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 인공장기 (9) >
“이제 거기로 들어가나요?”
안토니가 긴장한 목소리로 로버트에게 물었다.
“잠깐 기다려요. 여기서 만날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로버트가 말했다.
“만날 사람? 그 건축 도면 보내준 사람이요?”
“아닙니다. 그 정보는 우리도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도 손 놓고 놀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연구소 안에 잠입한 사람이 이미 있군요?”
로버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띵!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지하 5층으로 내려와 멈추었다.
거기서 중년의 의사 한 명이 내렸다.
뜻밖이었던 점이 둘이었는데, 하나는 여자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인이었다는 것이다.
“헤이.”
그녀는 이쪽으로 다가와서 반가운 듯 로버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중국인이에요?”
안토니가 놀라서 물었다.
“아니요. 미국인입니다.”
남자가 웃으면서 안토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토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악수를 했다.
“하지만 부모님 고향이 중국이죠. 교포입니다. 이름은 낸시 장.”
"......."
“왜 그래요?”
“아뇨. 너무 놀라서요. 중국 신장 병원의 의사가 CIA 요원이라니.”
“본래는 베이징에서 의사로 일했습니다. 전 나름 실력도 꽤 좋아서 중국에서 꽤 높은 분들 주치의도 했죠. 그러면서 이런 저런 정보들도 좀 얻어내고.”
“근데 왜 지금은 여기에 계세요?”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이런 건 네이처에 쓰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신장위구르의 수용소가 몇 년 전에 세워졌고, 그게 인공위성에 포착됐어요. 최근에 관심도가 많이 올라갔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각국 정보 기관들은 이 지역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저도 그 때문에 2년 전에 신장 대학병원으로 이직했죠.”
“그럼…… 혹시 이식 수술도 해보셨……나요?”
“아뇨.”
낸시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저한테 그런 일을 맡기지를 않더군요. 한번만 맡겼다면 증거 자료들 수집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왜 안 맡기죠? 높은 분들 주치의도 하셨다면서요? 외과 담당이 아니신가요?”
“간담도외과예요. 하지만 간이식같은 수술 경험이 별로 없었죠. 여기에 그동안 왔던 고위직 관료들 중엔 제가 옛날 주치의를 맡았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한테 시키진 않더군요.”
낸시가 말했다.
“그밖에도 뭐, 꼰대 같은 중국 윗분들은 여의사한테 자기 목숨이 달린 수술의 집도를 맡기는 걸 꺼리시고, 저는 이식 경험도 몇번 안 되니까 그냥 쓰지 않는 거죠.”
"......."
“그런 이유로 안토니. 당신은 이제부터 중국 공안청의 경감 중 하나인 페이헝의 간 이식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될 겁니다. 저는 그걸 도와주는 역할이고요. 오케이?”
“오……오케이.”
“서로 인사 다 했으면 갑시다. 슬슬 타이밍이 됐으니까.”
로버트가 말했다.
“타이밍이요?”
“지하 경비가 전부 빠지는 타이밍입니다. 지하 6층 이하가 원칙상 폐쇄되고, 경비 두 명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불침 보초를 서죠. 경비 숫자가 가장 적은 시간이에요.”
***
로버트 팀은 지하 5층의 주차장 J43 기둥 뒤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 넓은 주차장 내에서도 가장 외진 자리다.
“여기다.”
로버트는 가방에서 조그만 전자 장비 하나를 꺼내어 기둥 뒤에 세웠다.
“그게 뭡니까?”
안토니가 물었다.
“전파 방해 장치입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경비들이 무선을 칠 테니까요.”
달칵.
로버트는 장비를 작동시킨 다음 콘크리트 벽면 한쪽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덜그럭 소릴 내면서 주먹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로버트는 벽을 붙잡고 옆으로 밀었다.
그 안에는 커다란 엘리베이터와 그 앞에 데스크가 하나 있었고 경비가 두 명 서있었다.
“누구십니까?”
경비 둘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수고가 많습니다. 지금 암호명 SB7084번 환자의 집도가 있습니다. 이쪽은 집도를 맡아서 진행하기 위해 방문해주신 환자의 주치의입니다.”
낸시가 안토니를 소개했다.
“……어……. 저희는 전달받은 사항이 없습니다. 이 시각은 원칙적으로 지하실은 폐쇄됩니다.”
경비 한 명이 말했다.
“긴급하게 들어오셨습니다. 간경화가 심해져서 복수가 계속 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미리 듣지 못한 거고요. 당장은 안정된 상태지만 이식이 시급합니다. 지금 병원 응급실에 계시니 확인해보십시오.”
“병원 응급실에 계신다고요? 왜 여기로 와서 수술을 안 하시고?”
“매우 위중하셔서 응급실에 가서 긴급 처치를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여기로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무전으로 확인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경비는 데스크의 무전기를 들어서 번호를 눌렀다.
-치지지지직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나오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이게 왜 이러지……."
당황한 경비 둘은 무전을 몇 번 껐다 켰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무전이 안 됩니까?”
휘태커가 물었다.
"......."
“하핫, 참. 촌구석 병원 경비들이라 그런가. 장비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군.”
로버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요?”
“왜? 불만 있습니까?”
로버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경비들을 쏘아보았다.
“우리는 바쁜 사람들입니다. 미안하지만 우리 상관을 위해서 여기서 시간을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요. 비키십시오.”
그가 공안청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외국인이 공안이라고요? 게다가 셋이나 있군요. 그리고 지시받은 적이 없는 상황이고요.”
경비가 쏘아보며 말했다.
“외국인이 있는 게 이상합니까? 이렇게 중국어가 유창한데?”
로버트가 되물었다.
"......."
로버트는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둘 다 잘 들어. 지금 수술을 받으려는 VIP는 중국 공안청에서 대외 정보 수집을 담당하시는 핵심 요인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영미에서 대외 공작을 같이 하며 생사를 넘었던 정보원들이다. 여기 있는 영국의 주치의를 다시 모시고 온 것도 우리야.”
“……. 이, 이쪽 분이 주치의이십니까?”
경비들이 안토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안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에서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외부인이니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공여자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걸 알리면 안 되니까요?”
안토니가 재빨리 치고 들어갔다.
경비들이 놀란 얼굴이 됐다.
“외부 주치의가 오는 경우에는 내부 의사가 공여자의 장기를 적출하고 외부 주치의에게 전달해 수술만 진행토록 하는 모양이지만, 저한텐 그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직접 적출부터 할 겁니다. 그 편이 중간 과정의 시간 소모를 줄여서 조직 손상을 최소화 할 수 있으니까요.”
“어엇……."
경비들이 당황하자 로버트가 말했다.
“믿어도 되는 사람이니 여기까지 데려온 거다. VIP의 공작 활동을 도우셨던 분이고 공안청하고 커넥션이 있는 사람이니 이제 길을 열어.”
“하, 하지만……. 그래도 저희는 확인되지 않으면 문을 열 수 없습니다.”
경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환자분은 제가 처음 진료를 했을 때부터 B형 간염이 있었습니다.”
안토니가 말했다.
“황달과, 출혈하는 정맥류가 동반된 문맥압 항진증을 겪고 계셨고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조직적합성이 맞는 공여자가 없어서 계속 시간을 허비했고 지금은 복수가 심하게 차고 있고, 혈중 알부민과 파이브리노젠이 저하되었습니다. 지금은 간성혼수가 있습니다.”
"......."
“간성혼수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간 기능이 너무 많이 손상되어서 의식과 행동, 신경장애가 생기는 겁니다. 한시가 급하니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겠습니다.”
“B78551번 공여자. 아닌가?”
로버트가 물었다.
경비는 데스크의 컴퓨터에서 엑셀을 열어서 암호명을 대조했다.
“마, 맞습니다."
경비가 말했다.
“우리가 이 정도의 극비 정보를 알고 있는데 그냥 좀 믿어도 되지 않나? 아니면 그 쓰레기 같은 무전기를 좀 고치든가. 병원 본 건물 응급실이나 보안 시설 팀까지 튀어 갔다 와.”
“……저희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요.”
“정말 난감하군요.”
경비들이 우물쭈물하자 휘태커가 끼어들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지하 6층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한테 최고 등급 보안 카드가 있거든요. 그걸 발급해줄 수 있는 건 메이 위썬 원장님뿐이죠.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당신들도 책임 소재에 대해 할 말이 생길 텐데.”
“보안 카드가 있다고요?”
경비가 놀란 얼굴이 됐다.
“외국인이 셋이니까 경비들이 동요할 수 있다면서 발급해줬습니다. 이제 들어가도 됩니까?”
"......."
경비들은 서로 얼굴을 힐끔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대신 무전이 고쳐지는 즉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
“별 거 아니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로버트가 말했다.
“하지만 보안 카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안토니가 물었다.
“보안 카드는 없죠. 그건 낸시도 위조할 방법이 없어요.”
“그럼 지하 6층 문을 못 여는 것 아닙니까?”
“지하 6층을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의료진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우리가 최근에 납치했죠.”
“납치했다고요?”
“휴가를 쓴 타이밍을 잘 맞춰서 했으니, 병원 측에서도 아직 모를 겁니다.”
“그럼 그 사람 보안 카드를 가져온 건가요?”
“아뇨. 보안 카드는 이 건물 부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어요.”
로버트가 대답했다.
안토니는 속이 터지는 듯 역정을 냈다.
“대체 그럼 뭘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카드는 없지만 지문은 있죠.”
로버트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순간 안토니는 경악해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것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거…… 검지를…… 잘랐……."
“열 개 다 잘라오려다가 검지만 등록했다고 울면서 사정하기에 이것만 잘라왔습니다.”
로버트가 말했다.
“죽진 않을 거예요. 내가 처치해놨으니까.”
낸시가 끼어들었다.
“대신 이제 메스를 못 쥘 테니, 장기 적출도 못하겠죠.”
띵!
엘리베이터가 지하 6층에 이르렀다.
네 사람은 출입문에 다가갔고 로버트가 손가락을 지문인식기에 찍었다.
삑!
문이 열렸다.
“이제 가방에서 카메라 꺼내십쇼.”
로버트가 말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끌면 안 됩니다. 지금부터 안토니 씨는 학술지 기자로 돌아가서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찍으세요. 저는 공여자를 구출할 겁니다.”
“전 휘태커 요원이랑 같이 보안 서고로 가서 장기이식 장부와 암호코드 고객명 데이터 하드카피를 가져올게요.”
낸시는 휘태커의 팔을 잡아끌면서 서쪽 방향 복도로 이동했다.
“아, 알겠습니다.”
안토니가 카메라를 꺼내며 말했다.
네 사람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안토니는 지하 6층 안쪽에 펼쳐져있는 역겨운 광경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사람들이 거의 가축처럼 취급되며 갇혀 있었다.
그러나 안토니는 기자의 본분에 집중하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공여자들의 모습과 수술실 등을 차례로 찍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이제 취업 캠프에서 말 잘 듣겠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울면서 빌어대는 소리에 정신이 다 혼미하다.
로버트는 B78551번 공여자를 찾아서 빼냈다. 상황을 짧게 요약해서 전달했다.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끝내는 가운데, CIA 팀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 하나 벌어졌다.
삐빅!
“홍채 인식이 필요해!”
낸시가 당황해서 외쳤다.
“X발……. 지문 인식이랑 홍채 인식 둘 중 하나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휘태커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여자 생활실을 이 지문으로 열었기 때문이야. 보안키가 병용이 안 되는 거야.”
낸시가 말했다.
“보안 참 지랄 맞게 해놨군.”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냥 돌아가야지. 욕심 부리지 마, 낸시. 여기 내부 사진을 찍었고 공여자를 구출했으니 그걸로도 충분해.”
“젠장. 핵폭탄 같은 무기였는데 다이너마이트 정도로 전락하는 꼴이잖아?”
“……. 별 수 없지.”
두 사람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삑!
철컥!
보안 서고의 문이 열렸다.
"......."
휘태커와 낸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채 인식기가 OPEN으로 변했다.
“뭐야?”
-후우…….
로잘린은 약간 피곤한 듯 이마를 감싸쥐었다.
‘됐어?’
실험실 의자에서 발을 구르던 류영준이 물었다.
-네.
로잘린이 말했다.
-제 세포 380만 개를 한 데 뭉쳐서 홍채 무늬를 일시 재현했어요. 근데 굉장히 피곤하군요.
‘……. 수고했어. 이제 집에 돌아가서 쉬자.’
류영준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우릴 무사히 보내줄까요?
‘나는 하루 종일 여기 연구실에 있었는걸? 출입 기록도 있고, CCTV 기록도 있어.’
-그래도 외부인들한테 공여자를 빼앗겼고 중요 장부 기록들이 전부 약탈당한 게 알려지면 난리가 날 텐데요. 당신한테 알리바이가 있어도 밖으로 못 나가게 붙잡을 걸요.
‘한번 두고 봐. 그렇게 못할 테니.’
류영준이 씨익 웃었다.
로잘린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병원이 발칵 뒤집어진 가운데 류영준이 귀국 의사를 밝히자 메이 위썬은 버럭 화를 냈던 것이다.
“어, 어딜 가시려고요. 지금은 안 됩니다. 여기 좀 더 계세요.”
“실험은 다 끝났습니다. 전부 바이러스에 감염돼있어요.”
“……. 지금 병원 내에 큰일이 하나 터졌습니다. 나가실 수 없습니다. 공안을 부르진 않을 테니 얌전히 있어주십시오.”
“큰일? 무슨 일인데요?”
"......."
“제 귀국도 급한 일입니다.”
“뭐가 급하신데요?”
인상을 쓰며 되묻는 메이 위썬에게 류영준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인공 심장.
에이젠바이오의 생명창조 팀이 만들어낸 물건이다.
“주석님은 사정 아시죠?”
"......."
“오래 못 버티십니다. 지금 에이젠바이오로 제가 가서 근정전하고 계약을 마무리하고 인공심장을 보내야 해요.”
“그……렇지만……."
“큰일이란 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가요?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십쇼. 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