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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 인공장기 (13) > (80/301)

224화.  < 인공장기 (13) >

양군위의 기자회견장에는 기자들만 모여 있는 게 아니었다.

중국 당의 고위직 간부들과 공안들이 수없이 몰려와 있었다.

그중에는 현재 주석인 천슈에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도 한가득이었으나 그 누구도 양군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광둥성에서는 양군위가 왕이다.

누가 뭐래도 양군위는 그동안 광둥성을 최고의 경제 허브 도시로 키워낸 일등 공신이며, 해외 투자 유치 및 산업과 생태를 조성하는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 정치인이다.

그리고 천슈에는 지금 크게 쇠약해진 상태가 아닌가.

CIA 문건에서 천슈에의 이름이 나왔고, 만약 천슈에의 장기 적출이 사실이라면 지금 양군위에게 맞서는 건 미친 짓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천슈에 라인의 관료들과 공안들도 양군위의 기자회견에 함부로 초를 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양군위의 폭탄 같은 발언이 터졌다.

“이친친에 대해 근정전이 발표한 내용은 전부 거짓입니다.”

기자들의 눈이 커졌다.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친친은 광둥성 찌에양에 살던 시민이었습니다. 광둥성 시민이니까 광둥성 성장인 제가 근정전보다 더 잘 압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그 사람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말입니다.”

"헉.......”

“행방불명......."

여기저기서 놀라움을 삼키는 숨소리들이 들렸다.

“우선 근정전의 발표에 대해 먼저 반박하겠습니다. 첫째. 이친친이 신장으로 이동해 주거지 이전을 신고했다는데 광둥성에서는 그게 조회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조회되지 않습니다.”

양군위는 광둥성 인민 주소지 시스템에서 검색한 자료를 가리키며 말했다.

“둘째. 이친친은 찌에양에 처자식이 있었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온갖 일을 다 하며 헌신해 온 사람입니다. 이친친의 고향에서는 그의 가족 사랑과 책임감이 동네에 소문이 났을 정돕니다. 그런 이친친이 가족들에게 몇 달씩 연락을 끊을 리가 없습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셋째. 이친친의 신장 주소지는 국가 임대 주택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가점을 얻는 방법은 ‘부양가족이 많은’ 것입니다. 이친친이 가족들을 버리고 홀몸으로 갑자기 연고도 없는 신장까지 수천 킬로 미터를 이동해서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대 주택에 입주하는 건 비상식적입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넷째.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다섯 달 전에 이친친은 행방불명 신고가 되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이 직접 신고를 냈고, 이친친의 행방을 광둥성 공안들이 조사했던 자료가 있습니다. 만약 주소지 이전이 사실이라면 공안들이 조사했을 때 조회되었어야 합니다.”

양군위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친친은 행방불명자입니다.”

그는 기자들과 당 간부들과 하나씩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더 중대한 사실을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광둥성에서 매혈을 하는 가난한 마을들의 시민들은 몹시 높은 확률로 ‘실종’됩니다. 그리고 이친친은……."

양군위가 말했다.

“행방불명되기 전에 3주 동안 매혈을 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기자회견장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가 한 가지 결론을 추측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광둥성 공안들은 그동안 광둥성의 불법 매혈 조직인 혈패 에이전시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양군위는 화면에 몇 개의 사진과 보고서들을 띄웠다.

“그리고 혈패 에이전시의 임시 아지트들을 그동안 수색하면서 우리가 얻은 사진들 중에는 이런 게 잡혔습니다.”

양군위가 화면의 사진에 있는 기계 하나를 가리켰다.

“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이라고 불리는 기계라고 합니다. 이건 DNA의 특정한 부분을 증폭시킬 때 쓰는 장비입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매혈 조직한테 이런 게 왜 필요할까요?”

그가 질문을 던졌다.

“그 이유는 매혈자들의 혈액에서 조직적합성을 검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

“이런……."

당 간부들 몇몇이 탄식을 터뜨렸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친친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매혈 조직이 그의 혈액을 얻은 이후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심장은 지금 천슈에 주석의 가슴 속에 있습니다.”

양군위는 화면 속의 PCR 기계를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키며 말했다.

***

양군위의 발표가 나가면서 중국의 SNS 웨이보에는 실시간으로 중국 시민들이 받은 충격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신장에서 터진 사건들도 충격적인데 위구르인이 아니라 같은 한족을 광둥성에서…….

-그동안 매혈 마을들 실종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며.

-중국의 본토 민족인 한족이라도 가난하고 힘없으면 납치돼서 장기 뽑히는 세상이라는 건가?

-아니, 망할. 우리는 신장처럼 독립시켜달라고 정부한테 떼쓰고 이런 것도 아니잖아. 일 열심히 하고 세금 내는 착한 시민들이잖아 -윗대가리들한테는 다 똑같은 개돼지 가축이라는 건가

분노가 가득한 그 채팅들 속에는 시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중국은 넓고 큰 나라다.

인구도 많고 민족도 많다. 하지만 그중 92%는 한족이다.

-한족은 중화사상 핵심이다. 지방에 있는 소수민족들한테 중국이 돼라고 우리가 요구하는 근거가 뭐였냐? 중국이 하나로 힘을 합친다는 거 아닌가? 중국민은 평등하게 같이 으싸으싸하는 거 아니었나? 돈으로 서열 나누는 서구랑 다르게 우리는 인간 중심이라고. 그걸 근거로 중화사상을 추진하던 거 아니었냐고?

-천슈에 한국 가지 마라. 가서 심장 이식받으면 진짜 영원히 끝이다

-우리 모두 중남해로 몰려가서 어떤 놈들이 한국으로 가는지 지켜보자.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차세대 병원으로 가서 누가 오는지 확인해라.

-X발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신장에서 장기 적출한 게 위구르인만이 아니라고? 광둥성 시민이 납치를 당하는 세상이면 중국에 안전한 곳이 대체 어디에 있냐

모두가 경악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가운데, 신장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공여자 B78551번 소녀의 인터뷰가 준비됐다.

겁을 집어먹은 그녀는 수십 명의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나서서 마이크를 들었다. 의외로 그녀의 목소리는 별로 떨리지 않았다.

“제 이름은 딜레바 압둘카힘입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중국어 이름으로 개명하라는 중국 정부의 명령을 거부해서 신장위구르 취업 캠프에 수용되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름 개명을 강요한 것도 인권적으로 큰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제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지도 못했다.

너무 거대한 폭탄들이 줄줄이 터지는 중이니까.

“저는 그곳에서 다섯 달을 생활했어요. 주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어느 날 밤에 시설 관리인들이 따라오라고 명령해서 화물 주차장으로 이동했어요.”

낸시에게 대강의 설명을 들은 딜레바는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신장 지역의 참상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진실되게 담아내기 위해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곳에는 의사들이 있었고 공안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를 차에 태우고 신장 대학병원으로 갔어요.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더 내려갔습니다.”

딜레바가 말했다.

“그곳은……."

딜레바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곳은 장기 적출실이었어요. 저는 10제곱미터 정도 크기의 방에 갇혀 있었는데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위구르인이었지만, 아예 중국 본토 언어를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딜레바의 이 발언에서 웨이보가 또 한 바탕 뒤집어졌다.

-망할. 저거 봐라

-한족도 거기서 털었네 확실하네

딜레바가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그곳을 생활실이라고 불렀어요. 생활실 담당 관리인들은 저희한테 중국 당의 지도부들을 위해서 한 목숨 바쳐 희생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애국을 위한 길이라고 했고, 조직 적합성이 맞아떨어지는 장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이런 애국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면서요.”

딜레바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아무리 잘 결심하고 나왔어도 감옥에 갇혀서 장기적출을 기다리던 10대 소녀의 트라우마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그곳의 참상을 설명하려니 자연스럽게 생활실 담당 관리인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저절로 팔뚝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크게 쿵광거렸다.

공포감과 서러움이 치밀어 눈가에 맺히는 것을 꾹 삼켰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양팔을 꽉 부여잡고 목젖 아래가 콱 틀어막히는 기분 속에서 간신히 발언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거부하면 맞거나 전기 충격 같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저희한테……. 수술 당일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게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느새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딜레바는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의료진이 와서 혈액 검사 같은 걸 했습니다. 수술 날짜를 저희한텐 알려주지 않았지만, 저희 모두 때가 되면 알 수 있었습니다.”

딜레바가 말했다.

“왜냐하면……. 수술 전날에는 식사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복이어야 수술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아침에 식사가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은 미친 사람처럼 울고 소리를 지르고 했어요.”

***

[사형수조차도 집행 전날에는 만찬을 준다.]

다음 날 인민일보의 사설 제목이었다.

외신이 아니라 중국 내의 인민일보가 이런 과감한 사설을 실은 것은 이미 당 내부에서 권력 구조에 거대한 변동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차라리 당의 명예를 위해서 죽으십시오.”

천슈에 파의 몇몇 간부들은 천슈에에게 그 정도의 말도 건넸다.

이미 천슈에 라인의 위계는 크게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천슈에는 여전히 삶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권력을 유지하던 때라면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 눈을 피해서 에이젠바이오 차세대 병원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의 운신을 도와야하는 최측근들조차도 이젠 등을 돌리고 있었다.

“갑시다.”

비서실장 펭 쿠이가 천슈에에게 말했다.

“내가 거기에 다녀오면 아마 내 정치 생명은 끝날 거야.”

천슈에가 말했다.

"......."

“그래도 난 살고 싶어.”

펭 쿠이는 천슈에를 데리고 이동했다. 천슈에는 허름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근정전의 뒷문으로 빠져나간 후 중형 승용차를 탔다.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북경 서교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군 기지의 일종으로 중국의 요인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국빈을 맞을 때 쓰는 곳이다.

“지금 지하로 진입합니다.”

펭 쿠이가 무전에 대고 말했다.

그들이 탄 차량은 공항의 바깥쪽을 따라 이동했다.

“뭐야?”

창밖을 내다보던 천슈에의 눈이 가늘어졌다.

멀리 공항의 야외 주차장에 시민들이 우글거렸던 것이다.

북경 서교 공항에는 민간 비행기가 내리지 않는다. 활주로를 포함해 공항의 부지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시설이 보안 대상이기 때문이다.

딱 하나, 남는 부지를 재활용해서 만들어놓은 공항의 야외 주차장만이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다. 마치 주말에 구청의 주차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처럼 시민 복지 차원에서 열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시민들은 공군 기지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대는 시민들은 극소수다.

평소에는 텅텅 비어있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시민들이 바글거렸다.

그 살벌한 표정과 광기 어린 눈빛들.

“주석님을 찾는 겁니다.”

펭쿠이가 말했다.

“나를?”

“주석님께서 한국으로 가시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죠. 기자들도 있고 양군위 쪽 라인에 줄을 서는 정치인들 프락치도 있고 할 겁니다.”

"......."

“뭐, 우리는 저쪽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펭 쿠이가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에 가서도 저렇게 달라붙는 사람들을 모두 피해서 에이젠바이오의 병원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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