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 제7 연구소 (6) > (64/301)

208화.  < 제7 연구소 (6) >

소회의실 안에는 류영준 말고도 과학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생태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이자 GSC 멤버십을 가진 사람. 모기 멸종 프로젝트를 류영준과 함께 하려했던 레지옹 박사였다.

“레지옹 박사님도 계신 줄은 몰랐네요. 반갑습니다.”

김영훈 이사가 레지옹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만한 일을 진행하는데 생태학자가 빠지면 안 되지요.”

“근데 이게 다 뭡니까?”

SGSW 연구소의 민병진 연구소장이 사방을 둘러싼 스크린들의 위압감 속에서 간신히 입을 뗐다.

“광둥성의 3만 종 생물 자원의 개체수와 서식 분포 및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정보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거 정말 사람 놀라게 하는군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데이터를 전시해놓고 시작하다니……."

데이터가 워낙에 방대한지라 터치스크린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엑셀 파일은 아무리 넘기고 넘겨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Hagenomyia micans

-Odontomachus bauri

-Odontomachus bmnneus

-Odontomachus assiniensis

.......

타냐 맨커는 눈앞에 있는 스크린 하나를 읽으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는 [Odontomachus bauri]를 클릭했다.

Odontomachus bauri는 학명이다. 국내에는 트랩 턱 개미라고 알려진 덫개미 속의 한 종이다.

광둥성 지도가 나타나면서 그 위에 분포 지도가 떠올랐다.

붉은색의 등고선으로 개체수가 나타나 있었다.

하이저우 습지에는 약 3,800만 마리.

개발자들은 ‘와 이런 걸 어떻게 다 조사했지?’ 하고 신기하다는 듯 떠들어댔다.

그러나 생태학에 대해 웬만큼 아는 타냐 맨커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이건 너무 충격적인 자료다. 류영준이 얘기한 조사 방법으로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이만한 데이터를 쉽게 만들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대체 생물학에 어떤 지식을 갖고 있으면 이게 되는 거야?’

생각에 잠겨있는 타냐에게 류영준이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타냐 대표님.”

그가 말했다.

“이 데이터들을 변수로 입력하는 인공지능이 가능할까요? 국내 최고의 개발자들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SG전자의 프로그래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 가능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철컥!

유송미가 다과를 마련한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테이블을 세팅하면서 류영준에게 말했다.

“대표님 앞으로 전화 한 통 왔어요.”

“지금은 바쁘니 이따 받겠습니다. 어디서 온 전화예요?”

“GSC 메셀슨 박사님이라고 했습니다.”

“메셀슨 박사?”

류영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떤 건으로 전화하셨다던가요?”

유송미는 타냐 맨커와 김영훈 등 주위 사람들을 힐끔거렸다.

“괜찮으니 얘기해주세요. 아프리카에서 지금 수색전을 벌이고 계셨을 텐데.”

“네. 맞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 전선 군인들의 아지트 중 하나를 찾았다고 하셨어요.”

"......."

류영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지난 GSC 국제회의가 열리기 전, 아프리카에서는 탄저균 팬스를 따라가며 탄저균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메셀슨은 CIA, 그리고 아프리카의 정부 연합과 함께 그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성과가 좀 있다고 하시던가요?”

“극비 서류 일부와 연구 시설들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연구 자료는 너무 어려워서 메셀슨 박사님도 좀 공부를 하셔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탄저균 무기라면 메셀슨 박사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다른 연구 자료였을 것 같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여러분.”

류영준은 개발자들과 과학자들에게 말했다.

“여기 계신 김영훈 이사님은 생물학과 컴퓨터 사이언스 모두에 정통하시고 큰 회사 둘의 임원으로 오래 근속하셔서 기업간의 협력에 익숙하신 분입니다. 김 이사님께서 이번 프로젝트 총괄을 맡아주실 겁니다. 저는 잠깐 전화 한 통 받고 오겠습니다.”

류영준은 김영훈을 소개해주고 유송미 비서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광둥성은 북쪽으로는 우뚝 솟은 난링산맥이 붙어있고 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하고 있다.

하천은 종횡으로 흐르고 수로망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어 천혜의 자연 생태 환경을 자랑한다.

이 도시는 중국의 경제의 심장일 뿐만 아니라 환경의 허파이기도 하다.

도심 곳곳에 조성된 습지들은 도시와 어우러져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경관을 보여준다.

‘시장 경제 질서를 따라서 무분별하게 마구잡이로 발전해버린 서양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 세계원예박람회에서 ‘광둥의 날’을 열어서 광둥성 생태를 홍보할 정도다.

광둥성의 성장 양군위는 이 도시가 가진 환경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어쩔 때는 러시아와 맞먹는다는 그 막강한 경제력보다도 더.

“청산녹수가 금산이자 은산.”

양군위는 하이저우 습지 근처를 걸으면서 혼잣말을 뱉었다.

최근 수 년 동안 광둥성의 발전 이념 중 하나다.

“이런 생태계에 함부로 칼질을 하면 안 되지. 모기 같은 걸 건드렸다가 어찌 될 줄 알고.”

양군위는 습지에서 떠다니며 부리로 자맥질을 하는 오리 떼와 날아오르는 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성장님;”

그를 수행하던 비서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가?”

“큰일 났습니다. 마오밍시에서 일어났던 파라자일렌 공장 가동 반대 집히가 소요 사태로 번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양군위가 비서를 홱 돌아보았다.

“평화 행진을 왜 탄압하느냐면서 들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돌을 던지고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는 식으로……. 이것 좀 보십시오 비서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중국의 SNS인 웨이보에 올라온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완전 무장한 공안들이 진압봉으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었다.

비명 소리와 피와 화염이 사방에 퍼져 나가는 현장.

시민들은 돌을 집어던지면서 맞서고 있었다.

-오염 시설 가동 중지!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 멍청한 새끼들이!”

시민들의 함성을 듣던 양군위가 소리를 쳤다.

“그 공장 지대는 환경 오염이나 공중 보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내가 책임지고 하는 일이야. 온갖 전문가들한테 자문도 다 구했고. 내가 광둥성의 환경을 얼마나 아끼는 사람인데 이 무식한 것들이.”

“상황이 좀 안 좋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에 참여했던 시민들 중 15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돼. 공안을 추가로 더 보내. 그런 소요가 더 크게 번지는 건 용서할 수 없어. 그리고 시위대 안에 폭력 시위를 조장하는 프락치들이 있었다고 발표해.”

양군위가 말했다.

파라자일렌은 플라스틱병, 필름, 폴리에스테르 의류 등을 만드는 데 광범위하게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 원료다.

그런데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인체 내에 누적되면 해를 끼친다.

이 때문에 광둥성의 도시 중 하나인 마오밍시에 새로 준설된 파라자일렌 공장들의 가동을 시민들이 반대하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아니지. 잠깐만.”

양군위가 말했다.

“시민들이 지금 이렇게 들고 일어나는 이유는 지난해 장저우에서 파라자일렌 공장이 폭발했기 때문이야.”

실제로 파라자일렌 공장을 마오밍 시에 건설하는 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 장저우에서 공장이 폭발하면서 인명 사고가 나고 파라자일렌이 누출된 후로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장저우에서 그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인민일보가 파라자일렌은 커피만큼 무해하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죠.”

비서가 말했다.

“시민들은 그것 때문에 겁을 먹은 거야.”

양군위가 말했다.

“그 머저리들이 공장 하나 관리를 제대로 못해가지고……. 석유 원료니까 당연히 인화성이 높고 불붙으면 공장 터지는 건데.”

양군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력으로 진압하는 건 어쩌면 의미가 없겠어. 그 집회 나오는 시민들 대부분은 환경이나 파라자일렌에 대한 이해도가 별로 없을 테고. 장저우에서처럼 그게 들어오면 폭발해서 인명 피해를 만들고, 뭔진 잘 모르겠지만 위험한 발암물질이 공기 중으로 살포될 거라는 생 각밖에 안하겠지.”

양군위가 말했다.

“그럼 단순히 진압하는 게 역효과만 낳을 수도 있어. 본인들 목숨 문제라고 생각해서 더 날뛸지도……. 차라리 좀 구슬려야겠다. 주민들하고 의논해가면서 일을 천천히 진행하겠다고 발표하자. 더 이상 진압하지 말고.”

“그럼 공장 가동은 미룹니까? 제노펙에서 가만 있지 않을 텐데요.”

제노펙은 중국 최대의 석유 생산 대기업이다. 이번 파라자일렌 공장 지대의 주인이기도 하다.

“말만 그렇게 해야지. 어차피 그 공장지대 근처는 전부 제노펙 사유지고 보안 때문에 그쪽 경비들과 공안이 지키고 있어.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해놓고 공장은 비밀리에 가동하라고 해.”

양군위가 말했다.

“6개월 쯤 지난 후에 시민들한테 사실 이미 반년째 돌리고 있었다. 너희 중에 건강에 문제 있는 사람 있느냐 물어보면 그들도 이 멍청한 반대 집회를 하지는 못할 거야.”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비서가 말했다.

“어, 그리고 성장님. 한 가지 알려드릴 게 더 있습니다.”

“뭐지?”

“에이젠 바이오의 류영준 박사 말입니다.”

“어. 류 박사가 왜?”

“성장님 하고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

“파라자일렌 공장의 가동을 멈추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지금 제대로 전화 건 것 맞아요?

양군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반응했다.

“맞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웨이보에 올라온 진압 영상과 유혈 사태가 각종 외신을 다 장식했습니다. 당연히 저도 볼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제노펙 사에서 파라자일렌 공장은 안전하다면서 공개한 오염 처리 시설과 설계도도 봤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 아시겠군요. 그 공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생태학 전문가인 크레이프 박사를 포함해 수많은 폐수 처리 전문 업체들의 자문을 마쳤습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그리고 일개 기업의 대표인 당신이 중국의 광둥성 성장인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내정 간섭을 할 권리는 없습니다. 주제를 아십시오. 파라자일렌 공장의 가동은 내가 주민들하고 의논해서 결정할 사항입니다.

양군위가 딱딱하게 받아쳤다.

“내정 간섭이 아니라 조언을 드리는 거라고 생각하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그 폐수 시설을 가동하면 광둥성의 습지 생태에 치명적일 겁니다.”

-웃기는군요.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으셨습니까? 류 박사님 당신이 생물학이나 의학에는 권위자지만 폐수 처리 방법도 잘 안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의 유기화학 지식이 있으면 설계도를 이해할 수는 있죠. 폐수에 산화제를 첨가해서 pH를 7.5이하로 떨어뜨린 다음 제2철염을 폐수 총량의 5 퍼센트로 첨가하여 폐기물을 침전시키고 디티오카바메이트(Dithiocarbamate)를 첨가하여 필터로 여과한 후 하수로 배출하는 시스템 아닙니까?”

-.......

양군위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생물학은 아니죠. 물리화학과 유기화학 쪽이니까. 하지만 제가 생물학자라서 아는 것도 있습니다. 거기서 여과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폴리클로리네이티드비페닐(PCBs)이 있고, 그게 광둥성 습지에는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류 박사님. 제가 좀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조금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광둥성 같은 곳이 지금까지 모기들에 의한 전염병 재난을 크게 겪지 않은 이유는 습지가 잘 관리돼서입니다. 2급수 이상의 맑은 물에서는 장구벌레의 포식자들이 많기 때문에 모기가 번식하기 어렵죠. 하지만 그 폐수를 풀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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