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 인공장기 (5) >
“그 방법과 조건을 듣기 전에.”
천슈에가 말했다.
“류 박사님 말대로라면 내가 이식받은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어 위험해진다는 것 같은데, 그 치료제를 쓰면서 3개월 안에 다른 심장을 이식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될 것 같은데요.”
천슈에가 물었다.
그의 비릿한 사고방식에 류영준은 약간의 역겨움을 느꼈다.
‘무슨 자동차 부품 갈아끼우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면 면역 체계가 그것을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성 물질이라고 인식하고 파괴한다.
그걸 ‘면역 거부 반응’이라고 부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대의학은 세 가지 전략을 이용한다.
첫째는 공여자와 수용자 간의 완조직적합성 항원의 일치 확인.
둘째는 비특이적 면역억제제의 사용.
마지막으로는 면역관용의 유도다.
첫 번째 전략에서 의사들은 공여자와 기증자의 혈액형과 백혈구의 항원을 검사 (Human Leukocyte Antigen, HLA 검사)하여 적합성을 확인한다.
수여자와 공여자의 조직적합성이 백 퍼센트 일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은 ‘어느 정도’ 일치하면 이식하는 걸로 타협을 본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식해주려는 공여자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에 동의한 중환자가 사망했을 때, 그의 조직 적합성이 어느 정도라도 맞아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률이 웬만큼 되겠다 판단되면 그냥 이식을 한 후에 면역 억제제와 면역 관용 유도로 후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면역체계가 중국의 국가 주석을 알아볼 리는 없다.
그러니까 3개월 안에 사망하는 중환자의 심장이 천슈에의 몸에 적합할 확률 역시 다른 환자들만큼 낮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있게 다른 심장을 이식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것은 역시 찝찝하다.
여차하면 조직 적합성이 좋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이라도 뽑아다 쓸 것 같은 뉘앙스가 아닌가.
그러나 이 방법은 불가능하다.
“말씀드렸듯이 치료제를 사용하면 심장의 이식 접합부가 괴사하면서 면역 세포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 자리에서 면역 반응이 촉진됩니다. 당연히 다음에 이식되는 심장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제가 드린 치료제를 사용하면 두 번째 이식은 불가능합니다.”
"......."
“조직적합성이 100퍼센트 일치하는 심장을 찾지 않는한 안된다는 거군요."
판 마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실상 치료할 수 없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의료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류 박사님의 대안은 뭡니까?”
천슈에가 물었다.
“인공장기를 만들어 이식하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인공장기?”
의료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이젠바이오에서는 오래 전부터 오가노이드와 인공장기 개발에 매진해왔습니다. 이미 소장을 비롯한 몇 개의 장기의 개발 방법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식한 적은 없었죠.”
“전혀 검증되지 않은 그 황당한 걸 주석님한테 테스트하겠다는 겁니까?”
펭 쿠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 방법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
“치료제를 복용하면서 잠깐만 버티세요. 주석님의 체세포로부터 만든 인공 심장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본인의 세포로부터 만드는 것이니 조직적합성이 100 퍼센트가 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천슈에는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그 방법이 유일한 것 같군요.”
그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류 박사.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천슈에가 말했다.
“어떤 거죠?”
“이 치료제와 인공장기는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습니까?”
“……. 주석님 말고 다른 환자들이 더 있는 거군요? 몇 명이나 됩니까?”
“우리의 보건당국에서도 그 숫자는 추적이 안 됩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 가서 병원 담당자들을 통해서 전산을 확인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내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중남해에도 상당히 많은 숫자가 나랑 비슷한 꼴로 누워있다는 것이죠. 모두 지금의 중국을 이끌고 있는 주역들이라 한 자리라도 비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 치료제는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인공장기는 얘기가 달라요. 에이젠바이오 내에서도 인공장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20명 남짓이 될 겁니다. 그것도 이식 장기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질 테고요.”
“……. 알겠습니다. 상당수는 결국 죽겠군요. 내가 곧 반드시 살려내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 드리죠.”
“명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저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류영준이 덧붙였다.
“아까 그 조건인가요? 뭡니까?”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 있는 수용소를 방문하게 해주십시오.”
“그건 안 됩니다.”
천슈에가 질색하며 잘랐다.
하지만 류영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곳에 바이러스가 얼마나 퍼졌는지 봐야겠습니다. 주석님 말고 다른 환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저는 알아야겠어요.”
“……. 류 박사님. 그 지역은 근정전보다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비서실장 펭 쿠이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주석님께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류영준이 되물었다.
"......."
펭 쿠이는 난처한 듯 한숨을 내쉬었고 천슈에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대신 거기서 무엇을 보고 듣든 밖에서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생각해보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이보세요……. 류 박사님.”
펭 쿠이가 끼어들었다.
“국제적으로 민감한 분쟁 지역입니다. 류 박사님 같은 영향력을 가진 스피커가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간......."
“정치에는 관심 없습니다. 위구르인 지역민들의 독립에 대해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그곳에 들어간 이상 공중보건을 위해서 대중에게 알려야하는 정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남의 나라 내정에 관심이 많습니까?”
펭 쿠이가 불쾌한 듯 물었다.
“내정에는 관심없다고요. 하지만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와 장기이식은 의학계의 일입니다. 추가 피해를 막아야하지 않습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사형수들과 합의된 일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면서요? 곧 네이처를 필두로 언론들이 의혹을 제기할 텐데 그때 진실되게 대답하자는 것뿐입니다. 저도, 주석님도요.”
"......."
천슈에는 류영준을 가만히 쏘아보았다.
“내가 그 부분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인공장기 이식을 하지 않을 겁니까? 류 박사는 항상 과학과 인류를 위해서 헌신해왔는데도요?”
"......."
경호원들이 류영준을 힐끔거렸다.
펭 쿠이는 긴장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분위기가 고압적이다. 무거운 공기가 류영준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그럼 안 할 겁니다.”
펭 쿠이는 헛기침을 했고 경호원들은 눈을 부라렸지만 아무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이처에서는 만약 양심수를 사형한 후 장기를 무단 적출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 편집 중인 논문을 리젝트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논문들도 철회할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가 천슈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는 그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거짓이나 비윤리로 만들어진 데이터는 제가 생각하는 과학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건 결국 마지막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도 얽히고 싶지 않아요. 제 도움을 원하신다면 먼저 신장위구르에서 일어난 모든 의료 행위를 투명하게 공개하셔야 할 겁니다.”
***
샌디에고 교외 지역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1208호의 방문 앞에서 중년의 남녀가 약 25년만의 재회의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는 엘시만 반겼고, 천지명은 강렬한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상태였다.
엘시는 심각하게 변했다.
탄력 있는 머리카락과 총기 넘치는 눈빛, 아름다운 미소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녀는 대마초 하나를 입에 물고 뻑뻑 빨아대며 한 손에는 커다란 보드카를 들고 문을 열었다.
살이 50 킬로그램 정도 쪘고 급속히 늙어버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을 고려해도 사람이 너무 심각하게 변했다.
“대체 어떤……."
천지명의 머릿속에 있는 엘시는 살아있는 세포를 유기물로부터 생합성해서 창조해보겠다며 새벽까지 논문과 실험 속에서 살던 여자다.
기상천외한 실험을 계획하고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하루에 두 개씩 던지던 발랄한 사람이었다.
“들어와요.”
엘시가 담배 연기를 푹 내뱉으며 말했다.
"......."
들어가는 발걸음에 담배갑과 술병, 잡지와 피자 박스와 과자 봉지들이 채였다.
천지명은 충격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대……. 대체 지난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많은 일이 있었죠.”
엘시는 천지명을 테이블로 안내한 다음 술병을 보여주었다.
“난 요즘 보드카만 마셔서 이것뿐인데. 좀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후우……. 그래요. 언젠가 에이젠바이오에서 류영준 박사가 보낸 사람이 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천 박사일 줄은 몰랐네요.”
엘시는 보드카를 쭉 들이켰다.
“로잘린 때문에 온 건가요?”
“아니……. 그게……. 저희 대표님이 당신을 꼭 만나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잠깐 생각을 골랐다.
‘천지명은 로잘린에 대해서 모른다.’
그녀는 보드카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닥터 레프 때문에 온 건가요?”
그녀가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었다.
“닥터 레프요? 아, 대표님이 GSC 국제회의를 그 미친 테러범이 노리고 있을 때 당신을 찾긴 했습니다.”
“……. 훗.”
엘시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여자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니에요. 테러 대상도 GSC였지. 일반인은 안 건드렸거든.”
“네?”
“아프리카에서 탄저 펜스를 따라가면서 테러를 벌이긴 했을 텐데, 애초에 그 접전지는 대부분 국경지고, 콩고의 자원을 약탈하려는 이웃 국가의 군인들이나 들락거리는 땅이라서. 최근에는 신장위구르에 관심을 갖는 모양이던데 그것도 아마……."
엘시는 말을 하다 뚝 멈추었다.
“아니, 그냥 잊어버리세요. 내가 취해서 헛소리를 다 하네.”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엘시.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천지명이 말했다.
“그때 왜 갑자기 생명창조 부서를 떠나셨나요?”
“내 연구에 한계를 느꼈거든요.”
엘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생명창조를 할 능력이 없었어요. 그걸 일찍 깨닫고 포기했죠.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줄곧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했……."
지이이잉!
천지명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잠시만요. 미안합니다.”
천지명은 휴대폰을 켰다.
-천 수석님!
배선미 책임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에요?”
-귀국 모레라고 하셨죠?
“네. 그리고 그 뒤에 이틀 연차예요.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입니다.”
-죄송하지만 그 연차 취소 하셔야겠는데요…….
“네?”
-이제 슬슬 이 레파토리 익숙해질 때 됐잖아요. 급한 실험이라 밤샘 철야 당첨이에요.
“……. 무슨 일이에요?”
-인공장기들을 만들어야 해요. 좀 대량으로. 테크니션 한 명의 손이 하루가 급한 시점인데 수석님 정도 실력이면 빠질 수 없죠.
“대표님 지시사항이에요?”
-네. 직접 전화해서 부탁하셨어요. 도와달라고.
***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학병원.
류영준은 차량을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그는 천슈에의 말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합법일 리가 없다.
-제가 데이터를 좀 찾아볼게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는 수만 개의 세포를 병원 내에 방사해서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최고 등급의 보안이 걸린 기밀 자료실이라 해도 열쇠 구멍이나 문틈으로 이동하는 세포 하나를 걸러낼 수는 없다.
그리고 병원을 샅샅이 뒤지던 로잘린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