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 인공장기 (2) >
“와……. 진짜 무시무시하네요.”
주희준 과장이 말했다.
광둥성에 진출한 한국의 벤처 기업 케이바이오 (KBIO)는 정상 업무 진행을 하고 있었다.
이들만이 아니라 근처의 한국 기업들은 거의 다 업무 마비를 겪지 않았다.
발 빠르게 에이젠바이오의 모기 퇴치제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무슨 삼국지 같은 소설 읽으면 나오는 메뚜기 떼 같네.”
최성호 사장이 말했다.
“미리 퇴치제를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주희준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가 한국 기업에 먼저 공급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거 아마 사실일걸요. 물량은 얼마 안 되는데 도움을 요청하는 기업들은 많았으니까. 진짜 이 정도면 그저 빛 그 자체 아닙니까......."
“그래도 긴급 물량 일부를 가지고 보건소와 병원은 어찌어찌 돌리고 있다고 하더라.”
철컥.
현관이 열리며 젊은 여자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휴우.”
그녀는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는 줄 알았네.”
“어서 와요. 주영 씨. 물린 데 있어요?”
최성호가 물었다.
“아니요. 모기 퇴치제 대박이에요. 3미터 이내로 접근 안 해요. 가까이 다가오던 놈들은 허공에서 픽픽 쓰러져버리고.”
그녀는 현관의 빗자루를 들어서 문 앞을 쓸어냈다.
빗질을 할 때마다 모기 사체가 자욱하게 굴러나갔다.
모기의 후각 수용체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휘발성 물질 ABcPa1을 생합성한 후, 거기에 세포호흡 억제제를 달았다.
사람처럼 거대한 동물에겐 별 영향을 주지 않지만 모기 같은 조그만 곤충에겐 치명적인 독이다.
고밀도로 압축한 연고나 스프레이를 목덜미나 손목 등에 붙여두면 걸어 다니는 모기 방역 인간이 된다.
그리고 케이바이오처럼 현관과 창문 등의 틈새에 발라두면 천연 벙커가 된다.
“진짜 무슨 세기말 느낌인데요.”
떼죽음을 당한 모기 사체들을 치우면서 이주영이 말했다.
“근데 내일 류 박사님이 광저우로 오신대요.”
그녀가 덧붙였다.
“정말?"
“아까 물건 납품하러 가면서 들은 거예요. 광둥성 성장이 긴급하게 불렀대요.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던데.”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빨리 정상화가 되었으면 좋겠네.”
***
궁지에 몰린 양군위는 류영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록 권위적이고 고압적이고 오만한 편이지만 그는 그래도 광둥성에 대한 책임감은 꽤 높은 편이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선 이제 자존심이고 뭐고 앞뒤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전에 실례했던 것들은 부디 용서해주시고 그 퇴치제를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주십시오.
양군위가 류영준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물량을 광둥성에 집중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태는 광둥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주 강 지류를 따라가는 인근 지역들 전부 다 해당되는 상황이에요.”
류영준이 답했다.
“그들의 경우에도 중요 관공서들이 마비되어선 안 되니 최소한의 물량은 공급하는 중입니다. 광둥성에만 모두 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 그래도……. 어떻게 정말 방법이 없겠습니까?
“사실 모기 퇴치제 물량이 모자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죠. 하지만 성장님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군요.”
-마음에 듭니다.
“뭔지 듣지도 않으셨잖아요.”
-뭐든지 좋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양군위가 죽는 소리를 냈다.
“흐음."
류영준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아직 광둥성의 모기들은 그리 많은 상태가 아닙니다.”
-많은 게 아니라고요?
“시뮬레이션은 280억 마리까지 증가할 것을 예측했죠. 앞으로 두 달 후의 일입니다. 지금은 기껏해야 1억 언저리일 거예요.”
-.......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모기 멸종 프로젝트 기억나십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양군위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그 프로젝트는 볼바키아라는 박테리아를 이용해서 정낭을 조작한 수모기를 이용해서 모기의 성비 균형을 파괴하는 방법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수모기는 사람을 물지 않고 꽃에서 꿀이나 빠는 평범한 곤충이에요. 볼바키아로 성비 균형이 파괴되기 시작하면 빠르게 기울어서 태어나는 알들이 모조리 수컷일 겁니다.”
-하지만 그 볼바키아로 감염된 수모기가 지금 있어야 진행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모기 퇴치제가 모자랄 것 같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준비했다고.”
-.......
“사이언스의 제시 에디터가 PCB 농도가 올라간다는 걸 전해주었을 때부터 준비했습니다. 수모기를 만드는 데는 불과 2주면 됐기 때문에 금방 준비했죠.”
순간 양군위는 자신이 초라할 정도로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창피하다.’
마치 말을 안 듣고 떼를 쓰다가 결국 부모의 도움을 받는 어린애 같은 꼴이다.
수없이 거절하고 밀어냈음에도 류영준은 이 악재를 예측하고 그 대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는 걸까.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원하시면 진행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폐기할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류영준이 물었다.
-진행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류 박사님.
양군위가 말했다.
“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광둥성을 아시아 최고의 경제 허브로 키우려는 중국의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아시아에도 그런 게 있어야 하거든요. 부디 이번 사태를 잘 막아냈으면 좋겠습니다.”
***
중국의 보건당국 장관은 광둥성의 생물 재난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중국 상류층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왕수빈 외교 장관님이 아침에 안면 마비가 왔습니다.”
아래에서 끊임없이 보고가 올라왔다.
국무위원, 상무부총리, 교통운수부 부장, 국가안전부 국장 7명, 공안 총경감.
행정조직만 봤을 때 이렇다.
강력한 민영 기업들의 수장들도 지금 추풍낙엽처럼 쓰러져나가는 중이다.
갑자기 번져나가는 이 지옥 같은 사태를 어떻게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지정생존자라도 된 기분이군.”
보건당국 장관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직도 원인은 모르나?”
그가 보건당국 직원들을 닦달했다.
“중국 최고의 의료진이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아직 확실치 않답니다.”
직원들 중 하나가 말했다.
“북경대학교 병원의 겐푸 교수님 소견으로는 아급성 괴사성 뇌척수염(Subacute necrotizing encephalomyelopathy)이라는 병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병이야? 겐푸 교수가 무슨 과인데?”
“그게……. 소아과입니다.”
보건당국 장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쓰러진 분들 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야. 소아과 교수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다른 교수들은 소견을 내지를 못하고 계시는데요.”
“그 병이 어떤 건데?”
장관이 물었다.
“미토콘드리아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일어나는 병이라고 합니다. 유전병의 일종이고 보통 어릴 때 다 사망한답니다.”
"......."
“근데 증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병증이랑 거의 똑같습니다. 구토감을 느끼다가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안근 마비가 온 후에 심장 마비나 호흡에 문제가 생기는 거요.”
직원이 답했다.
“겐푸 교수님 소견으로는 매우 드물게 아동기에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란 후에 성인이 되어서 발병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고……."
“지금 환자가 100명이 넘어. 중국 최고 고위직에 있는 인사들이 전부 그 유전병을 갖고 있었는데 나이 50줄 들어서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다 같이 발병했다고? 그게 말이 되는가?”
"......."
직원이 입을 다물었다.
장관은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관님!”
사무실 저 끝에서 전화를 받던 직원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이것 좀 보십시오. 지금 환자들 공통점입니다.”
“뭔데?”
장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전부 반 년 전에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장기이식을 받으셨습니다.”
“신장위구르에서?”
“그게 무슨 영향을 준 게 아닐까요?”
“신장위구르에서 장기이식 받은 사람들 명단 가져와봐.”
“이미 준비했습니다.”
직원이 프린트한 서류 뭉치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보건당국 장관이 그걸 건네받으려는 순간이었다.
“장관님!”
반대편 데스크에서 다른 직원 하나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야?”
“지금……. 전화 왔는데……."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주석님이 구토감을 느낀다고 하십니다.”
보건당국 장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는 신장위구르 장기이식 명단을 집어들었다.
“……. 주석님도 있습니다.”
명단을 건네준 직원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
닥터 레프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 바이러스를 풀었다.
인간의 DNA 내부에 자신의 유전자를 끼워 넣는 렌티 바이러스(Lenti virus).
이 바이러스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100만 수용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들의 호흡기를 감염시킨 후 혈액을 타고 전신의 장기 곳곳으로 이동했다.
심장, 간, 신장, 각막, 소장, 췌도, 췌장, 폐.
이식 가능한 8개의 장기가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바이러스에서 생성된 뉴클리에이즈 (Nuclease)들은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했고 특정한 돌연변이를 유발했다.
그러나 신장위구르 수감자들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이 돌연변이는 빠르게 세포분열이 일어날 경우에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이미 다 자란 성인들의 장기에 감염된 바이러스는 병증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들의 장기가 이식되면 얘기가 다르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 전선의 새로운 아지트. 시설 정리를 마친 닥터 레프는 차를 마시면서 달력을 읽었다.
6 개월째다.
바이러스를 푼 지 6개월이 되었다.
장기 이식 수술은 멀쩡한 장기를 절제하고 옮겨서 붙인다는 점에서 접합부위에 큰 손상을 야기한다.
그 손상 부위를 복구하기 위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장기는 자연스럽게 ‘세포분열’을 촉진한다.
본래 신생아에게서 발병하는 이 질병이 성인에게서 일어나는 특수한 경우의 수다.
“닥터 레프.”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류영준이 모기 사태를 해결하러 광둥성으로 갔대.”
“그 사람한테 모기 정도는 별 것 아냐. 그냥 귀찮은 상대일 뿐이지.”
닥터 레프가 답했다.
“신장위구르 사태도 해결하지 않을까?”
“아마."
닥터 레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해결해줘도 좋아. 로잘린이 신장위구르에서 일어나는 그 엿같은 사태를 목격하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랬지. 인간은 과학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류영준 같은 사람은 희귀종이야. 그런 엘리트가 지구엔 별로 없어. 로잘린이 그걸 깨달아야 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닥터 레프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로잘린은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생물보다 더 진보한 존재야. 원시 세포의 자손들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생물체. 그 애는 류영준의 과학기술 자판기 정도로 살아선 안 돼.”
닥터 레프가 말했다.
“이런 걸 보고 진사회성 (Eusociality)이라고 부르는 거지. 인간은 물질세계의 노동을 담당하는 역할이고, 로잘린은 그들의 행동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역할이야.”
그녀는 오래 전부터 그려온 미래의 청사진을 떠올렸다.
“로잘린이 세상을 지배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