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 인공장기 (8) >
“여기 캠프의 인원은 얼마나 되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3만 명 정도 됩니다.”
시설 관리 담당자가 답했다.
“3만 명 정도면 의료진을 많이 불러 모아서 좀 부지런히 움직이면 오늘 내로 혈액 샘플 채취를 마칠 수 있겠군요. 신장 대학병원의 부속 연구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앗, 잠깐만요.”
담당자가 황급히 말을 끊었다.
“생각해 보니 3만 명보다는 약간 더 많습니다……."
“얼마나 되나요?”
“그게……. 아무튼 오늘 안에는 안 됩니다.”
“그럼 얼마나 걸릴까요?”
“……최대한 빠르게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시설 관리 담당자는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곳으로 보내주시면 돼요. 저는 혈액 샘플들과 식수, 그리고 오염 가능성이 있는 공용 물품들에서 바이러스를 검사해보겠습니다.”
류영준은 다시 차량을 타고 신장 대학병원 부속 연구소인 중화 의생명 연구센터로 돌아갔다.
***
“이제부턴 꽤 위험해요. 김 팀장님.”
호텔에서 류영준이 김철권한테 말했다.
“제가 직접 움직이진 않고 전문가들에게 맡길 테지만, 그래도 어떻게 전개될지 모릅니다. 팀장님은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안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공안에 체포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약점을 하나 쥐고 있으니 그렇게 되더라도 우릴 어떻게 하진 못할 테지만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안됩니다.”
김철권이 다시 무뚝뚝하게 거절했다.
“고용주로 지시하는 겁니다. 돌아가요.”
“그럼 해고하십시오. 저는 그냥 개인으로, 사적으로 따라다니며 경호하겠습니다.”
"......."
류영준의 말문이 막혔다.
김철권은 류영준을 향해 상체를 약간 기울였다.
“류 박사님. 저도 눈치가 있는데 지금 정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압니다. 주석이 있다는 근정전에 소환되시고, 갑자기 신장 지역으로 오셔서 장기이식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오늘은 수용소인지 감옥인지 헷갈리는 캠프를 보고 오셨죠. 누가 봐도 정보 요원 같은 통역사가 따라다니고 있고요.”
김철권이 말했다.
“위험한 거, 저도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 혼자 돌아갈 순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저 한 사람, 사설 경호 업체 하나 옆에 붙어 있는다고 안전이 보장되진 않겠죠. 하지만 그래도 떠날 수 없습니다. 이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음......."
“처음 제가 류 박사님 경호를 맡은 다음, 퇴원한 류 박사님하고 광화문 앞을 지났던 때 기억하십니까? 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류 박사님을 린치한 놈을 잡아넣으라고 집회를 벌이고 있었죠. 국내에만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 수가 70만 명이니까요. 암 환자가 100만이고.”
김철권이 말했다.
“류 박사님은 지금 의학계의 등불이에요.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세상은 많이 병들어 있고, 당신은 그걸 치유할 능력이 있어요. 자신의 목숨을 더 많이 아끼셔야 합니다. 저 같은 놈을 앞에 방패로 세워 희생시켜서라도요.”
"......."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앞으로 할 일들은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연구만 할 겁니다. 그 이상은 CIA가 할 거예요.”
“CIA요?”
“그쪽에서 먼저 이번 일에 대해 연구를 요청했었습니다.”
띵!
류영준의 휴대폰에 메일이 도착했다.
양군위 성장이 보낸 자료였다.
혈패 에이전시에 대해 그동안 광둥성이 자체 조사한 내역이다.
추가로 그동안 광둥성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정보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양군위는 류영준이 그 조직과 이친친이라는 행방불명자를 찾는 것 사이에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좋아.”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가 하나 왔네요.”
***
CIA는 휘태커 요원을 통해 바이러스의 정체를 분석하는 작업을 류영준에게 의뢰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류영준이 베이징에서 근정전에 들렀다가 곧바로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이동한 것도 알고 있었다.
뭔가 심각성을 느끼고 이곳으로 온 것일 게 분명하다.
류영준 쪽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면 CIA 측에서 먼저 접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류영준이 한발 빨랐다.
-CIA 휘태커입니다.
류영준은 CIA 본국으로 연락한 후 휘태커 요원과 통화를 연결했다.
“류영준입니다. 닥터 레프가 신장위구르로 보낸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게 뭔가요?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입니다. 건강한 성인에겐 병증을 일으키지 않지만, 장기이식이 일어날 경우 이식 수혜자의 몸에서 병이 발생합니다.”
-……아급성…… 뭐요?
“자세한 연구 결과는 후에 다시 리포트할 겁니다. 그보다 요원님께 신장 지역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메일 하나만 알려주실래요?”
-CIA의 임시 계정 메일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문자로 보내드리죠.
휘태커 요원은 전화를 끊은 후 메시지를 전송했다.
보내면서도 긴가민가해서 대체 뭘 보내주겠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신장 지역에 방금 도착한 사람이 세계 최고의 첩보 단체인 CIA가 2주 가량 개고생을 하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이 지역의 비밀에 대해 무슨 정보를…….
띠링.
메일이 도착했다.
그리고 휘태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건 신장 대학병원의 지하가 그려진 도면이었다.
지하 5층까지 밖에 없다는 기존의 정보와 달리 지하 6층 이하로 세 개의 층과 방대한 시설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 아래로 내려가는 비밀 엘리베이터가 숨겨진 위치와,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데 얼마나 많은 경비를 마주치게 되는지, 또한 보안 카드의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 지하 6층 시설에서부터는 홍채와 지문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까지 기록돼 있었다.
“뭐……."
그뿐만이 아니다.
신장위구르 취업 캠프의 구조가 샅샅이 설명되어 있었으며, 그곳에 수감된 위구르인이 무려 300만에 이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도 훨씬 막중한 정보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불법 장기 적출에 관한 것이었다.
지하 6층부터 8층까지는 ‘공여자의 생활실’과 수술실이 완비돼 있다.
공여자가 생활할 공간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심장 같은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이라면 죽기 직전까지 중환자실에 있을 텐데.
정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혈 조직, 혈패 에이전시에 대해 조사된 기록과 그들의 혈액으로부터 조직적합성 검사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매혈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날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광둥성 성장 양군위의 진술.
“이게 무슨…… 도시 괴담도 아니고……."
통계 자료와 광둥성 행정청이라는 출처가 없었다면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자료들이 그려내는 그림은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매혈 마을들에서 행방불명된 사람 수가 왜 이렇게 많아……."
휘태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같은 CIA 요원인 로버트에게 연락했다.
***
네이처의 에디터 안토니는 한밤중에 찾아온 CIA 요원 둘을 보고 약간 당황했다.
휘태커와 로버트였는데, 로버트하고는 이미 일면식이 있었다.
“여기 위험한 곳이라고 전에 귀국하시라고 전해드렸는데 아직 안 가셨군요.”
로버트가 말했다.
“제, 제 마음입니다.”
안토니가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여기는 사복 공안이 옛날 게슈타포처럼 외국인을 감시하는 곳입니다. 우리처럼 이런 일에 숙달된 사람도 위험할 수 있어요. 하물며 종군 기자도 아니고 학술지 에디터 일을 하는 분이 조사할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로버트가 말했다.
“이건 권유가 아니라 경고입니다. 인질로 잡히기라도 하면 난처해지니까요. 귀국하십시오. 이미 많은 외신 기자들이 돌아갔습니다.”
“……싫습니다.”
“싫어요?”
“네이처는 그동안 중국의 장기이식 환자들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을 수없이 많이 실어왔습니다. 그 중에선 제가 편집을 본 것도 많죠. 저는 장기이식과 면역 반응을 전공으로 학위를 했으니까요.”
안토니가 말했다.
“이제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필드에서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요!”
"......."
“저는 에이젠바이오의 류 대표님 팬입니다. 그 사람이 뛰어난 연구 업적을 연달아 뽑아내서만은 아니에요. 비윤리와 충돌했을 때 단 한 번도 몸을 사리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박살 내며 여기까지 오셨기 때문이죠. 저는 그게 부러웠어요. 이젠 과학계가 변해야 할 땝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할 겁니다.”
“흐음……."
휘태커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로버트를 슬쩍 바라보았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가 안토니에게 말했다.
“……그래도 남을 겁니다.”
“좋아.”
휘태커는 짐을 내려놓으며 안토니의 옆에 앉았다.
“우린 생물학이나 장기이식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작전을 진행하려면요.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그럼 지금 신장 지역에서 중국이 감추고 있는 1급 기밀의 뚜껑을 따는 걸 하게 해드리죠.”
“뭘 하시려는 거예요?”
“저쪽 비밀 수술실에 잠입할 겁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아까 말했듯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비밀 수술실에 잠입한다고요?”
안토니의 눈이 커졌다.
“네."
“그……. 근데 저는 사명감 때문에 조사하고 있었지만 CIA는 왜 그렇게까지……."
“하하. 이런 일들은 국가간의 권력 대결입니다. 중국 같은 나라하곤 수없이 많이 있었죠.”
휘태커가 말했다.
“신장 지역은 문화적으로 민족적으로 중국 본토와 많이 다릅니다. 근데도 그 지역의 무슬림들의 독립을 중국 정부가 막은 이유는 신장 지역의 지하자원 때문이에요.”
“지하자원이요?”
“그곳의 천연가스와 석탄 매장량이 중국 전체의 40 퍼센트에 이릅니다. 석유 매장량도 중국 내 1위고요.”
로버트가 설명을 덧붙였다.
“미국은 이번 정치 스캔들을 국제 사회에 공론화시켜서 신장의 독립을 추진할 겁니다. 그럼 그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강해지죠.”
"......."
“각종 대의명분을 갖다댈 수도 있었지만 안토니 박사님, 당신을 위해서 솔직하게 얘기해드린 겁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납치되고 장기 적출을 당하는 불쌍한 시민들을 구출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뿐입니다.”
안토니는 잠깐 망설이다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좋아요. 이걸 보세요.”
휘태커는 류영준이 보내준 자료들을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엄청난 자료를 맞닥뜨린 안토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어떻게…… 이런 정보를 누가 준 거예요?”
충격으로 말을 더듬으며 안토니가 물었다.
“출처는 비밀입니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상당히 신뢰도 높은 출처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우린 이제부터 이 자료의 증거를 수집하러 갈 겁니다.”
휘태커가 말했다.
“증거요?”
“네. 이대로면 발표하고 중국 정부를 압박해도, 괴담일 뿐이라고 일축하면 그만이니까요.”
로버트가 말했다.
“여기 지하의 공여자의 생활실을 덮쳐야 합니다. 수술 장부가 있으니 그걸 확보하고, 시민들을 구출해서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갈 겁니다. 거기서 준비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면 끝입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탈출로는 확보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안토니 씨가 잘 해준다면 우리는 연구진으로 위장해서 무력 충돌 없이 그들을 빼돌리는 것도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
류영준의 바이러스 연구는 순항했다.
신장위구르 취업캠프에서부터 하루에 세 대씩 화물차가 넘어왔다.
화물차에는 커다란 박스가 수십 개씩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천 개씩 혈액 샘플이 있었다.
하지만 류영준은 그들을 전부 분석하지 않았다.
날짜별로 무작위로 선정한 표본 2,000개씩만 드롭식을 돌려서 확인했다.
전부 닥터 레프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남는 시간 동안은 다른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장기가 이식되었을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심장 오가노이드를 제작하고 동물 모델에서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의 진행을 확인했다.
중국 주석인 천슈에의 몸에서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똑같이 비글 열 마리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건 생물학적인 실험 증거물이다.
중국에서 죽어 나가는 고위직들이 신장위구르 수용소에서 장기이식을 받았다는 증거.
하지만 그게 ‘불법’ 이식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건 CIA가 확보해 줄 것이다. 저쪽에서 그 건을 터뜨릴 때 류영준은 이 데이터를 함께 공개할 생각이었다.
그는 실험이 거의 끝났는데도 취업 캠프에서 넘어오는 혈액들을 받아주며 시간을 끌었다.
-들어왔어요.
로잘린이 말을 걸었다.
밤 11시.
로버트와 휘태커, 안토니가 연구소의 지하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주차장 자체는 대중에게도 공개된 공간이라 문제없이 들어왔지만 지하 6층으로 내려가는 데는 많은 보안이 따른다.
-저 사람들이 잘할 수 있을까요?
로잘린이 물었다.
‘휘태커는 자신이 있댔어. 완벽한 건축 도면과 경비의 배치도, 그 정도의 자료가 있는데 지하실에 침입 못 하는 요원은 CIA에 없다고.’
류영준이 말했다.
‘한번 믿고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