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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 인공장기 (14) > (81/301)

225화.  < 인공장기 (14) >

펭 쿠이와 천슈에가 공항으로 떠나기 이틀 전.

펭 쿠이는 한국 정부 측에 천슈에 주석이 서울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렸다.

이건 천슈에 측에서도 약간 도박이었다.

만약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정말로 비밀리에 수술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다면 정권 유지를 할 수도 있다.

대신 한국 정부 측에 어마어마한 약점을 잡히는 것이다.

그래도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펭 쿠이는 주한 중국 대사를 통해서 대한민국 외교부에 이 사실을 전달했다.

그리고 외교부 장관과 중국 대사가 함께 류영준을 찾아왔다.

“류 박사님. 주석의 심장만 옮겨서 차세대 병원 밖의 다른 병원에서 조용히 수술을 합시다. 이건 외교적으로 한국에 엄청난 메리트를 주게 될 겁니다.”

외교부 장관이 말했다.

"......."

류영준은 대답 대신 눈살을 찌푸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엇……."

그 표정에 지레 당황한 중국 대사가 재빨리 나섰다.

"한번만 도와주신다면 앞으로 중국은 류 박사님께 전폭적인 지지를 할 겁니다."

그가 부랴부랴 서류 뭉치를 꺼내어 내밀었다.

"이, 이거 보십시오. 이건 앞으로 향후 5년간 중국의 경제 발전 계획 자료입니다. 우리는 광둥성을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키우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곳에는 바이오산업이 지금 부흥을 맞고 있습니다. 에이젠바이오가 그곳에 지부를 마련해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굳이 천슈에 주석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에이젠바이오는 그곳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도 말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광둥성에서 에이젠바이오의 인기는 꽤 높거든요. 모기 재난을 막아냈으니까. 그리고 에이젠바이오가 들어갈 수 있으면 전체적인 의료 산업의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싫어할 국가나 도시는 없습니다."

"......."

대사가 당황하자 외교부 장관이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류 박사님. 중국 근정전에서 이 정도로 숙이고 나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류 박사님.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주석님이 무사히 치료를 받고 조용히 돌아가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주석님의 수술 사실은 우리만 아는 게 됩니다.”

“그래서요?”

“국가 관계에서 정보는 권력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중국 정부를 근간부터 흔들어댈 수 있는 정보를 독점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만큼 외교에서 유리한 위치를 앞으로 선점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 외교적 이익은 앞으로 상당할 겁니다.”

장관이 대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중국 정부도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 우리에게 협조를 요청한 거예요.”

류영준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근정전이 많이 숙이고 나오는 거라는 건 저도 알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안됩니다.”

그가 딱 잘랐다.

“류 박사……."

“안 됩니다.”

류영준은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장관과 중국 대사 모두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에이젠바이오 차세대 병원의 의사들은 한국에 있는 최고급 인적 자원입니다. 하루에 환자를 100명씩 보고 있죠. 시간이 없어서 끼니를 거르는 것은 기본이고 진료실을 세 개씩 열어놓고 뛰어다니면서 진료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을 여는 시간조차 아까워서요. 요즘은 병원 내에서 세그웨이를 타고 이동하는 의사들도 있을 정돕니다.”

"......."

“근데 그곳에서 진료를 보고 수술할 수 있는 것을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다면, 그 수술을 담당하는 의료팀 전체는 물론이고, 인공 심장도 생물 안전 검체 수송법에 맞추어서 이동시켜야 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게다가 수술실이 바뀌었기 때문에 장비 셋업과 오염도에 대한 검사를 새로 해야 할 테고요. 저는 병원 의료진들한테 그 정도의 폐를 끼칠 자신이 없습니다.”

"......."

“제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전임 연구원 시절, 에이젠에서 일하면서 셀리큐어라는 간암 신약이 소멸하는 것을 봤습니다. 회사 매출 유지를 위해서 더 나은 신약을 특허법적으로 파괴해버린 사건이었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때부터 저는 앞으로 생물학과 의학을 함에 있어서 그 어떤 거짓이나 비윤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과학은 항상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선한 힘이지, 권력자나 회사의 입맛에 맞추어 진실을 은폐하고 기술을 후퇴시키는 무기가 아닙니다.”

“딱 한 번만 그걸 참아주면 영구적인 외교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장관이 다시 한번 사정했다.

“항상 그 한번이 중요한 것이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 한번이 저한테는 그 뜬구름 잡는 외교 이익보다 더 중요하군요.”

"......."

“오늘 일은 잊어버리겠습니다. 회사에 보는 눈이 많으니 나가실 때는 대사님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괜한 말들이 나오는 건 불편하실 테니까요.”

***

류영준이 거절한 이상 이젠 한국 정부도 손쓸 방법이 없다.

국가 기관도 아니고 민간 병원인 에이젠바이오의 차세대 병원이다. 그곳에 국내 언론도 아니고 외신 기자들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어떻게 손을 대는가?

막말로 취재를 금지하고 나가라고 하더라도, 그냥 진료 받으러 온 거라고 잡아떼면 끝이다. 그들을 제재할 만한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천슈에가 힘을 쓸 수 있는 중국 본토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군부대를 풀어 병원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천슈에가 펭 쿠이와 최측근 몇을 데리고 에이젠바이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겁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차세대 병원의 입구며 주차장, 안내데스크와 휴게실, 엘리베이터 앞, 외과 원무 데스크 등, 거의 모든 공간에 기자와 시민들이 바글거렸다.

“중국인이 많군……."

천슈에가 나지막이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병원에 몰려와있었다.

“수술실까지만 가면 됩니다. 조용히 들어갑시다.”

펭 쿠이는 천슈에와 함께 모자를 눌러쓰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사람이 없을 때를 노려서 탑승한 다음, 외과가 있는 4층을 눌렀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익스큐스미.”

중국인 세 명이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아 열면서 올라탔다.

그들은 4층을 누르려다가 이미 버튼이 눌러져있는 것을 확인했다.

"......."

세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천슈에의 옆얼굴에 꽂혔다.

“니 시 종통 마?”

한 남자가 천슈에에게 물었다.

혹시 주석이냐는 뜻이었다.

“아, 아닙니다.”

당황한 펭 쿠이가 재빨리 답했다.

“에스컬레이터로 갑시다.”

펭 쿠이는 천슈에의 손을 쥐고 황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가는데 뒤에서 중국인 세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천슈에다!”

1층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쏠렸다.

발빠른 기자 몇이 번개같이 카메라를 꺼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젠장.”

펭 쿠이는 천슈에의 팔을 쥐고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랐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몇몇은 성급하게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반대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천슈에를 향해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밀면서.

사방에서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음이 터지고 있었다.

“이봐요!”

2층 끝에서 안전 요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

-지금쯤 꽤 고생하고 있겠군요.

로잘린이 말했다.

“병원에 가드들이 있으니까 사고가 나진 않을 거야. 하지만 상당한 모욕을 당하겠지. 아마 이제 정권 유지가 불가능할걸.”

류영준이 손톱을 깎으며 말했다.

-참 이해가 안 됩니다.

로잘린이 류영준의 책상 위로 사뿐히 뛰어 올랐다.

“뭐가?”

-왜 그렇게 권력 유지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러게.”

-생물학적으로 권력을 추종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될수록 짝짓기의 기회가 많아지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주석은 이미 그럴 나이가 지났잖아요?

류영준은 피식 웃었다.

“그렇네.”

-심지어 자기 나라의 외교적인 손해를 지속적으로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싶어한다니. 정말 비상식적이에요.

로잘린이 말했다.

-신장에서 사람들이 갇혀 있었던 그 취업 캠프도 그렇고요. 이 세상은 의외로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많군요.

“그건 생물학적인 게 아니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집단 정신병처럼 보입니다.

“치료할 수 있겠어?”

-아뇨. 조현병처럼 생물학적인 정신병이 아니에요.

“원시 시대의 자연인한테는 사람 수백만을 수용소에 가두려는 욕망 같은 게 없겠지. 인간의 사회가 발달하면서 생긴 광기야.”

-신장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국제 사회가 이제 그 지역에 대한 압력을 엄청나게 쏟아 부을 거야. 중국이 한 짓도 있고, 증거도 있고, 명분이 되잖아? 심지어 거기서 탈출한 사람도 있지. 델리바라고 했나. 그 여자애가 취업 캠프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계속 해줄 거야. 중국에선 이제 그 캠프를 없애는 수밖에 없어.”

-그래요?

“아니면 국제 사회가 신장을 독립시켜서 통째로 나눠가지려 할 테니까. 그 국제여론을 분열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신장 캠프를 해체하고 ‘봐라, 이 지역에 인권 유린은 이제 없다. 전대 주석이 실수한 거다. 우리는 신장에 우호적이다.’ 이러는 수밖에 없는 거지.”

-국제 사회가 그 정도로 똘똘 뭉쳐서 중국을 견제할까요?

“당연하지. 석탄에 석유에 천연 가스에, 군침 도는 게 한가득이거든. 미국은 아마 그거 먹으려고 지금 이미 목에다 냅킨도 둘렀을걸.”

로잘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비정상적인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요?

“당연히 대부분은 걱정은 하겠지. 하지만 ‘걱정’ 정도로 중국 같은 대국을 상대로 다툼까지 벌이려는 국가나 단체는 별로 없어.”

류영준이 말했다.

“있다면 에이젠바이오 정도?”

똑똑똑!

누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류 대표님. 천지명 수석님이 손님하고 같이 오셨습니다.”

유송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이요?”

류영준이 문을 열면서 물었다.

뚱뚱한 체격의 중년의 여성이 천지명과 함께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류 박사님.”

여자가 인사했다.

“생명창조 부서에서 근무했던 엘시라고 합니다.”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들어오세요.”

-헉!

갑자기 로잘린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래?’

류영준이 힐끔 돌아보며 마음 속으로 물었다.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기억이 나요. 아주 옛날 희미한 기억이지만…… 플라스크 속에서 이 사람의 생물 정보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

“우린 할 얘기가 많을 것 같군요.”

엘시는 방 안으로 들어와서 소파에 앉았다.

“천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잠깐 저희 둘만 대화하게 해주실래요?”

류영준이 말했다.

“네. 안 그래도 실험실 오래 비울 수 없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인공장기 주문이 지금도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중이거든요."

“미안합니다. 조금만 고생해주세요.”

류영준이 천지명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천지명과 유송미 비서가 나간 후.

엘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닥터레프부터 시작할까요? 아니면 로잘린부터?”

그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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