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 제7 연구소 (5) >
-그게 가능한 거예요?
타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통계 분석한 거죠?
“당연히 그렇죠. 제가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를 직접 셀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숫자에 확신을 가지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통계가 정확하다고 보시는 거군요.
타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광둥성을 대표할 수 있는 서식지를 특정 단위의 크기로 나눈 후' 샘플을 충분히 많이 수집하고 그들로부터 개체수를 전수 조사해서 평균 내면 얼추 따라갈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단위 서식지마다 개체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비교적 정확히 맞추더라도 그 서식지의 개수를 세는 것은 어렵습니다. 단위 서식지보다 훨씬 작은 집단들이 무수히 많을 수 있으니까요. 애초에 곤충들의 서식지라는 게 뚜렷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고 그러면 토탈 개체수도 크게 달라질 텐데 통계에 그런 부분들도 고려되어 있나요?
“물론입니다.”
-……. 하지만 그래도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군요. 곤충 수준부터 파악했다고 하셨는데, 그 정도 스케일에서는 아무리 공들여 카운트 했다 하더라도 서식지의 크기를 특정하는 데서부터 오차가 생길 것 같은데요. 곤충별 서식지를 다 찾아낼 순 없지 않나요?
“생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네?
“1960년대, 호주에서 목축업이 한창이었을 때 일입니다. 당시 호주는 가축들의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해서 큰 난관을 겪고 있었죠. 그런데 비슷한 기후와 비슷한 규모의 목축업을 하는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별다른 처리 시설을 마련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 이유는 딱정벌레들의 분포와 종의 차이였어요. 유럽의 딱정벌레들은 가축의 배설물을 먹어치우며 사는 데 반해, 호주의 딱정벌레들은 숲속의 부엽토와 낙엽을 먹었거든요.”
-.......
“호주의 생태학자들은 유럽에서 그 딱정벌레들을 공수해와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딱정벌레들이 호주 생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 유럽에서 딱정벌레들의 생태를 깊이 연구했죠. 그들은 그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똑같은 기후, 비슷한 토양과 날씨를 지닌 인접한 유럽의 농장들이라도 목축업을 하는 농장 지대와 하지 않는 지대의 딱정벌레 서식 분포도가 굉장히 크게 달랐던 겁니다. 목축업을 하지 않고 농업을 위주로 하는 농장들에서는 그 딱정벌레들이 거의 없었어요. 당시 조사 된 표본 샘플로는 1만 배에서 크게는 10만 배 정도로 숫자 차이가 났죠.”
-목축업을 하지 않으면 그 딱정벌레들의 먹이가 되는 배설물이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사실상 농업 지대에서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이 쯤 되면 해당 국가의 딱정벌레 숫자를 계산할 때 농업 지대는 노이즈로 처리해도 좋습니다.”
-그 케이스에선 그렇게 해도 실제 정답에 매우 근접한 수치가 나오긴 하겠군요. 배설물이 많이 나오는 목축 지대를 추적하면 서식지를 전부 파악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서식지를 파악하는 건 두 가지만 고려하면 돼요. 첫째로 가장 중요한 건 ‘먹이’ 입니다. 나머지는 평균적인 수치일 때 그것만 추적해도 서식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별로 먹이사슬의 분포도를 그리고 몇 개의 종의 서식 환경만 확보하면 나머지는 러프 스케치를 그려서 빠르게 추적할 수 있어요. 곤충생태학에서 가장 많이 쓰는 생물자원 조사 방법입니다.”
'흐음.......
“두 번째로 고려할 사항이 있다면 오염성이고요. 한국에서도 한 때는 시골에 가면 쇠똥구리 같은 곤충들이 심심찮게 보였지만, 가축들에게 항생제를 먹이면서부터 사라졌어요. 그 항생제가 배설물에 남아서 곤충들의 포식을 막은 겁니다. 지금 한국에서 쇠똥구리는 거의 멸종 위기 직전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몇 년 전에 환경부에서 환경 재건 사업을 하면서 한 마리당 100만 원의 현상금을 걸고 몽골로 부터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곤충은 대개 수명이 짧고 세대교체가 긴급하게 이루어지며 활동 반경이 비교적 좁기 때문에, 먹이의 양이나 환경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요.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들만 추적하면 쉽게 서식지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개체 수는요? 서식지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서식지에 살고 있는 생물 숫자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요?
“그것도 바이오매스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렵지 않아요. 요컨대 4인승 승용차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타봤자 대여섯 명이라는 겁니다. 버섯줄무늬개미는 시트러스 운시드로프 라는 관목 아래에만 둥지를 만듭니다. 그런데 관목의 크기와 둥지의 크기는 항상 정비례하죠. 나무가 뿜어내는 액체가 주위 흙을 산성화시키는데, 그 환경이 가장 집을 짓기에 적합하거든요.”
-.......
“포도 껍질을 둔 곳에 파리가 꼬이는 것과 LB브로스 수용액에 박테리아가 자라는 건 비슷합니다. 수용액의 양에 따라 박테리아의 양이 결정되는 것처럼, 파리 숫자도 특정 범위 내에서 비교적 정확히 맞출 수 있어요. 생물학적인 제반 지식들이 따라주면요.”
-하지만 그래도 통계 값인 이상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생물학에 그런 것은 별로 없죠.”
류영준이 말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자료로 광둥성의 생태계를 인공지능 모델링한 후에, 몇 가지 변수를 조작해서 시범운전을 해보는 거예요.”
-그 다음엔 모기 멸종 프로젝트에 들어가실 거고요?
“맞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이 데이터를 드리죠. 광둥성의 곤충 및 동식물 도합 3만 종의 산정 개체수와 서식지 분포도, 그리고 생물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
실제로 류영준이 그 데이터들을 추적한 방법은 약간 달랐다.
류영준은 보건당국 장관에게 부탁해 광둥성의 생태 지도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지만, 동시에 로잘린의 시뮬레이션 모드를 사용했던 것이다.
귀국을 앞두고 광둥성의 호텔에서 네이처의 에디터를 만난 직후였다.
류영준은 로잘린에게 시뮬레이션 모드를 부탁했다.
-미쳤어요?
로잘린은 얘길 듣고 경악하며 외쳤다.
-광둥성에 있는 모든 생물의 서식지와 개체수의 전수 조사?
“좀 어려우려나?”
-시뮬레이션 모드는 특정 생물체를 지역 단위로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긴 해요. 하지만 종이 너무 많잖아요! 그만큼 다루면 피트니스가 한참 모자라요.
“그래?”
-조 단위의 생물 종을 어떻게 하룻밤만에 다 추적합니까. 게다가 걔들 중에서는 제가 알려드리기 까다로운 놈들도 많아요. 그 중 99.9 퍼센트는 인류가 존재조차 몰라서 이름을 지은 적이 없으니까. 이름없음 1번, 2번 이런 식으로 해요?
“잠깐만. 조 단위라니? 무슨 소리야?”
-모든 생물 종을 조사해 달라면서요?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류영준의 목덜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러니까…… 넌 설마 그 모든 종이라는 게……."
-지금 이 방에도 얼추 3천 종 정도는 있는 것 같은데요. 특히 당신 피부와 장내에 분포하고 있는 애들……. 그 중에도 이름없음이 3백 종 정도는 되겠군요.
“악! 아니야. 미생물은 제외해줘.”
류영준이 황급히 말했다.
-미생물은 제외해요?
“당연하지. 미안하다. 생각하는 게 아예 차원이 달랐구나. 곤충 정도 크기의 생물부터 시작하면 어때?”
로잘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올바른 생태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해당 지역 생태계 정보를 전부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원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미생물 정보까지 포함시키면 조사하기도 어렵지만 발표할 방법도 없어. 학계에서 존재조차 모르는 것들을 어떻게 발표 하니.”
-이름없음 1, 2, 3.......
“……. 괜찮아. 곤충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그 미생물군 수준이라면 스케일이 너무 달라서 아마 고려하지 않더라도 모기 멸종에 영향을 줄만한 문제는 없을 거야.”
-과연 그럴까요?
“문제 있을 수도 있니?”
류영준이 긴장하며 물었다.
-아니요. 장난이에요.
로잘린이 환하게 웃었다.
“너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다. 이런 장난도 치고.”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로잘린의 몸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수증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세포 분열.
로잘린은 수백 조 개의 미세 세포로 분화하면서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광둥성 전역으로 퍼져나감에 따라 어마어마한 감각 정보가 류영준의 뇌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으윽......."
류영준은 짧게 신음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조금만 참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
약 열흘이 지난 후. 타냐 맨커가 에이젠바이오로 이동했다.
새롭게 단장한 에이젠바이오 본사에는 타냐 맨커 말고도 중요한 손님들이 있었다.
SG전자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도맡아 진행하는 SGSW 국제 연구소의 연구소장과 개발 담당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GWAS 같은 프로젝트를 에이젠바이오가 진행할 때 참여한 적이 있다.
“에이젠 때랑 사옥은 똑같다고 들었는데 어쩐지 훨씬 웅장해진 느낌이군.”
SGSW 연구소장 민병진은 개발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말했다.
“이젠 시총이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회사가 됐으니까요. SG전자보다도 더 큽니다.”
개발자 박현이 말했다.
“에이젠에 옛날에 투자해서 주식 묻어놨던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어. 류 박사가 주식을 거의 독점하고 있으니 경영권을 우리가 어쩔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참여할 수는 있지 않겠나.”
띵!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추었다.
타냐 맨커과 함께 김영훈 이사가 안으로 올라탔다.
“오랜만입니다. 김 이사님.”
민병진이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김영훈이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타냐 맨커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인공지능 기후 및 작물 예측 프로그램 GRO의 개발자이자 창립자인 타냐 맨커 대표님입니다.”
그리고는 타냐에게 민병진을 소개해주었다.
“반갑습니다.”
타냐는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붉은 곰팡이 재난이 터졌을 때 들었습니다. 저희도 인공지능은 개발하고 있는데 좀 차원이 다른 아이템 같더군요. 그런 걸 예측할 수 있다니.”
“저도 제 프로그램이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타냐 맨커가 웃으며 말했다.
곧 엘리베이터는 14층에서 멈추었고, 김영훈은 사람들을 데리고 1408호의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철컥!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유송미 비서가 불쑥 튀어나오다가 그들을 마주치고는 반겨주었다.
“어서오세요. 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우리가 늦었나요?”
김영훈이 시계를 힐끗 보며 물었다.
“아뇨. 데이터 정리하신다고 세 시간 전에 와 계셨어요.”
유송미가 말했다.
“그리고 늦은 건 사실 제가 늦었죠……. 회사 합병 후에 업무 혼선 때문에 실수했어요. 다과하고 음료 좀 챙겨오겠습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김영훈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김영훈와 SG전자 개발자들, 타냐 맨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곳 소회의실을 류영준이 고른 이유가 있었다. 대형 스크린 12개가 회의실 전면과 벽면에 쫙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그 스크린들 전부를 빼곡하게 엑셀 데이터가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둥성의 생물자원 전체 데이터였다.
“어서오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회의 시작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