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 인공장기 (1) >
파라자일렌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의 처리되지 않은 유해물질이 강물을 오염시켰다.
거의 변화가 없는 듯하지만 몇 개의 종의 숫자가 빠르게 감소했다.
그 중에는 카라보이드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자 갑자기 무언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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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줄숲모기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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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ㅅㅂ 뭐야
-모기 수 갑자기 개떡상
-시뮬레이션 안에서 일주일마다 자리수 하나씩 늘어나네ㅋㅋㅋㅋ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가운데 모기수는 멈추지 않고 급증했다.
흰줄숲모기 : 821,740
흰줄숲모기 : 3,852,700
흰줄숲모기 : 8,149,100
흰줄숲모기 : 17,847,440
.......
-왜 저래;
-뭐 고장난 거 아님?
-무섭다 시발 모기 천만 마리라니 개징그럽
사람들의 반응이 점차 공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속에서 여름의 더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흰줄숲모기 : 27,872,552,000
.......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둔해졌다.
“이 현상의 원인은 카라보이드라는 수생 곤충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파라자일렌 생산 공장의 필터에서는 PCBs라는 물질을 여과할 수 없고, 폐수는 습지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카라보이드는 PCBs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본래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모기가 하나둘 나오면 카라보이드는 하루에 1,000마리씩 모기 유충을 잡아먹으면서 번식을 거듭해 모기 개체수를 줄이며 균형을 맞춰주게 됩니다. 그러나 PCBs가 유출된 이후 이 습지들에서는 카라보이드가 거의 절멸 수준으로 몰리게 되며, 그 결과 올 여름이 올 때 쯤엔 모기 개체수가 빠르게 급증하게 될 것입니다.”
뭔가 있을 거라 예상하고 이 유튜브를 시청하던 기자들은 재빨리 기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정부의 환경부에서도 이러한 모기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내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광둥성에서는 이 사태를 정말 주의 깊게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폐수를 이미 배출했다면, 지금에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중지하고 에이젠바이오에서 모기 퇴치제를 구매하시길 바랍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 제7 연구소에서는 강력한 모기 퇴치제를 개발해 지금 생산 단계에 들어가있습니다. 모쪼록 광둥성에 있는 시민 여러분과 기업들은 이 생물 재해를 피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이 미친 새끼가!”
광둥성 성장 양군위는 분노에 차서 책상을 내리쳤다.
이건 명백한 도전이다.
유튜브로 사람들 시선을 모아놓고 거기서 대놓고 광둥성의 경제와 환경의 핵심을 하나씩 들쑤셨다.
파라자일렌 공장 가동에 대해서는 중국 주석도 모를 정도로 비밀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류영준이 알고 그런 일을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류영준의 유명세와 인지도를 생각하면 분명히 겁에 질려서 파라자일렌 공장 가동 여부를 조사하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위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보건당국 장관이다.
“젠장.”
양군위 성장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고 소파에 던져버렸다.
덜컥!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비서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성장님! 지금 에이젠바이오에서……."
그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젠장 나도 봤어!”
“이걸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 에이젠바이오에서 모기약을 팔려고 흑색 선전을 벌인 거라고 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 알겠습니다.”
“잠깐만.”
밖으로 나가려는 비서를 성장이 다시 붙잡았다.
“밑에 직원들 시켜서 습지들 조사 좀 해봐. 카라보이드인지 뭔지 하는 그 곤충이 지금 얼마나 있는지……. 한 다섯 마리만 잡아서 나 한테 갖고 와봐.”
“알겠습니다.”
비서가 밖으로 나갔다.
양군위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한편 광둥성의 여러 도시들의 수많은 기업과 시민들은 긴급 회의를 열거나 에이젠바이오로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200억 마리가 넘는 모기떼가 광둥성을 덮친다.
무슨 B급 재난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 사건을 예언한 사람이 류영준이다.
게다가 프로그램은 붉은곰팡이 재난을 예견했던 GRO였다.
특히 류영준의 드라마에 심취해있었던 한국 기업들은 앞다퉈 에이젠바이오로 문의를 넣고 있었다.
그 가운데 류영준의 발표에 소름이 쫙 끼친 인물이 하나 더 있었다.
사이언스의 에디터 제시였다.
광둥성 내의 습지들을 조사하던 그녀는 PCBs의 농도가 점차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류영준의 조언으로 카라보이드도 조사했는데 최근 한 달 사이에 카라보이드의 개체수가 끔찍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류영준이 우려했던 것이 그대로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건 진짜다.’
그가 주장한 것 중에서 틀린 건 여태 하나도 없었지만 이번은 그야말로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이따금 환경 변화나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해서 대량의 모기떼나 파리떼, 메뚜기떼가 민가를 덮쳐서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역대급이다.
류영준의 말처럼 카라보이드는 정말 모기를 엄청나게 잡아먹을 것이다.
왜냐하면 습지 조사를 거듭하던 중 갈수록 장구벌레 숫자가 증가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날씨는 점차 따뜻해지고 있고 모기는 계속 알을 까고 있다.
생물 재난은 이제 코앞이다.
그녀는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던 기사를 곧바로 사이언스에 올렸다.
에디터 권한으로 편집도 없이 다이렉트로 다음주차 기사로 상신했다.
-제시? 뭐야 이거?
잠시 후에 사이언스의 편집장 사무엘의 연락을 받았다.
“그거 꼭 실어야 해요. 광둥성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중국 중부를 넘어갈 거예요. 200억 모기떼가 이 지역 일대를 덮친다고요. 류 박사님 말이 맞아요!”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
마침 다음날 아침 속보로 류영준의 유튜브 방송을 실으려고 했던 사무엘은 제시의 기사를 얹어서 함께 내보냈다.
이 뉴스는 전 세계의 주목을 빠르게 끌어모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광둥성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광둥성은 전 세계에서도 중요한 경제 요충지다. 중국이 광둥성 남단에 실리콘밸리를 건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과 마카오, 그리고 광둥성의 9개 도시를 연결한 첨단 도시군 개발 계획, 일명 ‘웨강아오(港) 다완취’ (大舊區.Greater Bay Area) 라는 계획이다.
이미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중국 남부로 진출해있었고, 각종 은행이 건설되었으며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자되어 금융 상품들이 판매되는 중이었다.
‘그런 곳을 280억 마리의 모기떼가 덮친다.’
류영준의 시뮬레이션만으로도 투자자들은 간이 콩알만해질 상황이었는데, 그걸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또 튀어나온 것이다.
[에이젠바이오의 시뮬레이션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증거.]
제시가 광둥성 대학의 연구진들과 함께 만든 이 자료는 실제로 습지에서 측정된 자료다.
그리고 PCBs가 대량으로 배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순식간에 은행들에서는 투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하루에 수십 건씩 체결되던 굵직한 계약들이 잇달이 취소되었다.
한 술 더 떠서 파라자일렌 공장 건설 지대의 시민들은 다시 집회와 행진을 시작했다.
“주민들과 대화한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놓고 뒤에서 몰래 공장을 가동시킨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습지에서 PCBs가 증가한 거잖아요!”
광둥성으로 몰려든 외신 기자들 앞에서 시민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혼란에 빠지는 상황 속에서 광둥성의 성장 양군위는 최악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장구벌레가 들끓고 있습니다……."
비서가 양군위에게 보고했다.
“정말인가?”
“조사하는 데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광둥성 대학에서 제시라는 그 사이언스 에디터랑 같이 연구한 자료가 있었으니까요.”
“젠장! 그런 상황이면 왜 나한텐 보고가 안 된 거야?”
“광둥성 대학에서도 곧 리포트를 드리려고 했었답니다……. 근데 한 발 늦은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파라자일렌 공장 가동을 일단 보류하겠다고 발표했었잖아요. 그래서 PCBs 양이 늘어난 원인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
“어떻게 할까요? 성장님?”
진퇴양난이다.
“공장 가동을 일단 멈춰. 그리고 우리는 공장 가동한 적 없다고 해야 돼.”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도 안 믿을 겁니다.”
“어쩔 수 없어. 일단 그렇게 발표해. 그리고 에이젠바이오에 연락해서 그 모기 퇴치제 있는 대로 전부 달라고 해......."
“그게……."
“또 문제가 있나?”
“제가 이미 연락을 해봤습니다. 근데 지금 재고가 없다고 합니다……."
“재고가 없다고?”
“그쪽 시설들 풀가동해서 최대한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양이 모자란대요. 이미 광둥성의 수많은 기업들이 생산해둔 걸 전부 사갔답니다.”
“젠장!”
양군위가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젠장……. 어떡하지?”
“생산되는 대로 보내주겠다고 약속은 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물건 공급도 순서가 생길 텐데, 학교와 병원, 보건소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은 한국 기업들이랍니다.”
***
처음 시작은 주장 강과 연결된 지류의 끝과 조그만 습지와 그 인근 농장들이었다.
PCBs가 강물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 모이는, 가장 오염이 심각한 지대이며 광둥성에서도 가장 따뜻한 지역이다.
처음에는 매년 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짐에 따라 모기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고, 농민들은 모기향을 피우고 스프레이를 뿌렸다.
하지만 불과 1, 2주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모기는 알, 유충, 번데기, 성충의 네 단계 생활사를 거친다.
성충으로 우화한 후 교미를 끝낸 암모기는 흡혈 후 물가에 산란한다.
1회에 산란하는 알의 수는 암컷 한 마리당 150개.
알은 2일 후에 부화하여 유충이 되고 7일간 성장한 후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된다.
본래는 산란된 150개의 알이 유충 기간에 대부분 포식자에게 제거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암모기 한 마리가 150마리로 증가하는 셈이다.
“맙소사……."
며칠 전부터 모기떼가 기승을 부려서 농사일을 잠깐 쉬었던 허슈잉은 창밖을 내다보고 눈을 의심했다.
‘모기떼’가 육안으로 보였다.
저 멀리서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자, 잠깐만……."
믿을 수 없는 아찔한 광경에 현기증을 느끼던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공포에 질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 바로 뒤의 축사는 조악한 벽과 기둥, 지붕으로 구성돼있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구조다.
그리고 흰줄숲모기는 포유류도 문다. 심지어는 새도 공격 대상에 포함된다.
“이런!”
축사에 도착한 허슈잉은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염소 네 마리가 모기떼에 뒤덮인 채 죽어 있었다.
나머지 염소들도 모기들의 습격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그들을 쫓아내려고 날뛰고 있었다.
며칠 간격으로 도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가축이 폐사하는 대신 기업과 상가, 은행 업무가 마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