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 인공장기 (6) >
-이상한 걸 찾았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뭔데?’
-건물 건축 도면이요.
‘그게 왜 이상해?’
-이 건물은 지하 5층까지만 있고 전부 주차장이니까요.
‘도면은 달라?’
-지하 6층이 있고 헤파 필터를 비롯한 무균 수술실 장비가 설치돼있는 것 같은데요. 병실들도 있고요.
'.......'
-그리고 지하 7층과 8층도 있습니다.
류영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거 말고도 계약서 몇 개를 찾았어요.
‘계약서?’
-장기이식에 필요한 조직적합성 검사에 대한 건데, 이곳 병원에서 적합성 검사를 해준다는 계약이에요.
‘병원이랑 어디랑?’
-혈패 에이전시라는 회사입니다.
철컥.
자동차 문이 열렸다.
바깥에서 긴장한 표정의 남자 셋이 류영준에게 인사했다.
“후아니잉.”
“어서 오십시오.”
류영준의 옆자리에서 따라 내리던 남자가 통역했다.
이 통역사는 류영준이 천슈에를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쭉 동행한 사람이다.
“가시죠.”
통역사가 류영준의 팔을 잡아당기는 순간.
함께 차를 타고 온 케이캅스 경호팀의 김철권 팀장이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가시죠.”
김철권이 다시 말했다.
그 우락부락한 어깨로 통역사를 밀어낸 김철권의 표정에는 평소 같은 여유가 없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지금 이 공간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안내해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로잘린에게도 말했다.
‘다른 자료들도 좀 더 찾아줘.’
-지하 6층 이하로 내려가는 길도 탐색해보겠습니다.
로잘린이 답했다.
***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학병원 원장, 메이 위썬은 류영준을 앞에 두고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류영준이 그리로 갈 것입니다.’
보건당국 장관이 이틀 전에 전화로 직접 통보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바이러스 확산 정도를 정밀 진단하기 위함이라 한다.
100만 명이 수용된 ‘취업 캠프’의 보건 관리를 맡은 이곳 대학 병원에 먼저 들러서 장기이식 등의 차트를 살펴볼 거라고 했다.
하지만 류영준의 성격을 볼 때 이곳에서 장기이식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절대 그 어떤 불건전한 모습도 보여선 안 됩니다. 만약 류영준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장기이식의 위법성을 알아채고 돌아가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보건당국 장관의 당부에 메이 위썬은 처음엔 황당한 기분이었다.
류영준의 유명세야 요즘 시골 마을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대기업 수장 정도다.
생명 윤리에 대한 그의 집착을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그가 중국 같은 강대국을 어떻게 뒤흔든단 말인가?
메이 위썬은 그 부분을 캐물어보았지만 장관은 더 엄격한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공산당 정무 위원회보다 더 위에서 내려온 명령입니다. 실수하면 메이 위썬 원장, 당신만이 아니라 가족들 목숨까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원장님.”
류영준이 말을 걸었다.
잠깐 며칠 전의 회상에 빠져있었던 메이 위썬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앗, 바, 바오찌엔……. 니 슈 쒄마?”
메이 위썬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류영준의 뒤에 서있던 통역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메이 위썬을 한번 쏘아보았다.
베이징에서부터 통역을 맡아 이곳으로 따라온 국무원 소속 통역사다.
아니, 사실 통역이 본 직업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공산당 정보부 직원이 한국어를 익힌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혹시 실수를 하지 않는지 감시하려고…….'
메이 위썬이 침을 꼴깍 삼켰다.
통역사가 메이 위썬의 말을 류영준에게 옮겼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장기이식 차트를 보고 싶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장기이식 차, 차트요. 잠시만요.”
메이 위썬의 손이 떨렸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차트를 꺼내어 류영준에게 내밀었다.
124명.
“이게 지난 3년간의 데이터입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원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이거밖에 안 된다고요? 최근에 편집 중인 네이처 논문을 보면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서 무려 3만 명이 수술을 받은 걸로 나와 있던데요.”
“그게 저……. 신장위구르 전체 지역의 얘기일 겁니다. 그리고 각 병원마다 의료 데이터 기록이 뒤죽박죽으로 섞이면 추적하거나 하기 어려우니까요. 3만 명까지 안 될 겁니다. 신장위구르에서 많아봤자 3년 동안 3천 명 이내일 거예요.”
"......."
류영준은 차트를 천천히 읽었다.
“한글로 돼있군요.”
“보러 오신다고 해서 미리 번역을 준비했습니다.”
......
7월 23일
공여자 : 이친친 (27)
수혜자 : 천슈에 (65)
좌심방을 문합한 후, 상하 정맥을 각각 문합하였다.
면역 억제 유도를 위해 Basiliximab; Simulect를 투여하였다.
문합이 완료된 완료 후에는 심장의 재관류가 이루어지기 전에 Methylprednislolone을 500mg 정맥 주입하였다.
수술 종료 후에는 Tacrolimus, mycophenolate mofetil, prednisolone을 투여하여 면역 억제를 유지했다.
-경과
......
“공여자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좀 더 확인할 수 있을까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여기 드리겠습니다.”
메이 위썬이 다른 서류 다발을 내밀었다.
-이친친
-27세
-본적 : 광둥성 찌에양 341-7
“광둥성 사람이네요?”
류영준이 물었다.
“맞습니다.”
“광둥성은 중국 남쪽 끝에 있는 지역인데 이 멀리 떨어진 신장위구르까지 왜 오신 거죠?”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그런 것까지 파악할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렇겠……."
류영준의 대답이 우뚝 멈추었다.
장기이식에서 공여자와 수혜자의 조직적합성이 맞아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특히 신장위구르처럼 중국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면 민족학적으로도 다를 것이고, 그럼 생물학적으로도 차이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족 주석인 천슈에의 몸에 딱 맞아 떨어지는 조직적합성을 가진 심장이 이곳 신장위구르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이 주석의 목숨을 포기할까?’
류영준은 ‘광둥성 찌에양’이라는 주소를 가만히 쏘아보다가 곧 등골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맙소사…….'
어디서 들어본 동네라는 생각은 했는데 이거 설마.
“잠, 잠깐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류영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류 박사님?"
통역사와 메이 위썬이 놀라서 일어났다. 류영준은 빠르게 문밖으로 튀어나갔고 통역사가 그 뒤를 쫓았다.
“대표님?”
문밖에서 쳐다보는 김철권의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잠깐만 혼자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는 류영준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갔다.
철컥!
‘로잘린. 세포 몇 개만 화장실 밖에 세워서 감시해줘.’
류영준이 말했다.
로잘린의 세포들이 화장실 밖의 복도 위를 부유했다.
통역사가 문 앞까지 달려왔다.
“안 됩니다.”
통역사가 문에 접근하자 김철권이 막아섰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전 통역입니다.”
통역사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김철권이 무뚝뚝하게 답하고는 문앞에 딱 버티고 섰다.
통역사는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김철권을 믿어도 되겠군.’
류영준은 휴대폰을 꺼내어 앨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류 박사님?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지금 통화상으로 통역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네……. 뭐 지금 바쁜 건 아니니까요. 무슨 일이에요 근데?
“3자 통화 걸겠습니다.”
류영준은 전화를 돌렸다.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쯔쉬안]
허찌엔칭의 유전자 조작질에 희생된 아기의 어머니다.
-웨이?
-여보세요?
쯔쉬안의 목소리를 앨리스가 옮겼다.
“쯔쉬안 씨. 접니다. 류영준입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류영준은 극도의 불안감을 억누르면서 간신히 물었다.
“쯔쉬안 씨……. 고향이 광둥성 찌에양이라는 지역……. 맞습니까?”
-맞아요.
쯔쉬안이 대답했다.
“매혈로 먹고사는 마을이었다고 했죠?”
-네. 찌에양 산골에 있는 마을이었죠.
매혈.
혈액을 얻으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조직적합성을 판별할 수 있다.
항체 정보가 혈액 속에 있으니까.
“그 매혈 조직 이름이 무엇이었나요?”
-혈패 에이전시라고 하는 곳이었어요.
류영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을 고르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이친친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아니요.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저희 마을 사람인가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영준은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에요? 혈패 에이전시가 뭐예요?
앨리스가 물었다.
“전화 한 통만 더 할게요.”
류영준은 다시 3자 통화를 걸었다.
-웨이?
광둥성의 성장 양군위였다.
“성장님. 류영준입니다.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혹시 광둥성 시민 중에서 이친친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이친친이요? 광둥성의 인민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무슨 수로 그 이름을 하나하나…….
양군위가 볼멘 소릴 했다.
“찌에양 341-7에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신원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이런 거 외부인에게 알려줄 수 없는 정보입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큰 전염병과 관련된 겁니다.”
-알겠습니다. 류 박사님한테는 은혜를 입은 게 많으니.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양군위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 대해서 거의 몰랐다.
그리고 양군위는 류영준에게 마오쩌둥에 대한 아쉬운 소리도 했다. 보건당국 장관이 옆에서 듣고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양군위는 중국 중앙정부와 노선이 약간 다른 권력자다.
중국 공산당에 충성을 다하는 애국자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비록 고집도 세고 오만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자존심 다 버리고 도움을 청할만큼은 합리적이다.
그리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멀리 떨어진 외부 지역의 정치 싸움이나 불법 사업에는 별 관심없는 사람인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 최고의 산업 단지인 광둥성의 발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덕분인지 광둥성은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허브다. 한 성의 GDP가 러시아 전체와 맞먹을 정도가 아닌가.
그럼 천슈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류영준이 우려하는 게 맞다면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천슈에가 양군위 같은 지방 최강의 권력자에게 이런 사실을 공유했을까? 아니다. 양군위는 자기가 아는 선에서 사실만 전할 가능성이 높다.
-음.......
양군위가 대답했다.
-지금 제 컴퓨터 전산에서 조회를 해봤습니다.
“어떤가요?"
-행방불명된 사람이군요.
양군위가 말했다.
-1년 전, 7월 16일에요.
"......."
차트에서 수술일로 나왔던 7월 23일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이다.
-등록된 상세 주소를 보면 아마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이 지역이 재개발 중인 땅이거든요.
“혹시 매혈을 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음…….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광둥성에는 매혈로 먹고 사는 마을들이 좀 있습니다. 그 중 상당수가 찌에양에 있죠.
양군위가 답했다.
-상당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혈패 에이전시라고 아십니까?”
-그 쓰레기 같은 조직들. 제가 그놈들을 뿌리 뽑아버리려고 몇 년을 싸웠습니다. 그 놈들 불법 매혈 조직입니다. 계속 거처를 옮겨가면서 유령 회사를 운영하는데 조만간 다 소탕해버릴 겁니다.
“그들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게 있으면 전해주실 수 있습니까?”
류영준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