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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 인공장기 (3) > (70/301)

214화.  < 인공장기 (3) >

류영준은 광둥성으로 날아올 때 비행기에 거대한 컨테이너 세 개를 실어서 가지고 왔다.

“이게 그겁니까……?”

광둥성 성장 양군위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천만 마리의 수모기입니다.”

통역을 전해들은 류영준이 답했다.

"......."

양군위는 침을 꼴깍 삼켰다. 컨테이너 안에서 붕붕 울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환경에는 어떤 문제도 없는 것이겠죠……?”

그가 다시 물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모기의 성비 균형을 파괴한다는 게 아무래도 자연적인 일은 아니라서 좀……."

양군위가 앓는 소리를 냈다.

“PCBs가 유출된 것도 자연적인 일은 아니었죠.”

"......."

“그리고 성비불균형은 자연적인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자연적인 거라고요?”

“1990년대에 리처드 스타우트해머 (Richard Stouthamer)라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성생식을 하는 벌의 무리를 발견했는데, 암컷밖에 없었고 자기복제로 번식하고 있었죠. 근데 알고 보니 그게 벌의 특성이 아니라 벌에 감염된 볼바키아라는 세균이 일으킨 현상이었던 겁니다.”

"......."

“항생제를 처리해서 볼바키아를 제거하자 갑자기 수컷이 등장해서 양성 생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볼바키아 균은 곤충의 정자나 난자에서만 살 수 있는 ‘성병균’의 일종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기에 정자는 몹시 좁고 영양분도 형편 없어서 생활하기 어렵지만, 난자는 풍부한 세포질과 공간을 갖고 있어 상당히 바람직했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수컷을 없애버리는 전략을 취했던 겁니다. 볼바키아 균에 감염된 벌들은 암컷만 태어나게 되었고, 암컷은 수컷과 생식 없이 자기복제로 암컷만 낳았던 것이죠.”

“미친……."

“자연계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은 법이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볼바키아는 모기도 감염시킬 수 있고, 볼바키아의 유전자에 약간의 조작을 가하면 정자가 살기에 더 바람직하다고 ‘착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볼바키아를 감염시킨 수모기가 이들인 겁니까?”

양군위가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제 이 수모기들을 풀어놓으면, 모기들 사이에 이 성병이 급속도로 퍼져나갈 겁니다. 날씨도 따뜻하고 모기들이 교미하고 산란하기 딱 좋은 지역인 데다 벌써 1억이 넘는 개체수가 이 지역을 활공하고 있으니까, 순식간에 줄어들 겁니다.”

"......."

“수모기는 후각 신경이 암모기와 달라서 모기 퇴치제에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겁니다. 퇴치제와 병용해서 쓸 수 있으니, 퇴치제는 가급적 계속 사용해주세요.”

“그 볼바키아가 사람한테 전염되거나 하진 않습니까?”

“그럼요. 그건 몇 종의 곤충들의 성병이에요.”

류영준이 답했다.

“생리적으로 사람을 건드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모기가 다른 곤충의 몸통에 바늘을 꽂는다고 해도 전염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같은 냄비에 담긴 찌개를 먹는다고 해서 매독 같은 성병이 옮지는 않잖아요. 성병은 성관계로 전염되는 거니까.”

“그렇군요……."

모기의 성병이라는 개념이 아무리 들어도 낯설었던 양군위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류영준은 양군위 성장과 함께 컨테이너 셋을 트럭에 싣고 광저우 시내로 이동했다.

그곳에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모기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판매한 모기 퇴치제를 근처에 뿌려놓았기 때문이다.

“류영준이다!”

기자들 중 하나가 류영준을 보고 외쳤다.

찰칵! 찰칵!

순식간에 소란이 일면서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잇달아 터뜨렸다.

양군위 성장이 광둥성을 덮친 이 끔찍한 모기 재해의 대책으로 한국에서 해결사를 데려왔다.

세계 최고의 생물학자.

일찍이 이 모기 사태를 예견했던 과학자.

그리고 GSC 국제회의에서 모기 박멸을 주장했던 GSC 멤버십 소지자다.

“에이젠바이오는 양군위 성장님과 논의 끝에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된 볼바키아에 감염된 수모기 천만 마리를 광저우와 마오밍시, 지에양시에 차례로 풀기로 했습니다.”

류영준이 마이크 앞에서 말했다.

“그 첫 번째로 이곳 광저우에서 4백만 마리에 이르는 수모기를 방사하겠습니다.”

광저우 시의 공무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컨테이너 하나를 옮겼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철판 위쪽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뚜껑이 열려도 안에 있는 모기떼는 움직이지 않고 벽에 붙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안 나오잖아?”

쏟아져나오는 모기떼를 찍어서 좋은 사진 하나를 건지고 싶었던 기자들이 실망한 듯 말했다.

류영준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쾅!

그리고 컨테이너를 가볍게 발로 한번 걷어차자, 안에서 놀란 모기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와아……."

상상 이상의 장관에 기자들이 탄식과 경탄을 동시에 뱉었다.

마치 바닷속 정어리떼가 몇만 마리씩 무리지어 이동하는 것 같이 보였다.

거대하고 새까만 덩어리가 하늘로 튀어 오르면서 맹렬한 소음을 뿜었다.

***

에이젠바이오의 제7 연구소에서는 ‘모기 박멸 프로젝트’를 ABAI로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했다.

이번에는 류영준 대신 김영훈 이사가 유튜브를 잡았다.

-류영준은 어디갔냐

-이 아저씨 누구임

-모기 박멸 유튜브 ㄷㄷ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면서 김영훈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 제7 연구소에서 이번 ABAI 개발의 프로젝트 총괄을 맡은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ABAI를 작동시키면서 말했다.

“류영준 대표님은 중국에 가셔서 지금 이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진행하시는 중입니다. 곧 기사들이 올라올 거예요.”

그는 ABAI에서 광둥성을 띄워놓고 광저우와 마오밍, 지에양 시 세 군데에 유전자 조작 볼바키아에 감염된 수모기 천만 마리를 풀었다.

1억을 넘어서 1억 5천까지 치솟아 있었던 모기의 숫자는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연계에서 암모기는 보통 한번 교미합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그리고 최대 일곱 번 산란할 수 있지만, 수명은 길어봤자 일주일 내외입니다.”

그가 일주일에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뚝뚝 떨어져나가는 모기의 숫자를 가리켰다.

“달리 말하면 지금 광둥성에 모기떼가 1억 5천만 마리나 있다고 해도 그들은 거의 1, 2주 내에 다 죽을 거라는 뜻이죠.”

김영훈이 말했다.

“그들이 새로 낳는 알을 제거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걸로 이 모기 사태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

김영훈의 시뮬레이션은 광둥성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류영준은 양군위가 마련해준 호텔 방에 앉아서 로잘린의 시뮬레이션 모드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ABAI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네가 훨씬 낫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요. 그런 기계 인공지능이랑 비교가 안 되죠.

불과 일주일만에 비즈니스 거리와 민가를 휩쓸던 모기떼가 눈에 띄게 줄었다.

길가에는 죽은 모기 시체들이 즐비했고, 수모기들은 교미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원스럽게 멸망해가는군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러게.”

-이 속도면 내년 여름엔 광둥성에 모기가 없겠어요.

“동남아 쪽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아.”

-당연히 그러겠죠. 일부 국가들에서 흰줄숲모기가 절멸할 겁니다.

“약간 불쌍하긴 하네.”

류영준이 말했다.

-그래요?

“모기도 저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닐 거 아냐. 아프리카 흑코뿔소는 멸종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모기는 병을 옮기고 피를 빠니까 오히려 멸종시키려고……."

-어쩔 수 없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그동안 멸종한 생물은 한둘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건 문제되지 않아요.

“그렇지?”

-그럼요. 인간은 원시 수프의 자손들 중 하나잖아요. 모기와 똑같이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친 생물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은 모기의 경쟁자인 셈이죠.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들에게 불행했던 것은 제가 인간의 동맹이 되었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개입한 격이니 한쪽이 멸망의 길을 걷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어……."

-근데 저 상자는 왜 가져오셨나요?

로잘린이 침대 옆 구석에 놓여있는 커다란 박스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 바이러스 때문에.”

류영준이 말했다.

-닥터 레프가 보냈다는 거요? 그 바이러스 별로 쓸 데 없습니다. 렌티 바이러스(Lenti-virus)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건 태아에게 전달될 수 없고, 이미 태어난 영아에게 감염된다고 해도 그때 병증을 일으키긴 그리 쉽지 않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성장기 아기들은 세포분열이 빠르긴 하지만 열 달만에 20조 개의 세포를 분화시켜야 하는 태아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그 후 20년에 걸쳐서 60조에서 100조 개 정도로 세포 분열을 하는데, 그 분열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립니다.

"......."

-그 바이러스가 소아를 감염시켜도 뇌척수염을 일으키진 못해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 있는 어린이들을 노린 것 같은데 실수한 겁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장기이식 수술이 많이 있었다고 했잖아.”

-네. 만약 그렇게 되면 수술 접합부위의 세포 분열이 촉진되면서 병증이 유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가 많아봤자 얼마나 되겠어요.

“……. 유송미 비서가 전해준 내용에 따르면 3년 전부터 3만 건이야.”

-하지만 그건 3년간의 데이터죠. 휘태커가 가져다준 자료를 보면 닥터 레프가 바이러스를 보낸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그 후에 지금까지 사형 집행된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어요. 만약 불법 이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나도 별로 없었으면 좋겠네.”

똑똑똑!

누가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

양군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찌아 쇼? 시 워 양군위.”

“류 박사님? 양군위 성장입니다.”

양군위의 말을 문밖에서 남자 통역사가 한국어로 옮겼다.

류영준이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로잘린이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가지 마세요.

로잘린이 말했다.

문을 열려던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로잘린을 돌아보았다.

-밖에 양군위 말고 사람 셋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총도 가지고 있어요.

‘총? 공안인가?’

-아니에요. ……. 모르겠어요…….

류영준은 침을 조금 삼켰다.

-해치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전부 다 진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무슨 일이십니까?”

류영준이 인터폰을 들고 물었다.

하지만 건너편에서 들려온 말은 놀라웠다.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보건당국 장관님께서 류 박사님을 근정전으로 모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근정전? 거기가 어딘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 그게......."

양군위가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자 그 곁에 있던 공안청 경감이 대신 답했다.

“베이징입니다. 중국의 국가주석의 집무실이 그곳에 있습니다. 모셔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납치하려는 게 아닙니다. 부탁드립니다. 동행해주십시오. 중국이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류영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챙겨온 상자를 집어 들고 문을 열었다.

“안내하세요.”

그가 말했다.

양군위의 어깨가 움찔했다.

지금까지와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모기 박멸 권고 무시에 PCB 유출 경고 무시, 양군위가 그렇게 폐를 끼치고 함부로 행동해도 류영준은 여태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바뀌었다.

"......."

그는 침착했고 차분했지만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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