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 제7 연구소 (8) >
류영준은 사이언스의 에디터 제시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직 광둥성에 계십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네. 맞아요. 여기서 조사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사이언스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 쪽에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죠? 그곳에서 대량의 장기이식 수술이 있었는데요.”
-아……. 그쪽에는 다른 기자들이 간 상태예요. 저는 광둥성에서 할 일이 좀 더 생겨가지고요.
“생태 조사를 하십니까?”
-맞아요. 제가 지금은 리서치를 하지 않지만 7년 쯤 전에는 꽤 각광받는 수질 생태학자였답니다.
제시가 말했다.
“흠……. 수질 생태학자 제시 박사님. 박사님께서 보시기에 광둥성의 습지는 어떤가요?”
-이 이상의 정보는 원칙적으로는 공개하면 안 되는 것이긴 한데……. 류 박사님한텐 알려드리죠. 습지는 지금은 매우 좋은 편이에요.
도심 속에서 이 정도로 관리가 잘 된 습지들을 세계를 통틀어도 드물 거예요.
“만약 파라자일렌 공장의 폐수가 배출된다면요?”
-그럼 이젠 장담할 수 없죠. 이번에 파라자일렌 공장의 폐수 처리 시설의 설계도가 공개됐잖아요? 사이언스 편집부에서는 그걸 듀크대 화학부 교수들에게 보내서 자문을 구했어요.
“그쪽에서 뭐라고 하셨나요?”
-폴리클로리네이티드비페닐(PCBs)이 여과되지 않고 흘러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죠.
“그랬군요.”
-저는 여기서 광둥성 대학 연구진의 지원을 받아서 PCBs가 습지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력도 모자라고 연구 장비도 대단치 않아서 좀 어려운 실정이네요.
제시가 말했다.
-PCBs가 흘러나왔을 때 가장 직격을 맞을 수 있는 생물들부터 조사해야 하는데, 그걸 알아내기가 좀 어려운 실정이라서…….
“그 습지에는 하이드로카라 카라보이드라는 수생 딱정벌레가 살고 있습니다. 그쪽을 한번 조사해보시는 게 어때요?”
류영준이 말했다.
-카라보이드요?
“네."
-……. 그런 건 어떻게 아셨나요?
“지난번에 광둥성에 머물렀으니까요. 습지 근처에 산책하다가 그 곤충을 봤습니다. 모기 유충의 천적이고 생태에 주는 영향력이 상당히 강한 곤충이니 한번 확인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류영준의 사무실에는 또 다른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유송미 비서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온 그는 CIA 요원 휘태커였다.
당연히 유송미를 비롯한 회사 직원들은 그 누구도 휘태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유송미가 밖으로 나가고, 사무실 안에 둘만 남게 되자 휘태커가 얘기를 시작했다.
“백악관에서부터 내려온 지시로 류 박사님에게 이 정보를 공유해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닥터 레프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낸 내용입니다.”
“고맙습니다. 말씀해주세요.”
“닥터 레프. 1986년생. 본명은 이사야 프랭클린, 미국인입니다.”
“생각보다 쉽게 찾았군요.”
“마치 자신을 찾아보라고 도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적 정보들을 아지트에 많이 남겨놨었습니다.”
"......."
“왜 닥터 레프 (REF)라는 이름을 썼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F는 프랭클린인 것 같긴 한데요.”
하지만 류영준은 그 이름을 대강 감을 잡고 있었다.
‘로잘린드 엘시 프랭클린Rosalind EIsie Franklin’의 약자일 것이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진짜 생물학자이자 20세기에 만연했던 과학계의 성차별 피해자였다.
굳이 그 이름에 집착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엘시 프랭클린이라는 미국인이고,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휘태커가 말했다.
“정보가 없다고요?”
“네. 엘시 프랭클린이 아기를 출산했던 산부인과에도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엘시 프랭클린은 어린 이사야를 데리고 팔레스타인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쭉 키웠습니다.”
“왜 갑자기 팔레스타인으로 갔죠? 미국인 여성이 혼자 어린 딸을 데리고 중동에 가서 키운다는 게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요. 심지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잖아요?”
“그것도 주소지를 보면 분쟁 지역입니다. 아마 그쪽에 친척이라든지 연고가 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휘태커가 말했다.
“그렇군요.”
“그리고 이사야 프랭클린은 희대의 천재였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온갖 국제 대회의 수학 및 과학 영역을 휩쓸고 다녔습니다.”
"......."
“중학교 때 이미 영국의 캠브릿지 대학에 설립된 영재 교육 기관으로 이동해서 대학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요. 여기 그 자료입니다."
휘태커가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류 박사님께 이 정보를 알려드리는 이유는 하납니다.”
휘태커가 덧붙였다.
“닥터 레프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바이러스를 보냈습니다.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연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바이러스를 가져오셨나요?”
“메셀슨 박사님이 직접 포장해주셨습니다. 사무실 말고 연구실로 가져가서 후드 안에서 꺼내라고 하셨습니다.”
“괜찮으니 지금 주세요.”
휘태커는 가방에서 스티로폼 박스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액체 질소가 가득 차있었고, 그 바닥에 파라필름 (Parafilm)으로 감아서 밀봉한 아이스 블록이 있었다.
아이스블록을 열자 다시 파라필름으로 감아서 밀봉한 조그만 샘플 보관용 바이알 (Cryovial)이 나타났다.
류영준은 바이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
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감사합니다. 조사해보겠습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은 정치적인 분쟁으로 인해서 지금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태입니다. GSC 국제회의에 탄저균을 보낸 그 미치광이 테러범이 어떤 짓을 저질렀을지 모릅니다.”
휘태커가 말했다.
“백악관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 굉장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류영준의 목덜미에 땀이 흘렀다.
이제는 그도 염려스러웠다.
***
“이렇게 세 개 회사가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김영훈 이사가 말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그동안 대단한 일들을 많이 했지만 이건 그 중에서도 특별히 큰 프로젝트일 겁니다. 제가 팀의 업무 분배를 만들어왔습니다. 먼저……."
“잠깐만요.”
민병진 연구소장이 끼어들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큰 프로젝트인데 SG전자가 받아가는 몫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젠바이오에서는 생물 데이터를 제공하고, 타냐 맨커 대표님은 GRO의 알고리즘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코딩을 하는 개발자는 SG전자의 소프트웨어 연구소잖아요?”
“보상 분배에 대해서는 이미 세 회사의 법무팀이 합의해서 CEO 결재까지 받은 걸로 아는데요. SG전자에는 이번 일의 보상으로 1,000억 원을 지급하기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김영훈이 말했다.
“주식으로 주십시오.”
민병진이 말했다.
"......."
김영훈은 그를 가만히 주시했다.
“계약서를 새로 쓰고 싶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그 편이 SG전자 쪽에서도 좀 더 일에 열정적으로 뛰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스톡을 가지면 말입니다."
“타냐 맨커 대표님은 어떻습니까?”
김영훈이 타냐에게 물었다.
“저는 지금 보상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사실, 기업 대표가 아니라 그냥 과학자로 생각할 땐 이런 거대 데이터를 GRO가 소화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꼭 함께 하고 싶어요. 무보수로라도요.”
“……. 민병진 소장님 말씀은 대표님께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오늘 류 대표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요.”
“대표님은 더 중요하고 바쁜 일이 생겼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한동안 진행할 겁니다.”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GRO의 알고리즘을 토대로 SG전자의 소프트웨어 연구소에서 프로그램을 재구축한다.
생물 3만여 종의 숫자와 분포지역에 GRO의 환경 분석 알고리즘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약 3시간 후.
회의의 중간 휴식 시간.
김영훈 이사는 민병진 소장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왜 주식에 관심을 가지십니까?”
그가 물었다.
“김 이사님. 에이젠바이오는 이제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이고 엄청난 크기의 금광입니다. 당연히 SG전자 입장에서는 이곳에 대한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확대하는 게 좋죠.”
“영향력을 확대한다고요?”
“연구는 류 박사님이 맡아서 하잖습니까? 하지만 그 분은 이런 거대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없어요. 에이바이오는 돈은 많았고 기업 가치는 높았지만 규모까지 크진 않았습니다.”
"......."
“SG전자는 지분을 증대시키고 김 이사님을 앞세워서 에이젠바이오의 경영권을 노려볼 생각입니다."
“하……."
김영훈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경영권을 가져서 어쩌시게요?”
그가 물었다.
“어쩌다뇨? 이만한 회사면 얻을 수 있는 건 얼마든지 많이 있……."
“그만. 됐습니다. 저는 이 회사의 경영권에 관심이 없습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이사님?”
“저는 스스로가 이미 에이바이오의 신기술에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진단 키트와 췌장암 치료제로 목숨을 구하셨죠. 제 아내는 당뇨 치료제인 에이먹을 복용하고 있고요.”
"......."
“저도 SG전자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갔던, 그리고 쫓겨났던 임원이라서 압니다. 소장님. 에이젠바이오를 국내의 평범한 재벌 그룹으로 만들지 맙시다.”
김영훈이 말했다.
“SG전자에서 만드는 것처럼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같은 것들이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개발하는 제품들은 사람 생명과 직결 된 것들입니다. 경영권과 관련해서 자본의 논리로 류 대표님을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
민병진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김영훈이 말했다.
“만약 민 소장님이 이게 맘에 안 드신다거나, SG전자의 경영부에서 정 에이젠바이오에 손대는 걸 원하신다면, 저희는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다른 개발진을 찾아볼 테니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아닙니다.”
민병진이 말했다.
“계속 같이 하시죠……. 제가 위에는 그렇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류 대표님은 어떤 일에 온갖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십니다.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요. 이런 사소한 걸로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에이젠 바이오 같은 회사의 경영권을 두고 SG전자가 진입하려는 문제인데 사소한 것이라니.
대체 류 박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기에?
민병진은 마른 침을 삼켰다.
***
류영준은 대표 사무실을 거의 24시간 비웠다.
그 대신 제7 연구소의 실험실에 거의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젠 그에게 보고하러 오는 임원들이 대표 사무실 대신 제7 연구소를 먼저 찾을 정도였다.
“대체 무슨 실험을 하시기에 본사로 오질 않으세요?”
류영준에게 보고서 하나를 전달하러 온 유송미가 답답한 듯 물었다.
“제7 연구소의 실험실이 아무래도 제 손에 가장 잘 익어있고, 다른 연구소들보다 사람 수가 적어서 장비들 돌리기가 좀 여유롭거든요."
류영준이 말했다.
“제7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시키시면 되잖아요?”
“이미 다들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쪽은 대부분 모기 퇴치제 연구고……. 저는 좀 다른 걸 하고 있죠.”
“다른 거요?”
“서브어큐트 네크로타이징 엔세팔로마이엘로퍼시 (Subacute necrotizing encephalomyelopathy)의 치료제입니다.”
“어느 나라 말이에요?”
유송미가 물었다.
“영어예요. 우리말로 번역이 마땅찮은데, 음……. 굳이 옮기면 급성 괴사성 뇌척수염 정도 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