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 인공장기 (10) >
"......."
메이 위썬의 말문이 막혔다.
“얘기해주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이 재촉했다.
하지만 메이 위썬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류영준한테는 신장 대학병원의 비밀 같은 게 공개된 적이 없다.
류영준은 본래 몰라야하는 사람이다. 아니 솔직히 이젠 류영준이 진짜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우리 병원의 중요한 기밀 서류들이 도난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외부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용의자가 있으면 DNA 분석 대조 같은 걸 해드릴 수 있습니다. 용의자를 체포하셨나요?”
“아닙니다.”
“흠……. 그 서류들이 어떤 건데요?”
“그건 얘기할 수 없습니다.”
“도난당한 장소가 어딘데요?”
“……그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전혀 없네요.”
류영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
‘아시다시피 저는 그동안 이 연구실에서 나온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여기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요. CCTV 기록이나 출입 카드 이용 기록 같은 걸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에이젠바이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죠. 최초로 만들어진 인공심장과 장기들의 이식 수술이 될 겁니다. 우리 연구원들을 믿지만 최종 책임자로서 제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계약서를 완성하고 주석님께 이식 수술을 하죠.”
“맞는 말입니다.”
메이 위썬이 괴로운 듯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류영준은 메이 위썬에게 인사하고 가방을 들고 나섰다.
김철권이 그를 뒤따라왔다.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김철권이 말했다.
“그럴 겁니다.”
말 끝나기 무섭게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류 박사님.”
근정전에서 붙여주었던 중국어 통역사였다.
그 뒤에는 공안이 두 명 있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날이 선 분위기였다.
“네, 무슨 일입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우루무치 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십니까?”
통역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루무치 시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역의 구도(區都)가 되는 도시다.
류영준이 있는 곳은 카스 시 쪽이라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루무치 시 공항은 현재 폐쇄됐습니다.”
통역사가 말했다.
“폐쇄됐다고요? 왜요?”
“이유는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통역사가 말했다.
“아무튼 이곳에서 출발하긴 어렵게 됐으니, 대신 칭하이 성으로 갑시다. 그곳 시닝 시의 교외인 디워푸에 차오자바오 공항이 있습니다. 거기서 출발하는 비행편을 마련했습니다.”
“갑시다.”
류영준이 그를 성큼성큼 따라갔다. 김철권이 류영준의 등 뒤를 쿡 찔렀다.
-시간을 벌려는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어.’
***
칭하이 성으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통역사가 류영준에게 말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중국 공안청 소속의 정보부 요원입니다.”
“그래요? 갑자기 그런 정보를 커밍아웃하셔도 되는 건가요?”
“……. 류 박사님은 신장 대학 병원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까?”
“얼마나 알다뇨?”
“이곳의 비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비밀이 있었나요? 바이러스가 위구르인 취업 캠프에 들어가서 전부 감염됐다는 거요?”
“아뇨. 어제 중요한 자료들이 유출된 건을 얘기하는 겁니다.”
“메이 위썬 원장님도 그 얘길 하시더군요.”
“원장은 무른 사람이라서 류 박사님을 그냥 보내주었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통역사가 말했다.
류영준이 그를 쓱 돌아보자 통역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신장 대학병원의 장기이식 사업은 지난 수년간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었다.
근데 류영준이 여기에 온 후 일주일만에 전부 다 털렸다.
뭐 어디 허접한 정보 몇 개 캐낸 정도가 아니다. 공여자의 생활실과 보안 서고를 모두 털었고, 장기이식 진료 차트와 VIP 고객들의 암호 코드를 가지고 갔다. 심지어는 아예 살아있는 공여자를 탈출시키기까지 했다.
이게 가능한가?
그동안 CIA며 외신 기자들이며 이 지역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병원 보안 측은 비밀 유지에 자신이 있었다.
지하 5층의 비밀 엘리베이터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실제 이용자의 입에서 새어나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경비가 가장 허술한 시간대를 정확히 골라 쳐들어가서 의료진을 사칭하고, 공여자와 수혜 환자의 비밀 코드를 줄줄 읊어가면서 침입했다.
그 모든 게 류영준이 온 후에 일어난 것이다. 이게 우연일까?
‘분명히 뭔가 했다…….'
통역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에 류 박사님은 메이 위썬 원장님하고 대화하다 중간에 나가서 통화를 하셨죠.”
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통신 기지국을 통해 조사해보니 해외 발신이 하나, 그리고 광둥성의 쯔쉬안이라는 여자와, 양군위 성장님하고 통화하신 기록이 하나씩 있더군요.”
“맞습니다.”
“무슨 통화를 하셨습니까?”
“쯔쉬안 씨는 혈패 에이전시라는 매혈 조직에게 혈액을 팔다가 에이즈에 감염됐던 환자입니다. 그 지역의 빈민들은 매혈로 생활하는데, 주석님에게 심장을 기증했던 이친친이란 사람도 공교롭게 같은 주소지였거든요.”
"......."
통역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류 박사님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바이두에는 한 때 도시 괴담이 좀 떠돌았습니다. 매혈 조직을 통해서 당 고위직들이 조직적합성이 맞아떨어지는 빈민을 찾고, 납치해서 장기 이식을 한다는 얘기. 설마 그런 걸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류영준은 피식 웃었다.
“설마요.”
류영준이 말했다.
“믿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악랄한 얘기인데요.”
"......."
“광둥성에 연락했던 이유는 그저 바이러스의 확산이 매혈 조직을 통해서 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 가능성을 확인해 보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그렇습니까.”
통역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졌다.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저는 류 박사님을 한국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통역사가 말했다.
“왜죠?”
“당신은 생명 윤리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얌전했어요.”
“윤리 위반이 있단 말입니까?”
“눈에 보이는 건 아니더라도 듣게 된 ‘헛소문’들은 많았을 것 아닙니까? 방금 얘기했던 바이두의 괴담이라든지, 신장위구르의 취업캠프에서 위구르인들이 수용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들.”
통역사가 말했다.
“솔직히 세계 곳곳에서 다들 웬만큼 아는 내용들입니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성격에 그걸 조사하려고 하지 않았을 리도 없어요.”
"......."
“그리고 하나 더. 최근 신장 지역에는 외신 기자들과 각국의 정보요원들이 수없이 잠입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 쪽 연구소에 방문해서 꽤 오래 연구를 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들이 단 한 번도 당신에게 접촉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됩니다.”
“윤리 위반 사항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사정을 하셔도 안 돌아가고 여기 남아서 조사할 테니까요."
류영준이 받아쳤다.
"......."
“하지만 통역사님. 제가 당신이라면 하루빨리 저를 에이젠바이오로 보내겠습니다.”
“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털렸다는 기밀 서류라는 게 꽤 중요한 것이고 생명 윤리와 많이 관련된 물건인 듯한데, 그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서 제가 얌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무슨 말입니까?”
“당신 말대로 저는 생명 윤리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통역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류 박사. 그 발언은 그 기밀 서류가 공개됐을 때 윤리 위반이 심각하면 우리 주석님의 목숨을 쥐고 협박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좋을 대로 해석하십시오.”
“당신을 공안청에 구금하겠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 손에는 중국 주석을 포함한 수뇌부 100명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그들의 인공장기는 제 서명을 받아야만 중국으로 전해질 수 있습니다.”
"......."
류영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그가 전화번호를 누르는 걸 보고 통역사가 물었다.
“어디로 전화 거는 겁니까?”
“근정전 대표 번호입니다.”
잠시 후, 비서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류영준은 휴대폰을 통역사에게 내밀었다.
“주석님한테 연결해주세요.”
“……. 젠장.”
통역사는 나지막이 욕설을 뱉고는 휴대폰에 대고 물었다.
“팽 쿠이 비서실장님 계십니까?”
-펭 쿠이입니다.
펭 쿠이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류 박사가 주석님과 통화하고 싶어합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병실로 전화를 돌릴 테니.
수신음이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병실에 있는 의료진이 전화를 받았고, 곧 주석에게 통화가 넘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류영준입니다.”
류영준이 통역사에게 말했다.
“전달해주세요.”
통역사는 찜찜한 표정으로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닌 하오, 워 쉬이 류영준.”
-반갑습니다, 류 박사.
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특별히 제품화된 약이 아닌데도 굉장히 잘 듣더군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져서 이젠 신체의 마비도 풀리고 약간씩 거동도 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제가 약을 드린지 3주 정도 되었죠. 슬슬 면역 체계 교란이 올 겁니다. 이제 심장 접합 부위부터 손상이 생길 거예요. 하루 빨리 인공 심장을 이식하셔야 합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개발중이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진행이 됐습니까?
“이미 완성했습니다. 제가 에이젠바이오로 돌아가서 최종 확인한 후에 보내드릴 겁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신장 지역에서 중요한 기밀 서류가 유출됐다는데, 그 때문에 공안청에서 제 귀국을 꺼리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맹세하는데, 저한텐 그런 서류가 없고 저는 연구실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제 귀국에 문제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지금 공안청 총경감에게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편안한 귀국길 되시길 바랍니다.
주석이 말했다.
“주석님!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통역사가 재빨리 휴대폰에 대고 외쳤다.
“류 박사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분명히 류 박사는 신장 지역 지하 사업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백 퍼센트 폭로할 겁니다.”
-그럼 폭로하게 해.
주석이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하곤 관련 없는 일이니.
“……주……주석님?”
통역사가 당황했다.
-그곳에서 취업캠프의 위구르인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장기적출과 수술을 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자네는 그 부분에 대해서나 좀 조사를 해보는 건 어떻겠나?
"......."
-내가 이식받은 심장은 위구르인의 것이 아니라 한족 중환자 청년의 것이라서 말이야. 내가 위구르 자치구의 치안까지 신경써주지 못 한 부분은 마음 아프지만, 지금부터라도 공안청이 그 지역에 대해 좀 수사를 해야 하지 않겠나?
“주석님……."
-지금까지 직무를 게을리 한 것은 용서해줄 테니, 류 박사는 한국으로 빨리 보내드려서 인공 심장 개발을 진행케 하고, 자네는 신장 지역 수사에 착수하게. 메이 위썬 원장부터 체포해.
"......."
이미 보고가 들어갔다. 주석은 지금 신장 지역의 비밀들이 모조리 털린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시를 내렸다. 모든 책임을 물어서 메이 위썬을 처벌하고 그 선에서 덮어서 정리하라는 뜻이었다.
다행히 주석의 심장은 한족 청년의 것이니 수술 기록이 있더라도 위구르인 수감자를 희생시켰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다.
주석은 이미 결심을 내렸다. 이 지역의 꼬리를 잘라버리고 본인은 인공 심장을 받아서 회복하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통역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
“분명히 중국에서 먼저 이 사건을 파헤치고 발표해서 선수를 치려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로버트가 말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한밤중에 뜬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
“로버트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진과 동영상 자료들을 공개하고 백악관에서 직접 중국 정부를 규탄할 겁니다.”
휘태커가 덧붙였다.
“그리고 공여자로 잡혀 있었던 피해자분의 인터뷰도 바로 진행할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낸시가 B78551번 공여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B78551번 공여자는 17살의 아직 앳된 여자였다. 그녀는 간밤에 구출되던 당시 처음에는 자신의 장기 적출 시간이 된 줄 알고 혼절할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울었다.
근데 나와보니 미군 정보부였고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 이제는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장기 적출을 위해서 끌려와 갇혀 있었던 공포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와들와들 떨면서 낸시를 쳐다보았다.
“증언할 수 있겠어요?”
낸시가 중국어로 물었다.
“……예……."
그녀가 모기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낸시가 웃으면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근데 휘태커. 좀 전에 자료들을 ‘대부분’ 공개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한번에 전부 공개하지 않는 겁니까?”
로버트가 물었다.
“아."
휘태커가 고개를 들었다.
“중국 정부에서는 분명히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할 겁니다. 모든 정치인들의 속성이 그렇죠. 정권 유지를 위한 마지막 발악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 근정전이 꼬리를 잘라버리고 달아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휘태커가 말했다.
“그럼 그 다음에는요?”
안토니가 물었다.
“류 박사님이 맡겨달라고 하셨습니다.”
“류 박사님이요?”
“네. 매혈 조직에 대한 기록물과 행방불명자의 통계 자료 같은 건 그때 본인이 귀국한 후에 직접 처리하겠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