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 인공장기 (7) >
“다 됐습니다.”
류영준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안에서 뭘 하셨습니까? 누구랑 통화하셨나요?”
통역사가 물었다.
“회사 일 때문에 지시를 하나 내렸습니다. 전 과학자지만 에이젠바이오의 대표이기도 하니까요."
류영준이 시침을 뚝 떼고 말했다.
통역사는 류영준을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분명히 지금 읽던 자료에서 무언가를 알아채고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중요한 일일 텐데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공안청을 통해서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류영준이 말했다.
“슬슬 돌아가죠. 장기 이식 차트를 다시 봐야겠습니다.”
류영준은 앞장서서 메이 위썬의 원장실로 이동했다.
“어디 갔다오셨습니까?”
메이 위썬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류영준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글로 번역된 장기이식 차트를 집어 들었다.
“이 자료, 제가 가져도 됩니까?”
“네, 가지세요.”
“감사합니다. 124명, 이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추적하겠습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이 발병할 수 있으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124명이 아니라 4만 8천 명입니다.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1년 사이에요.
‘그래?’
-네. 지금 하드카피로 보관된 장기이식 진료 기록을 찾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지.’
류영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불법적인 장기이식 과정에서 과연 이런 자료를 남겨두었을까?
당연히 남겨놓았을 것이다. 류영준은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야 병원 입장에서 언젠가 문제가 터졌을 때 혼자 덮어쓰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장기이식은 거부반응을 보통 반년 이상 추적하며 지켜보는 편이다.
고객들이 전부 대기업 수장들이나 고위 공직자들과 그 가족들이라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사후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리고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구체적인 진료 기록이 남아있어야만 한다.
‘이 124명의 자료는 그 중에서 극히 일부만 가져온 거겠군. 공여자의 신원이 비교적 공개하기에 안전한 사람들로.’
하지만 천슈에의 경우엔 이미 류영준이 알고 있는 케이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끼워넣었을 공산이 크다.
‘그 4만 8천 명의 자료들은 어디에 있지?’
-지하 6층에 있는 보안 서고입니다.
‘거기로 나도 내려갈 수 있을까?’
-이 병원의 암병동 뒤로 돌아가면 대학병원 부속 연구소가 있습니다. 중화인민 의생명 연구소라는 곳이죠. 거기서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습니다.
‘그 연구소에 먼저 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군.’
-네.
“취업 캠프로 가시죠.”
류영준이 메이 위썬에게 말했다.
“이제 그곳에서 바이러스 확산 정도를 진단하고 실험을 좀 해야겠습니다.”
“실험이요?”
메이 위썬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네. 당연한 것 아닌가요? 바이러스를 검출하고 진단하려면 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에 기반을 둔 실험이 기본입니다.”
"......."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 실험실을 좀 써야겠습니다.”
"그......."
“연구 보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남는 실험실 아무거나 주셔도 되니까요. 연구소에 출입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메이 위썬은 고민에 잠겼다. 그는 류영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는 한참 생각했다.
어차피 보안은 완벽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도 못할 테고, 찾아내도 마스터 키 카드와 지문 인식 없이는 들어갈 수도 없다.
“……. 알겠습니다. 실험실을 제공하겠습니다.”
메이 위썬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내려가서 어쩌시려고요?
로잘린이 물었다.
‘증거를 수집해서 폭로할 거야.’
류영준은 진료 차트를 가방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취업캠프로 출발할까요?”
“네. 가시죠.”
메이 위썬이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면서 일어났다.
류영준은 먼저 앞장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였다.
"......."
류영준의 몸이 살짝 굳었다.
“안 내려가십니까?”
통역사가 의아한 듯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 미안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그가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살짝 그러쥐었다. 손아귀에 땀이 흥건하게 찼다.
지금 류영준의 눈에는 로잘린의 시야가 공유되고 있었다.
지하 7층에 처음으로 도착한 로잘린의 체세포 842만 7807호의 시야였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은 수백 개의 ‘감옥’이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이런 장면을 서술할 수 있는 단어는 류영준의 머릿속에 감옥밖에 없다.
방음 효과가 탁월한,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3평짜리 방들이 나누어져 있다.
강철로 된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방 안에는 헐벗은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고객 중에는 당 지도부의 어린 자제도 있다.
당연히 어린이에게 성인의 장기를 이식할 수는 없으므로 이곳에 수감된 이들 중에는 10대 초반의 소년 소녀도 있었다.
로잘린은 열 살 남짓한 남자아이의 문패를 읽었다.
[B78494
pulmonary transplantation 17.Apr
recipient : SB7031 .......]
pulmonary transplantation은 폐 이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날짜를 의미하는 17.Apr, 4월 17일. 아직 몇 주 정도 남았다.
수혜자는 암호명으로 SB7031.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는, 기증자로 보이는 아이가 중환자는커녕 몹시 건강해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극도의 불안을 겪고 있었다.
문밖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났다.
그들의 모습이 로잘린의 시야에 들어왔다.
간수가 아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수감된 ‘공여자’의 방들을 하나씩 방문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여자의 맥박 등을 재고 피를 조금 뽑았다.
“씨발......."
“네?”
류영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걸 들은 통역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빨리 갑시다. 취업 캠프로요.”
***
신장 대학병원은 카스(Payzewat) 현의 중앙부에 있었다.
여기서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곧 카스 현의 북부, ‘티리무(Tierimue) 타운’이 나타난다.
타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황량한 흙바닥과 어렵게 개간된 논밭, 그리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벽이다.
그 회색 방벽은 따분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거대한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데, 티리무 타운 전체 크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서울로 따지만 지역단위로 ‘구’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그리고 방벽 사이사이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감시탑과 밖을 지키고 있는 경비대원들로 엄중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류영준은 약간 긴장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세계 각국에서 여러 번 인공위성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한 초거대 수용소, 무슬림 위구르인의 ‘취업 캠프 (Re-education camps)’다.
중국 정부는 이걸 위구르인들에게 취업 목적으로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의 일종이라고 발표했지만 국제 사회는 그걸 믿지 않는다.
이미 많은 언론과 각국 지도부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장소이며, 엠네스티 같은 국제인권기구에서 크게 염려하고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류영준은 이제 알 수 있다.
그가 탄 차량이 수용소 내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맙소사…….
로잘린이 약간 얼어붙었다.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다시피 한 로잘린이 이 정도로 놀라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
어쩌면 로잘린의 시야가 인간보다 훨씬 넓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은 그 광경의 각 요소를 한번에 목격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 이 사람들이 뭘 하는 거죠?
수백만 명에 이르는 위구르인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머리를 밀고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 80만에 이르는 이들이 재교육 센터 내부의 300여 개의 공산품 공장에서 노역을 하는 중이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12시간 째 기계 부품을 조립했다.
또 한편에선 4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이 생활 센터에 모여 무릎을 꿇고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천슈에 주석님 만세!”
“공산당에 승리를!”
“중국은 하나다!”
그 옆의 공터에서는 무슬림 2천 명이 돼지고기를 먹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3일 동안 굶었고, 돼지고기를 먹거나, 먹고 토하거나, 거부하고 벌을 받고 있었다.
비정상적이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 현장은 부자연스럽다.
모든 생물계에 정통한 로잘린에겐 너무나 낯설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차라리 장기를 약탈한다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을 쓰는 것은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납득이 된다.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니까. 생물 종을 몇 개 멸종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원래 경쟁에서 밀려 도태된 생물들은 멸종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사람 40만 명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한 자리에 모아 무릎을 꿇려놓고 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현장.
굶주린 이들에게 돼지고기를 먹게 하고 거부했을 때 얼차려를 주는 어처구니가 없는 현장.
이 비효율과 맹목성은 광기다.
자연계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이건 로잘린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게다가 한둘 정도라면 정신병을 고려해볼 테지만 지금 이곳의 규모는…….
-100만 명이 아니에요.
로잘린이 말했다.
-훨씬 많잖아요. 이건 300만은 되겠어요.
로잘린은 충격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무슬림을 부정하고 중화사상을 찬양토록하는 끝없는 사상 재교육으로 정신이 무너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 여기저기 부러지고 멍든 뼈와 근육. 채찍에 갈라진 살틈에 몰려드는 파리들.
그들은 오랜 고문과 학대로 반항심을 잃어버렸고, 찌들어버린 노예 근성 탓에 간수가 손만 들어올려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지금 재교육 센터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그 무슬림들 중에서도 비교적 ‘멀쩡’하고 가장 많이 ‘중화화中華化’된 얌전한 이들이다.
어제부터 류영준이 이곳에 방문할 수도 있으니 가학 행위를 엄금하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반항할 힘과 정신이 남은 무슬림 위구르인 나머지 200만여 명은 구금 시설에 갇혀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한 층 더 처참했다. 이성을 놓아버렸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도 흔하다.
로잘린은 그 모든 현장을 한눈에 목격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로잘린이 말했다.
-이 폭력에는 목적이 없어요. 저는 이기적인 동기로 사람을 해치거나 착취하는 것을 전부 이해해요. 그것에 조금도 불쾌함이 없어요. 그게 생물의 본성 중 하나니까. 하지만 이건 달라요.
류영준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로잘린은 수용소를 둘러보던 세포들을 정리하고 조그만 소녀의 모습이 되어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류새이를 똑닮은 그녀의 얼굴 위에 불안함이 가득 드러났다.
-정말 여기에 들어가실 건가요?
‘괜찮아.’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로잘린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럼 반드시 제 옆에 계셔야 해요.
로잘린이 말했다.
-당신은 제 삶의 최우선 순위예요. 저는 이런 현장에도 충격을 느꼈을뿐 화가 나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다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 이제부터 세포 절반과 피트니스를 당신의 몸에 축적시킬 거예요. 일종의 비상 전력으로. 그래야 유사시에 제가 당신을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류영준의 다리 옆에 꼭 달라붙는 로잘린은 그를 지켜준다기보다 류영준의 보호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잘린은 은연중에 본인의 불안함을 류영준에게 기대어 풀고 있었다.
‘그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지만 이러니까 꼭 정말 새이처럼 그냥 어린애 같네.’
로잘린을 가만 쳐다보던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네?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번 일도 잘 해결될 거야.’
류영준은 말했다.
‘이런 일엔 내가 전문이니까. 아무도 우릴 건드릴 수 없을 거야. 약속할게. 나한테 계획이 있어.’
-.......
로잘린은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로잘린의 감정의 동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덜컥.
차량이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이 건물 안입니다.”
메이 위썬이 말했다.
류영준은 차에서 내려 취업 캠프의 시설 관리 책임자의 사무실을 향해 이동했다.
통역사와 메이 위썬, 김철권이 그를 뒤따랐다.
***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의 혈액 샘플을 모아주시고 식수도 주십시오. 전부 검사해야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숫자가 꽤 될 텐데 전부 검사할 수 있습니까? 연구원들을 데리고 오셨나요?”
메이 위썬이 물었다.
“아니요. 하지만 혈액 샘플들은 한 데 모은 다음 드롭식(drop seq)을 이용해서 분석하면 됩니다. 그럼 이곳 수용 인원 중 몇 퍼센트가 감염되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정확히 누구인지 찾아내는 것은 그 다음에 실험 규모를 높여서 진행해야죠.”
“알겠습니다.”
“혹시 드롭식이 연구실에 없는 것은 아니죠?”
“아……. 물론 있습니다.”
메이 위썬이 답했다.
“샘플들을 모아주세요. 오늘 밤부터 바쁘게 실험을 해야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실험을 할 생각은 없다. 들어오는 순간 이미 정황을 거의 다 파악했으니까.
동기화 모드 속에서 로잘린은 이 지역의 바이러스를 전부 추적했다.
오염원은 식수.
그 바이러스는 너무 작은데다 껍질이 교묘하게 조작되어 장을 통해 흡수된다. 그리고 혈액을 타고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사실 이곳에 수용된 모든 사람과 간수들이 이미 전부 감염되어 있었다.
아마 이친친도 수술 전에 이곳에 들렀거나 병원 지하에서 감염자와 같은 식수를 쓰는 등의 접촉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