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 인공장기 (4) >
류영준은 공안청의 안내를 받아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공항에 내린 후에는 차량을 타고 자금성의 뒤를 지나 서쪽으로 빙 돌았다.
이윽고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이 호수의 중해와 남해를 일컬어 중남해(중난하이)라고 부른다.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국무원이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등의 주요기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 핵심은 근정전.
중국을 통치하는 권력의 정점인 공산당 주석, 천슈에의 집무실이다.
그에 맞먹는 권력 덩어리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백악관은 대중에게 상당부분 공개되어 있는 데 반해, 중국의 근정전은 매우 비밀스럽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
중남해 기관의 홈페이지에서도 근정전에 대해 소개하는 자료는 거의 없다.
“여기서부터는 류 박사님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공안청 경감이 류영준을 따라온 케이캅스 경호팀장 김철권에게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류영준은 김철권에게 당부하고 공안들을 따라 안으로 이동했다.
온갖 베일로 칭칭 휘감아 가려놓은 대륙의 권력의 기저에 류영준은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류영준 박사님이십니까?”
호화로운 대문을 지나 대기실로 이동하자, 미리 그곳에서 기다리던 중년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실장 펭 쿠이라고 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그는 류영준에게 깍듯이 인사한 후 앞장서서 걸었다.
“근정전에 오신 것은 처음이시지요? 백악관에는 가보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몇 번 가봤죠.”
“우리는 근정전에 대한 보안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국민이 아니면 거의 공개하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과 친한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하는 편입니다. 근정전에 초대된 해외 국빈에게 허용되는 공간도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가 말했다.
“천슈에 주석님께서 집권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근정전에서 이곳 복도까지 들어온 외국인은 한 손에 꼽을 겁니다. 그중 한 분이 지금 류 박사님이시죠.”
펭 쿠이는 복도 끝에서 바깥으로 나갔다.
작은 연못을 돌아서 고궁의 옆문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근정전 내부에 있는 의료실입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긴급 수술과 치료를 진행할 수 있도록 뛰어난 의료진과 시설이 갖추어져 있죠.”
그가 다시 복도를 가로질러 가장 안쪽에 있는 호화스러운 방문 앞에 멈추었다.
“그래서 주석님의 병실도 이곳에 있습니다.”
철컥.
펭 쿠이가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간 류영준은 약간 긴장했다.
총알을 맨손으로도 막아낼 것처럼 생긴 경호원 10여 명의 날카로운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병실 안쪽에는 거대한 병상 침대가 하나.
그 곁에는 한눈에 보아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같은 주치의 두 명과 간호사들이 서있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60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굳은 얼굴로 쿠션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류 박사님.”
주치의가 이쪽으로 다가와 류영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근정전의 주치의 판 마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에이젠바이오의 류영준입니다.”
류영준은 그와 악수한 후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진료를 볼 수 없습니다. 환자의 증세를 보고 병명을 알아내고 처방하는 것은 교수님들이 훨씬 더 잘하실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후......."
주치의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류 박사님. 일단 지금 보고 들으시는 것은 전부 국가 기밀입니다. 저희는 류 박사님을 믿고 이곳까지 모신 겁니다. 절대 나가서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뒤에서 펭 쿠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만약 이상한 소문이라도 떠돈다면 류 박사님 입에서 새어나간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만.”
천슈에 주석이 약간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우리가 모셔놓고 겁부터 주면 어떡하나. 그만해.”
그는 오른팔을 들어서 류영준에게 손짓을 했다.
“내가 거동이 불편해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류영준이 다가가자 천슈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정전 직원들이 무례를 범해서 미안합니다. 밖에 나가서 누구한테 얘기해도 상관없습니다.”
“주석님!”
펭 쿠이가 소리쳤다.
“주석님이 쓰러졌단 소식이 퍼져 나가면 당장 경제부터 크게 흔들립니다.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숨겨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천슈에는 귀찮은 듯 손을 내저었다.
“류 박사님. 보시다시피 난 지금 몸 곳곳에 근육과 신경이 마비되어서 잘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안면 근육도 마비되어서 발음도 똑바로 할 수 없죠.”
"......."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입니다.”
주치의 판 마오가 말했다.
“이 질병을 확인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본래 아기들한테서만 발병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탁자에서 진료 차트를 집어 들어 류영준에게 내밀었다.
“미리 번역해 둔 겁니다.”
“감사합니다.”
류영준은 차트를 받아 한번 쭉 훑었다.
판 마오는 긴장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뗐다.
“류 박사님.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은 아직까지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질병입니다.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류 박사님은 여러 번 그런 불치병들을 넘어오신 분입니다.”
그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류 박사님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으십니까?”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있어요?”
“있어?”
판 마오와 펭 쿠이, 천슈에가 동시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여기까지 부르긴 했지만 솔직히 가능성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류영준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비정상적인 케이스를 어떻게 하겠는가.
주치의인 판 마오조차도 사실 이 병에 대해서 자세히 몰랐다.
꽤 희귀한 유전 질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은 갓난아기한테서만 나타나는 질병이다.
60이 넘은 성인에게서 갑자기 발병하는 이 별난 케이스에 대한 해답? 아무리 류영준이라도 갖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류영준은 한술 더 떴다.
“사실 이미 그 치료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작은 갈색 시약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
펭 쿠이는 순간 류영준이 CIA의 사주를 받고 들어와서 주석을 독살이라도 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정도로 이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어……. 어떻게 알고 약을 준비해오신 겁니까?”
판 마오가 물었다.
“지난번 GSC 국제회의에 테러를 감행했던 아프리카의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 군인들의 아지트에서 바이러스가 나왔습니다."
“바이러스요?”
판 마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는 그 정체를 알아봐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바이러스는 렌티 바이러스였고, 안에 담긴 DNA는 뉴클리에이즈(Nuclease)를 코딩하는 유전자였습니다. 숙주의 세포 내에 들어가서 발현되면 미토콘드리아로 이동해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MTATP6의 8993번째 쓰레오닌(Threonine)이라는 분자를 글라이신(Glycine) 또는 시스테인(Cysteine)으로 바꾸는 돌연변이를 일으키죠.”
"......."
근정전의 인물들이 크게 당황했다.
판 마오만 간신히 그의 설명을 이해했다.
“지금……. 잠깐만요. 그러니까. 류 박사님 말씀은 그 바이러스가 지금 주석님 몸에 있다는 겁니까?”
“그 돌연변이는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의 기저에 있는 병인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성인의 몸에서는 병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인의 몸에서는 세포분열이 그리 왕성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는 세포분열이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경우에 유산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뇌척수액에 농축시키고, 그게 기저핵, 시상, 뇌간, 치아핵, 시각신경에 괴저성 장애를 유도합니다.”
"......."
“결국 병증이 시작되면 구토감을 느끼다가 빠른 속도로 근육과 신경이 하나씩 마비되고 시력을 잃어버리고 호흡이나 심장 운동에 장애를 초래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류영준이 말했다.
“주석님.”
그는 천슈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장기이식을 받으셨지요?”
"......."
천슈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옆에 있는 주치의들과 비서실장 펭 쿠이 등은 모두 어쩔 줄 몰라 서로 시선만 주고받았다.
“그렇습니다.”
천슈에가 말했다.
“심장을 이식 받았습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최근 3년 동안 무려 3만 건의 장기이식 수술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무슬림 위구르인이 수감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네이처에서는 중국의 장기이식 대부분이 양심수의 장기를 무단 적출한 것이라는 의혹을 가지고 조사하고 있고요.”
류영준이 물었다.
“어디까지 사실입니까?”
"......."
다시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 류 박사님. 어디서 그런 얘길 들으셨는지 모르겠……."
어색한 적막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재빨리 무마하려고 펭 쿠이가 뛰어드는 순간이었다.
“거의 다 사실입니다.”
천슈에가 말했다.
“주, 주석님……."
펭 쿠이가 당황한 듯 천슈에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어차피 류 박사도 알게 될 일이야. 나 혼자 이런 게 아니잖나.”
류영준은 이를 꽉 깨물었다.
“환자가 몇이나 됩니까?”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위직 중에선 꽤 많습니다.”
“자업자득이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뭐라고?”
펭 쿠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쪽을 쏘아보았다.
“틀린 말 했습니까?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의 테러범들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으로 바이러스를 보냈습니다. 그곳의 위구르인들을 감염시킨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장기를 적출해서 이식받은 주석님이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에 걸린 것 아닙니까?”
“류 박사!”
“하하하.”
펭 쿠이가 다시 뭐라고 쏘아붙이려는데 갑자기 천슈에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난 사람은 맞군요. 내가 싫어할 얘기를 내 앞에서 그렇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이는 건 미국 대통령이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
“하지만 류 박사님. 양심수의 장기를 무단 적출한 건 아닙니다. 그들 모두 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고, 장기 적출은 사형수와 합의 된 사항이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악독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수감된 시민들이 무슨 큰 죄를 짓습니까?”
“그 지역의 분쟁은 류 박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험하고 복잡합니다. 위구르 지역민들은 독립을 원했어요. 그리고 영토와 국민을 잃어버리는 걸 묵과할 정치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난 마오쩌둥 주석의 정통한 후계자로, 하나 된 중국을 유지하고 이끌 의무가 있습니다.”
천슈에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사형 선고된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류 박사님. 그건 내란에 가까운 폭동이었고, 진압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합법이었습니다. 장기 기증까지 말입니다.”
“신장위구르에서 독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체포되어 사형당한 위구르 지역 시민이 자기 심장을 주석님께 바쳐서 기증했다고요? 말이 되나요?”
“다시 말하지만 ‘합법적’이었습니다.”
"......."
천슈에의 말 뒤엔 묘한 의미가 있었다. 자발적인 인류애로 장기를 기증한 게 아니라 사형수를 상대로 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족들을 수용소에서 석방해준다든가, 가족들에게 돈을 지불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어떤 종류의 외압이라도 의료 윤리 위반이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법적으로는 어떨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합법’일 수 있다.
천슈에가 말했다.
“아무튼 치료제를 전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류영준이 내려놓은 갈색병을 가리켰다.
“이제 가보십시오. 이에 대한 보상은 비서실에서 후하게 해드릴 겁니다.”
천슈에가 말했다.
이제 끝났다.
펭 쿠이 비서실장이 류영준을 밖으로 모시기 위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 순간. 류영준의 입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걸로 완치할 수 없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판 마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치료제는 영아에게 발생한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의 치료제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해서 파괴하고 뇌척수액에서 유산을 제거합니다.”
“그럼 끝난 것 아닙니까?”
천슈에가 물었다. 동시에 옆에 서있던 판 마오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석님의 경우엔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바이러스 감염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하면 심장 접합부위의 세포들이 괴사하면서 심장 근처에서 면역 반응이 촉진되고 심장이 기능을 잃어버릴 겁니다.”
"......."
“이 치료제는 3개월 정도의 시간벌이밖에 못합니다."
“그런…….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판 마오가 물었다.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류영준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