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 제7 연구소 (2) >
“잠깐만. 잠깐만요.”
보건 당국 장관이 끼어들었다.
그는 양군위 성장의 팔을 붙잡고 한쪽 구석으로 잡아끌었다.
류영준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지금 말한 것은 우리 당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다행히 여기엔 우리 셋과 류 박사님이 데려온 통역 보는 여자밖에 없지만 그래도 말을 좀 조심하십시오.”
“상관없습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양군위는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는 다시 류영준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은 신중국을 탄생시킨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류 박사님. 나도 중국인이자 정치인으로서 그 분을 존경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 격변의 시기에 중국은 사분오열하고 내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걸 하나의 중국, 통일국가로 만들어낸 것은 분명히 마오쩌둥 전 주석의 뛰어난 공입니다.”
"......."
“하지만 중국 매체들은 마오쩌둥 전 주석의 대약진운동 같은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인 대다수가 전 주석의 공보다 과가 더 크다고 평하는데 말이요.”
“성장!”
뒤에서 보건당국 장관이 비명을 질렀다.
양군위는 귀찮다는 듯 그쪽을 향해 손을 한번 휘젓더니 류영준에게 말했다.
“마오쩌둥 전 주석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거대한 실패를 겪게 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뭡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전문가를 너무 믿었기 때문이요.”
“네?”
“당시 칼텍에서 교수직까지 이수했던 중국인 유학자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핵개발에 참여할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가진 과학자였죠. 세계적으로도 그정도 과학자는 드물었고, 1950년대 중국의 입장에서는 천금보다도 훨씬 귀중한 인적 자원이었습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이름은 첸슈이쓴.”
"......."
“그 시절의 중국에선 지금의 허찌엔칭보다 유명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마오쩌둥 전 주석은 그 사람 말이라면 전부 믿었죠. 중국이 부강해지려면 과학에 투자해야 하고, 첸슈이쓴 박사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니까.”
“실례지만 그 분이 핵개발에 참여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핵물리학자였던 건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맞습니다.”
“……. 핵물리학자라면 생태학에 대해선 모르시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요.”
“그랬죠.”
양군위가 말했다.
-무슨 개소리에요 이게?
로잘린이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
류영준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양군위가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첸슈이쓴 박사는 벼를 심을 때 더 빼곡하게 심는 방법을 수학적인 계산을 토대로 개발해서 마오쩌둥 전 주석에게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그건 실패였죠. 단위 면적당 종자 수가 더 많아지면 수확량이 늘어날 거라는 단순 계산은 사실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게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죠.”
“그래서 농작에 실패했나요?”
“대실패였습니다.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제사해 운동이 더해지면서 대기근이 왔던 것이죠.”
"음......."
“첸슈이쓴 박사가 나쁜 사람이었던 건 아닙니다. 실제로 그 사람은 겸손하고 절제된, 정직한 성격으로 학계와 중국 인민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죠.”
양군위가 말했다.
“평생을 사원 숙사 같은 조그만 주택에서 살았고, 주위에서 집을 지어주려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연구 성과로 수억을 벌어도 전부 기부했고요. 참된 과학자였던 건 맞습니다. 어쩌면 류 박사님, 당신 이상으로요.”
"......."
“솔직히 나는 과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핵물리학자와 생물학자가 얼마나 다른지도 몰라요.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태계를 건드릴 때는 그 실수의 결과물이 치명적입니다.”
양군위가 말했다.
“류 박사님. 광둥성의 두 섬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허락해줄 테니, 그 이상은 욕심 부리지 마십시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뒤에서 보건 당국 장관이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분노를 삼키는 게 보였다.
긴장감 어린 침묵이 잠깐 흘렀다.
“알겠습니다.”
류영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성장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프로젝트였다면 저도 굳이 광둥성에서 진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이곳 섬을 빌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다른 나라에서 진행하죠.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성장에게 인사하고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는 그를 보면서 보건당국 장관이 황급히 양군위 성장의 양 어깨를 움켜쥐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요즘 세상에 류영준 박사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오늘 류 박사 만난다니까 열 살짜리 저희 막내아들도 알던데요.”
양군위 성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성장! 광둥성에서 모기 멸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 건 중국 측에서 부탁한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프로젝트인지 몰라요? 중국의 산업과 과학의 메카인 이곳에서 먼저 이 사업의 시범 운행에 성공한다면 어떤 경제 효과를 낳는지 모릅니까?”
보건 당국 장관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양 성장. 이 프로젝트가 여기서 성공한 다음 세계로 퍼져나갈 때 광둥성의 시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프로젝트의 실무를 류 박사님 밑에서 배우면서 진행한 과학자들이 손 놓고 구경만 하겠어요? 몇 년 안에 광둥성의 청년들과 사업가들은 모기 박멸 쪽으로 새로운 창업을 할 테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게 될 겁니다.”
“어차피 에이젠바이오가 선두일 텐데.”
“에이젠바이오가 그 분야에서 당연히 1위를 유지하긴 하겠죠. 하지만 젠장, 두 번째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메리트가 상당한 일이라고요! 모기 박멸입니다, 모기 박멸! 매년 사람을 백만 명씩 죽이는 모기 매개 질병들을 통째로 소탕하는 일이라고요!”
“압니다. 그리고 그만큼 큰일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광둥성의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성장입니다.”
양군위가 단호하게 답했다.
"......."
"......."
두 사람은 잠깐 서로를 노려보았다.
***
류영준은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 미팅의 목표는 프로젝트의 진행 방향을 서로 간단히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아예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 이상 여기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다.
짐을 싸던 중에 보건 당국 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류 박사님 ! 지금 호텔입니까?
“네. 이제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탈 때까지 사흘 남았는데 관광이나 좀 하고 가죠 뭐.”
-……. 정말 미안합니다. 류 박사님. 이게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광둥성을 아직 제외시키진 않았습니다. 새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국가를 찾기 전에 이곳에서 연락이 온다면 광둥성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그……. 그렇게까지 저희 사정을 봐주시는 데 이유가 있습니까?
“광둥성은 모기 매개 질병에 굉장히 취약한 지역입니다. 인구도 아주 많구요. 이곳에서 한번 유행이 크게 번지면 정말 수습하기 힘들 겁니다.”
-……인류애적인 이유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굳이 에이젠바이오의 일정을 바꿔가면서까지 이곳에서 진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국가에서 하기로 결정되면 바꾸기 힘듭니다. 그러니 장관님껜 성장님을 설득하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짐을 다 싸놓은 류영준은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중국 여행이 끝났다.
허찌엔칭을 감옥에 보내고, 애트목스와 소송전을 벌이고, 유전자 조작 아기 미미를 치료하고, 세계 최고의 생물학자들을 모아서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어떻게 이만한 일들을 다 해냈는지 스스로 되돌아봐도 얼떨떨하다.
로잘린이 류영준에게서 퐁 튀어나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이제 집에 가나요?
로잘린이 물었다.
“응.”
-다행이에요. 중국은 제 취향이 아니었거든요.
“그래?”
-국가마다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거 알아요? 중국은 몇 종류의 향신료 냄새가 아주 강한 나라예요. 그게 좀……. 저한텐 별로라서.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수고했어. 근데 나 부탁 하나 있는데.”
-뭡니까?
“광둥성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해. 근데 좀 빡센 일이야.”
-힘든 일 하루이틀 시켰나요.
로잘린이 누운 채로 발을 동동 굴렀다.
똑똑똑!
류영준이 답하려던 찰나,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학술지 네이처의 에디터 안토니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류 박사님.”
그는 류영준에게 인사하고는 방 안을 힐끔 살폈다.
“누구 없으면 혹시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침대에 로잘린이 누워있었지만 안토니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방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저는 네이처의 에디터고 기자이기 전에 과학자입니다. 뭐, 우리 학술지 에디터들은 다 저랑 비슷한 케이스겠지만요.”
안토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중국에서 유전자 조작이라는 연구 윤리 스캔들을 류 박사님이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사후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류영준이 겸손하게 답했다.
“류 박사님의 그 정의로움과 연구 능력과 에이젠바이오의 저력을 보고 말씀드립니다.”
안토니가 말했다.
“네이처에 최근에 논문 한 편이 서브밋 (Submit)되었어요.”
서브밋은 논문 투고를 일컫는 용어다. 과학자가 학술지의 포맷에 맞춘 원고를 작성해서 편지와 함께 보내는 걸 말한다.
“어떤 논문인가요?”
“의학 논문인데, 중국에서 장기 이식을 받은 환자들의 거부 반응 등을 추적한 데이터예요.”
“중국에서 그런 논문 많이 나오죠. 아무래도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장기 기증과 이식 환자들의 숫자도 많고, 그 때문에 데이터를 확보 하기가 비교적 간단……."
“그게 사형수들의 장기를 불법 적출한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안토니가 말했다.
류영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네이처에 새로 서브밋된 논문을 우리가 편집하고 있을 때 ‘닥터 레프’라는 이름으로 편지가 하나 왔습니다.”
“닥터 레프?”
“아십니까?”
"......."
“사실상 신원은 확인이 안 된 사람입니다. 근데 그 네이처 논문에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이 있으며 그 데이터를 자세히 조사해보라는 얘길 하더군요.”
안토니가 말했다.
“중국 정부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는 장기이식 수술은 연간 약 1만 건으로 발표되었지만, 중국 의료계에서는 매년 약 6만 건에서 최대 10만 건의 장기이식 수술을 한다고 밝혔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
“그리고 그 막대한 숫자의 차이를 저희는 중국 내부 양심수 (Prisoner of conscience)의 사형과 장기 적출로 충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맙소사……."
양심수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로 투옥된 사람들을 말한다.
중국에선 특히 파룬궁, 티베트불교를 비롯한 소수 종교 신자들이 공산당의 압박으로 투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네이처 내부에선 기밀 사항입니다. 원래 외부에 유출되면 안 되는 정보고 극소수의 몇몇만 알아요.”
안토니가 말했다.
"......."
“하지만 류 박사님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지금.”
그가 약간 멋쩍은 듯 웃었다.
“과학계의 희망이시잖아요. 제가 팬이기도 하고.”