 내분비 대사, 소화기 활동, 심장 기능 등이 모두 상실된다.
지금 이 환자는 생명유지장치에 의해서 강제로 맥박이 뛰고 있고 혈관으로 공급되는 수액에 의해서 항상성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중뇌의 네 개의 소구는 아직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고장 난 자동차의 엔진 부품 중에서도 살려낼 만한 게 있는 것과 같다.
중간뇌로 이어지는 팽융부의 다리뇌와 척수로 넘어가는 숨뇌는 모두 죽었다.
배쪽의 원심성 신경 다발 중에는 아직 살려볼 만한 게 몇 개 있으나 등쪽의 뇌신경 핵은 거의 가망이 없다.
그리고 로잘린의 시각은 곧 교뇌와 연수 등쪽의 소뇌 사이 공간에서 멈추었다.
-제 4 뇌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뇌실하대 공간에 이미 죽은 성체신경세포가 보였다.
이 공간의 혈류량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만약 여기에 신경 세포를 주입하고…….
-삑!
류영준의 눈앞에 김현택이 누워있는 침대가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뇌 속의 각 조직을 유영하던 미시세계의 통찰에서 빠져나왔다.
-동기화 모드 종료.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있었다.
“뭐야?”
류영준은 로잘린의 상태창을 열었다.
피트니스 : 8.5
아직 피트니스는 많이 남아있었다.
“로잘린?”
류영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로잘린은 김현택의 침대를 가운데 두고 류영준의 맞은편에 서있었다.
“동기화 모드가 꺼졌어.”
-제가 끈 겁니다.
“왜?"
-재밌는 걸 하나 발견했거든요.
“재밌는 거?”
-.......
로잘린은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잠깐 생각을 골랐다.
-좋아요, 류영준. 우리 이 일을 하기 전에 얘길 좀 해봐요.
“무슨 얘기?”
-저는 김현택은 과학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은 셀리큐어를 없앴고 탄저균 생물무기를 만들어서 팔던 사람이에요.
“맞아.”
-우리가 이 사람을 살려준다면, 어딘가에 가서 또 과학을 할 거예요. 에이젠으로 복귀하진 못하더라도, 이 지역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 가서라도 대학 교수 같은 걸 하겠죠. 이 정도 되는 인물이면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자기가 저지른 짓들에 처벌을 받은 후에 말이야. 교수직을 하지 못하더라도 생물학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거나 하겠지.”
-그게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로잘린. 닥터 레프 때문에 혼란스럽구나?”
-……솔직히 그래요.
“하지만 난 의사가 아냐. 김현택이라는 한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아니고. 난 뇌사라는 병증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찾는 과학자야. 그리고 그 치료법은 김현택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뇌사자들을 구할 수 있어.”
-바로 그 포인트가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로잘린이 끼어들었다.
-당신의 과학은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요. 김현택 같은 사람도 살아나서 다시 과학을 할 수 있게 해준단 말이에요. 닥터레프가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뭔가 안전 장치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김현택이 일어나서 다시 셀리큐어 같은 약을 없애버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로잘린이 물었다.
류영준은 로잘린의 생각을 이해했다.
“장담할 수 없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나은 기술의 개발을 미룰 순 없어.”
류영준이 답했다.
“김현택이 일어나서 또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면 그걸 막는 것도 과학이 될 거야.”
로잘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저는 잘 모르겠어요.
로잘린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옛날에 녹내장 치료제를 처음 개발했을 때, 줄기세포 상태로 안구 내에 접종되면 어그리게이션이 일어나서 줄기세포가 자기 사멸되도록 하는 메카니즘을 우리가 썼죠. 기억하세요?
“그럼.”
-그거랑 비슷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셀리큐어를 뺏는다거나,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려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연구 자료를 훔친다거나, 그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한테 제약을 주는 기술 같은 거요.
류영준은 로잘린의 생각을 이해했다.
로잘린은 인간하고 다르다. 그는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생물이다.
모든 가능성을 직접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만족하는 생물이다.
사람을 믿는다거나, 더 나은 법이 발달될 거라거나 하는 모호한 희망에 기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장치는 어렵지.”
-그렇다면 저는 김현택을 살리는 데 약간 회의적이에요.
로잘린이 말했다.
-엘시의 말처럼 인간의 과학은 몸집만 커진 사춘기 소년 같은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김현택이 일어나서 또 ‘실수’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고, 실수를 예방할 장치도 없지만 당신은 김현택을 살려내는 데 확신이 있는 거예요?
“그래.”
류영준이 딱 잘라 말했다.
“네가 지적하는 것들이 뭔지 다 알겠어. 그리고 합리적인 지적이야. 닥터 레프가 문제 제기한 것에 대해 내가 마땅한 답을 못 찾은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그래도 나는 김현택을 살려야겠어. 나는 그게 옳다는 걸 알거든.”
-.......
“김현택이 깨어나서 다른 나쁜 짓을 저지른다면, 그건 그 나쁜 짓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사회에 완비되지 않은 게 문제인 거야. 우리가 김현택을 살려낸 게 문제가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류영준이 말했다.
“난 김현택을 살려내서, 이 사람의 생명유지를 위해 집도 팔아버리고 반 년 넘게 붙들고 있는 저 가족들을 도와줄 거야. 그리고 김현택이 법원에서 생물 무기 개발과 셀리큐어를 없애버리려 한 건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할 거야.”
류영준이 말했다.
“내 생각엔 그게 올바른 순서야."
-.......
로잘린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둘은 김현택의 침대를 가운데 두고 잠깐 서로를 쏘아보았다.
-좋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솔직히 백 퍼센트 이해되진 않지만 어떤 맘인지는 알겠어요. 받아들이죠.
로잘린은 김현택의 옆으로 다가갔다.
-류영준. 저한테는요. 사실 과학이든 윤리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신장에서 300만 명이 수용돼있다거나 김현택이 셀리큐어를 없앴다는 것도 저한텐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로잘린이 말했다.
-제가 그걸 신경 쓴 이유는 당신이 신경 썼던 것이기 때문일 뿐이에요. 저한테는 당신이 세계 그 자체거든요. 저한테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보다 당신이 더 중요해요.
[동기화 모드 작동]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당신이 다치거나 손해를 보지만 않으면 저는 당신 뜻대로 할 거예요.
로잘린은 김현택의 제4 뇌실의 뇌실하대로 이동했다.
-여기서 제가 아까 재밌는 걸 발견했다고 했죠?
로잘린이 물었다.
“뭔데?”
-제가 파괴했던 병원체의 파편이에요.
“거기 들어가 있어?”
-완전히 불활성화된 상태예요. 어떤 움직임도 없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이제 죽은 거라고 얘기하긴 좀 어렵군요.
“완전히 파괴했다며?”
-맞아요. 근데 ‘죽었다’는 개념 자체를 우리는 파헤치는 중이잖아요?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데 여기다 쓸 순 없죠.
“그렇지.”
-이 자리에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분화를 촉진하면 뇌간을 재생할 수도 있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때 이 병원체의 파편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장담하기 어렵군요.
***
“종교 단체랑 충돌할 가능성도 있을까요?”
천지명이 말했다.
“송 박사님. 법의학적으로 뇌사자가 사망자라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되지 않습니까?”
“그 반대죠. 회복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김현택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 거죠.”
송지현이 말했다.
“지금은 뇌사를 회복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뇌사를 사망으로 진단하는 거예요. 하지만 회복시킬 수 있다면 사망 진단의 기준이 더 정교해지겠죠.”
"으음......."
“그럼 우리가 뇌사자 김현택을 살려내는 게, 기존에 뇌사자의 호흡기를 제거하고 장기를 적출하던 의사들이나, 그 장기를 이식 받은 환자들한테 상당한 심리적인 압박을 줄 수도 있겠군요.”
정혜림이 말했다.
“이거 진짜 괜찮을지……."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린 옳은 걸 하는 거예요. 여러분. 과학은 단순히 문명의 발달과 편리를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에요.”
송지현이 말했다.
“이런 말 아세요? ‘과학은 우리가 세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과학은 일상과 분리될 수 없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가 한 말이에요.”
“대표님요?”
“아니에요!”
송지현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과학자예요. 그 사람은 과학이란 게 문명 발달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 자체라고 생각을 했어요. 당연히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더 정확해질 필요가 있어요. 만약 뇌사자가 치밀한 생물학의 어느 지점에서 ‘사망자’가 아니라면.”
송지현이 말했다.
“어떤 압력과 저항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연구을 관철시켜야죠. 그게 과학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