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7화. < 로잘린 (2) > (83/301)

227화.  < 로잘린 (2) >

“뭐…….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류영준이 당황해서 물었다.

“로잘린이 바이러스라고요? 로잘린 신드롬? 그런 병은 없습니다.”

“병이라고 한 적 없어요. 신드롬은 의학에서는 병적 상태의 모든 징후를 얘기하지만, 유전학에서는 ‘유전자 발현의 모든 조합’을 얘기하는 거죠.”

엘시가 말했다.

“당신의 몸에서 로잘린의 천재적인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당신의 지능은 인간을 점점 초월해가고, 로잘린의 힘으로 말미암아 생물계를 내려다볼 수 있었겠죠. 그걸 일컫는 용어로 로잘린 신드롬이라고 명명한 겁니다. 내가 처음 로잘린을 발견했을 때 임의로 지은 이름이죠.”

"......."

잠깐 침묵이 흘렀다.

류영준은 로잘린을 힐끔 쳐다보았다. 로잘린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엘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시. 로잘린은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뭐, 우리가 아는 바이러스랑 비교하면 당연히 아니겠죠. 로잘린은 그보다 훨씬 고등한 존재니까요.”

엘시가 말했다.

“하지만 류 박사님. 잘 생각해보세요. 생물계에서 숙주를 떠나서 생존할 수 없는 생물체. 숙주의 영양과 에너지원을 자신의 번식에 사용하는 생물체. 그리고 가장 미시적인 단계로서 단세포 이하의 존재이며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걸쳐있는 존재. 이런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유기물이 무엇인가요?”

“지금 지구상에 있는 생물의 분류군에 로잘린을 집어넣는다면 로잘린이 들어갈 위치는 ‘바이러스’예요.”

“하지만 아닌 걸 아시잖아요.”

“물론 아니죠. 제 말은, 로잘린은 차세대의 최초의 생물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엘시가 말했다.

인간은 DNA상에서 다른 인간과 99.9%만큼 유사하다.

침팬지하고는 98% 이상, 고양이하곤 90% 유사하다.

초파리나 바나나하고도 60%는 유사하고 심지어는 아예 계(Kingdom) 단위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생물인 박테리아하고도 공유하는 유전자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모든 생물체가 친척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구상에 발생한 최초의 어떤 원시 세포의 공통 자손이다. 수십억 년 동안 서로 다르게 진화해와서, 아주 멀어진 친척들이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명백한 ‘혈연’이다.

하지만 로잘린은 다르다.

로잘린은 그 다음 세대의 생명체다.

완전히 새로운 원시 세포인 것이다.

“최초의 세포, 최초의 생명체가 어떤 모습이었을까는 수많은 생물학자들한테 최고의 수수께끼였죠.”

엘시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자기복제적 특성을 가진 펩타이드 (Peptide)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RNA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세포막의 전자전달계가 심해의 열수분출공에서 자연발생하면서 그게 생명적 특성을 갖게 됐을 거라고 추측했죠.”

"......."

"하지만 류 박사님. 어떤 사람들은 최초의 생명체가 ‘바이러스’였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쯤 되는 기묘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바이러스는 반드시 숙주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때문에 최초의 생명체는 바이러스가 될 수 없어요. 숙주에 해당하는 생물이 이미 있어야 하니까.”

“그때에도 있었을지도 모르죠. 우리의 공통 조상이 처음 탄생하던 때 말입니다.”

"......."

엘시는 스프라이트를 조금 마셨다.

“류 박사님 . 당신은 로잘린이라는 차세대 생명체, 차세대 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 그리고 로잘린은 어떤 면에서든 인간보다 우월해요. 좀 더 낫다 정도가 아니라 월등하죠. 로잘린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내려다볼 수 있어요. 더 높은 차원의 생명체니까.”

“그래서 닥터 레프는 로잘린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좀 달라요. 사람들이 로잘린을 나눠가지는 게 아니라 로잘린이 인간의 과학을 독점하는 거예요.”

“로잘린이 인간의 과학을 독점한다고요?”

“로잘린이 지금은 당신의 몸에서만 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래 바이러스라는 건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요. 닥터 레프의 생각은 로잘린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감염시킨 다음, 모든 인간의 행동을 지켜보는 겁니다.”

"무슨......."

“로잘린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예요. 그가 과학을 독점한 다음, 류 박사님처럼 정말 선한 의도로 연구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과학을 조금씩 알려주는 것이죠. 나머지 대부분의 인간의 과학은 통제하고 말입니다. 그럼 인간이 과학을 오용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엘시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류 박사님이 로잘린을 얻기 전부터 목격해왔던 이 바닥의 지저분한 꼴들이 발생조차 하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셀리큐어를 없애버린다거나, 녹내장 치료제를 묻어버리려고 안구에 종양을 일으키려 한다거나,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서 이식하려 한다 거나. 그 모든 걸 예방할 수 있는 거죠.”

“……. 잠깐만. 이건 말이 안 돼요. 닥터 레프 본인도 과학을 잘못 쓰는 대표적인 케이스잖아요? 닥터 레프는 GSC 국제회의를 테러했고 신장 지역에 대량의 바이러스를 풀었던 사람입니다.”

“그게 문제가 있나요? 신장 지역에 닥터 레프가 풀어놓은 바이러스가 어떤 결과를 낳았죠? 그 전과 비교해서 더 나빠졌나요?”

엘시가 물었다.

"......."

“닥터 레프는 자기가 쓸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쓴 거예요. 고작 테러리스트 정도의 몸으로 100만 명이 수용된 신장 지역의 거대한 음모와 중국 주석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 칩시다. GSC는요?”

“닥터 레프한테 GSC는 위험한 적이에요. 류 박사님. 그리고 GSC는 그렇게 훌륭한 조직도 아니랍니다. 류 박사님은 가입한지 얼마 안 되어 모르시겠지만.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요. 당신한테 GSC의 가입을 권유했던 사람이 누구였나요?”

"......."

“좋은 사람이었나요?”

“제이미 앤더슨이었습니다.”

“하하. 그것 보세요.”

엘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사람이 최고의 생물학자라고 거들먹거리는 곳이 GSC입니다. 류 박사님. 그리고 GSC 멤버였던 허찌엔칭은 어땠죠? 허찌엔칭과 닥터 레프 중 누가 더 과학을 오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엘시가 물었다.

“하아……. 엘시. 어느 동네든 모난 돌은 하나씩 굴러다니게 마련입니다. 제이미 앤더슨이나 허찌엔칭은 분명 못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메셀슨 박사님 같은 훌륭한 사람도 GSC의 멤버예요.”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것처럼, GSC에도 괜찮은 사람이 물론 있죠. 류 박사님처럼요. 하지만 GSC라는 기구 자체가 위험해요.”

“GSC가 위험하다고요?”

“네. 그런 조직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겁니다.”

“왜죠?”

“아시다시피 GSC는 저개발국가에 상수도 사업이라든지, 백신 사업이라든지,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 같은 걸 권고하고 프로젝트를 짜줍니다. 과학 자문을 해주는 거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업은 충분한 연구와 토의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GSC의 일방적인 권고로 진행되는 거예요.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와 GSC의 과학력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날지 상상이 가시나요?”

“저개발국가의 정책 담당자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정책을 수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GSC를 믿고 간다는 건가요?”

“맞아요. 그리고 그런 수직적인 관계는 과학적이지 않죠. GSC는 서구 열강의 과학에 대한 권위자 편향 오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예요. 하지만 GSC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엘시가 말했다.

“완벽한 건 오직 하나, 로잘린 뿐이니까.”

"......."

류영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엘시. 그렇다 하더라도 GSC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더 많은 지식과 과학을 가진 건 사실이고, 한시가 급한 저개발국에서 그걸 나누어주는 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GSC 국제회의를 테러해서 다 죽일 만한 죄가 아니란 거예요.”

“과학을 나누어주는 거라면 그렇겠죠.”

“그럼요?”

“그들이 하는 건 저개발국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수탈의 일종이에요. 허찌엔칭을 보세요. 중국의 하층민들을 데리고 아예 인체 실험을 하고 있었죠? 제가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

“예를 들어서 GSC는 우간다 같은 나라의 가난한 도시에서 상수도 설치 사업 계획을 짜준 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술력은 그 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결국 GSC 멤버들이 운영하는 건축 기업이 들어가서 설치해줍니다. 그 비용은 엄청나서 마찬가지로 저개발국이 감당할 만한 값이 아니죠. 그럼 돈 대신 다른 사업들을 벌입니다.”

엘시가 말했다.

“예를 들어서 우간다의 특정 밀림의 생물자원에 대한 이용권을 받은 다음, 세균과 식물 같은 걸 가지고 가서 그 추출물로 에이즈의 발병 억제제를 만들고, 그걸 다시 우간다에서 임상 시험을 한 다음 우간다에 팔죠. 하지만 우간다는 이번에도 돈이 없죠? 그럼 이번엔 석유 개발권을 가져가는 겁니다. 그렇게 지하자원이나 부동산 같은 걸 하나씩 가지고 가는 거예요.”

"......."

“저는 흔해빠진 자원 수탈 얘길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저개발국들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기술적으로 독립할 힘을 빼앗는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엘시가 말했다.

“상수도를 다 설치해줬는데 돈들여 상수도 연구를 할 리가 없잖아요? 결국 계속 GSC에 의존하게 되고, GSC가 나누어주는 기술의 파편들만 받아먹고 사는 거죠. 상수도에 문제가 생겨도 GSC를 찾아가고요.”

엘시가 말했다.

“이제 닥터 레프 입장을 생각해봅시다. 자기보다도 지능이 떨어지는 듯한 GSC의 삼류 과학자 나부랭이들이 감히 과학을 독점하고 그렇게 오만한 태도로 저개발국의 과학을 좌지우지한다? 권위자를 자처하면서?”

"......."

“권위자 편향의 오류는 언젠가 반드시 사고를 냅니다. 허찌엔칭 같은 건 귀여운 수준이고, 잘못 설계된 원전 폭발이라든지, 지반 파괴와 사막화라든지, 그런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어요. 닥터 레프는 GSC를 파괴해서 과학의 꼭대기를 비우려고 한 거죠.”

엘시가 말했다.

“왜냐하면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GSC 같은 서구 과학자 연합이 아니라 로잘린처럼 정말 월등한 존재뿐이니까요.”

“후우……."

류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머리가 좀 아팠다.

그는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바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엘시 생각은 어때요?”

류영준이 물었다.

“제 생각이요?”

“방금 전까지 말씀해주신 건 전부 닥터 레프의 입장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닥터 레프의 입장에 찬성하시나요? GSC가 사라지고 로잘린이 모든 인간을 감염시켜 과학을 독점해야 한다고?”

“글쎄요.”

엘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모든 일을 다 놓아버리고 마약에 빠져 살았던 이유는 그 답을 찾을 수도 없고, 찾고 싶지도 않아서예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류 박사님.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엘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지난 1년간 당신의 행보를 지켜봤어요. 당신은 과학계의 모든 종류의 비윤리를 정말 거침없이, 닥치는 대로 전부 파괴하셨죠. 절대 멈추거나 비켜서지 않는 폭주 기관차 수준이었어요. 앞을 막아서는 비윤리는 모조리 박살내고 여기까지 오셨죠. 심지어는 중국 주석 같은 지구상 최고의 권력자를 상대로 할 때도요.”

"......."

“당신은 기형적일 정도로 생명 윤리에 대한 집착이 완벽해요. 게다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도 갖고 있는 사람이죠.”

엘시가 말했다.

“아까 얘기했듯, 저는 생명창조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기준으로 엄격하게 선별된 특정인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기준이 바로 그것이었을지도 몰라요.”

엘시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결국 당신은 닥터 레프와 GSC의 갈등도 현명하게 해결할 거예요. 당신은 로잘린의 유일한 주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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