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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화. < 제7 연구소 (4) > (62/301)

206화.  < 제7 연구소 (4) >

먼 옛날 생물학 (Biology)은 박물학 내에 속해있는 학문이었다.

박물학자들은 동식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가면서 조악한 해부학과 분류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게 로버트 훅과 다윈, 멘델 등의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을 거치면서 현대의 ‘세포학과 유전학에 기반을 둔’ 생물학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생물학은 또 한번 새로운 국면을 맞아 크게 변신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BIT 산업에 대한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쉽게 달성하기가 어려웠죠. 생물학의 복잡성이 워낙에 심각했기 때문에 그걸 수치화하고 도식화하는 작업이 너무 어려웠던 거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BIT.

생물학 (Biology)와 정보기술 (Information Technology, IT)의 융합 단어다.

일명 생명정보학 (Bio infomiatics)라고 불리는 학문.

사람 한 명의 유전체 데이터는 약 730 메가바이트 (Mb)인데, 이건 DNA 서열 하나를 2비트에 코딩했을 경우의 얘기다.

메모장에 30억 자에 해당하는 유전체 데이터를 그냥 쭉 늘어놓기만 하면 730 메가바이트라는 뜻이다.

하지만 유전자 해독기를 이용한 실험 데이터를 보면, DNA 서열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최소 천 번씩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래야 유전자 해독기를 돌릴 때 천 번 중에서 열 번 쯤 오류가 났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990 번을 토대로 유전자 데이터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유전자 조작 아기인 미미 같은 환자의 전체 유전자를 한 번 해독하는 데 730 기가바이트(Gb) 이르는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순간부터는 슬슬 생물학이 아니라 컴퓨터, 데이터 사이언스의 영역이 되죠.”

류영준이 말했다.

“생물학과 IT 기술이 접하는 지점이 그 때부터 발생했던 겁니다. 730 기가바이트 같은 초거대 빅데이터를 굴려가면서 질병 관련 DNA를 찾아낼 수 있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아요. 하물며 그 데이터에 1억이란 값을 곱하면?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처럼 1억 명의 데이터 해독을 기반으로 질병 코드를 추적한다면?”

“정말 어렵겠죠.”

테일러 박사가 말했다.

“지금 1억 명 유전체 데이터 해독 팀이 굉장히 일을 잘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그만한 퍼포먼스를 뽑아내는 데는 컴퓨터 사이언스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뒤에서 받쳐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SG전자 쪽에서 에이젠바이오로 넘어온 프로그래머들이 있습니다. 그들하고 협력 개발을 해서 얻어낸 성과물이 바로 이전의 GWAS 분석이었고, 그게 우리 회사의 100억 달러짜리 소송이나 모라토리엄 선언 등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리고.”

류영준이 덧붙였다.

“그들과 함께 인 실리코 실험을 진행한 결과, 겨우 쥐 실험 몇 번 한 게 전부였던 미미의 치료제로 전임상을 건너뛰고 임상에 돌입해서 그 아기를 제 때에 치료할 수 있었죠.”

정확히는 로잘린이 임상 전략을 짜주었던 것이지만, 류영준은 당시에 에이젠바이오의 김영훈 이사에게 연락해 인 실리코 실험도 진행했다.

대외적인 설명을 위해서 했던 일이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인 실리코 실험 데이터가 생각보다 훨씬 로잘린의 시뮬레이션과 많이 일치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류영준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을 갖게 됐다. 충분한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배선미 책임 연구원이 물었다.

“그럼 SG전자하고 또 협력개발을 하는 건가요? 이번엔 GWAS나 인실리코가 아니라 생태 변화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맞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앞으로도 협력 연구 관계를 유지할 겁니다.”

***

에이젠바이오 대표이사 사무실.

류영준은 반가운 손님을 만나서 얘길 나누고 있었다.

“이사회가 열리기 전인데, 이렇게 만나자고 갑자기 요청 드려서 죄송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아니, 회장님이 보자고 하는 건데 당연히 와야죠.”

점잖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서 대답했다.

김영훈.

에이젠의 이사이며 거대기업 SG전자에서 20년을 넘게 근속했던 임원이다.

“그러고 보니 김 이사님은 어쩌다가 에이젠으로 오시게 되었던 건가요? SG전자에서 승승장구 하시던 분 아닙니까?”

“그렇게 평가가 되어 있었나요? 기쁘군요.”

김영훈이 웃으며 답했다.

“실제로는 좀 다릅니다. 저는 거기서 부사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다가 밀려났죠. 임원 임기가 끝난 후에는 사실 퇴직할 예정이었는데 SG전자의 회장님 설득으로 에이젠으로 건너오게 됐습니다.”

“그랬군요.”

“SG전자는 과거에 에이젠이 조그마하던 시절에 많은 투자금을 넣었거든요. 그리고 항상 투자자들은 자기 사람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넣고 싶어하죠. 경영권을 건드리고 싶은 것은 물론, 투자금이 잘 쓰이는지 감시도 해야하니까요. 제가 들어올 당시에 에이젠한텐 거부할 힘이 없었습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SG전자와 에이젠이 업종도 크게달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겸직 형태로 들어오는 과감한 그림이 됐었죠. 그 후 몇 년 동안 SG전자 쪽도 사정이 바뀌어서 저는 거의 에이젠 사람이 되었지만요.”

“다시 SG전자에서 불러준다면 그쪽으로 가실 건가요?”

“2년 쯤 전이면 고민해보겠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에이젠바이오가 훨씬 좋고 유망한 회사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류 대표님의 윤리적인 리더십이 마음에 듭니다. 제가 봐왔던 수많은 재벌들 중엔 그런 사람이 없었지요.”

“에이젠으로 오신 것을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사실 좀 따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긴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서 윤대성 일가의 힘이 너무 강했어요. 여섯 명 연구소장 모두 윤대성 하고 친했죠. 김현택은 거의 수족처럼 윤대성에게 충성했고 지광만은 가족 수준이었습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그래서 류 박사님이 혜성처럼 치솟기 시작할 때 저는 류 박사님한테 모든 것을 걸었던 거예요. 이만한 거대 기업은 특정인의 독점 체제로 굴러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김영훈은 당시 막 이사가 된 류영준이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다.

그리고 독감 치료제를 200억에 SG제약에 팔도록 주선해주었다.

또한 그 자금으로 에이바이오를 설립할 수 있도록 이사회에 안건을 상신해주었다.

그는 류영준이 권력의 야망을 드러낼 때부터 줄곧 밀어준 지지자였던 것이다.

“특정인이 독점하면 안 된다는 그 생각, 지금도 유효한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김영훈은 쓰게 웃었다.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지금도 유효합니다. 류 대표님은 다행히 윤리적이고 지능적이라 실수하진 않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는 수없이 많죠. 예를 들어서, 류 박사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김영훈이 말했다.

“세계 최고 거대 기업인 에이젠바이오가 일순간 마비되는 겁니다. 주가는 폭락할 테고요. 이만한 거대 기업은 특정인에게 올인해선 안 돼요. 예를 들어서 최고 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이 나누어진다거나 해야 합니다. 그래야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운영이 가능해요.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별로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군요.”

“주식 회사의 주인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주주 전체니까요. 류 대표님보고 오너라고 부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셔선 안 됩니다. 이 회사는 국민연금도 많은 지분을 갖고 있어요. 국민들 지갑에서 얼마씩 빼서 만들어진 곳이라 생각하셔야 합니다.”

“중요한 조언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김 이사님한테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저는 옛날에 진단키트를 개발할 때 김 이사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당시 거기에 들어간 스마트폰 연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김 이사님이 SG전자 쪽에 연결을 잘 해주셨죠.”

“그랬죠. 그 진단키트는 지금도 저는 한 달에 한번씩 써보고 있습니다.”

김영훈이 미소지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때, 저는 SG전자의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의 프로그래머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 중 일부는 에이젠으로 넘어오셔서 많은 일들을 해주셨죠. 최근에도 GWAS 연구나 인실리코 실험을 진행하는 데 저희를 도와주셨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들은 SG전자하고 같이 했고요.”

“그 분들하고 일을 하나 더 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좀 더 큰 프로젝트가 될 것 같고, SG전자와 지난번에 썼던 계약서를 새로 갱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계약서는 법무팀끼리 쓸 테지만, 양사의 가운데서 이 협력 프로젝트를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음……. 어떤 일입니까?”

“생태계 변화 예측 모델 프로그램을 만들 겁니다.”

“SG전자의 소프트웨어 개발부서는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입니다. 하지만 그만한 일을 하기에는 좀……. 일단 비슷한 거라도 해본 경험이 없으니까요.”

“그쪽 최고 권위자를 에이젠바이오로 모셔올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누구죠?”

“타냐 맨커요.”

“컥!"

김영훈이 기침을 했다.

“배양육을 만들면서 붉은 곰팡이 재난을 예측할 때 타냐 맨커 박사의 회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을 사용했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분을 에이젠바이오로 모실 거예요.”

“자기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벤처 사장이잖아요?”

“에이젠바이오에 합류시키진 못하더라도 자문역 정도로 참여시킬 수는 있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세 회사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없다는 거죠.”

“제가 그 역할을 맡아달라는 겁니까?”

“네. 이사님은 SG전자에서 상무까지 하셨던 분이고, 에이젠에서도 이사로 경영을 오래 이끄셨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생물학을 꾸준히 공부하셔서 학위도 취득하셨죠. 양쪽 모두에 대해서 그 정도로 깊이 아는 분은 김 이사님뿐일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가장 적격인 인물에게 부탁드린 겁니다.”

김명훈은 멋쩍은 듯 웃었다.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류 박사님 부탁이라면 뭐든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추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타냐 맨커는 류영준의 연락을 받고 경악했다.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요? 류 박사님 당신은 생물학자이지 프로그래머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진행할 여러 프로젝트들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거든요.”

-이런……. 류 박사님 이건 안될 프로젝트예요. 저희한테는 분명 뛰어난 인공지능 예측 기술이 있고, 기후 변화 모델링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생태계라는 건 거기에 거대한 변수 덩어리가 하나 더 들어가지 않습니까?

“생물계요?”

-날씨가 점점 온난다습해진다 칩시다. 그걸로 특정한 작물의 성패에 대한 조악한 스케치를 그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모기를 멸종시켰을 때 그 생태계가 어떻게 교란되는가 같은 일은 달라요. 그 모기와 관련된 먹이사슬의 구성 생물군을 전부 파악하고 변수로 입력해야 하는데…….

“파악하고 있습니다.”

-네?

“파악하고 있어요. 일단 어찌될지 몰라서 광둥성 정도만 확인해두긴 했습니다만, 저희에게 그 빅데이터가 있습니다.

-.......

“광둥성에 서식하는 개미 한 마리부터 조류까지 모든 종의 개체수와 생태 피라미드까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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