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6화. < 로잘린 (1) > (82/301)

226화.  < 로잘린 (1) >

“제가 왜 보자고 했는지 이미 아시는군요.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도 많은 것 같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왔다.

“저는 콜라로 부탁해요.”

“펩시랑 스프라이트가 있습니다. 뭘 드릴까요?”

“아. 그럼 스프라이트요.”

류영준은 스프라이트 캔 하나를 건네고 엘시의 맞은편에 앉았다.

“원래는 류 박사님을 찾아올 생각을 안 했어요. 근데 천 박사 얼굴을 오랜만에 보니 약간 용기가 나기도 하고. 천 박사가 끈질기게 설득해서 내가 아는 걸 전해줘야겠다 싶더군요.”

“뭐라고 설득하시던가요?”

“류 박사님이 나를 꼭 보고 싶어하는데, 처음 얘기 나온 시기가 GSC 테러 전후였다고. 혹시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아는 게 있냐더군요. 안다니까 그때부터 내 손을 꽉 쥐고 함께 인류를 구하자며 진지하게 설득하던데요.”

엘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기대하시는 것만큼 많은 정보를 드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보시다시피 나는…… 많이 망가졌고, 연구 일선에서 물러난지도 꽤 되었어요.”

엘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보세요. 류 박사. 과학에 빠진 과학자가 인생을 걸고 추진해온 프로젝트에 실패했을 때 얼마나 망가지는지.”

“망가지다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술과 담배와 마약에 찌들어 살고 있죠. 난 실패자예요. 로잘린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닥터 레프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죠.”

“닥터 레프를 만들었다고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그 사람을 가르치셨나요?”

“아닙니다. 말 그대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생물학적으로.”

엘시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인조인간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난 미국의 한 발생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체외 수정을 할 수 있는 익시(Ecsi)와 갖가지 트랜스펙션 리에이전트 (Transfection reagent)와 탈렌 (TALEN)을 이용해서 유정란에 유전자 조작을 가하고 발생시키면서 변화를 관찰했죠.”

엘시가 말했다.

“그리고 거기서 닥터 레프를 만들었습니다. 정자은행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정자를 받고 내 난자를 수정시킨 다음, 거기서 핵을 제거하고 내 체세포의 핵을 집어넣었어요. 그 다음 일부 유전자들을 조작했죠. 내 배로 착상시키고 내 배로 낳았어요.”

“……. 뭐라고요?”

너무 충격적인 얘기에 류영준의 입이 벌어졌다.

“제 체세포의 핵을 썼으니, 어떻게 보면 제 복제인간인 셈입니다. 하지만 많은 유전자들을 조작해서, 결과적으로 나는 유대인이지만 그 애는 앵글로색슨 쪽의 외모를 갖게 되었죠. 태어난 시점부터 계산하면 류 박사님 또래일 겁니다. 하지만 세포생물학적인 나이는 나랑 같겠죠.”

“미쳤습니까? 어떻게 그런…….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류영준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압니다. 비윤리죠?”

“비윤리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스스로 유전자 조작을 해서 아기를 낳았다고요?”

“하하!”

엘시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혼내실 줄 알았어요. 류 박사님을 만나러 오는 것을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죠.”

“지금 제가 잔소리하는 게 문젭니까? 그 정도의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은……."

“당시엔 아니었어요.”

엘시가 말했다.

“네?”

“그 시기는 냉전이 한참이던 때였습니다. 류 박사님처럼 젊은 분은 모르시겠지만, 미국과 소련은 과학기술의 경쟁으로 미쳐 날뛰던 중이었어요. 류 박사님. 핵무기가 마구 개발되던 시대였어요.”

"......."

“탄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생물학에 윤리학은 아주 느리게 반응했죠. 당시엔 온갖 윤리 규제가 다 풀려 있었고, 그런 규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다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여전히 갖고 있었고, 냉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더욱 파괴적인 전쟁이 발발할 거라고 생각해서 겁에 질려있던 때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라면 오히려 장려되던 때였죠.”

“하아……."

“류 박사님. 연구 윤리라는 건 시대에 따라 변모하는 거예요.”

“하지만 양심의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 연구를 하면서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데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엘시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아이를 낳은 겁니다. 연구진 대부분이 말렸어요. 내가 일으킨 유전자조작이 발생 과정에 어떤 문제를 초래하면 산모인 나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직접 낳았습니다. 내 딸이면서 분신인 그 애를. 그때의 과학은 몸집만 커진 덜 성숙한 사춘기 청소년 같은 거였어요. 그때 나는 그 애랑 같이 한 배를 탄 거예요. 그 조악한 나룻배를 같이 타고 태평양을 건넌 겁니다.”

"......."

“굉장히 위험하고 무모한 작업이었지만 그 애가 무사히 태어났을 때는 성공했다고 믿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 애는 연구소 내에서 어마어마한 지능으로 모두를 경악시켰죠.”

엘시가 말했다.

“근데 왜 그렇게 된 건가요?”

“……. 그 애를 낳고 나니 더 이상 연구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엘시가 말했다.

“그 애는 제 ‘딸’이었습니다. 그 애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 아이를 몰래 데리고 중동으로 달아났죠. 제 친척 집안이 거기에 있었거든요.”

“친척이요?”

“제가 유대인이라고 했죠?”

엘시가 말했다.

“DNA 이중나선 발견의 가장 큰 공로자인 로잘린드 엘시 프랭클린. 그 여자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런던 태생에 영국인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친척들이 많았어요. 삼촌은 팔레스타인의 고등 판무관이었고, 고모부는 팔레스타인의 검찰 총장이었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고요.”

"......."

“어릴 때부터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제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분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제게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인공세포에 로잘린이란 이름을 썼군요.”

“맞아요. 그뿐 아니라 제 이름인 ‘엘시’ 역시 프랭클린의 미들 네임에서 가져온 거였죠.”

엘시는 스프라이트를 조금 마셨다.

로잘린드 엘시 프랭클린.

과학사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을 보낸 여성 과학자다.

성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 여성 과학자로서 과학계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제이미 앤더슨 같은 당대의 천재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차별을 겪으면서도 연구를 지속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녀는 인권과 윤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프랭클린은 노동 조합 조직과 여성의 참정권 운동에서 활동했으며, 후에 런던 카운티 위원회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

나치의 폭정 아래 탈출한 유대인들의 정착을 돕는 일도 했다.

그리고 37세라는 이른 나이에 난소암으로 요절했다.

“이유는 DNA의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X선을 많이 사용했는데 거기에 지나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었죠.”

엘시가 말했다.

“제가 과학을 처음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집안에선 극렬히 말렸어요. 어머니는 프랭클린 얘길 들려주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셨고요."

“프랭클린이 이른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요?”

“그것도 이유의 하나고, 결국 프랭클린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까요.”

엘시가 말했다.

“류 박사님. 어떤 사람들은 과학이 남성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죠.”

“여성은 감성적이고 섬세한 생물이고, 남성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생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21세기에도 팽배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죠. 성평등이 많이 실현된 북유럽에서도 그런 고정관념은 흔해요.”

엘시가 말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바넘 이펙트가 선별적으로 인식되어서 그리 되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생물학적인 논리 회로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과학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개개인의 경험적인 주장들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이니까요.”

“그렇죠. 근데 그렇게 엄격해야할 과학계가 의외로 성차별이 지금도 가득하답니다. 과학계 내부에도 있겠지만, 과학계에 들어오는 길은 더욱 심하죠. 상상이 가나요? 제가 학위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집안 어른들은 여자가 할 만한 게 아니라고 날뛰었습니다. 무슨 여자가 이과를 가서 박사까지 하겠다는 거냐며.”

"......."

“프랭클린처럼 비정상적일 정도로 뛰어난 여성 과학자조차도 그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거죠. 여성은 원래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생물이 아니니까. 설사 남들의 몇 배나 되는 피나는 노력으로 그 페널티를 극복하더라도 결국 얻는 것은 노벨상 같은 영예가 아니라 난소암이라는 겁니다.”

엘시가 말했다.

“온갖 발암성 가득한 화학물질과 바이러스, 박테리아를 만지면 여성의 몸에 더 타격이 크다는 거예요. 언젠가 아기를 낳아야 할 몸이니까.”

"......."

“나는 그 분들한테 틀렸다는 걸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과학을 정말 잘한다는 걸 확인시켜주려 했죠.”

“그래서 생명 창조를 한 건가요?”

“맞아요. 생물학의 가장 도전적인 분야였으니까요. 아시죠? 과학계는 아직도, 암을 정복하고 인간을 우주에 보내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이 시대에도.”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된 ‘생물’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건 맞는 말이다.

과학계는 ‘생물’ 이라는 단어를 백 번 넘게 정의했는데, 그 백 개가 모두 틀렸다.

전부 예외가 존재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흡수하고 소화시킨다.” 같은 능력을 생물의 기준으로 규정하면, ‘불’도 생명체가 될 수 있다. 장작과 산소 따위를 먹어치우고 연소시키니까.

“자식을 낳는다.”를 기준으로 둔다면 불임인 부부나,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노새 같은 동물은 무생물이 되어버린다.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것들은 유전 물질을 가지고 있지만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해서 세포도 아니고, 숙주 세포를 감염시키기 전까지는 생물학적인 활성을 띄지도 않죠.”

엘시가 말했다.

“결국 생물학계는 아직도 바이러스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판단하는 것을 유보했고요.”

“저는 개인적으론 생물이라 생각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엘시는 빙그레 웃었다.

“생명창조 팀 후배님답군요. 우리 팀 모두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트랜스포존(transposon)은? 자기복제가 가능한 펩타이드인 프리온(prion)은? 그들은 생물일까요?”

엘시는 스프라이트를 한모금 더 마셨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지구상의 최악, 최대의 수수께끼, 생물이란 개념의 정체. 난 그걸 풀어내서 여성 과학자의 성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엘시가 말했다.

“그 때문에 로잘린 프로젝트를 했던 겁니다. 그리고 몇번 성공할 뻔도 했죠. 그때 알았어요. 이건 과학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걸. 인간은 과학적으로 모르는 것을 종교나 신비주의로 환원시키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생명창조만은 진짜로 신비적인 영역이었어요.”

"......."

“정말 황홀했습니다. 저는 동기화를 몇번 써봤거든요. 로잘린이 탄생하기 전에 이 세계에 만들어진, 한 단계 낮은 차원의 모든 생물계를 내려다볼 수 있었죠. 기적이었습니다. 피트니스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한 순간밖에 볼 수 없었지만. 아마 류 박사님이 쓰시는 것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동기화였을 거예요.”

엘시가 쓰게 웃었다.

“제가 만든 로잘린은 생명체가 아니었어요. 불과 몇시간 이내에 전부 사라졌습니다. 하루살이처럼 수명이 짧은 생물이 아니라, 애초에 생명체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로잘린을 만드는 걸 포기하고 닥터 레프를 만드신 겁니까?”

“이런 비과학적인 말을 하는 걸 아주 싫어하지만, 생명창조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기준으로 엄격하게 선별된 특정인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난 그게 닥터레프일 줄 알았죠.”

엘시가 말했다.

“생명창조 부서의 젊은 연구원이 승승장구하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직감했어요. 나도 실패하고 닥터 레프도 실패했던 걸 당신이 성공시켰다는 사실을요.”

“닥터 레프가 로잘린에 집착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사람이 테러를 벌이는 이유가 그건가요?”

“그 애는 아픔이 많은 아입니다.”

엘시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으로 세계를 파괴하려는 미치광이 사이언티스트 같은 건 아니에요. 그 애는 로잘린을 세계에 퍼뜨리길 원합니다.”

“네?”

“우리는 로잘린이 바이러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어요. 로잘린 신드롬. 당신이 감염되어 앓고 있는 증후군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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